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쫑x갑사뱅
종뱅. 종수병찬. 단문.
화려하고 분방한 차림에 두 귀를 온통 뒤덮은 피어스, 그리고 옅은 화장에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어깨에까지 드리워진 긴 머리카락까지. 박병찬은 이제껏 최종수의 인생에 존재한 적 없는 타입의 남자였다.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년 인재를 소개한다는 특별 프로그램을 위해 대기실에 모인 출연자들 중에서도 그는 유독 튀었다. 수학 천재로 MIT에 입학했다는 수수한 여자애나, 어딘가의 공방에서 인간 문화재의 후계자로 전통 자기 제작을 하고 있다는 말 없는 남자애, 그리고 NCAA 디비전1에 출전하는 농구선수 최종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방송국에도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대기실에 놓인 음료를 가져다 마시고, 스태프에게 농담을 던지고, 가져온 기타를 튕겨보기도 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미 꽤 이름이 알려진 인디 가수라고 했다. 방송이나 연예인에 완전히 무지한 종수지만 언젠가 그가 불렀다는 곡 하나 정도는 들어본 적 있다.
스태프가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원래 아이돌 기획사의 연습생이었다고 했다. 부상으로 데뷔조차 못하고 소속사를 나왔다가 몇년 후에 인디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싱어송라이터로 돌아온 인물이라고 했다. 방송계에서는 박병찬이 드라마 OST에 참여하면 시청율이 3%는 상승한다는 소문이 있다던가.
부산하게 대기실을 오가던 박병찬이 가장 구석자리 소파에 앉은 종수의 곁으로 와 털썩 주저앉았다. 요란한 움직임에 소파 시트 전체가 들썩여 종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박병찬이 손에 든 물병을 내밀었다.
"마실래?"
종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대본집으로 눈을 돌렸다. 진행될 방송의 흐름만 간단히 적여있는 거라 이미 두 번이나 읽은 것이지만 달리 눈둘만한 곳이 없었다. 쓰여있는 문자열을 무의미하게 눈으로 좇고 있는데 곁이 꽤나 신경쓰인다. 박병찬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종수의 얼굴을 훑고 있다. 시선이 간지러운 촉감으로 느껴질 정도다. 결국 종수의 눈은 대본집에서 떨어져나와 돌아보고 말았다.
"뭐야?"
"너 속눈썹 되게 길다. 무슨... 인형 같아."
"보지 마."
"보면 안 돼?"
"짜증나니까 보지 말라고. 왜 사람을 그렇게 보는데?"
"예쁘니까."
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며 박병찬은 소리내어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예쁜건 오히려....
박병찬은 이제껏 종수의 인생에 존재한 적 없는 타입의 남자였다. 그래서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다. 익숙한 세계의 경계에 나타나는 낯선 것은 관심을 끌기 마련이니까. 신상품 과자나, 새로운 디자인의 운동화 따위. 시간이 좀 지나면 대수롭지 않게 잊혀지는 것들처럼. 그러니까 종수는 딱 그 정도의 흥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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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병찬이를 사랑하는 어느 분을 위해 썼던 단문 스피드 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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