잔여
설영자하 / 2023년 1월 설영자하 미니 교류회 글 수정 발행
2023년 1월에 책으로 냈던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캐붕 날조 등등 이것저것 주의
8권 삼천세계 에피소드의 아래 인용 부분 직후로 이어지는 날조 글입니다.
(원작에선 이 이후에 바로 일하러 감😯😯)
“그건 그래. 설영랑은 역시 똑똑해.”
“벌써 주정이 시작되다니.”
자하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술잔을 또 비웠다.
“전부 남의 일이지. 그래도 이렇게 구경하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단 말이야. 남이 잘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두 잔째에 벌써 눈이 몽롱해졌다. 술을 더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진혼기 8권 | 정연 저
자하가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설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괜찮거든.”
자하가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취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설영이 들고 있는 술병에 손이 제대로 닿지 않았다. 안 취하긴 무슨. 설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다듬어 말했다.
“모셔다드릴 테니 따라오시죠.”
“역시 설영랑은 버릇이 없어…”
자하가 중얼거렸다. 이게 버릇이 없다고? 버릇이 없다고 하긴 했지만, 자하는 성실하게 설영을 따라 걸었다. 앞서가는 설영의 발소리에 이어 자하의 발소리가 겹쳐졌다. 그렇기에 설영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술취한 사람이랑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하지만 술 취한 당사자는 계속 떠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닌 모양인데 설영랑도 한잔하는 게 어때?”
“됐습니다.”
“설영랑이 술 거절을 다 하고 별일이네.”
“한 사람이 정신을 놓으면 한 사람이라도 멀쩡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나는 멀쩡하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자하의 금빛 눈동자가 장막을 씌운 듯 불투명했다.
멀쩡하다고요? 그럼 멀쩡하지.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설영랑이 나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안다고?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무슨 상관이냐니 당연히 상관이 있지. 내가 멀쩡한지 아닌지는 내가…
술에 취한 사람이랑 하는 대화는 의미가 없다. 계속 똑같은 얘기나 하게 되겠지. 너도 마셔라. 싫다. 취했으면 얌전히 있어라. 안 취했다… 알고 있는데도 말려들다니. 설영은 그냥 말을 돌리기로 했다.
“부제가 묵는 방이 군룡원 어디라고 했죠? 잘 때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건지 알려주세요.”
“이런 상황에서 잘 생각을 다 하네.”
설영은 정말 잘 생각으로 물어본 건 아니지만 화가 났다.
“그게 술 마신 사람이 할 소리인가요?”
“이게 어떤 술인지 몰라서 그래. 후회할걸.”
화제를 바꾸려고 한 건데 대답은 듣지 못하고 또 술 얘기로 돌아오다니. 잠시 생각하던 설영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둘은 별말 없이 걸었다. 그런데…
후회할 거라고?
설영은 자하가 들고 있는 술병을 살폈다. 이렇게 봐서는 특별함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저게 어떤 술인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설영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 사람을 금옥당 서재로 데려다주고 나서 군룡원의 서재에 가봐야겠다. 설영은 잠을 잘 생각은 없었다. 졸리지도 않았고…
다들 지키지 않는 것 같았지만, 자하가 비천택에 금주라는 규칙이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설영은 무방비하게 술병을 들고 있는 자하가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도록 살피며 걸었다. 두 사람은 다행히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세요.”
“설영랑은?”
“비록 상선은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저는 할 일을 해야죠. 단서가 있는지 찾아보려고요.”
“자러 가는 거지?”
“그건 그냥 말을 돌리려고 해본 말이었습니다.”
“왜?”
자하는 아까 대화를 되짚어 보는 것 같았다. 자하는 들고 있던 술병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아. 마시고 싶어서? 설영이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아니거든요.”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한데. 술에 취한 사람이랑 술 얘기나 하고 싶지 않았다. 자꾸 마셔보라고 하질 않나. 왜 안 마시면 후회할 거라고 했는지 그건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 그래. 그럼 술 취한 사람은 두고 가서 일 봐.”
