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n] 글

Salad Days 1~2 (중단)

underneath 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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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d Days

철부지 시절, 풋내기 시절

1

포켓몬의 기술인 달콤한 향기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제조된 스킨을 손바닥에 흘린 뒤 얼굴에 문댄다. 향긋하고 묵직한 스킨 냄새가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순무는 기분좋은 나머지 좋아하는 곡을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듣기 무난한 멜로디지만 가사는 애달픈 이별을 담아낸 곡이다.

그즈음, 마찬가지로 샤워를 끝낸 나누가 욕실에서 나왔다. 짧고 까만 머리칼을 대충 수건으로 물기만 제거해 부스스한 것이 꼭 성난 나옹같아서 귀엽게 보였다. 물줄기가 광대뼈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걸 본 나누는 손에 들고 있던 젖은 수건을 그 위에 툭 떨어뜨린다.

순무는 일어서서 새로운 수건을 찾아 나누에게 건넨다. 나누가 물기를 없애는 동안 순무는 새 옷을 꺼내 입는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은 어젯밤의 흔적들. 순무는 그것들을 그러모아 세탁할 준비를 한다.

"몸 괜찮아?"

나누가 불쑥 물어본다. 평소엔 무뚝뚝해도 이럴 때 걱정해주는 것이 고마운 순무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누는 아직 물기젖은 몸으로 속옷과 하의만 입은채 말없이 순무의 품에서 옷가지들을 가져간다.

순무는 그 하이얀 등을 바라본다. 많은 사정이 담긴 작은 등을 타고 물방울이 주륵 흐르는 것을 지켜보자, 시선을 의식한 나누가 뒤를 돌아본다. 순무는 그저 웃어보인다.

인터폴 공조수사에서 큰 건을 처리하여 포상휴가를 받은 나누가 순무를 만나러 호연지방에 온 지 2일째 되는 날의 아침이었다. 타국의 인터폴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활동하던 포켓몬 밀반입 브로커 일당을 쫓던 도중 관동지방의 유명한 범죄집단 로켓단이 일부 관련되어있음을 밝혀내고 수사국에 보고를 올렸다.

나누의 팀이 올린 보고를 받은 수사국은 즉시 협력관을 지원해주었고 브로커 일당을 찾아내 일망타진에 이르렀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과정 속에서 나누의 팀이 올린 공이 컸기에 수사당국은 짦은 휴가를 내주었다.

오랜만에 먹는 익숙한 밥맛에 와구와구 먹던 나누가 사건 설명을 하며 젓가락을 든 손을 내젓는다.

"이걸로 로켓단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지 싶어. 하루라도 빨리 그 집단을 없애버려야해."

로켓단은 혜성처럼 나타난 악명높은 조직이었다. 주로 관동지방을 거점으로 두고 전국 각지에서 범죄활동을 저지르고 있다. 아무도 조직의 우두머리에 대해 알 수 없었고 본거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조무래기들이 잡혀도 절대 발설하지 않는 걸 보면 충성심을 세뇌시키는 것으로 추측 중이다.

그저 나누를 대단하게만 바라보는 순무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로 로켓단과 그 산하 조직에 나누의 이름이 알려졌을 거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순무의 존재도 언젠간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앞선다.

나누는 자기자신이 위험 상황에 처할 것을 대비해 절대 연을 이어갈 사람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것은 순경부터 경찰생활을 시작했을 때 마음먹은 것이었다. 인터폴에서 근무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나 선례와 들은 말들을 통해, 밖으로 나가지 않은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알고 있는 나누는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는 데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 나누의 인생에 순무가 비집고 들어온 것도 오래된 일은 아니다. 호연지방에서 태어나 포켓몬 트레이너로 수련을 쌓으며 언젠가 호연리그 제패뿐만 아니라 널리 나아가 타국의 리그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거창한 꿈을 가진 청년 순무. 나누를 만난 것은 순무가 포켓내비를 잃어버리면서였다.

업무 차 호연지방에 들렀던 나누는 잿빛도시의 길거리에서 포켓내비를 하나 줍게 된다. 본업이 본업인지라 분실물을 가만둘 수는 없어 근처의 벤치에 앉아 주인이 다시 동선을 따라 이 주변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어차피 볼일도 끝난 참이라 내일 아침 항구로 가서 배편을 타고 호연을 떠나는 일뿐이었다.

