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키바


미끄메라는 자기가 사랑받는 걸 알았다. 왜냐면 약한데도 버림받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미끄메라를 맨손으로 만지지 않는데 금랑은 매일 껴안아주고, 입맞춰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하고 싶지 않았다. 금랑은 약한 미끄메라도 배틀에 나가게 해주었고, 미끄메라는 자기가 순순히 강해지고 있음을, 곧 진화할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미끄메라는 금랑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았다.

“미끄메라.”

몸을 웅크리고 엉엉 울면서 촉수를 떨고 있으면, 금랑은 그를 볼에 넣거나 다그치지 않고 들어안았다. 드래곤 포켓몬을 다뤄서 그런가 금랑은 미끄메라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서늘하고 촉촉하고 매끈한 피부를 가지게 되었는데, 미끄메라는 그 팔에 잔뜩 늘러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금랑은 웃음을 터뜨리며 미끄메라가 목을 타고 올라 파카와 목덜미 사이에 자리잡는 걸 도왔다.

“응석부리고 싶은 날이야? 우리 공주님, 오늘은 싸우기 싫어?”

미끄메라 대신 나선 비브라바는 잠시간 금랑 위를 날고 배틀에 임했다. 미끄메라가 목 위에 있어 평소보다 조용히 지시하던 금랑은 야생 포켓몬을 쓰러트리고 나서 곧장 비브라바를 볼에 넣지 않았다.

비브라바는 며칠 전 진화했다. 좀 더 금랑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뻐하던 것도 찰나, 날개에 익숙하지 않은 비브라바가 일으킨 초음파는 미끄메라를 어지럽게 했고, 금랑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미끄메라와 비브라바는, 그제서야 금랑이 사람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드래곤 타입의 오빠처럼 형처럼 보여도, 금랑은 사람이었다.

천적을 기절시키는 초음파는 막 진화한 비브라바의 실수이기 때문에 그렇게 강하지 않다. 금랑처럼 큰 드래곤이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이다. 금랑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둘은 안심했지만, 그래서 더 금랑이 미끄메라의 어지럼증을 이해하지 못한 게 부각되었다. 금랑은 느끼지 못했다. 사람은 이것에 기절하지 않는다.

금랑은 사람이었다.

아니, 당연하잖아. 미끄메라는 많은 포켓몬들이 이렇게나 촉촉하고 쫀득한 피부를 가지지 않음을 알았다. 미끄메라의 점액 투성이가 되곤 하는 피부는, 부드럽고 희미하게 따뜻하고 바싹 마른 햇살냄새가 나곤 했다. 미끄메라는 그 피부에 점액을 차닥차닥 발라 약간 습하고 축축한 냄새를 묻히는 걸 좋아했다.

미끄메라는, 둘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손을 씻는 금랑을 물끄러미 살폈다. 제 점액 투성이로는 식사준비를 할 수 없단 걸 이해하고 있다. 금랑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도, 미끄메라의 점액은 병균 투성이다. 비브라바가 안절부절 못하며 주변을 맴돌다, 바위 뒤에 몰래 소화액을 뱉었다.

미끄메라는 진화하고 싶지 않다. 비브라바는 시무룩한 얼굴로 미끄메라 옆에서 날개를 쉬었다. 금랑이 진짜 드래곤이라면, 금랑이 포켓몬이라면, 미끄메라도 비브라바도 이렇게 서운하진 않았을 것이다.

소화액을 분비하고 그것을 먹이에 끼얹는 타입의 포켓몬은 대부분 친애의 감정을 인간과 공유하지 않는다. 미끄메라는 비브라바에게 진화할 때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비브라바도 미끄메라가 진화하면 알려주기로 했다. 그래도 미끄메라는 무서웠다. 미끄메라가 봐온 야생 미끄네일은 먹이와 도망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일쑤로, 친구를 녹여버리는 일에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았다.

금랑을 먹어버리면 어떡하지? 미끄메라는 무서웠다. 비브라바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밥 먹자 얘들아~!”