자하는 그렇게 말하곤 설영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자하를 뒤로 하고 몇 걸음 가던 설영은 다시 뒤를 돌아 물었다.
“제가 후회할 거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자하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설영은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술 마실 기분이 아니라고 하더니?”
“마시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신경 쓰여서 물어본거예요. 후회할 일은 안 만드는 게 좋으니까…”
설영은 말끝을 흐렸다. 자하는 그게 보기 좋았는지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원래도 단정하지 않았던 옷매무새가 흐트러졌다. 옷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잘도 보여주는구나. 술이 약하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설영은 손을 뻗어 자하의 옷을 올려 주었다. 자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뭐해?”
“네?”
“앉아.”
“왜요?”
“내가 너를 올려다봐야 할까?”
안 앉았으면 되지 않았나? 설영은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자하의 옆자리에 앉았다. 왜 후회할 거라고 말했는지 답만 듣고 나갈 생각이니까…
자하는 얌전히 앉은 설영을 보고 또 웃었다. 술에 취하면 웃음이 많아지는건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설영은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잠깐 정도는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하는 설영의 앞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이건 신주야. 옛날 제사장들이 하늘의 계시를 얻기 위해 명상할 때 마시는 술.”
“예? 잠깐만요. 말이 명상이지 사실상 환각 아닙…”
“중얼중얼 시끄럽네. 아까부터 계속 술병만 쳐다보지 않았나? 그 성격에 여기까지 따라 들어와서 얌전히 앉아있잖아.”
진짜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렇지만 술이 궁금해서 여기까지 따라 들어온 건 맞았기 때문에 설영은 떳떳하게 따지지 못했다. 절대 이런 상황에서 술을 마실 생각은 없지만! 설영은 자하를 흘겨보다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자하 쪽으로 밀었다.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진짜 안 마실 건가 봐?”
“아까부터 뭘 들으신 겁니까?”
그럼 왜, 안 가고 계속 있는 거지? 당연한 의문을 설영도 자하도 뱉지 않았다. 자하의 옷은 또 흘러 내려와 있었다. 설영은 드러난 자하의 가슴께에 시선이 닿자 고개를 젓고 다시 옷을 올려 주었다.
“그래 뭐. 그럼 부제답게 술 시중이나 들어.”
술 시중이라니. 전혀 ‘부제’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했음에도 설영은 나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처럼 좋아 보이는 자하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써 이 정도로 취했으니 앞으로 두 잔 정도만 더 마시면 잠에 들지 않을까? 자는 걸 확인하고 나가면…
설영은 자하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런데 자하는 술잔을 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슨 생각이지? 자하를 살피는 설영의 귓가에서 귀걸이가 살짝 흔들렸다. 백의화랑인 자신은 귀걸이를 하지 않았지만, 부제는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소박한 귀걸이가 자신의 귓볼 아래로 짧게 늘어져 있었다. 백의화랑이라는 위치에 적응해 버린 건지 귓가의 장식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설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자하는 뜬금없이 설영의 귀걸이를 품평했다.
“그런데 부제는 귀에 뭘 하고 있는 거지? 진짜 안 어울리네. 이곳의 설영랑도 미적 감각이란 게 없는 모양인데.”
뭐 이런 걸 부제로 뽑은 거야? 자하가 중얼거렸다. 저 말을 듣는 게 이쪽의 부제 설영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설영은 술에 취한 선배의 망언을 대신 사과해야 했을 것이다.
“왜 또 시비입니까? 취했으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안 취했다니까.”
“안 취했다는 사람이 옷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진짜 큰일 날 사람이네. 뭐가 잘못된 모양인지 자하의 옷은 자꾸만 흘러내렸다. 안쪽 매듭이 풀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설영이 자하의 몸 안쪽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므로 곧 흘러내릴 옷을 또 올려 주었다.