벤치에 앉아 주인잃은 포켓내비를 살펴본다. 그리 지저분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생활감 있는 잔 스크래치가 나있는정도. 기기를 켜보고 연락처를 살펴본다. 내비의 소유자 이름이 순무라고 저장되어있다. 연락처에는 부모님, 친구같은 사람 몇명, 포켓몬센터 긴급전화번호…. 훔쳐보는 재미가 없다.

기기를 손에 든 나누는 주인이 언제 올지 기다리며 커다란 잿빛도시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 좋고, 기온 적당하고, 바다 냄새도 실려오고. 슬슬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내비가 전화벨소리를 울리며 나누를 깜짝 놀라게 한다. 발신인은 부모님 중 한명이었다.

"여보세…."

"여보세요?! 저기, 저, 포켓내비 주인인데요! 지금, 지금 어디 계세요?!"

나누는 커다란 목청에 귀가 멀까봐 포켓내비를 귓가에서 뗐다. 그래도 주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 예… 저는 지금 잿빛도시에 있어요. 길가다 우연히 주워서 보관 중이니 찾으러 오세요."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그리고 전화는 뚝. 어린애인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일어서서 기지개를 켠 뒤 길을 거닐며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겠다. 그렇게 서 있다가 다시 내비가 울렸다. 어디에 있냐는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큰 건물을 지칭해 그 앞에서 보기로 한다.

성큼성큼, 구둣발로 걸어가는 나누의 눈에 당황한 모습의 청년이 보였다. 어린애가 아닌 것에 의외라고 생각한다. 그 청년은 자길 쳐다보는 나누를 발견하고, 바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왔다. 키는 나누보다 조금 더 작았고 까만 머리털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가벼운 폼에 체육계열에 몸담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무는 나누에게 감사를 표하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아까 잿빛도시로 볼일을 보러왔다가 저도 모르게 흘렀나봐요. 제가 아직 가진 게 없어서 이거라도…."

그러면서 궁금하지도 않은 분실 경위를 줄줄 읊으며 주머니에서 화폐를 꺼낸다. 나누는 어차피 심심한데 시간이나 죽일까, 라고 생각하며 말을 건넨다.

"저기, 사례금은 됐으니 맛있는 거나 사주세요. 출장 온 거라 여긴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에 순무의 얼굴이 밝아진다.

"네! 제가 호연 토박이거든요."

나누는 즐거이 미소지으며 순무의 뒤를 따라갔다. 적당한 맛에, 적당한 분위기의 식당. 순무가 고른 메뉴는 척 봐도 약간 매워보이지만 순무는 잘만 먹는다.

"무슨 일때문에 호연까지 출장을 오셨어요?"

순무가 호기심어린 까만 눈으로 나누를 보며 물었다. 나잇대가 비슷해보이니 궁금한가보다.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경찰이라 답하면 언제나 놀라던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린다. 이 감정 과잉의 청년 순무는 아마 큰소리까지 낼지 모른다.

"그냥 적당히 벌어서 먹고 살고 있어요. 그럼 순무 씨는요? 다리 근육이나 뛰는 품새를 보니… 운동을 잘 하시나봐요."

나누의 말에 순무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다. 어떻게 알얐나는 거겠지? 생각하는 게 다 얼굴에 드러나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아, 넵… 저는 호연리그에 출전 준비 중인 트레이너에요. 트레이너라 해봤자 아직 한참 멀었지만요."

그러면서 부끄러운듯이 눈을 슬그머니 내리까는 게 귀염성이 있다. 나누는 절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뭘까, 이 따뜻한 느낌.

"그런데 나누 씨는 눈썰미가 대단하시네요. 척 보고 다 아시네. 신기하다."

"하하. 사실 아까 전화왔을 땐 좀 더 어린앤줄 알았어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나누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앳된 얼굴, 행동거지에 반해 튼실한 몸의 차이가 구미를 당겼다. 예의가 아닌 것을 알지만 트레이너 경력을 묻는 척 하며 나이를 물어본다. 순무의 나이는…… 나누와 동갑이었다. 나누의 말을 들은 순무는 눈을 반짝인다.

"같은 나이인데 엄청 어른스러우시네요!"

'이미 우리 둘 다 어른된 진 오래인데요.'

속으로만 그 말을 삼킨다. 아마 서류가방에 셔츠, 정장, 구두차림이라 더욱 성숙해보일 수도 있다. 스포티한 소재 차림인 순무는 영락없이 천방지축 청년으로 보였다. 누가 봐도 오랜만에 재회해서 같이 밥 한술 뜨는 형제사이로 보일 듯하다.

