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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를 공평하게 자르는 법

🎶 by A

공안의 할머니는 매주 용돈을 넉넉히 주었다. 구내 식당 메뉴도 구색이 제법 괜찮았지만 케이고는 돌아서면 곧 허기가 졌다. 그럴 나이기도 했거니와 그간 제대로 먹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훈련이 끝난 늦은 저녁, 케이고는 백화점처럼 모든 코너를 다 갖춘 대형마트에 들어갔다. 마감세일하는 닭꼬치 상자들 중에 먹음직스러운 것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야식을 고르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집었다. 단것을 좋아하므로 제일 초코를 많이 먹을 수 있는 쌍쌍바가 선정되었다. 계산을 치르고서 케이고는 바로 나가지 않고 완구 코너를 어슬렁거렸다. 엔데버 인형 재고가 얼마나 줄었나 보는 게 케이고의 작은 취미였다. 엔데버 코너는 날마다 거의 그대로였다. 마음 같아서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전부 사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케이고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케이고는 많은 아이들한테 엔데버의 빛이 닿는 것을 더 바랐다.

돌아나오면 올마이트가 잔뜩 있는 매대가 훨씬 더 크게 설치되어 있었다. 올마이트의 경우 최근에는 너무 폭리를 취해서 사 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는 가끔 있어도 정말로 눈길을 주고 집어가는 부모는 엔데버보다도 더 적었다. 덕분에 통로는 아주 한산했다. 거기에 작은 아이 하나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많이 잡아야 예닐곱이나 되었을까. 부모의 손을 놓친 미아인가 하고 케이고는 슬렁슬렁 다가갔다. 아이가 고개를 들자, 케이고가 그토록 산전수전 다 겪은 어린이가 아니었더라면 순간 헉 소리를 참지 못했을 정도로 심하게 흉이 진 얼굴이 보였다. 흉터에 눈길을 빼앗기고 나서야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생긴 아이였고, 머리카락이 특이하게 오른쪽은 희고 왼쪽은 붉었다.

무엇에 그렇게 놀라 있는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니 케이고의 가방에서 삐죽 튀어나온 엔데버 인형에 닿았다. 엔데버는 이삼십대 남성한테는 인기가 많지만 유아동은 대체로 무서워한다고 히어로 관련 예능에서 들었다. 케이고는 엔데버를 가방 깊숙이 누르며 다가갔다. 

“부모님은 어디 계셔?”

그러자 아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혼자 왔어?”

“...누나랑요.”

“아이고, 저런. 누나 손을 놓쳤구나.”

“...”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케이고는 읏샤 하고서 아이의 옆에 앉아 주었다. 똑같이 쭈그린 포즈로. 공안에서 배운 처세술의 실전연습을 할 기회였다. 공안에서는 어떤 사람하고든 친하게 잘 지내는 법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상대가 갓난아이든 쭈그렁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성격이 어떻든, 무슨 직업이든, 기타 등등. 왜 그렇게 중요한 기술로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케이고는 일단 스펀지처럼 뭐든 흡수해 가며 닥치는 대로 배우고 있었다. 케이고는 최대한 친근하게 물었다.

“이름은 뭐야, 꼬마 친구?”

아이는 손등으로 눈을 슥 닦더니 케이고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어째 말을 걸수록 더 거리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안 해요.”

“이름을 안 해?”

“...”

“안 알려준다는 뜻? 이유는 뭘까나?”

“성이 나빠요.”

“응? 나쁜 성이 세상에 어딨다고.”

“히이...”

아이는 바짝 움츠러들었다.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가 웅크린 품에서 흘러나왔다.

“몰라요. 못난이에요.”

성이 못난이인 건 대체 뭘까? 이 아이와 고양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외모만이 아니고, 쉬이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이름은 알아야 미아 찾기 방송을 내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미아를 돌보는 것도 히어로의 일인 만큼 케이고는 계속 같이 있어 주기로 했다. 말수가 아주 적은 아이 같았지만 케이고는 계속 사근사근히 말을 붙여 보려고 노력했다.

“누나 하나만 있어? 형제도?”

아이는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흠칫 놀랐다. 이쯤까지 오니 케이고도 반쯤 자포자기하게 됐다. 애가 성격이 좀... 아무튼 친화력을 발휘하기는 어렵게 됐다. 실전훈련은 실패로 돌아간 셈 치고 케이고는 아이가 편안해지도록 그냥 가만히 있어 주었다. 그러자 한참 후에 가냘픈 목소리가 꼬물꼬물 물어 왔다.

