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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투 리브 인 시티

Brotherhood / 스물일곱쯤의 방법

디지 by 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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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 일이 등장하면 딜런은 일단 고개를 돌렸다.

그 좆인지 일인지에서 떼어낸 눈을, 한 번 굴릴 시간 정도는 가질 수 있잖아. 그래, 됐다. 체다 치즈, 하고 중얼거린 딜런이 그대로 미소지었다.

“미스터 벨, 방금 그게 저희 집 옆을 지나던 개미 똥구멍까지 턴 돈이에요. 제대로 삥 뜯었다고 할 수 있죠.”

무릎을 굽히고 허리도 숙이고. 곱추 남자가 자신의 시선 위에 있는 것들을 경멸한다는 것을 아는 딜런은 상냥하게 몸을 구겼다.

“다음 달에 나머지도 합해서 드릴테니까, 좀 미뤄주시면…”

욕심이 드글한 노인네의 턱이 말려드는 것을 보며 딜런은 최대한 비굴한 미소를 유지했다. 낡고 비좁은 계단 앞 복도로 자신의 심장 소리만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울렸다. 씨발, 좆같이 뜸들이네. 난폭한 상상 위로 여전히 웃는 얼굴을 덧씌운 채 기다리기를 한참,

“그냥은 안 되고, 이번달 빚까진 미뤄주지.”

노인이 마침내, 한참 봐준다는 듯 생색을 내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딜런은 하마터면 입술을 깨물며 좋아할 뻔 했으나 잘 넘겼다.

“네가 양아치인 것 알고 있다. 한량같으니. 나도 대금업자처럼 이자를 붙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내 돈을 미룬 적은 없으니까 봐주는 거야. 한 번은 말이야. 한 번. 앞으로는 기대하지 말라고. 알겠어?”

결국은 혀를 깨물었다. 비릿한 냄새가 퍼지는 입으로 딜런은 씩 웃었다.

“감사하고 말고요.”

좆같은 영감. 뭐라고 더 시부렁대며 돈을 세러 들어간 노인이 문을 닫자마자, 피 섞인 침을 잇새로 찍 뱉은 딜런이 담배를 꺼내다 말고 번득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고요했다.

아래위로 눈치를 보며 산다, 내가, 씨발. 라이터가 켜지고 불빛인지 안도인지 모를 것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어쨌든 대도시의 방값이 만만치는 않았다. 아직 스물일곱인데 허리쯤은 부러져도 금방 낫겠지. 담뱃재를 떨어트리며 복도를 나선 딜런은 건물 앞에 꽂힌 신문을 뽑아들었다.

“니키!”

경적 사이로 마침 아는 얼굴이 건너편 건물의 계단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부름에 고개를 든 부랑자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가며, 딜런은 그래도 제 주변에 알파벳을 제대로 아는 놈이-동생을 빼고-하나는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오늘 일 구하는 운 좋은 놈이 있는지 보자고…”

/

그래, 빅-오 일등항해사. 항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행운입니다, 선장님!

그럼 옆에서 리틀-오 이등항해사가

날씨죠.

그렇게 말하곤 했다.\

/

“…그냥 돌아갈래? 메간이 배달 일을 시켜준다며. 같은 돈이면 먹고는 살 거 아냐, 거기선…”

그렇게 말하는 일라이의 눈은 지쳐있었다. 딜런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피로한 눈이 더 서글픈 눈을 본다. 일라이는 먼저 고개를 돌려 그 응시를 끝냈다. 색만 닮은 눈은 서로를 반사시키기 더 어려운 때가 있다. 한편 딜런은 일라이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럴 수도 있지.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같아진다. 오히려 더 비참할 수도 있겠지. 거긴 전기도 왔다갔다하는 깡촌이니까. 시꺼먼데서 흙을 퍼먹느냐 시멘트 위에서 튀김 부스러기를 주워먹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흙 옆에서 자라봐야 잡초뿐이지만 시멘트 위엔 도로라도 깐다고. 한테 철근이라도 세울 기회가 올 수도 있어, 천지차이란 얘기였다. 어린애는 이해하지 못할 법한 이야기긴 하지만 -

거기까지 생각하던 딜런은 잡다하게 끓어오르던 분노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끝내 헹, 하는 비웃음을 남기는 것으로 대화를 끊었다. 대신 다음달에 뭘 해서 밀린 방값을 더 미루지 않을지 같은 ‘쓸모 있는’ 고민을 시작하며.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고 — 딜런은 일라이를 업어키웠다. 그것만은 사실이다.