식당을 나선 뒤 순무가 포켓몬 배틀을 권유해왔다. 역시나 눈을 빛내길래 그 바람에 호응해주고는 싶지만 인터폴 기구 훈령 상 수사에 필요하지 아니한 개인 간의 배틀은 금지였다.

다만 가족이나 지인 등과 함께 사택 내에서 친목 도모나 교육 목적으로 행하는 것은 가능했다. 나누는 현재 보는 눈들이 많았기에 배틀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직업상 그건 안 된다고 하자 얼굴에 실망이 가득하다. 나누의 말 한마디에 올랐다 내렸다 하는 꼴이 꽤 재밌다. 놀리는 맛이 있다고 해야하나.

"대신 번호 교환하죠."

붙임성이라곤 없는 나누는 불쑥 나온 말에 스스로도 놀란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순무가 기뻐하며 잃어버렸다 되찾은 포켓내비를 벌써 내밀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연락처를 입력해준다. 이건 분명 실수지만 장래 유망한 챔피언이 될 수도 있으니 한명쯤 알아놓으면 좋겠지, 라는 자기합리화에 이른다. 나누도 자신의 포켓내비를 순무에게 내민다.

"친구… 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순무가 포켓내비를 돌려주며 물었다. 나누는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렇다고 대답해버린다. 이상하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사교에 있어 까탈스러운 성격인데도 순무때문에 감정제어가 어려웠다.

"좀 더 친해지면 말 놔요!"

그 때 나누는 깨달았다.

"그러죠."

감정의 노출을 최소화 해야 하는 자신과 달리 있는 그대로 모든 걸 솔직하게 내보이는 순무에게 빠져버렸음을.

"좀 더 친해지면…."

날씨 좋고, 기온 적당하고, 바다 냄새도 실려오고.

대화를 통해 나누가 오늘 아침 떠나는 걸 알게 되었던 순무가 나누를 부른다. 그 부름에 고개를 돌리면 순무가 또 가벼운 몸놀림으로 턱턱 달려왔다. 아침해를 받아 까만 머리칼이 반들거린다.

순무와 헤어지고 호텔에 돌아가서도 나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웃는 얼굴을 잊으려 애썼다. 연을 이을 사람같은 건 만들면 안 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러나 나누는 순무에게 조금 더 집요하게 매달리며 짓궂게 굴고 보듬어주고 싶어졌다. 밖에 내놓으면 불안한 어린동생같은 보호욕 비슷한 것이 샘솟는 것만 같다. 너무 정의로운 직업에 몸담다 보니 직업병이라도 생긴 걸까.

나누는 호연을 떠남과 동시에 순무와의 인연도 끊을 요량으로 고개를 다시 돌려 배를 타러 걸어간다. 하지만 뒤에서 익숙한 운동화의 뜀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적지 않은 인파 속에서도 그 소리만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순무에게 빠져버린 것이다. 나누는 고개를 젓는다. 안 된다. 이런 일을 하는 나는 하룻밤의 관계가 아니고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다.

순무가 다시 나누를 부르며 곁에 붙어 따라온다. 그 바람에 나누는 걸음을 멈춘다. 붉은 눈동자가 아침해를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앞으로 언제 또 볼진 모르겠지만 좋은 인연 만들었다고 생각할게요. 어제는 정말 감사했어요. 심심할 때마다 연락하세요. 호연에 올 일 있으면 꼭 연락…."

짧은 시간에 서두르는 순무의 말은 끝까지 나오지 못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진 나누가 순무를 꽉 안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누의 강한 팔 힘과 반대로 순무는 얼어버려 몸이 굳어버린다. 나누는 언제 몸을 뗄지 타이밍을 가늠하다 놓쳐버리고 주변의 눈길을 받았다.

"나, 나누 씨……."

목소리에 깜짝 놀라 헐레벌떡 순무를 놓아주면 당연하게도, 굉장히 놀란 얼굴이었다.

"미안…."

나누는 머쓱해져 바닥을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감정을 참아온 부작용의 결과가 이런 추한 꼴이라니.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었다. 잠시동안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오간다.

"저기."

둘이 동시에 입을 뗐다. 그리고 동시에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것이 웃겼는지 순무가 웃어버리자 나누도 엉성한 거짓웃음을 띄우고 웃어준다. 그러면서도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고 생각한다.

