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종뱅. 종수병찬. 발렌타인 데이 연성

종수는 가능하면 의미가 부여된 모든 날을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부모님이 그러했듯이. 그러므로 둘이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살게 되면서 처음 맞게 된 발렌타인 데이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날이었다.

문제라면 박병찬이 단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주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책상 서랍 안에 사탕 봉지를 넣어두고 며칠에 한 번 정도 생각날 때 한두 알 정도 먹기는 한다. 그러니 먹기는 하되,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는 스타일인 거다. 그런 사람에게 고디바 골드 컬렉션 20구짜리를 선물하는 것은 좀 과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거다.

경기가 없는 날이라, 훈련을 마치고 구단 클럽 하우스를 나온 종수는 곧장 아파트로 향했다. 현관에는 대충 벗어놓은 병찬의 운동화가 정리되지 않고 흐트러져 있었다. 준향대 체육관에서 팀 훈련을 끝내고 돌아와 있는 모양이다.

거실로 들어서도 병찬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파에 겉옷을 걸쳐 놓은 종수는 잠시 망설이다 초콜릿이 담긴 쇼핑백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반은 쑥쓰러움 때문이고, 또 반은 살짝 의심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과연 박병찬도 오늘을 함께 축하하려는 생각을 하긴 했을까. 나만 들떠 있다고 놀림당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병찬의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문을 밀고 안을 들여다보니 책상에 앉은 병찬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헤드폰을 쓰고 있다. 그래서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었던 모양이다.

시야 끝에 걸리는 종수의 모습에 병찬이 한 손으로 헤드폰을 목으로 끌어내렸다.

“종수 왔어? 일찍 왔네?”

인사를 하면서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입안으로 던져 넣는다. 종수는 병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너 나한테 초콜릿 안 줘?”

마주 종수를 바라보던 병찬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번졌다.

“어? 초콜릿 먹고 싶었어? 방금 마지막 꺼 먹어버렸는데.”

병찬이 아몬드 초콜릿이 담겨 있던 빈 타블렛을 들어 보였다. 최근에 사탕 대신 찔끔찔끔 까먹고 있던 것인가보다. 그 표정이며 말하는 걸 보니 함께 축하는 고사하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완전히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 태평한 얼굴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글쎄, 분노보다는 승부욕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종수는 병찬에게 달려들어 양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입술을 맞붙였다. 손쉽게 열린 입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혀로 안을 헤집는다. 값싼 초콜릿 맛으로 채워진 입안을 한참을 더듬어 혀가 잡아낸 것은 이미 초콜릿이 다 녹아 벗겨진 아몬드뿐이었다. 물론 종수의 혀는 아몬드알을 병찬의 입 안에 남기고 얌전히 후퇴했다.

대뜸 키스를 해놓고도 잔뜩 찌푸려진 종수의 얼굴을 본 병찬은 한층 더 이상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몬드 초콜릿 그렇게 먹고 싶었어? 지금 사다 줄까?”

“박병찬 너는, 너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지…?”

“오늘? 수요일 아냐?”

맥 빠지는 대답을 하면서도 병찬은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이내 아! 하는 탄성을 낸다. 드디어 깨달은 모양이다. 그리고는 킥킥 웃는다. 그 입안에서 부서지는 아몬드 소리가 짜증스럽다.

“발렌타인 데이구나. 맞지? 완전히 잊고 있었어.”

“하, 됐어.”

종수가 돌아서서 방을 나오자 병찬이 황급히 뒤를 따라왔다.

“발렌타인 데이는 늘 받는 날이라고만 생각해서, 줘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어. 지금이라도 뭔가 사올 테니까.”

웃음이 가득 배인 병찬의 목소리가 유쾌하게 울렸다. 어쩐지 더 화를 낼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종수는 소파에 내려놓았던 쇼핑백을 들어 병찬에게 건넸다. 쇼핑백에서 금빛 상자를 꺼내 열어본 병찬의 얼굴에 더 큰 웃음이 번졌다.

병찬은 상자를 내려놓고 하트 모양의 초콜릿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종수에게 내민다.

“뭔데? 너한테 주는 거야.”

“응. 좀 전에 초콜릿을 받는 아주 끝내주는 방법을 배워서 말이지.”

웃음으로 가늘어진 병찬이 눈이 빛나고 있었다. 종수는 민망함에 잠시 얼굴을 찡그렸지만 내밀어진 갈색 하트를 입안에 머금었다. 바로 다가붙는 병찬을 제지한 종수가 씩 웃었다.

“녹기 전에 가져가야 카운트야.”

“그렇다면 다행이네. 도전 횟수가 꽤 넉넉한 것 같아서.”

병찬이 20구 중 단 하나가 빈 초콜릿 상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곧 웃음 가득한 입술이 종수의 것에 닿아왔다. 값싼 초콜릿 맛이 남아있는 입술과 혀다. 하지만 곧 다른 맛이 나게 될 거였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맛이.

—————-

발렌타인 데이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트친들과 농담하던 중 떠오른 이야기로 허겁지겁 썼던 스피드 라이팅.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종뱅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