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사이

. by 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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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는 않아도 대신 죽어줄 수는 있는 사이였다.

매드헤스턴과 캘시의 관계는 대체로 그렇게 엉성하게 굴러 갔다. 친구가 아니라도 꿈을 함께 할 수는 있었다. 애틋하지 않아도 밤 늦게까지 함께 술을 기울일 수도 있었다. 애정하지 않아도 그를 살릴 수는 있었고, 일전에 이미, 정말 별 관계가 아닐 때 이미, 캘시는 매드헤스턴에게 그런 식으로 목숨을 빚진 적이 있었다. 난 두 번 말하지 않아, 명령불복종자. 캘시 소위는 내가 데려가지. 그런 그를 보면서 태양 같다거나 꿈만 같다거나 그런 뻔한 로망스 노래 가사 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내가 뭐라고. 저 미친 작자는 아무 사이도 아닌 나를 왜 이렇게까지 해서 살려주는 걸까. 그리고 정확히 2년 뒤에 캘시는 그를 살리기 위해 사형수가 되었다. 여전히 둘은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후회하진 않았다. 맹세코. 피차 귀찮을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드헤스턴이 굳이, 정말 굳이 자신의 죄를 자백한 것은, 그렇게 해서 저를 풀어주고 그 대신으로 사형대에 올라간 것은 캘시에게 있어 조금도 감사한 일이 아니었으면 오히려 난처한 일이었음을 미리 서문에서 밝힌다.


매드헤스턴이 죽었다. 캘시는 풀려나자마자 기요틴의 광장으로 달려갔다. 처형은 오늘 오후 2시, 빠르게 집행될 예정이었다. 면회를 신청했으나 거절 당했고 처형장에도 오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때문에 캘시는 막 풀려난 감옥 앞에서 어물쩡거리는 것을 관두고 처형장으로 달려갔다. 광장까진 한참 남았는데 벌써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매드헤스턴은 죄인이라도 귀족이었으니 처형장까지 마차로 연행되었을 것이 뻔했다. 늦었다. 캘시가 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손수건에 피를 묻힌 사람들이 기요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죄인의 피를 손수건에 묻힘으로서 자신의 죄를 치유 받는다 믿는 풍습) 반신반의 했다. 귀족이니, 잘난 마차를 타고 갔으니 이미 죽고도 남았겠노라는 확신이 귀족인데 설마- 하는 의구심에 묻혔다. 귀족인데 죽였을까? 매드헤스턴은 땅도 많고 돈도 많은 인간인데, 그래도 죽였을까? 그 잘린 목을 들어 죄인의 더러운 피를 흘리게끔 만들었을까?

캘시는 칼날 앞에 놓인 양동이를 확인했다. 까만 통 안에 누군가의 싱싱한 머리가 놓여 있었다. 하얀색 머리, 이미 새서 하얗게 변한 머리. 캘시는 양동이에 손을 넣었다. 매드헤스턴이었다. 머리가 허옇게 샌 매드헤스턴.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손은 떨렸고 속은 미스꺼렸다. 캘시는 아주 조금 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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