"먼저 말해요."

나누는 잘못을 저지른 벌로서 순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만 가볼게요."

"그게 끝이에요?"

"그럼 무슨 말을…."

"힘들어서 가기 싫은데 가야하잖아요."

정곡을 찔린 나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를 인연을 두고 떠나 전자기기 하나에 의지해야했다. 이럴 거면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일이 힘들면 가끔 연락하세요. 저는 안 바쁘니까."

아. 아아아.

순무는 그저 나누가 일이 많은 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누는 약간 어이없어져서 긴장이 풀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괜히 속으로 걱정했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순무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까만 눈동자 속에 비치는 자기자신을 들여다본다.

"또 올게요."

그 말에 순무의 눈이 가늘어지며 미소가 만개한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나누를 대하는 순무의 태도에 의외라고 생각한다.

"꼭 다시 오세요."

"당연하죠. 마음에 들었거든요."

문득 나누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티켓 발부를 위해 서둘러야만 했다. 나누는 발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뒤로 향한 채 순무에게 말한다.

"호연지방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기쁜듯이 손을 흔드는 순무의 모습을 끝으로, 고백을 에둘러서 표현한 나누는 벅차는 가슴을 안고 귀로에 오른다.

2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이리저리 몸을 옮겨 일터로 되돌아간 나누는 약속대로 지치고 피곤할 때엔 순무에게 연락을 넣었다. 처음으로 연락했을 때는 연락할지 말지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포켓내비만 쳐다봤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마땅히 할 말도 없었기에 잘 내고 있냐는 안부인사로 첫운을 뗐다.

순무는 생각보다 빨리 전화줬네요, 라며 벌써 일이 그렇게 힘드냐고 농을 던졌다. 사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던 나누는 호연에서 보낸 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그 때가 생각나서 전화해본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순박했던 그의 미소를 떠올리며 웃었다.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눈치가 없을 건지도 궁금해하면서.

나누가 있는 곳에서 낮을 보낼 때 호연은 이미 밤이었기에 통화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아직 문자 송수신 기능이 없던 시절이기에 짧게나마 통화하는 그 시간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아마 내일이면 오늘보다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순무는 언제나 호쾌한 목소리로 나누의 투정을 받아주었고 근황을 알리며 요즘 호연에서 유행하는 것들이나 수련에 관한 이야기, 조언들, 시시껄렁한 잡담을 함께 이야기했다. 주변에선 사귀는 사람이라도 생겼냐, 국제전화 통신비 폭탄맞을 걱정이나 하라며 나누를 놀려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같은 친구는 없었어. 어서 빨리 보고 싶네."

빨리 보고 싶다는 말이 귀에 박힌 나누는 살짝 두근거렸다. 어느새 전화통화만으로 친해져버린 둘은 얼굴을 마주보지 않기에 좀 더 쉽게 말을 놓을 수 있었다.

나누는 자발적으로 외로운 길을 택했다. 위험에 빠질까봐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순무 역시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호연의 사천왕들에게 도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홀로 수련 중에 있었다.

그런 외로움들의 줄기가 엉켜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나누는 아니었지만.

어느날, 순무가 이야기 하길 꿈에 나누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누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으나 들뜬 목소리를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이리저리 갖고논다.

"그으래? 꿈에서 뭐 했어? 보나마나 널 또 놀렸을 것 같은데."

"……."

이상하다, 통신 불량인가. 포켓내비 너머로 순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간에서는 이미 신오지방의 신제품 포켓치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으나 아직 포켓내비가 쓸 만해서 나누와 순무는 통신기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 기기가 고장날 때가 되었나보다. 다음에 포켓치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그랬어."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뒤에 나온 순무의 목소리에 나누는 흠칫하며 볼펜을 갖고 놀던 손동작을 멈춘다. 느닷없이 대답한 것도 있지만 그 목소리에 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왜 아무말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런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차마 물어볼 순 없다. 늘 밝고 쾌활한 순무가 미적지근하게 구는 건 나름의 사정이 있을 터.

"나누… 언제 볼 수 있어?"

"어, 엉?"

한숨과 함께 이름을 불리자 나누는 또다시 흠칫했다. 과거의 산물인지라 음질이 완전히 깨끗하지 않은 포켓내비를 통해 들려온 순무의 날숨섞인 목소리에 약간 두근거린다. 별로 좋지 못한 상상만 하다가 실제로 들으니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아롱거리는 목소리. 연약하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 고막이 다시 듣길 바라고 있었다.

