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between, Birth and Death

Moral panic

백업 by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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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연락하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애쉬에게 마스터 키를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멋대로 열 수 있는 그 문이 어디로 향하는 통로인지는 그의 기분에 따라 달랐다. 언제는 손님을 맞이해주는 다정한 그가 있었고 사무실 직원과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며 업무를 해결하는 그가 있었다. 또 언제는 먹고 사는게 지겹고 고달파 피로해진 그가 있었다.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는 날도 있었고 악성 의뢰인이 있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그도 없었고 마주한 것은 비극이었다. 애쉬는 잡은 멱살을 바닥에 팽겨치고 불쾌하다는 듯 짜증 섞인 손길로 넥타이를 풀러냈다. 대리석 바닥에 재가 섞인 핏물이 기름때처럼 움푹 고여있었고 애쉬는 귀찮은 그림을 목도한 침입자에 대한 처분을 신중히 고민했다.


“…애, 애쉬, 이건….”


리버스의 질문이 끝을 맺기 전에 애쉬는 핏자국이 묻어 바닥에 구르던 명패를 주워 저항하는 이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쇳고름같은 피가 터지고 머리가 바닥에 처박히자 목구멍이 불타버린 사람처럼 갈라진 비명이 새어나왔다. 애쉬는 허리를 들고 일어서 금이 간 명패를 도로 책상에 올리고 1960년산 럼을 유리잔에 따르며 의견을 묻듯 말했다. “널 어쩔까.” 그 탓에 리버스는 반사적으로 손에 든 종이가방을 떨어뜨리고 벽 쪽으로 붙었다. 짓밟힌 벌레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고기들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고 저 사이에 리버스가 나란히 누워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안쪽을 제대로 둘러보면 쿱쿱한 담배 냄새와 피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난도질이라도 당했는지 뚫리고 갈라진 몸덩어리는 제 위치를 찾지 못해 바닥에 흩어졌고 개중엔 아직 살아 움직이는 것도 있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광경에 식은땀이 흐르고 시야가 멍한건 한순간이었다. 위장과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역함에 벽을 짚고 바닥에 묽은 위액을 게워냈다. 기도를 막을 정도로 역류한 점액에 코 끝이 시큰해진다. 턱 아래로 흐르는 토사물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구역질의 수치심보다 앞선 것은 폐부가 터질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였다.

애쉬는 겉으로는 미술품 감정사라는 빛깔 고운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위조품 제작이나 살인 청부같은 지저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사람들은 애쉬를 지독한 히트맨이라 불렀고, 누구는 벤야민 사장님. 누구는 우리 진 회장님이라 불렀다. 그는 양쪽 팔 전체를 얼룩덜룩한 이레즈미로 감싼 외국인 건달들과 구둣발로 남의 모가지를 짓이겨가는 것을 사업이라 지칭하며 성행리에 운영했고 이조차 본인의 득실을 확실히 따져갔다. 액수가 큰 건은 본인 손아귀에 쥐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고만고만한 똘마니들에게 먹기 싫은 것 버리듯 넘겨주었다. 그에게 곤죽이 났지만 운 좋게, 혹은 운 나쁘게 살아남은 피라미들은 기어이 복수를 시도했고 그것이 잘 된 꼴을 본 적은 없다. 사적인 감정으로 그의 목을 꺾어 손에 넣으려는 자들은 곧 재로 타올랐다.

애쉬는 다 피운 담배를 재로 태우고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원목으로 빚어진 서랍장을 뒤져 큰 사람─거래처로부터 선물 받은 총 한 자루를 꺼냈다. 그가 걸어가는 자리마다 검붉은 핏자국이 묻어났다. 곧 장전된 권총을 리버스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 와중에 그의 왼쪽 어깨가 안 좋은 것을 알아 구태여 오른손에 쥐여주는 행동에서도 리버스는 애쉬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건네주는 손길은 부드러웠고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는 꼭 예정된 대본 같았다. “살아서 나가고 싶다면 나머지는 당신이 처리해요.” 고개를 저었다. 애쉬는 이해하기 어렵단 표정을 지었다. “널 죽이긴 좀 아까웠는데 아쉽네요.” 그렇게 말하는 애쉬는 시체를 보지도 않고 리버스를 보지도 않았다.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어딘가일까. 그 또한 아주 넓은 관에 누워있는 사람 같았다. 고통과 신음이 들끓는 바닥에서 그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려 온 몸의 솜털이 바짝 서 경련했다. 어설프게 넘겨받아 쥔 총은 벌벌 떨렸고 엇나간 숨을 꼴딱꼴딱 넘겼다. ‘사람을 죽여선 안 돼.’ 하찮은 도덕심으로 과포장한 허물을 벗겨내면 그건 보잘것 없는 공포에 불과했다.

