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 (■■)
: 사진 원판을 인화지 위에 올려놓고 사진이 나타나도록 하는 일.
불이 붙음. 또는 불을 붙임.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사에 시각적인 자료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내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추억을 간직하기보다, 내가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을 담는 행위였기에.
어느 날, 오르반이 팔티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두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많은 일들을 했던 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불안한 마음과 언제나 이렇게 모두가 모여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지금 가장 평화로운 때, 각자 밝은 모습으로 한 장씩 찍어두자는 설명에 나는 “그래, 그러자.”라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카메라 추억을 담는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은 오르반, 그다음은 파벨, 그다음은···.
“바스티안, 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뭐? 내 사진? 그런 걸 왜 찍어?”
카메라를 올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협조해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척 당황한 바스티안이 뒷목을 쓰다듬으며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찍을래. 현상한 사진···. 마르티나가 계속 가지고 있을 거잖아.”
“그게 왜? 난 네 사진이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바스티안은 그게 무슨 의미냐는 조금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거짓 없는 기쁜 웃음에 나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바스티안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몰래 찍어보려고도 했지만 현상을 하면 늘 검은 형상으로만 현상되었기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마르티나!”
깊은 물속에서 강하게 끌어올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살핀다. 거친 숨과 함께 그레타는 나를 끌어안고 나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러주었다. 나는 전혀 안정되지 않았지만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그레타를 둘 수 없어서 괜찮다며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가 사라지고 재활이자 기분전환으로 시작한 오래된 필름들을 현상하다 새것으로 보이는 필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자주 사용하던 필름과는 전혀 다른 필름을 확인하니 단 한 장의 사진이 찍혀있었다. 작은 필름을 이리저리 인상을 구겨가며 보려고 애썼지만 역시 뚜렷하게 보이질 않는다.
이 사진을 절대 보면 안 될 불길한 기분이 들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축축하게 젖은 인화지를 말리기 위해 집게로 걸고 있었다.
여전히 불쾌한 기분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라가는 종이를 응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담긴 사진에 소름이 끼쳤다.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인화지를 찢겠다고 안간힘을 써대며 질기고 질긴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내던졌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그 필름은 버릴 수 없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