“너는 존댓말만 하면 예의를 갖추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한참 틀렸어. 지금도 자기가 굉장히 예의 있게 군다고 생각하겠지. 어떻게 이런 게 화랑이 됐지?”
저런 걸 주정이라고 하는 거겠지. 설영은 무시하려고 했으나 자하는 설영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술에 취해서 정신 못 차리는 건 본인이면서. 미적 감각이 없는데 이런 걸 왜 부제로 뽑았냐질 않나(이건 부제 설영에게 한 말이긴 했다.) 예의가 없는데 어떻게 화랑이 되었냐고 하질 않나. 자기는 뭐 얼마나…
“상선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요? 그렇게 말하려던 설영의 시선의 자하의 귀 끝에 닿았다. 자하의 귓볼 아래로 잘 세공된 금귀걸이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자하가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귀걸이도 따라서 흔들리며 반짝거렸다. 설영이 아는 ‘상선’ 자하는 여러가지 귀걸이를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왜 자하가 ‘부제’ 설영에게 미적 감각이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본인은 저런 걸 하고 있으니… 하려던 말이 무색해졌다.
“처음 보는 거네요?”
“설영랑. 나한테 원래 그렇게 관심이 많았던가? 내 귀걸이 같은 것도 기억할 만큼?”
“관심 없는데요. 상선이 형님들도 아니고. 그냥…”
“그냥 뭐?”
“잘 어울려서요.”
뭐 잘못 먹었어?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자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특히 눈 앞의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내가 처음 부제가 됐을 때 누님이 주신 거랑 비슷한데. 뭐 이쪽 세계에서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상선’ 자하는 이 귀걸이를 하지 않았구나. 설영은 계속 자하의 귀걸이를 쳐다보았다. 귀걸이 끝 나뭇잎 모양에 정교하게 금세공이 되어 있었다. 그 위의 장식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자하 정도가 아니면 함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귀걸이였다. 자하와 정말 잘 어울렸다. 귀걸이를 따라 올라가던 설영의 시선이 자하의 귀 끝에 닿았다.
“계속 쳐다보는 걸 보니까 마음에 드는 건가? 내 것이라면 당장 빼 주겠지만 주인은 따로 있고…”
당장 빼 준다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다 하고.
그리고 설영의 마음에 드는 건 귀걸이가 아니라…
설영은 자하의 귓가에 입을 맞췄다. 충동적이었다. 설영의 입술에 자하의 따뜻한 피부가 닿았다. 그 순간 자하의 몸이 살짝 떨렸다. 둘이 닿아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의 미세한 떨림이었다. 잔잔한 수면에 조약돌 하나를 던진 것처럼 자하의 길게 늘어진 금빛 귀걸이와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설영의 앞에서 그는 언제나 느긋했다. 그런 그가 놀랐다. 그게 설영에게 어떤 쾌감을 주었다. 설영이 충동을 따르게 했다.
설영은 자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두 입술이 살짝 닿은 채로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자하가 뒤로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입술을 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밀치지 않았기 때문에 설영은 그것을 동의의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자하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자하의 입안은 따뜻했다. 계속해서 마시던 신주 냄새가 났다. 자하의 혀도 설영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숨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평소 새하얗게 질려있어 사람 같지 않았던 설영의 얼굴에 붉은빛이 돌았다. 아래쪽에도 피가 몰렸다.
설영은 잠시 눈을 떴다. 언제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금빛 눈동자는 눈꺼풀에 가려져 있었다. 그 눈가 아래로 가지런히 속눈썹이 뻗어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속눈썹이 조금씩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그게 좋았지만, 설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자하가 그러고 있으니, 자신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설영은 자하를 끌어당겼고 자하는 당기는 대로 이끌려 와 설영과 가까워졌다. 그게 설영에게 확신을 주었다. 자하도 같은 마음이라는 확신. 설영은 맞닿은 입술을 떼고 그 금빛 눈동자를 마주한 채 말하고 싶었다. 내 마음에 든 건 당신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건… 동시에 계속해서 그와 얽혀있고 싶었다. 꼭 붙어 있어 누구의 것인지 알기 힘든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와 불규칙한 숨소리가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설영은 계속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당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은 설영의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저 조금 더 닿고 싶었다. 그래서 자하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설영이 몇 번이고 올려줬던 자하의 상의는 아까보다 더 풀어져 있어서, 쇄골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설영의 손끝이 자하의 쇄골 가까이에 닿았다. 자하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손이 가슴께에 가 닿았을 땐 심장이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따뜻하고 심장이 뛰고… 그 순간 설영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자하가 설영을 세게 밀었기 때문이다. 닿아있던 둘 사이에 틈이 생겼다.