죽고 싶지도 않고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손발이 묶이고 입에 천이 틀어막혀 땀과 침, 피로 범벅이 되어 두려움에 몸을 씰룩대는 사람을 한참동안 내려다 보았고 애쉬는 자리를 지켰다. 식은땀이 비오듯 내렸고 몸을 지탱하던 오금이 저렸다. 이 자리에서 한달음에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고 매달려 빌고 싶었다. 이런 짓은 이제 그만 하자고. 하지만 제게 그 어디에 이런 말을 고할 자격이나 있는가. 짓씹은 입 안이 비렸다. 이 자의 축축한 머리통을 관통해 세 조각으로 쪼개 죽이는 것과 애쉬가 손가락을 튕겨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어 죽이는 것, 그리고 그가 이대로 방치당해 죽는 것 중 어떤 것이 가장 빠를지 생각했지만 답을 정할 수 없었다. 이 자들이 제 조직을 위해 어떤 식의 죽음을 맞이해도 거룩할 수 없다. 애쉬에게 걸린 이상 모조리 개죽음이라는 정해진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밧줄로 묶인 몸뚱이는 어항에서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힘 없이 펄떡거리며 지저분한 헝겊 사이로 단어들을 내뱉었지만 흩어져 자리를 이루지 못했다. 눈이 마주치자 동정심과 동시에 매스꺼움에 헛구역질이 치솟아 한번 더 위장이 출렁댔다.

애쉬와 잘 지내고 싶었다. 친구도 없고 겁쟁이인 제게 건네준 명함 한 장이 기뻤고, 네 이름을 불러도 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며 그러라 하였다. 애송이들이나 하는 인형 놀이같은 연애질에 관심 없다며 톡 쏘게 말했으면서도 곧잘 곁에 머물렀고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는 종종 고독해했지만 티내지 않았으며 속마음도 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가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런 그에게 곁에 머물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언제라도 내가 네 옆에 있을 거라고. 하지만 네 세상은 꼭 끝없는 바다 같았다. 다가가려 하면 빠져 죽을 것 같은데 그는 항상 그 곳에 푹 잠겨서 괜찮다는 듯 굴었다. 그렇기에 문득 생각했다. 자신이 이 사람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면 물밑 세상에서도 숨 쉴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네 세상을 알 수 있을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길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인정 욕구는 언제나 리버스의 정신을 좀먹었다. 리버스는 적을 만들 줄 몰랐고 애쉬는 아군을 만들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쥐었던 무기를 내리고 묶인 밧줄을 급히 풀러냈다. 입 속에 처박힌 넥타이 조각을 빼내면 주둥이에서 녹은 쥐약 몇 알이 토하듯 튀어나왔다. 저도 그렇지 못하면서 멱살을 잡아올려 정신 차리라는 듯 뺨을 내려쳤다. 힘 조절이 되지 않아 유리 깨지는 것 같은 파열음이 들렸다. 두려움으로 눈물에 푹 젖은 낯짝이 된 건 그 자가 아니라 리버스 자신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쉬가 모르는 도주 경로를 알려주었지만 그는 꼴사납게 도망치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며 추하게 몸부림치다 손가락 몇 개가 부족한 손을 휘저으며 제 곁에 장전된 총을 잡아챘다. 살아서 나가게 해주겠다며 제지했지만 쉽게 밀쳐졌고, 부패하는 고깃덩이 위로 몸이 쓰러지며 배 뚫린 시체를 뭉갰다. 구역질이 올라와 끈적해진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순간 그는 스스로의 머리를 기어코 관통시켰다. 애쉬가 사준 옷, 신발이나 얼굴에 붉은 선혈이 날아오듯 튀어 곳곳을 적시자 봐줄만 했던 리버스의 낯짝은 더욱 울상이 되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면 죽음은 코 앞에 다가온다. 고통이나 슬픔은 더욱 때 없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자신의 삶을 관통할때마다 정신이 으깨지는 것만 같았다.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도 못한채 등 뒤로 손을 짚으면 물컹한 살덩이의 감촉이 느껴진다. 나가고 싶어, 애쉬. 뭐라고 말 좀 해봐. 왜 내게 이런 일을 시켰어. 왜 날 혼자 내버려뒀어. 적어도 리버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그가 미웠다. 죽거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그러나 애쉬를 올려다보는 볼품없이 젖은 두 눈이 원망인지 구애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핏물에 푹 젖어 초조한 얼굴로 걸레 짜듯 눈물을 흘렸다.