"요새 힘드냐?"

나누는 애써 장난스럽게 물어보았다. 오늘따라 순무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호들갑스럽지 않으며 침착하고 뭔가 망설이는 느낌이 있다. 순무에게 힘든 일이라도 생긴 건지 걱정이 드리운다. 그래서 자신이 꿈에 나온 게 아닐까, 라는 부끄러운 상상을 해본다.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알려줘."

이번엔 단호한 순무의 말투에 나누는 급히 손가락으로 달력을 날짜들을 짚어본다. 그러나 인터폴의 업무란 게 해외 팀과 협업하는 것이기에 또 언제 호연에 갈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었다.

"아직 출장 업무가 없네. 미안해."

이래서 인연이란 걸 만들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 걱정만 시키고 위급상황에는 곁에 있지도 못한다. 꿈에서까지 나올 만큼 지금의 순무에겐 그가 기댈 나누의 어깨가 필요했는데 당장 달려갈 수 없는 현실에 짜증이 났다. 잠깐의 침묵 후, 순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에서라도 봤으니 괜찮아."

그 순간, 나누는 아련하게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순무에겐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 날 그렇게 친근함의 여지를 남기고 떠나온 것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친구, 소식도 알 수 없는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순무의 마음의 떠나지 않도록 붙잡고 순무가 힘들 때마다 자신을 찾기를 바란다. 그게 불가능하여 꿈에 나타날 만큼.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자신에게 혐오스러웠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기분 풀어, 다음에 갈 때 맛있는 거 사서 갈 테니까."

위로하려는 나누의 말에 순무가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짧은 웃음소리에 나누의 가슴 속에 쌓여가던 어두운 걱정들이 하나 둘 껍질이 벗겨지고 그 속에서 안심이라는 것이 샘솟는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호연에 엉거주춤 도착한 나누를 상상하여 웃었기를 바랐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순무가 행복해한다면 얼마든지 우스꽝스러운 말들을 해줄 수 있다.

마음이 풀렸는지 순무가 이만 잠을 청해야겠다며 통화를 끝낸다. 나누는 포켓내비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통화기록에는 외사과의 동료들, 각종 정부기관, 경찰기구, 배달음식점뿐이다. 그 중에서 간단히 순무라고만 표기된 문자들. 긴 이름들 중에서도 짧고 간결하여 단번에 눈에 띄었다.

나누는 그 이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감정을 숨기고서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언젠간 참다못해 폭발해서 실수를 저지르진 않을까. 게다가 위험인물의 뒤를 쫓는 자신이 먼저 단명할 확률이 높았다.

계속 친하게 지내다간 순무가 상처받을 일이 생길 것 같고, 그렇다고 친우관계를 버리면 현재 둘 다에게 치명적인지라 관짝 뚜껑 닫히기 전까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것만 같다. 나누는 계속되는 갈등에 미간을 주무른다.

각자의 안전을 위해선 순무를 떨쳐내야 하지만 헤실거리며 웃는 그 얼굴과 아까의 힘없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난다. 겨우 하루, 아니,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이렇게 빠질 수가 있을까.

정답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지금 나누가 몸소 체험 중이기에.

나누와 순무가 재회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좀 더 지나서였다. 가여운 순무의 목소리는 그 날 이후로 들을 수 없었지만 나누는 한편으로 순무가 애써 슬픔을 감추고 있진 않은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직접 얼굴을 맞대는 날 그리 침울해했던 이유를 물어볼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있을 때. 호연지방에 있는 협력관에게서 기밀자료 원본을 받으러 갈 일이 생겨 지원자를 받았다. 중요하긴 해도 겨우 서류를 가지러 가는 일인데다 다녀오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임무였다.

나누는 재빨리 신청을 넣었고 신청자가 아무도 없는 바람에 자동으로 나누가 담당이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이리저리 몸을 옮겨 호연으로 되돌아간 나누는 떠나기 전, 신이 나서 순무와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최근 나누의 모습이 이상하다 여긴 주변사람들은 나누가 교제 중인 사람이 호연에 있음을 짐작하며 오랜만에 보는 사람일 텐데 잘 해주라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혹자는 그 냉철한 나누가, 라며 적잖게 놀랐다.