“까부네.”
자하의 말에 설영은 꿈에서 갑자기 현실로 끌어올려진 것 같았다. 꿈을 꾸고 있었나? 분명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 설영은 자신의 비어있는 술잔을 확인했다. 환각은 아니었다. 설영의 손끝에 여전히 자하의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었다. 분명 설영의 손이 닿은 곳에서 자하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하가 자신을 밀쳤고…
언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건지 설영이 몇 번이나 추어 올려줬는데도 자꾸만 흘러내리던 자하의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설영은 순간 치한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먼저 입맞춤을 한 것도, 옷 안에 손을 넣은 것도… 자신이었다. 싫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얼굴에 피가 몰려 홧홧해졌다. 조금 전과는 달리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뭐라도 말해야 했다. 설영은 자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 죄송합니다. 싫어하시는 줄 모르고… 까불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상선을…”
하지만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설영에게는 그 정도의 분별력이 남아있었다. 간신히 말을 멈춘 설영은 자하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싫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자하가 자신을 그런 표정으로 보고 있다면 그 사실은 영영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설영은 두려운 일에 맞서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설영은 조심스럽게 자하를 보았다.
자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설영을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그런 표정이었다. 싫었던 게 아니었나?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의문이 차올랐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예?”
“이쪽 국선이 네 취향이었던 거 아냐? 비록 안에 있는 건 나지만,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취향이었던 거지. 설영랑이 부린 추태는 봐줄 테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영은 상황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자하는 설영이 지금 상선이 아닌 이 세계의 ‘국선’에게 끌려서… 설영은 재빠르게 부인했다.
“그건 아니에요.”
“그게 아니면, 이곳의 원래 설영랑이 국선을 좋아했다거나? 끔찍한 얘기지만, 넌 그 영향을 받은 거고.”
자하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음 선택지를 내밀었다. 내놓는 답안이라는 게 하나같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하에겐 눈앞의 백의화랑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곳의 부제 설영랑이 국선을 좋아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하의 말대로 ‘끔찍한 얘기지만’ 설영이 그런 부제 설영랑의 영향을 받았다. 그건 부정하고 싶은 얘기였지만,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건 계기일 뿐이다.
설영은 상선에게 닿고 싶었다. 그건 설영 자신의 욕망이었다. 자하와 계속 닿아있고 싶었다. 자하가 닿은 입술을 떼지 않아서 좋았다. 심장 뛰는 게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감고 설영에게 집중하던 자하가 좋았다. 그 모든 부분이 사랑스러웠다.
설영에게 자하는 언제나 자신이 모르는 답을 아는 사람이었다. 자하가 가볍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가끔은 자신에 대해서도 자하가 더 잘 알았다. 그러니까 지금 설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왜…
그리고 내가 부제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거라면 당신은 왜 어울려 줬던 거지? 당신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지 않나?
설영은 자하가 싫었을까 두려웠다. 자하가 설영의 감정도, 행동도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자하는 언제나 설영의 예상 밖의 사람이지만, 대체 왜지? 눈 앞의 저 사람은 왜….
설영은 어떤 답에 도달했다. 어쩌면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그들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걸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저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명확해졌다. 평소에도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너무 많아서 두 손으로도 꼽기에도 모자랐지만, 저런 부분은 특히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렇게 굴 거면서 입을 맞췄던 건, 역시 자하도 설영과 닿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설영은 그게 맘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하에게 어울려 주기로 했다. 자하가 설영에게 그래 주었듯이.