미끄메라는 느릿느릿하게 금랑에게 다가갔다. 미끄메라를 무릎에 올려 안고 비브라바를 마주보며 금랑은 그들의 식사를 먼저 챙겼다. 배가 부르면 금랑을 먹고싶어하진 않을지도 몰라. 언제까지고 배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랑은 배틀을 좋아했고, 미끄메라는 금랑과 함께 이기는 것을 사랑했다.

괜찮을 거야. 미끄메라는 용기를 냈다. 금랑을 보고 배운 용기였다.



미끄네일은 자기가 사랑받는 걸 알았다. 비브라바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기가 얼마나 금랑을 사랑하는지도 알았다. 미끄네일이 먹이에 대해 생각할 때면, 금랑은 늘 먹을 것을 내주었다. 그것을 걸쭉하게 녹여 먹이고 있으면 금랑은 두 손 모두에 팔꿈치까지 오는 보호장갑을 꼈다. 미끄네일의 분비액으로 녹아버리지 않기 위한 장치였다.

“미끄네일.”

촉수에 닿지 않도록 섬세하게 쓰다듬는 손길을 사랑한다. 미끄네일은 밥을 먹다 말고 금랑에게 몸을 부볐다.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어. 약간 낮고 맑고 비브라바가 날려버리는 모래알처럼 하늘하늘한 목소리가 웃음을 머금었다. 미끄네일은 찬찬히 금랑을 느꼈다. 시력은 완전히 사그라들었지만 예민하게 세상을 느끼는 건 그녀의 특기였다.

미끄네일은 자기가 금랑의 피부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 진한 색의 피부에 점액을 짓쳐바르며 달라붙으면, 그게 얼마나 시원하고 촉촉하게 자신을 끌어안아주는지 알았다. 그걸 사랑했다. 미끄네일의 점액이 흘렀다.

“아,”

보호장갑이 녹아들었다. 금랑은 잠깐 고민했지만 피하지 않고 미끄네일을 안아주었다. 미끄네일의 점액은 무엇이든 녹여버리니까, 진화하고 나서는 제대로 안아주지 못했다. 녹은 보호장갑과 섞인 점액이 피부에 눅진하게 묻어 싸했다. 화끈하게 피부 표면이 녹는 게 분명했다.

“우리 공주님, 응석부리고 싶은 날이야?”

비브라바가 날카로운 초음파를 쏘았다.

미끄네일은 기절하지 않았지만 재빠르게 금랑에게서 물러났다. 두통이 습격했음에도, 금랑은 다소 어리둥절한 모양새로 다리에 붙어오는 비브라바를 보았다. 미끄네일의 점액이 묻은 팔로 만져줄 수는 없어서 애매하게 팔을 들어올린, 이상한 자세였다.

“비브라바? 왜 그래?”

비브라바는 날개로 금랑의 다리를 툭툭 때렸다. 나 혼내는 거야? 금랑은 어리둥절하면서, 그래도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 괜찮아.”

금랑은 반쯤 녹아 피부에 묻고 있는 장갑을 벗어내고, 섬유가 녹기 시작한 파카를 벗어 장갑을 감싸 정리했다. 미끄네일은 기가 죽은 모양으로 머뭇거렸고, 비브라바는 안절부절 못하며 금랑의 주위를 돌았다.

점액이 안쪽 런닝에는 묻지 않은 걸 확인한 다음, 금랑은 비브라바를 끌어안고 손 끝으로 미끄네일의 턱을 들어올렸다.

“너희가 다 커버리면, 피부가 다치거나 두통이 일거나 하는 일도 없을 텐데 뭐. 천천히 크면 좋겠다, 그치?”

미끄네일은 그 다정한 냄새와 서늘한 온기와 모래알처럼 부슬거리는 웃음을 느꼈다. 자기가 사랑받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 사람을 사랑함을. 늘 자길 지켜줬던 사람을, 지키고 싶음을, 깨닫는다.

용은 지킬 것이 있을 때에야말로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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