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귤🍊은 사랑을 타고

테스트 겸~ 포타 게시글 하나 업로드~!

부인.

삼동의 서늘한 냉기가 속눈썹 사이로 가닥가닥 얽혀 희게 내려앉은지 오래다. 산의 어귀에 가만 앉아 있던 유는 귓가에 들리우는 나즈막한 부름에 고개를 든다. 여지껏 기다리던 이의 음절에 호안은 환히 피어나고, 곧이어 그 시린 뺨 위로 와닿는 굵직한 손 끝이 온기를 내어 주듯 흰 살갗을 나릿 쓸어왔다. 날이 냉한한데, 어찌 이리 나와 계시오. 타박하는 듯 하면서도 입가 위로는 숨길 의 없는 웃음이 걸려 있으니 유는 그를 마주하며 저 또한 엷게 웃는다.

삿갓도, 지우산도 없이 나가신 듯 하여…. 아무래도 이쯤이면 곧 오시겠거니 싶어서 잠시.

잠시라기엔 뺨이 이토록 찬데. 

살풋 안아 올리는 손길이 익숙하여 유는 소설小雪의 대기 하에 조금쯤 굳은 몸을 편안히 놓았다. 한층 올라선 안활의 끝으로 담기는 지천의 마른 땅줄기, 그리고 그 위를 덮어내듯 온통 새하얗게 쏟아진 서화…. 저를 바투 그러안은 이의 머리 위로도 점점이 내려앉은 눈꽃바람에 유는 그리 하면서도 들고 있던 지우산의 끝을 그에게 어슷하니 기울여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안겨 오는 몸을 편토록 고쳐 안은 청명이 그 모습에 재차 웃더니 나머지 한 손 위로 작대를 받아 들었다.

이리 주시오. 부인 나와 계신 줄 알았더라면 내 좀 더 서두를 것을.

음… 긴히 아니 오신 덕택으로… 설중산수나마 실컷 눈에 담은 셈 칠까요?

보시시 접히는 눈매 밑으로 작대를 넘겨 주는 손 끝이 제법 차기에, 아므려도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오래도록을 구동의 찬 공기 속에 제 부인이 앉아 있었던 듯 해 그는 어귀에 나려 쌓인 눈만치 수심이 깊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감모라도 다시 들면 어찌하오?

금번에 이미 앓고 지나간 객인데 설마요.

겨우내 초입을 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진즉으로 한참을 앓았던 이가 가벼이 대꾸하는 속닥임에 그는 얕게 눈썹을 꺾는다. 허나 제게 남은 손이 없었던 탓으로 이윽고 마냥 미소하는 발그레한 낯에 이런, 따위의 침음이나 내고 마는 것이다. 부인께서 손수 챙겨들지 않으신다면 저라도 알아 덥혀 드려야 할 것인데, 노는 손이 없으니 이를 어쩐다. 

눈 나린 산 위로 걸음을 두면서도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가 싶던 그가 곧 저를 불러 오기에 유는 너른 어깨 위로 묻어 두었던 고개를 다시 든다. 평시 만족스러울 적이면 으레 지어보이곤 하던 흡족함이 입가 위로 슬쩍 걸려 있음에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왜 그러시냐 몇 번을 불러 보자면, 단숨에 돌아오는 대척.

내 한 손으론 부인을 안아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지우산을 받아들어 손이 부족하지 않소.

그렇지요…?

다시 받아 드릴까요 하며 의아히 손을 뻗어 오는 몸짓에 그는 느릿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러지 말고…. 손이 시렵진 않으시오? 

넌지시 건네오는 물음에 무엇을 바라시는가 싶어 눈만을 깜빡이고 있으려면 그는 간단히 스스로의 쪽으로 고갯짓을 끄덕이는데, 그런다한들 영 무슨 뜻인지 모를 일이라 유는 때 아닌 의문 속에 빠진다. 곱은 손 끝과 고갯짓이 당최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리 하시는 걸까? 그에 덩달아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니 짧게 소리까지 내어 웃어오는 모양새다. 혼자만 저리 웃지 말고 말을 해 주시면 좋을 텐데, 제 상공되시는 이께서는 이따금 뜻 모를 말에 헤메이는 의문 가득한 낯을 두고서 저리 쿡쿡댐을 즐기시는지라. 유는 금세 한층 더 발갛게 물든 뺨을 부풀린다. 

괜히 그러시지 마시고, 답을 내어 주세요.

아… 미안, 크흠. 미안하오. 

설핏 토라진 뺨이 못내 앙증하여 그는 계속하니 차오르는 소성을 참는 일에 꽤나 애를 들일 수 밖에 없다. 지척의 숨 위로 새어나오는 소태에 비례하듯 보드란 뺨은 불퉁히 솟아올라가나 그마저도 그에게는 가일층 가애로울 따름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이런 심중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의 부인께서는 샐쭉 그 입만을 내미심에 그는 급기야 저 알아 걷겠노라 투정이라도 덧붙여 놓으실세라 얼른 말을 잇는다.