창 바깥으론 눈이 소복하게 내린다. 처음 만났을때도, 헤어질때도. 그에게 제 진심을 고했을때도 오늘과 같았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아니면 시간이 멈추기라도 했는지 하늘은 그의 눈처럼 새까맸고 흰 눈은 줄곧 그 위를 덧그렸다. 고개를 내리면 바닥은 까맣고 축축한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쇠 비린내가 익숙해지질 않아 무릎에 고개를 처박으면 구둣발 아래 끈적한 핏덩이가 늘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그는 미동 없이 바닥에 구르는 몇 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조소를 띄웠다. 질 좋은 정장 호주머니에 손을 밀어넣고 깨끗한 손수건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잘 했어요. 앞으로 내게 올 때는 연락하고 와요.” 그는 여즉 다정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이건 뭐죠.”


그리고 애쉬는 그가 떨어뜨렸던 종이 가방을 주워들었다. 아랫면이 피에 젖어 형편없이 너덜댔다. 가방 안에선 정성스럽게 포장된 작은 박스 하나가 나오고, 뚜껑을 열면 Happy birthday to you! 라고 적힌 작은 카드와 함께 시계 한 쌍, 고운 입자가 가득 찬 작은 모래시계가 들어있다. 그가 평소 애용하는 귀금속만큼 값지고 호화로운건 아니지만 넉 달을 꼬박 일해 모은 돈으로 구입했다. 그가 좋아해주길 바랬다. 마음에 들었으면,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착용하면서 제 생각도 해주길 바랬다. 선물을 구입하는데엔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애쉬가 마음에 안 들어할수도 있으니까. 그걸 생각하는것만으로도 미안해져 다가가길 두려워했다.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건 그가 리버스에게는 다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편지엔 고해에 가까운 변변찮은 내용이 작성되어 있지만, 그가 해주는 것에 반의 반도 못 해주지만 어리숙하게도 진심이 전해지길 바랬다. 애쉬는 곧 작고 초라한 박스에서 물건을 꺼내 의중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는듯 시계줄을 거꾸로 잡고 두어번 돌려보았다. “새 거네요. 선물?” 의뢰물 감정하듯 말하는 애쉬는 한 손에 물건을 쥐었다. 리버스는 이것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정해진 대답이 있음에도 전혀 다른 답을 내뱉고 말았다.

오늘 네 생일이잖아.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부족해도 뭐든 주고 싶어서 사봤어. 백화점 예약 구입이라는거 정말 좋더라. 마음에 들면 좋겠다. 너랑 함께 있어서 기뻐. 네가 나한테 주는 행복을 절반이라도 주고 싶어. 반의 반이라도. 그래도 엄청나게 많을 거야. 생일 축하해, 고마워.


“애쉬, 이 일 그만 하면 안될까.”

“다른 거 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잖아.”


