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와님네(411호)

[이치사쿠] 이름짓기

레니와님네 드림 적폐날조 3차 창작

이것이 충심이라면 당연한 일이리라. 이것이 원망이라면 홀로 녹여 없애면 될 일이다. 허나 이치고 히토후리는 아직 그 마음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이치고 히토후리

누군가 그를 불렀다. 언뜻 듣기에 담담한 것 같기도 하고, 간절한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분명하게 그를 불렀다. 하여 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헤매이는 일 없이, 곧장 그곳에 도달했다. 그렇게 깨어난 그가 처음 눈에 담은 것은 환희에 부푼 분홍빛 눈동자였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제 주인일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만면 가득한 미소와 눈동자처럼 빛나는 은은한 분홍빛의 머리카락에 눈길이 닿는다. 다른 정보들을 인지하기 전에 목의 아래, 가슴의 중심부에서 따뜻한 형태없는 무언가가 흘러넘치는 게 느껴진다.

"저는 이치고 히토후리."

사람의 몸은 가죽 밑에 있는 혈관으로 피가 흐르는 법인데, 마음도 그처럼 흐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아와타구치 요시미츠의 손에서 태어난 유일의 태도. 토시로들은 제 동생들입니다."

눈이 부신 탓일까, 어딘가 잘못된 듯 기분이 이상하다. 막 사람의 몸을 얻은 터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일까.

"주군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 사니와, 사쿠라. 사쿠라라고 해."

"잘 부탁드립니다."

온화하고 진중하신 분. 막 깨워진 마음에, 그의 새 주인이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원래의 색 같은 건 알 수 없지만, 지금 이치고 히토후리의 마음을 꺼내어 본다면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꽃잎의 색과 같으리라.

"바라는 것이 있으십니까?"

"저기, 있잖아!"

"말씀하십시오."

그의 물음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나온다.

"이치고가, 제일 늦게 와서.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와 함께 다급한 왼손이 뻗어와 그의 오른손을 잡는다. 앞서 걸으며 천천히 그를 이끄는 뒷모습이 그를 하하, 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게 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처음 보게 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그 아래에서 소녀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들 이치고가 온 걸 알면 기뻐할거야. 나도, 이치고가 와서 기뻐."

"그렇군요. 저도...기쁩니다."

사쿠라는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아니, 웃음소리를 흘렸으니까 알까? 동시에 울리는 발소리가 마냥 그를 '기쁘게'했다.

그 일분 일초가, 이치고 히토후리에게는 보물이었다.

그가 주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서는 동생들이 반갑게 그를 맞이해주었다. 동생들을 반갑게 마주 안으면서도, 그는 곁에서 배시시 웃는 제 주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도검남사로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혼마루에 익숙해지고, 주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의 원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분홍색이 아니라 검은 색이라는 점이라든지, 그가 현현되었을 때 본 모습은 보기 굉장히 드문 모습이라든지.

그 사실은 이치고 히토후리에게 기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그로 인해 주인이 극히 행복해했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들었고, 다시 볼 일이 요원하다는 사실이 그를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해서 봄날의 벚꽃처럼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치고 히토후리의 소망은 그렇게 태어났다.

도검남사로서는 우수하지만 마음을 가진 신으로서는 서투른 그는, 그 소망이 어떤 이름을 가지게 될지 아직 몰랐다. 굳이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저 바라는 것을 향해 움직였다.

처음 이름을 불렸을 때, 헤매는 일 없이 곧장 왔던 것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것이, 손을 뻗어 붙잡고 싶어지면. 밝게 빛나는 꽃잎을, 손 안에 쥐고 간직하고 싶어졌다면. 그것을 가슴 속에 품고, 혼자만 마주하고 싶어진다면.

그것은 분명 충심은 아닐 것이다. 녹인다고 없어질 원망도 아닐 것이다.

아직 그가 붙이지 못한 이름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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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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