정말로, 별 건 아니고. 이 위로 부인 손이나마 대고 있으시란 뜻이었소.

예? …손…이요? 

어찌 그리합니까…. 거듭 목덜미를 가르키는 고갯짓에 유는 부루퉁히 공기를 불어넣었던 뺨마저 잊은 채 난색을 표해 냈다. 한시에 손 끝을 꼼질대며 이렇게 찬 것을요, 우물대어 오는 모습에 그는 문제될 것이 무엇이냐는 양 도리어 재촉을 읊는다. 두어 번 거절을 내뱉던 유가 기어이 소매를 잡아 내려 제 손 끝을 숨겨대니 그는 기울인 고개 밑으로 지우산을 어깨 위 끼워 두었다. 하여 자재를 찾은 큰 손이 소매 속으로 숨어 든 손 끝을 잡아들어 빼내는 싱거우리만치 가벼운 행동이 결국 강건한 목 위로 물 흐르듯 이어지니 그에 유는 얕게 한숨을 토한다.

누군가 보고서 무어라 욕한다 한들, 차마 할 말이 없으니… 달린 입이 무위합니다…….

누가 무어라건 말건. 내겐 내 부인 아니 추우신 것이 제일이지.

재차 작대를 쥐어 든 청명이 마땅히 웃으매 발간 손마디 끝으로 닿은 목이 그 체온을 타고서 나직이 울려 온다. 그 울림에 유가 제 심부의 박동도 놓아둔 채 기대고 있으려면, 조용히 엇갈리며 울려 오는… 목전의 들숨과 날숨… 고요한 대기 속에서, 서로를 천천히 얽으며 뻗어져나가는 호흡…….

시린 공기 중으로 희게 섞여 흩어지는 숨덩어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간 유는 배시시 몸 속에서부터 스며나오는 간질거림을 몰래몰래, 조금씩 뱉어 내었다. 혼례를 올린지 이제 슬슬 한 해를 훌쩍 새어가는 참이긴 하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접한 온기 밑으로 여즉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듯 심심치않게 널뛰어대는 덕이다.

다만 한 해를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제 부군되는 이가 가직이 그러안은 품 안의 유달리 잦은 맥 하나 알아차리지 못할 이 아님은 여상히 깜빡하는 탓으로, 머리 위에서 퍼지는 낮은 웃음소리가 그저 별 뜻 없이 내뱉어진 것이라 여기는 숫스레한 부인을 두고서 청명은 한참을 달가이 입가를 올려짓다가는 입을 연다.

내 부인 드시라 금귤 몇 개를 얻어 왔지.

금귤이요?

올라 가거든 홀로 드시오. 몇 개 아니 되니 저번처럼 괜시리 이곳저곳 알리지 마시고.

유는 눈꺼풀을 나붓이 팔랑인다. 새벽 나절에 어렴풋 꿈 속에서 동글동글하니 데구르르 굴러오는 금귤 몇 개를 본 뒤로 잠결에 옆에 뉜 이에게 무어라 중얼거린 것 같기도 하나, 샐녘이 지나고서는 그것마저도 그저 몽 중의 몽인가 싶었는데……. 꿈 속에서도 단 것을 찾아 바지런히 헤매던 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부끄러움 반, 까무룩히 스쳐가는 짧은 섬어를 귀담아듣고서 그 길로 곧장 산록을 내려걸음한 이에 대한 닳지 않을 연정 반으로 귓가가 뜨뜻무레히 달아올랐다. 뒷덜미까지 타고 내려 이어지는 뜨끈함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유는 두터운 목 위로 올려얹었던 손 끝을 든다.

이녁도 두고, 저 홀로요?

폭하니 볼을 눌러 오는 가느다란 섬지에 그는 조금쯤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손수 가져다주셨으니 반이라도 갈라 먹여드리려 했지요. 그러나 홀로만 먹으라 하시니 마냥 저 홀로 다 먹을 수밖에 없는듯 하여.

아니 그러한가요? 농하듯 가벼이 종알대어 오는 속닥임이 낭창하고…,

금귤이란 것이 워낙에 조그마해, 손으로 가르기 어려우니 입으로나마 반 갈라 물려드리려 했는데.

살포시 접어오는 눈매가 배 속을 작게 간질여 와, 그는 도리 없는 마음으로 옅게 잠소한다.

그럼 나는 예외로 쳐 주고.

그러면 그리 할까요?

꺄르르 희소하는 말간 얼굴은 미처 헤아릴 수 없이 달고, 온 몸의 혈관을 타고서 떠다니듯 퍼져나가는 깃털같은 가닐거림은 이윽고 심부 위로도 사뿐히 내려 앉아 저를 하릴없이 간질여댄다. 마땅히 저 있을 자리 이 곳이라 외쳐대는 종속에는 멎을 의 따위 추호도 없음에 그는 진즉 그러했듯 다시 한 번 기꺼이 제 심장을 내어 주었다. 부인께서 먼저 내어 달라 한 적 없음에도 기위 모조리 쥐여 주고 말았던 마음자락일진대, 이제 와 닿으면 날아갈까 보이면 달음할까 사릴 소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터져 나갈 듯 빠듯한 마음자락에 괜스레 품 안의 이를 한껏 더 바투 고쳐 그러안자면, 머뭇 바라 보더니 말을 이어 오는 그의 여인…….

