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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rth?
성가시기 짝이 없던 애송이의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그 순간 베푸는 모든 것들에 금방 기분이 풀린다는 것이었다. 몸도 마음도 가난한 학생의 결핍을 채워주는건 애쉬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 빈 틈을 자신의 손길로 넉넉히 채워주며 그를 쉽게 다뤘다. 이 과정에서 애쉬 또한 리버스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니 한낱 애송이가 바랬던 대로 서로에게 깊게 스며들었다. 리버스에겐 애쉬가, 애쉬에겐 리버스가 필요했다. 그렇게 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헌데, 요즘의 리버스는 애쉬 앞에서 어른스러운 척 굴지만 한 번 다퉜다 하면 해묵은 고집이 보통이 아닌데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그것을 바랬지만 이제서야 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떨리는 손은 실수 없이 그의 복부를 꿰뚫었고 칼날이 살과 근육을 찢어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갈라진 비명을 내질러도 묵직한 몸뚱아리는 꿈쩍도 않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오르가즘을 이끌어냈다. 다리 사이가 시큰거리고, 흔들리는 허릿짓에 정액이 섞인 피가 난잡하게 튀어간다. 키에 비해 가느다란 다리가 힘 없이 덜렁대며 요란한 반응을 보이지도 못한 채 목덜미를 잡아뜯긴 초식동물처럼 온 몸의 수분을 바깥으로 내뱉는다. 리버스는 떨리는 상체를 일으켜 반 쯤 발가벗은 채 의식이 없는 애쉬를 내려다보았다. 말단부터 흠뻑 젖은 그의 몸보다도 피 비린내에 비강이 아릿해 본능적으로 고개를 퍼뜩 들었다. 몸 속에 박아놓았던 끄트머리가 헤진 나이프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탄내가 자욱했고 고통이 느껴지는 두 팔을 어루만져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닌 애쉬를 상대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감각을 뛰어넘을 감흥 따위는 없었다. 저지른 일을 납득하기 위해 숨죽여 호흡을 터뜨리면 빛 바랜 그의 새까만 눈이 차차 점멸한다. 위장에서 역류한 피가 입술과 턱을 타고 흘러 베개 끝을 적셔가는 와중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똑똑히 들었다.
네가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전제부터 잘못된 말이었다. 그가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언젠가 망가질 ‘우리’라는 난파선에 탑승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삐걱대는 갑판 위에서 균형을 잡은 뒤로는 난생 처음 배불리도 먹어봤다. 불안과 우울이 없는 침실에서 잠들기도 하였으며 그의 체온은 외로움을 잊게 해주었다. 또 언제는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기도, 꼴 보기 싫으니 꺼지라고도 소리쳤지만 그게 진심이 아닐거라 굳게 믿고 그를 달랬다. 그가 예전보다 눈물이 많아진 것도, 저를 위해 잠들지 않고 옆자리를 비워두는 것도 이 배가 부숴진다면 모든 것이 끝임을 알면서도 기어이 닻을 내렸으니 결과는 뻔했다. 망망대해를 떠돌다 물에 잠겨 죽는 것이다. 제 끝엔 항상 이런 결말이 도래할 것이라 은연중에 짐작했다.
거센 눈발이 창문을 부딪히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새근대던 숨소리도, 격정적인 호흡이나 졸음에 취해 안아달라 보채는 사랑스러운 음성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미동조차 않았으니. 리버스는 그 옆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다 사랑해 마지못한 연인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청승 떨듯 굴었다. 흐느껴 우는 것 같기도 했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실수는 만회하면 된다며 사람들을 위로하던 어떠한 영웅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자상하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조차 받아들이지 못해 설움과 회한에 허우적댔다. 핏물에 젖은 침대 시트에 머리를 박은 채 그를 가여워하며 눈물을 쏟으면 고작 지겹냐는 말 한 마디에 그 세월과 추억과 사랑을 저버린 자신마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속내가 새까맣게 타들었다. 이제와서 흩어진 기억들이 제 자리를 찾으면 그의 곁에 서서 언제나 널 지켜주겠다 기만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혈흔에 젖은 두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쓸어내린다. 마음만 같아서는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 제 아비의 목을 조르고 자신의 씨앗조차 뭉개버리고 싶었으나, 결국 리버스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와 같았다.
함께 나누어 입자고 맞춘 잠옷 위를, 두 사람의 취향에 맞추어 골랐던 시트 위를, "애쉬"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두 발 딛고 저를 바라보았던 몸 위로 손을 겹친다. 애쉬의 능력이 그렇듯 리버스의 능력도 모든 것을 제자리로 원복하며 없던 일로 만든다. 엎질러진 피가 싸구려 필름 테이프를 거꾸로 감은 듯 천천히 되돌아가고 녹물었던 천 위가 다시금 건조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없던 일"이 될 수나 있는지. 이제 그에게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멍에를 안겨주고, 용서받지 못할 고통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죽은 사람을 살려본 것은 처음이니 그가 자신의 죽음을, 자신조차도 기억할지 장담하지 못했다. 허나 이번 일로 이 능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누군가의 운명을 몇 번이고 거스를 수 있노라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리버스는 기어이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없음을 깨달았다.
손 대면 다시 부숴지기라도 할 듯한 애쉬의 가슴팍이 느리게 오르락대며 호흡하자 침대 아래로 주저앉듯 무릎을 꿇고 그의 마른 손을 붙잡았다. 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그는 아무 말도 않았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입을 여는 순간 심장이 튀어나와 식도를 태워버릴 것만 같아 한 마디도 건넬 수 없었다. 새빨갛게 젖었던 그의 몸은 다시 단정해졌지만 명치 위로 짙은 흉터가 남는다. 리버스는 어쩐지 그것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이 괘씸하기라도 한 듯 그의 몸을 감싸안은 투박한 팔 위로 화상 자국이 거스러미처럼 남아 선명해진다. 진정한 사랑은 시작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끝을 함께 하는것이라고 했나. 리버스는 자신이 주고 싶었던 사랑이 틀렸음을 앎에도 스스로를 끝없이 달랬다. 네 말이 맞아, 애쉬. 나는 너를 살릴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네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언제나 눈을 떴을 때 곁에 내가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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