좁은 외사과의 소문을 타고 나누가 호연지방 사람과 열애 중이라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결국 나누는 모두의 후대를 받으며 짧고도 먼 출장 준비를 했고 이 일을 순무에게까지 말하게 되었다. 순무는 나누의 직장동료들이 참 엉뚱하지만 착한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그 말을 듣던 나누는 생각했다. 동료들의 응원처럼 정말 나와 네가 사귀는 중이었더라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잿빛도시의 항구에 발을 디딘 나누는 오랜 이동에 뻐근해진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목도 한 번 꺾고, 허리도 한 번 돌려보고. 짠 바다냄새가 바람을 타고 나누를 감싼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인파 속에서 순무를 찾아본다. 순무는 먼저 와있지 않은 모양이다. 주머니에서 포켓내비를 꺼내 순무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나누!"

전자기기를 통한 부정확한 목소리가 아닌, 그토록 듣고 싶었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와 퍼뜩 고개를 들면 얼굴 가득 반가움을 띄운 순무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재빠른 속도로 나누에게 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은 나누는 두 팔을 활짝 열고 어서 이리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갖고 싶었던 것이 품 안에 들어오자 놓치고 싶지 않아 꽉 안는다. 너무 세게 안는 건지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고 오직 이 따뜻한 감촉을 손에 붙잡고 있고만 싶었다. 순무가 억지로 나누의 품에서 먼저 떨어진다.

"숨막혀 죽겠다. 잘 지냈어?"

"너는?"

"잘 지냈지!"

나누와 순무는 불과 몇시간 전에도 통화를 했건만 뭐가 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우선 배나 채울 요량으로 순무의 옆을 따라 길을 걷는다. 순무는 오랜만에 나누를 만난다고 나름 신경써서 차려입은 것 같이 보였다.

가라르어 단어가 적힌 티셔츠 위에 수수한 색의 가디건을 걸치고 아래에는 베이지색의 면바지를 입었는데, 길이가 짧아 발목이 훤히 다 드러나 따뜻한 호연지방의 기후에 맞게 시원해보였다. 그건 또 그거대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검정색 단화 위로 살짝 보이는 아킬레스건이 나누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둘은 자리를 잡고 주문을 넣은 뒤 드디어 한숨을 돌린다. 일단 찬물을 삼킨다.

"얼마만에 보는 거지?"

"거의 세달만인가."

"벌써 그렇게…."

둘은 잠시 말을 잃는다. 나누는 3개월동안 속앓이를 해왔는데 막상 순무를 다시 보게 되니 그동안 준비했던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통화를 많이 해서 그런가.

그러다 예전에 순무의 꿈에 나누가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한숨과 함께 이름이 내뱉어진 그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던 그 때.

"지금 생각났는데."

"음?"

나누는 말을 꺼내려다 잠시 멈춘다. 혹시나 잊었는데 나누가 다시 말을 꺼내 순무의 괴로움이 떠오르진 않을까? 짦은 순간에 기나긴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순무는 이미 다음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억날지 모르겠네. 전에 내가 네 꿈에 나왔다고 한 거, 기억나?"

"꿈에?"

순무가 약간 눈썹을 올리고 기억을 더듬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머릿속을 헤매느라 집중하느라 아랫입술에 힘이 들어간 걸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돼서 잊었나봐."

"그렇구나."

내심 아쉬워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았다. 역시, 나누가 괜히 말해서 그 때 있었던 괴롭고 힘든 일이 생각난 게 아닐런지 걱정하게 된다.

이윽고 주문한 것들이 나오고, 둘은 허겁지겁 허기를 달랜다. 순무는 전날 너무 긴장해서 잠도 설친데다 아침부터 식사도 걸렀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 물어보니 단순한 긴장탓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볼 일은 어디서 봐?"

"해안시티. 저녁에 누굴 좀 만나야 해."

"아, 거긴 볼거리가 많지. 아예 관광도시로 밀고 있거든."

"그래? 같이 구경갈까?"

"좋아."

물어보자마자 바로 튀어나온 순무의 대답에 깜짝 놀라지만, 마치 대도시에서의 유사 데이트가 될 것 같은 느낌에 나누는 저절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떠나는 건 언제야?"

순수한 물음에 나누는 미소를 거둔다. 사실 자료만 받고 바로 떠날 수 있지만, 시차 적응 등을 이유로 타지방 출장은 항상 하루정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떠나는 건 모레 아침이 되는 것이다. 언제쯤 떠나는지 말하면 순무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씁쓸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겠네. 편히 쉬지도 못 하고."

