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을
카츠키가 토도로키를 초대한 데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확실히 해 두겠는데, 토도로키 가에서 식사를 대접받은 데 대한 보답이 절대로 아니다. 애초에 놀러가겠다고 청한 적도 없었는데 그놈이 멋대로 불렀다. 눈곱만큼도, 발톱의 때만큼도 고맙지 않았다. 친구가 되어 준다고 언제 허락이나 했던가? 감히 저 좋을 대로 친하다고 정해 버리고 누나한테도 그렇게 못박질 않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반땡이와 친구는 무슨 얼어죽을 친구인지. 토도로키는 데쿠와는 또 다른 라이벌이자 고교에서 만난 새로운 장애물, 카츠키가 뛰어넘을 까다로운 벽이다.
그러므로 전부 다 틀렸고 발단은 아주 사소했다. 토도로키가 두 마디의 말을 했기 때문이다. 턱을 괴고 맨 뒷줄에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비가 오는군.”
엷은 어둠이 깔린 운동장이 흐린 하늘을 이고 있었다. 곧 폭우를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를 마친 먹구름이 차례로 몰려왔다. 연회색이 스며든 세상에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졌다. 토도로키는 무심한 어조로 이어갔다. 길이 난 대로 흘러가는 빗물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내일은 토우야 형의 기일이야.“
비통해하는 투는 조금도 없었다. 토도로키는 떠오르는 순서대로 사실 두 개를 하나, 또 하나 나열했을 따름이었다. 유별나게 청승을 떠는 것도 아니었고 남더러 신경써 달라는 시위도 아니었다. 같은 반에 배정받은 지 반년이 훌쩍 넘었으므로 토도로키의 성격 정도는 이미 카츠키도 파악하고 있었다. 토도로키는 듣는 사람 피곤한 언중유골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할 줄 모르는 놈이었다. 보기보다 겉과 속이 같은 타입이다. 표정은 그다지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면 대낮부터 혼자 속으로 드라마를 찍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점심 시간이 오 분 남짓 남아 있었다. 조금씩 굵어지는 빗줄기가 실내를 어두운 빛으로 물들이며 떠들썩한 교실의 소음이 차분해지는 장막을 한 꺼풀 덮었다. 토도로키와 카츠키 둘만 남겨 두고 목소리들이 낮아져 갔다. 뭘 그렇게 구경하나 토도로키의 시선을 따라가 본들 대단한 볼거리가 있지도 않았다. 빈 운동장에 움직이는 거라고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젖은 몸을 말리는 고양이 한 마리. 생각해 보면 토도로키는 늘 카츠키를 짜증나게 했는데, 특히 가정사를 엿듣고 나서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데쿠를 볼 때와는 또 다르게 열받았다. 걸어다니는 감정의 폭포 같은 데쿠랑은 정반대로, 토도로키는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빨갛고 하얀 대가리 속에 뭐가 굴러가는지 공연히 어림해 보게 만든다. 말을 하든 표정으로 보여주든 해야 알 거 아냐, 진짜로 보여주면 카츠키는 더 야마가 돌겠지만... 카츠키는 비딱하게 서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야, 반땡이.“
“음?“
토도로키는 깊디깊은 무의식에서 깨어나듯이 카츠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기가 먼저 다 들리게 중얼거려 놓고 새삼스러운 반응이 좀 황당했다.
“기일엔 뭐 하냐?“
“뭐 안 할걸. 아침에 향만 올리고.“
“제사 같은 것도 안 지내?“
“이제는. 형이 떠난 지 오래 되기도 했고. 누나는 교사 연수를 가 있고 나츠 형도 시험기간이라 못 오겠지.“
엔데버가 무엇을 하는지 토도로키는 말하지 않았다. 카츠키도 굳이 캐물을 필요를 못 느꼈다. 카츠키에게는 죽은 형 같은 건 없어서 내일의 토도로키가 어떤 기분일지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단이 덩그러니 놓인 빈집이나 제단조차 없는 기숙사에 하루종일 혼자 처박혀 먹구름이나 올려다보는 게 즐거울 리 없을 것이다. 카츠키는 야오요로즈가 자리를 비운 책상에 걸터앉으며 투덜거렸다.
“저녁은 우리 집에서 처먹든지.“
토도로키의 평이하던 표정이 한 순간에 덜떨어진 낯으로 바뀌었다. 카츠키가 뱉은 고작 네 단어가 얼른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 줘야 하는 멍청이와의 대화는 딱 질색이었기에, 카츠키는 꾹 다문 입을 여는 대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토도로키를 노려보았다.