어…무거우…, 아니…힘에 부치신다면, 이만 내려놓아 주셔도 되는데….

화륵 달아오른 눈초리의 끝이 부끄러이 떨림에, 그는 그 얇은 눈가를 부족한 손 대신으로 짙게 입 포개고서는 느릿 떼었다.

부인께서 별 걱정을 다 하시오.

그래도요….

혹여 저 때문에 공연히 말 잇지 않는 것 아니시냐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너울진 눈망울, 꾹 다물었다가는 몇 번 더 소리 없이 달싹이는 작은 입…. 그에 비하면 한참을 작달막한 그의 내자께서 무엇을 그리 개의하시는지 모를 모습이라, 그는 너울진 눈매를 진득히 마주하다가 여태 붉게 물든 귓가 위로 입을 가져다대고서는 나즈막히 저어한다.

그제 임석간에도… 몸소 확인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뗀 입술의 끝으로 자약히 읊어 댄 저간의 밤낮에, 서렸던 걱정이라고는 단숨에 달아난 듯 저를 쳐 오는 가벼운 손짓으로 인하여 그 저어는 곧이어 파안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 아니…! 으, 밖에서 …… 어찌 남사스럽게 못 하는 얘기가 없으셔요…!

그러니 작게 말해드리지 않았소?

…이……몰라요! 이제 입 열지 마세요.

연한 손바닥으로 답싹 막아 온 입이 깊게 호선을 그린다. 읏…. 옅게 핥아올린 살갗이 순간 움칠 바르르 떨리는가 싶지만 차마 뗄 수도 없는 듯한 감태로운 망설임에 그는 한 겹 막힌 입 그 너머로 홍윤한 이를 향해 잦추듯 농하듯 청을 놓는다.

내 보기에, 이 입을 막아두기에는 이걸론 족하지 않은 듯 싶소만….

얹어둔 손 위로 내려앉는 숨결, 그 너머로 연호하듯 저를 이끄는 눈길……. 아차 싶었으나 아마 모르쇠하여 눈을 감는다 해도 닿아올 것이라고, 유는 이제사 직감한다. 그러나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저를 향해 오던 시선일랑 그제 문 틈 사이로 잘게 조각나 새어들어오던 월색 아래와 같이 침강한 지 오래라.

…그러하니, 부인 보시기에는 어떠하신지?

기다 아니다, 마치 선택의 탈을 뒤집어 쓴 양 오롯 하나 뿐으로 주어진 답을 알아챈 이의 목덜미가 마냥 붉다. 짓궂으셔요…. 여지없이 붙들리고 만 성영은 취연하기 그지없어 그는 여타의 대척을 대하여 제 부인을 안아 든 팔을 들어 올렸다. 

어찌 하시겠소?

아이참…….

재촉하듯 물어오는 어성에 훤히 트인 사위로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입을 막아오던 자그마한 두 손은 어느덧 선 굵은 턱 위를 살짝이 덮어 오고, 팔랑이던 목첩은 나부끼는 노서처럼 내려 감기지만… 그는 줄곧 그리했듯 눈 감지 아니하는 것이다.

올려다 본 내유한 얼굴이 찬찬히 제게로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부둥킨 두 팔 또한 풀지 않음에… 비스듬히 겹친 입 위로 맞닿은 숨은 다사롭고, 깊게 덧얽힌 혀 끝은 전면하여…. 

…허니 이 곳이 실로 겨우내 눈 내리는 산중인지, 흡사 화우 내리는 한낮의 감춘인지 도통 가릴 길 없는 노릇이나 역연하듯 그와 동시에 차피 가릴 필요 없는 일인 셈이다. 두 발 디뎌 서 있는 이 곳 무엇이 되었든 그에게 있기로서 저를 향해 보드랍게 닿아 오는 저 손 끝으로는, 해말간 시선 끝으로는… 그야말로 사시사철이 다 무엇이며 그것이 언제고 늘상 꽃 피어오르는 만춘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격인지라….

그는 인소하던 마음자락을 완족히 놓아 두었다. 대신하여 머리 끝부터 발 끝을 내리닫는 흡족함이 심중의 커다란 공동을 메우듯 춘풍처럼 따사로이 불어 오고 깊이 들어찬 호수를 마를 일 없이 봄비 나리듯 달보드름 채워 옴에, 아무래도 겨우내 잠들었던 만물을 깨운다던 춘삼월보다도 눈부시게 다붓하신 그의 봄께서는 이리도 친히 제 품 안으로 사붓 찾아와 주신 듯 하니….

그러니 과연, 이 어찌 한없이 기쁘지 않을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