그러나 그게 자하의 말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아니고요.”
설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상선을 좋아하고 있어요. 설영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일이 전부 잘 해결되고…자하의 마음이 편해지고 나면 그때 제대로 말하고 싶었다.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볼 테니 쉬세요.”
설영은 가지런히 의자를 밀어두고 나왔다. 후회할 만한 술이 뭔지 궁금해서 이 방에 들어와 자하의 옆에 앉았던 게 아니라, 자하 옆에 있고 싶었던 거겠지. 설영은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보았다.
자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평소의 자하라면 너는 정말 미친 사람이라는 둥…. 그런 말을 시끄럽게 잔뜩 해대서 지금쯤이면 설영이 귀를 막고 있어야 했을 텐데. 평소답지 않게 굴었다. 자하는 지금 이대로 정리하는 게 편할 거라고 결론지은 것 같았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지만 설영은 자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게 나쁘진 않았다. 설영은 갑자기 뒤를 돌아 자하를 향해 말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맞아요.”
지금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이하 후기입니다!
책에 넣었던 후기
그 직후(23년 1월 29일)의 추가 후기
제목.. 제목을 안정하고 있다가 표지 만들면서 넣으려고..했는데 제목이 생각 안나는거예요. 설마..없나???..했는데 진짜 없었다 잔여..그냥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을 나중에 정해서 후기에 넣지 못했어요..후기는 이미 한페이지를 다 썼고..줄간격까지 줄여서 겨우 맞췄고..)
교류회!!(라고 할 수 있나? 아무튼) 너무 재밌었어요♡♡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걸 보이는게 저로서는 굉장한 용기를 낸건데요..그래서 이걸 옆에서 읽는데 너무 힘들어서 저는 집중이 안되더라고요..그래도 이런걸 보임으로써 나도 설영자하 책이 하나 생겼으니까 해피엔딩이다..만나주신 원장님과 국밥님께 감사를!!!
아무튼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서 원장님이 다 읽고나서..결말이 이게 뭐냐고 하는거예요. 설영이가 너무 불쌍하대요. 그래서 제가
키스했는데도요??????
라고 했는데..아니 진짜 난..해피엔딩이라고..생각했는데 모르겠다..맞지 않나?
어쨌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지금(24년 3월)쓰는 수정 후기
4월에 설영자하 쁘띠존이 열려서 뭔가 두꺼운 책을 내고 싶었는데요.
저는 이렇게 짧은 글밖에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 고민하다가…
아, 그럼 여태까지 썼던 글을 다 넣어서 내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책?을 내기로 했는데 수요조사를 받고 보니까
어떤 글이 들어가는지 안내도 없고 링크도 안달았더라구요.
수요조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내가 뭔 글을 내는건지 다 알거라는 이 오만함(? 뭐지?
어쨌든 그래서… 링크를 달아보려고 했는데
뭔가 그 김에 펜슬이라는 새로운 사이트를 써보고 싶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쨌든 이런 계기로…
이제서야!! 제일 처음에 냈던 설영자하 책의 원고를 다시 열어보게 되었는데요.
(마주하기를 회피하여 포타에는 그냥 이미지 파일을 올렸었는데 진짜 그런 읽기 불편한 것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고 보니까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어차피 새 책에 들어갈건데 고치자!! 해서 이것저것 많이 뜯어 고쳤습니다.
전체적인 내용과 구상은 똑같지만 꽤 많이 고치게 되었네요! 3000자나 늘어났어요!!😯
아무튼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너무너무 즐겁게 오타쿠하고 있는 것 같아요!
행사도 너무 기대되네요.
어쨌든 원고 관련한 후기는 더 정리해서 책에 실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문제의 수요조사는 이쪽!(종료되었습니다.)
많관부🎶
(사실 많은 관심이 아니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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