그에게 전하고픈 무수한 말 중 가장 사치스러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알게 된지 고작 일이년도 안 되는 죽도 밥도 아닌 비굴한 애송이가 지금까지 영위했던 삶을 바꾸라는 것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선전포고이거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애정 구걸이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가 몸 담근 조직의 시간과 그것의 가치는 불변할 것이고 끝끝내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주제 파악이 피부로 와닿으면 한심한 눈물이 후둑후둑 쏟아졌다. 두근대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심장 위를 주먹으로 문지르면 무거워진 공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애쉬는 선처를 베풀어 못 들은 것으로 해주겠다는 양 표정이나 시선 하나 바꾸지 않았다. 와인더에 들어찬 시계를 챙기고, 모래시계와 편지만 확인한 뒤 박스는 바닥에 내버렸다. 대답해주지 않는 그에게 재차 묻는다. 그의 삶에 간섭해 미움을 사게 되더라도 그가 세상과 등지는 것이 더욱 싫었다, 물렁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애쉬는 완고했지만 빈틈이 있었고 그 빈틈을 가장 볼품없고 약한 저에게 내어주었다.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건 없었고 그 또한 그렇다. 다 같은 사람이기에, 끊임없이 누군가를 해치고, 그로 인해 원망받고 모른 체 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이런 삶은 그만두고 싶을 것이라고. 그렇다는 답을 듣고 싶었다, 그렇다면 구해주고 싶었다. 믿음직스럽진 못한 것도 알아. 하지만 제가 그에게 정말 특별한 사람이 맞다면 한 번이라도 그의 속마음을 듣고 싶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좋아했다, 뻔하고 재미없는 낭만극같지만 정말 그랬다. 그러니 더 이상 살인 같은건 그만두길 바랬다. 더 이상 위험하거나 적을 만드는 일이 없길 바랬다. 우리는 정말로 사는 세계가 다를까. 그런데 넌 왜 내 눈 앞에 실제하고 내 손에 잡혀지는걸까. 미처 말로 전하지 못한 진심은 행동으로 나와 그의 미끈한 옷깃을 강하게 쥐여잡고 고개를 처박았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대조되는 핏물 젖은 손마디가 흰 셔츠 깃을 물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죽임당한 시체들 사이에서 그를 지켜주지 못할까 두려웠다. 너와 숨 쉬는 매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매일이 눈물의 해후였고 그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지 그는 굳은 손 끝으로 리버스의 눈가를 훑었다. 눈물이 마른 뺨은 볼품없이 갈라져 있었다.


“바닥 지저분하니까 일어나요. 집에 데려다 줄게요.”

“…애쉬, 대답 듣고 싶어. 제발….”

“…….”

“…리버스.”


애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꼬마에게 무어라 해야 제 말을 믿을까. 아는 답을 내뱉지 못해서가 아니라 답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선을 긋듯 건조한 목소리엔 무게가 없었다. 그러다 애쉬는 제 옷깃을 부여잡은 리버스의 팔목에 붙잡고 무언가를 가늠하듯 손목을 쥐어보다, 자신의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시계를 풀러내 유리알에 묻은 핏자국과 지문을 엄지로 닦아내어 살며시 채워주었다. 커 보였던 시계줄은 생각보다 딱 맞았고 시계줄의 아래 부분은 축축하고 따뜻했다. 그리고서 애쉬는 쥐고 있던 새 선물을 혈관이 비칠 정도로 흰 손목에 끼워 넣고 끈을 옥죄였다. 한참이나 아무런 대답 않던 그는 리버스의 숨소리에 다시 물기가 섞이기 시작하자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게 할 말이 있어 찾아오지 않았나요.“

“지금은 그 말이 듣고 싶은데.“


뜻밖의 대답에 맥이 풀렸다. 아사한 닭대가리처럼 처박은 머리를 들고 눈물 범벅인 시선을 맞추었다. 여전히 창문 너머의 밤빛과 잘게 쌓인 눈이 광휘처럼 그의 어깨에 내려앉아 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네 가슴을 녹여 손을 파묻고 심장을 꺼내어 묻고 싶었다. 네 진심은 대체 뭐야? 살고 싶은거야, 죽고 싶은거야. 아니면 나랑 같이 죽고 싶은거야. 옹송그려 멱살 잡은 지저분한 손을 차근히 내려 그의 열 오른 어깨를 감싼다. 팔 근육이 잘게 떨렸다. 곧 어깨춤에 축축한 머리를 깊게 묻고 완전히 그를 안는다. 그러자 더 이상 피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응, 앞으로,…연락 하고 올게.”

“생일 축하해. 애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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