형제는 대도시를 벗어나 이사를 갔다.

나름 도시 근교긴 했다. 딜런은 제법 큰 회사의 기공 면접을 봤고 일라이는 페인트 가게의 면접에서 기가 막힐 정도로 미세한 색깔을 구별해내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

딜런은 이제 새벽에 나가서 오후에 들어온다. 일라이가 가게에서 돌아오는 시간도 얼추 비슷했다. 밤낮이 달라 스치면 다행이던 날이 언제였냐는듯, 형제는 냉장고에 쌓아둔 냉동 라자냐를 말없이 한 개씩 뜯어 비우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는 규칙을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스포츠 경기가 끝나고 파워볼 추첨이 있는 날이 별미였다. 네 재수가 옮았다며 낙첨된 종이를 서로에게 던지고 낄낄대노라면 갓이 깨진 램프 아래가 어느 유년의 날, 볕 아래처럼 익숙해졌고,

집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파라핀과 가스를 사서 창고에 좀 쌓아두자 겨울 앞에서도 든든했다. 계절이 넘어가는 길목에 빵집에서 크리스마스 파이를 샀고 라즈베리잼이 딸기잼보다 형제의 입맛에 맞는다는 것도 발견했다.

“역시 스파게티 놈들이 이런 걸 진짜 잘한다니까.”

“이건 프랑스 빵이야.”

대꾸하던 일라이가 빙판길을 잘못 밟아 기우뚱거렸고 그걸 보고 실컷 비웃던 딜런이 넘어졌다. 마침내 눈싸움이 벌어졌고…… 승패는 뻔했다.

“여기가 나을거라고 했잖아.”

딜런은 낄낄대며 자신의 매복과 무자비한 눈던지기를 도운 나무를 가리켰다.

“여기가 낫긴 하네.”

수긍한 뒤 눈을 털고 일어난 일라이는 새빨간 코로 조용히,

“밤에 눈 뜨고 자, 산타가 올해는 석탄이 모자라서 눈 양동이를 형 얼굴 위에 엎을지도 모르잖아.”

라고 덧붙였다. 그런 겨울이 왔다. 나은 겨울. 좀 추운 곳이었지만, 일라이는 떠올리면 아직도 그 근교 마을이 자신의 두 번째 유년같다고 회상한다.

기침을 하기 전까진 그랬다.

/

누더기가 된 창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 아기는 거기 누워 있었다. 이 집 안에 그 애를 대비한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음에도.

엎어진 오렌지 슬러시가 튀어 남긴 자국은 이제 티셔츠의 프린팅이나 다름없고

먼지 묻은 청바지는 받은 이래로 비누 거품이란 걸 묻혀 본 적도 없지만

이 아기도 아마 같은 바지를 입게 될 것이다

스니커즈 밑창이 구멍나 자갈을 밟을 때까지 신발이 헤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겠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딜런은 속삭였다,

— Hola, Hermano.

그래도 넌 이것들을 가질 거야.

내가 가진 것들 말야,

어쩌면 이것보다 좋은 것들도.

내가 줄 수 있는 걸 다 가질 거야,

넌 내 동생이니까.

통통한 배에 대고 한 맹세였다. 그때의 딜런은 티비에서 해 주는 어린이 해적단 프로그램에 빠져있었다. 거기서 맹세라는 걸 배웠지만 이 황무지 어디에도 그가 맹세를 바칠 대상은 없었다, 지금의 직전까지는. 그래서 한 것이다. 해적이라기엔 갸냘프고, 부드럽고, 파도보다는 포말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선장의 외침보다 위대하고, 담대하고, 엄숙한 맹세.

깊은 맹세에 응답하듯 다섯 손가락이 한 손가락을 감싸쥐었다. 아플 정도로.

That‘s ma boy.

딜런은 아예 아기 침대에 몸을 기대 속삭였다. That‘s ma bro. 벌써부터 닻을 올린 기분이었다. 출항하지 못하던 배가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인원수를 채웠으므로. 그가 기다리던 동승자가 마침내, 이 외로운 황무지 위를 떠날 배의 갑판 위로 올라섰으므로.

떠올리라면,

죽는 순간에도 떠올리라면 가장 처음 기억날 기분 좋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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