토도로키는 자리에 앉아서도 잠시 우라비티의 손가락이 닿은 듯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토도로키는 시선을 비꼈다. 초대를 달가워하기보다는 곤혹스러워한다는 느낌이었다. 아, 그래? 그럼 엿이나 먹어. 열이 머리끝까지 뻗친 카츠키가 한창 가운뎃손가락을 준비하는데 진지한 질문이 돌아왔다.
“뭐 사서 가야 돼?“
“뭔 개소리야? 됐으니까 그냥 와.“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잔칫상이라도 차려주는 줄 아냐? 아무렇게나 먹을 거니까 네놈도 대충 오라고.“
고개를 얕게 끄덕이면서도 토도로키는 한없이 불편해 보였다. 카츠키가 자신의 엉덩이 아래 초대장이 아니라 바늘방석을 밀어넣었다는 듯이. 그래서 카츠키는 자신의 제안이 경우에 알맞고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종이 치는 바람에 카츠키는 있는 힘껏 토도로키의 이마를 째려보고 자리로 향했다. 교실은 이미 조용했다. 곧 엑토플라즘이 들어와 판서를 시작했다.
쇼토가 얼어붙었던 것은 바쿠고의 세심한 면이 의외라서가 아니었고 (본인이 심보 고약하고 까칠한 놈으로만 보이리라는 바쿠고의 오해와는 다르게), 바깥밥이 싫어서도 아니었으며 (쇼토는 편식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심하지도 않았다), 단지 초대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그저 순수한 긴장이었다. 쇼토는 친구네 놀러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쿠고와 미도리야를 초대하는 것은 차라리 쉬웠다. 그건 쇼토가 하는 쪽이었으니까. 쇼토는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소년이었다. 야오요로즈는 경외심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쇼토의 그런 태도를 높이 샀지만, 쇼토가 느끼기에는 정말 별것 아니었다. 내가 무엇인가 해내야 해, 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해서 쇼토가 남달리 특출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쇼토에게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난해한 일이 될 뿐이다. 당하는 쪽에 서는 것은 어색하고 무서웠다.
쇼토는 사감실에서 주말 외출 명단에 이름을 쓰고 집에 잠깐 들러 향불을 올렸다. 바쿠고가 라인으로 보내둔 주소까지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바쿠고네는 한쪽 외벽을 둥글게 지은 옅은 노란빛의 벽돌 주택이었다. 이른 저녁의 백금빛이 진한 초록색 지붕을 따라 미끄럼틀을 탔다. 햇빛이 바쿠고의 머리색을 닮아 있었다. 노을이 지기는커녕 푸르른 초저녁임에도 보름달 같은 등이 대문 양쪽을 밝혔다. 안뜰에는 삼나무가 무성했고 잔디가 보기 좋게 자라나 있었다. 일률적으로 다듬지 않아서 풀잎에 따라 어떤 것은 삐죽히 솟아 있고 어떤 것은 잘 깎여 반듯했다. 손톱만한 야생화들을 피하며 쇼토는 조심스럽게 사각형의 시멘트 징검돌을 밟았다. 조경과 건축의 요소 하나하나가 토도로키 가와 달랐다. 타인의 가정집에 와 보려니 모든 것이 낯설어 솜털까지 쭈뼛 곤두섰다.
대문 앞에 다다르자 노랗고 따뜻한 센서등이 켜졌다. 초인종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문짝이 떨어져나갈 듯이 쾅 하고 열렸다. 바쿠고는 머리 끝이 축축한 채로 아직 외투를 걸친 차림이었다. 쇼토가 오기 직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바쿠고는 쇼토를 향해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자기가 초대했으면서 쇼토가 여기 있는 걸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우산은 저기.” 비딱하게 턱짓한 바쿠고는 쇼토가 우산을 가지런히 접을 동안 거실과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러고는 어머니한테 고래고래 고함 지르는 걸로 저녁을 시작했다.
“왜 매운 냄새만 풀풀 나는데? 이 자식은 입맛도 맹탕이라고 말했잖아!”
“괜찮다, 바쿠고. 소바만 먹고 사는 건 아니라고...”