“형은... 혼자예요?”

“외동이냐는 뜻이지? 으음, 글쎄. 나도 누나가 하나 있었던 셈인가?”

“...몇 살 차이 나요?”

“그런 것까진 모르겠는데. 사진으로만 봐서. 말해 본 적은 없어.”

“저는 누나랑 말해 봤어요.”

“네가 우리 누나랑 말해 봤다고?”

“아이, 아니오. 저희 누나랑요.”

아이는 다소간 뿌듯해 보였다. 누나랑 말하는 게 자랑씩이나 할 일인가? 사고방식이 고양이가 아니라 무슨 외계인 같네. 레이디 나강과 같은 손윗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누군가의 후임이고 대체재라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케이고는 생각할 때도 있었다. 입 밖에 낼 말은 아니었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다닐까 한 미아에게는.

“성은 없다 치고, 이름이라도 알려 주라.”

“쇼토예요.”

“머리가 쇼트케이크처럼 생겨서?”

아이는 조금 웃었다. 문득 손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심결에 꼭 쥐었던 봉지가 물렁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산 것을 잊고 있었다.

“저 이거 할 수 있는데요.”

“쇼토가? 뭐를?”

“이렇게 하면 차가워져요.”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케이고의 손에 얼음을 만들어냈다. 아까의 소극적인 태도와는 딴판이었다. 케이고는 입을 헤벌리고 자라나는 결정을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설명할 수 없이 생겨나는 얼음은 투명하여 꼭 보석 같은 빛을 발했다. 아직 히어로 경력이 짧아 다양한 개성을 만나보지 못한 케이고로서는 그저 황홀한 마법처럼 느껴졌다. 

“너 이 녀석 아주 멋진 개성을 가졌잖아.”

쇼토는 근엄한 태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입꼬리가 정직하게 위로 삐죽거렸다. 분위기를 탄 김에 케이고는 쇼토를 한껏 추켜세워 주었다.

“올마이트 못지 않다 야.”

“그것까진 좀... 올마이트는 올마이트잖아요.”

“올마이트 좋아해?”

“네 당연히요!”

“엔데버는?”

“...나빠요.”

쇼토는 목이 빠질 것처럼 고개를 저어 댔다. 어린아이의 말에 반대했다가 울리고 싶지는 않아서 케이고는 선선히 쇼토 편을 들어 주었다.

“그래, 나쁘다. 히어로인데 일을 안 하네, 그치? 쇼토가 미아가 됐는데 찾으러 오지도 않고.”

그러자 아이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엔데버가 저를 찾으러 오면 안 돼요!”

쇼토의 얼굴은 삽시간에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빨갛고 하얗고 파란 것이 대단히 알록달록한 머리통이었다. 엔데버가 좀 우락부락하기로서니 이 정도로 무서워할 일인가... 케이고는 괜히 엔데버 몫까지 서러워질 뻔했다.

“그래, 형이 말을 잘못했어. 미안, 미안. 쇼토가 싫으면 안 올 거야.”

“진짜 안 와요?”

“안 오지. 히어로는 남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 저는 히어로 못 해요? 저도 다른 사람을 괴롭혔는데요...”

“쇼토가 그럴 아이로 보이지는 않는데? 누구를?”

“엄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앞으로 착하게 살면 괜찮아.”

“...진짜로요?”

“그럼. 착하게 살 거지?”

“네에!”

“형이랑 약속.”

“약속.”

쇼토는 아주 진지하게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케이고는 쇼토를 대하는 법을 조금 파악했다. 가족이나 엔데버 얘기만 하지 않으면 다루기 수월한 아이였다. 아이의 순한 성정이 시야 한켠에서 보호자가 나타나는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케이고의 일을 덜어 주었다. 그쪽을 신경쓰랴 떼쓰는 애도 달래랴 하려면 힘에 부쳤을 것 같았다. 보호자는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폐장 시간이 멀지 않아 곧 미아 보호 센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쇼토가 원하든 원치 않든.

“형은 이름 뭐예요?”

“아, 나는 호크스.”

“일본인이에요?”

“응.”

“일본인인데 호크스예요?”

“멋있는 이름 같은 거지.”

“멋있다.”

“쇼토는 아이스크림 좋아해?”

“차가운 건 다 좋아요.”

“케이크 자르기 문제라고 들어 봤어?”

“몰라요.”