"일이니까 못 쉬는 거 아니겠어."

"그건 그래."

모든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는 순무의 성격이 좋았지만 이럴 때는 썩 반갑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걸 알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표정으로 알아채버린다. 특히 나누는 수사관으로서 관찰력이 뛰어났기에 순무의 감정을 거의 잡아냈다. 나누는 웃으며 그 대신 끝내주게 놀아보자고 순무를 위로하면 순무도 눈을 가늘게 뜨고는 웃어보였다.

나누와 순무가 처음 만났던 잿빛도시는 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였고 서류를 가지러 가야하는 해안시티는 동쪽에 위치해있었다. 둘은 해안시티로 떠나기 전, 식사를 마치고 바다가 잘 보이는 길거리의 벤치에 앉아서 바닷바람을 맞았다. 나누는 일터가 있는 지방의 명물을 선물박스째로 사왔고, 그것을 받아든 순무는 말까지 더듬으며 굉장히 흥분했다. 텔레비전에서 봤었지만 한 번도 먹어볼 기회가 없어 맛을 상상해왔다는 말에 굉장히 뿌듯해져버린다.

순무의 뒤를 따라 버스 터미널로 가는 나누는 앞장 선 순무의 목덜미와 어깨, 발목을 찬찬히 살펴본다. 짧은 머리를 깔끔히 깎은 뒷덜미는 한 손에 잡으면 잡힐듯 말듯하다. 비록 가디건에 가려져있지만 처음 만났을 때 봤던 좋은 골격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땐 몰랐으나 지금은 아킬레스건이 눈에 띄는 발목이 아름다워보였다. 다리는 평균체형보다 조금 두꺼운 느낌이었으나 그것이 모두 근육으로 이루어져 탄탄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땐 저도 모르게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상상만 하던 것이 눈앞에 있다면 모두 만져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다."

나누는 순무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제서야 나누는 순무가 버스표를 이미 두 장 끊었고 시간표를 확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안시티까지는 약 두시간정도 걸리는 거리다. 약속시간엔 늦지 않을 것 같다.

이윽고 시간에 맞춰 승차한 둘은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순무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해안시티는 잘 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큰 도시가 더 재밌지 않아?"

"그건 그래도 난 백화점이나 미술관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거의 관광객을 위한 곳이지, 하고 순무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누도 파아란 바닷물 위에서 헤엄치거나 쉬는 물타입 포켓몬들을 구경한다. 긴 이동에 지쳤는지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가자 결국 나누는 스르르 잠에 빠진다.

잠들었던 나누가 잠깐 눈을 떴을 땐 창밖의 풍경은 바다 대신 녹음이 낀 숲길이 펼쳐져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도착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문득, 옆에서 잠들어있는 순무를 발견한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어서 고개가 젖혀져 목이 훤히 드러나있는 걸 본 나누는 그 모습을 계속 감상했다. 내려간 눈꺼풀, 규칙적인 호흡, 힘이 빠져 살짝 튀어나온 입술, 튀어나온 울대, 목, 어깨, 손가락, 다리, 발목.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기엔 시간이 짧은 듯했다.

나누는 자신의 어깨에 순무를 기대게 하고 싶었지만 건드리면 바로 깰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진 못 하고, 그저 창밖 풍경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어여쁜 순무를 보는 것이 다였다.

- 목표가 큰 순무가 행복하길 바라며 헤어지려는 인터폴 나누와 수긍하지 못하는 순무

- 자기가 통보한 이별에 나누도 방황하고, 그렇게 순무를 잊어가나 했는데 훗날 가라르에서 재회하게 됨

- 나누는 너와 있었던 인연은 없던 걸로 하자고, 잊어버릴 테니 잘 살라고 함

- 그러면 순무는 이제 어릴 때와 다르게 찡찡거리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으니 다시 시작하면 안 되냐고 매달림

- 그러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다는 나누

- 사람 관계가 어찌 쉽게 변하나 싶지만, 나같은 거 쫓지 말라며 뿌리침

- 사실 나누도 순무가 반가웠지만 알로라에는 그가 짊어진 짐이 많은데다 젊은 시절 순무가 자기때문에 마음고생한 것에 가슴이 아파서 차마 속마음을 밝히진 못함

그냥 이렇게 끝났다는 이야기인데... 7달동안 방치하다 포기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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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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