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교환

베텔기우스자리 | 광광

0. 꿈이다.

꿈을 보았다. 지나간 별의 꼬리같은 그런 희미한 꿈을 저수진은 꾸었다. 중요한 내용이 있었던 것만 같은데. 아, 분명 그렇게 매일 같이 같은 꿈을 꾸었던 것만 같은데 이상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했다. 조금 쓴 박하맛이 상쾌했다. 수진은 바뀐 하복을 꿰어 입으면서 생각했다. 오늘 꿈은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았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 저수진은 요 며칠의 꿈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저수진은 꿈을 보았다.


1. 눈

날이 추웠다. 오늘 기상일보에 눈이 온다는 소식은 없었지만 공기엔 눈 냄새가 났다. 눈냄새는 비 냄새와 다르다. 꿉꿉하고 무거운 냄새는 자락도 남기지 않고 차고, 버석하고, 흩어지는 냄새가 난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냐고 한다면-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겨울의 냄새는 정지된 냄새다.

“무슨 생각을 하나.”

“네 생각?“

“미쳤나?“

“어때 보이나?”

빨간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더이상 대꾸하지 않는 저 입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여기서 말을 더하지 않는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여자는 자신에게 미련이 없다. 오히려 제 쪽에서 매달려야겠지. 영원을 돌려보아도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함께 걷는 강아지 떼는 걸음을 재촉했고, 이상하리 만치 날이 좋았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괜찮나? 오늘이 몇 일이지? 날을 세는 것도 잊었나? 어쩌면 바보는 나일지도 모르겠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었는지 옆에 있던 크세니야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말 미친겐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것만 같았다.


2. 쾌청

  눈소식이 있었다. 다만 하늘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상청이 늘 그렇지 뭐 싶었지만 아쉬웠다. 눈이 잘 어울렸는데. 공기의 냄새가, 태도가 그 감촉이 딱 오늘에 어울렸다.

이 꿈도 벌써 3달 째인가. 같지만 다른 꿈을 꾼다. 꿈에서 깨면 어째서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꿈에서 만큼은 선명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크세니야가 내 옆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이건 꿈이구나. 열기 없는 꿈이구나. 일기예보조차 맞아떨어지지 않는 엉망진창인 곳에서 우리는 별을 세었다. 내가 저 별도 쏘아줄수 있다는 말을 하면 크세니야는 콧웃음을 치며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정말 평화롭기 짝이없는 꿈들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어김없이 눈이 내렸고, 어떤 날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다. 꿈의 끝은 늘 같았다. 내가 고백을 했고, 크세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꿈에서 깬다. 내일도 꿈에 크세니야 보야르스카야가 나와주려나. 이것이 꿈이라고 입밖으로 뱉어버리면 다시는 날 보러 와주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소리를 내지 못했다.


3. 몽리

크세니야가 내게 말했다.

“너는 언제나 네 멋대로 나를 떠올리는군.”

크세니야가 나를 보았다.

“하늘을 봐.”

꿈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꿈이서 깨어났다.


4. 관측

   여름이다. 겨울이 아닌 여름. 생명이 태동하고 냄새가 재생되는 여름. 그런 여름의 끝에서 저수진은 별의 꼬리를 쫓았다.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로 그는 끝임없이 쫓았다. 그 여자가 남기고 간 철지난 줄 헤드셋의 끝을 만지작거렸다. 이젠 쓰지도 못할 물건이다. 2099년에 1999년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가 분명 더 쓰지도 못할 터였다. 아, 이젠 2100년인가.

그리고 그 옆에 이젠 골동품으로 취급해줘야 할것만 같은 CDP가 보였다. ‘돌아가려나’ 따위의 감상을 저수진은 쉽게도 뱉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괜히 그 CDP를 조작해보는 것은 분명한 미련이었다. 그래 미련.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흔적을 손으로 훑고 눈으로 더듬어보려는 그런 미련.

저수진은 이제 꿈을 보지 못한다. 정확히는 꿈을 꾸어도 크세니야 보야르스카야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여름의 베텔기우스 자리만이 빛나는 도시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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