“둘이서 케이크 한 판을 공평하게 나눠 먹는 방법이야. 먼저 한 명이 케이크를 두 조각으로 잘라. 그런데 자기가 더 많이 먹으려고 한 조각만 크게 자른다면? 어떻게 해야겠어?“

“다른 한 명이 큰 조각을 골라요.“

“그렇지. 형이 쌍쌍바 나눌게. 쇼토가 골라.“

쇼토가 극도로 집중해서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케이고는 차력쇼인 것처럼 끙차 기합을 넣는 쇼맨십을 발휘하며 쌍쌍바를 갈랐다. 나눈 결과는 쇼맨십도 아니었고 정말 고의도 아니었는데, 민망할 정도로 큰 덩어리가 한쪽에 치우쳤다. 케이고는 당황했다가 실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아하하... 쇼토가 많이 먹겠네.”

“형이 큰 거 먹어요.”

“응? 케이크 자르기 문제는 그렇게 푸는 거 아닌데.”

“원래 형 아이스크림이잖아요.”

“하지만 쇼토랑 먹기로 했으니까.”

“형이 저보다 크니까 많이 먹어도 돼요. 나츠 형도 저보다 많이 먹어요.”

아까는 형제가 있는지 절대 안 알려줄 것처럼 굴더니 기분이 풀리니까 이름까지 술술 이실직고했다. 역시 애는 애였다.

“맛있어?”

“네.”

“형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야.”

“저도 이거 좋아요.”

쇼토의 입가에 초코 아이스크림 자국이 고양이 수염처럼 묻어 있었다. 케이고는 엄지로 훔쳐내 주었다. 

“형아도 묻었는데요.”

쇼토는 케이고의 몸짓을 따라서 그의 입가에 고사리손을 올리며 웃었다. “이히히.” 아이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가슴을 간지럽혔다. 문득 쇼토가 가져본 적 없는 동생처럼 느껴졌다.

“형아 여기 맨날 와요?”

“맨날까지는 아니고.”

“그럼 이제는 못 봐요?”

“형이랑 또 만나고 싶어?”

“네.”

“다음엔 형하고 뭐 하고 싶은데?”

“어... 형 축구 알아요?”

“알지 당연히.”

“그러면 형이랑 축구할래요. 원래는요 토우야 형하고 하고 싶었는데요...”

쇼토는 갑자기 제풀에 놀라 입을 합 틀어막았다. 심지어 형이 하나도 아니었어? 그러고서 쇼토는 또 혼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온순한 것 같으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다. 토우야라는 형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려는데 누군가 새된 소리로 외쳤다. “쇼토! 여기 있었구나, 쇼토!”

누나를 보자마자 쇼토는 아이스크림을 내던지고 뛰어갔다. 쇼토와는 달리 순백의 머리카락에 드문드문 붉은 가닥이 섞여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오누이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둘이 왔다기에 누나가 한참 터울이 지도록 나이가 많을 줄 알았더니 기껏해야 케이고 또래로 보였다.

쇼토의 누나는 펑펑 눈물을 터뜨리며 케이고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누나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는 쇼토는 기운을 전부 되찾았는지 활기가 돌았다. 허리를 숙이는 누나에게 딴에는 귓속말이라고 소곤거렸다. “누나아. 호크스 형아가 같이 있어 줬다.” 아직 귓속말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케이고에게 전부 다 들렸다.

“또 보자, 쇼토.”

“네, 호크스 형아!”

쇼토가 누나의 등 뒤에서 작은 손을 흔들었다. 쇼토는 까르르 웃으면서 떠났고, 누나도 겨우 안심했는지 쇼토에게 마주 미소지어 주었다. 케이고는 계속 뒤돌아보는 쇼토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서서히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저런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 케이고의 삶이란 존재하는 것이었다. 시민들을 보금자리로 안전히 돌려보내기 위해서. 문득 쓸쓸해졌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쇼토는 케이고와 축구를 하고 싶어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히어로의 삶이 아니었다. 맡은 소임을 다하고 또 새로이 주어지는 소임으로 넘어갈 뿐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히어로의 삶이었다. 계속해서 날아가는 삶. 공안이 자신을 위해 예비하는 미래가 그런 것이라고 케이고는 이미 얼핏 예감하고 있었다.

아마 우연에 기대지 않고서 쇼토를 또 만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는 성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로 축구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쇼토라면 어쩐지 호크스에게도 다른 이름이 있었다는 걸 알아 줄 것 같았다. 히어로의 생애에 두 번째라는 것이 드물게나마 있어서 다음에 쇼토가 이름을 또 물어본다면 그때는 제대로 대답해 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케이고는 미지근해진 야식을 끼고 슬렁슬렁 마트를 나섰다. 밤바람이 케이고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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