쇼토는 바쿠고의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바쿠고가 자신의 식성을 알고서 신경써 준다는 것은 조금 뜻밖이었지만 그 점을 지적하면 “안 그래도 가면허 강습을 같이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네놈과 친하다고 착각하는 모브들 때문에 열받는데, 매운 것 좀 먹였다고 배탈 나는 놈이랑 한데 묶이면 더 최악이라고” 같은 심술이 돌아올 것이 눈에 훤해서 쇼토는 가만히 있었다.
바쿠고가 어디까지 말해 뒀는지는 몰라도 바쿠고의 부모님은 쇼토의 흉터를 가까이에서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눈에 그 예전의 토도로키 레이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얼굴에 드러나는 단상마다 조금 지친 기색이었고, 바쿠고의 어머니 뒤에 반쯤 숨어서 움츠러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바쿠고와 판박이라서 쇼토는 아주 잠깐 바쿠고가 두 명으로 늘어났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공격할 태세를 갖춘 고슴도치와 같은 머리 스타일부터 매섭게 치켜뜬 눈초리, 한쪽 입꼬리가 더 높이 올라가서 비웃음처럼 보이는 자신만만한 미소까지 모든 것이 닮았다. 그러니까 요리로 치자면 어머니가 통후추를 다져넣은 폭탄 미트볼을 센불에 튀기는 옆에서 아버지가 맛술 넣은 계란말이를 조용히 말고 있을 인상이었다. 쇼토를 반기는 바쿠고의 어머니는 발성도 화통했다.
“일찍 왔네! 토도로키 군, 반갑다. 카츠키가 네 얘기를 어찌나 많이 하던지.”
“아니, 내가 언제? 헛소리 하지 좀 마.”
“카츠키 너는 몇 주만에 집에 오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야? 너 당장 주방에나 들어가 봐. 안 매운 반찬도 산더미같이 만들고 있거든? 우리가 어련히 준비를 했을까.”
“매운 것도 산더미같이 있잖아! 하루라도 매운 걸 안 먹으면 죽어?”
“참 나, 어이가 없네. 얘, 네가 좋아해서 만드는 거잖아! 할라피뇨 피클 없으면 밥 안 먹겠다고 하던 게 누군데?”
만난 지 일 분도 안 지났는데 바쿠고와 그 어머니는 최대 볼륨으로 아웅다웅 싸우기 시작했다. 처량한 미소를 띤 아버지가 쇼토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시야 한켠에서 폭발의 섬광까지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쇼토의 착각이었는지, 곧 말소리가 뚝 끊기고 세 사람은 일사불란하게 주방에서 자리를 찾아갔다. 어머니의 솜씨 좋은 지휘 아래 아버지는 돼지고기를 볶고, 바쿠고는 채소와 도마가 놓인 싱크대 옆으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바쿠고는 손을 씻으며 마지막으로 툴툴거렸다.
아무도 쇼토에게는 어디서 무엇부터 할지를 정해 주지 않았다. 쇼토는 일단 가져온 선물을 내밀었다. 현관에서 쇼토의 가방에서 튀어나온 것을 발견하자마자 바쿠고가 아니꼽다는 듯이 쏘아보며 “우리 집이 이런 거 좋아하게 생겼냐? 아앙? 나만 봐도 캐릭터가 딱 안 나와? 멍청한 반땡이 자식”이라고 한숨을 푹푹 내쉬게 만든 선물이었다.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대를 받고서 쇼토는 무엇을 가져올지 장장 하루에 걸쳐 고민했다. 바쿠고는 빈손으로 오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듯싶었다. 톱 히어로라면 이런저런 식사 자리에 많이 초대받아 봤을 것 같아, 쇼토는 엔데버에게 물어볼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생각으로 그쳤다. 엔데버에게 먼저 라인을 보내는 것은 오직 히어로 훈련을 위해서만 하기로 쇼토 스스로 정했거니와, 엔데버가 초대를 받았다 한들 수락했을지는 별개였다. 엔데버는 집에서 자는 날보다 출장일이 많은 워커홀릭이었지만 회식에 갔다는 말은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쇼토는 엔데버를 상담할 사람의 목록에서 지웠다. 가족 중에 제일 자주 연락하는 건 누나였지만 연수 동안에는 바빠서 답장이 느릴 거라고 했다. 나츠 형도 시험 기간에는 연락을 자주 확인하지 못했다. 어머니께 여쭈어보는 상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기뻐하실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쑥스러웠다.
바쿠고의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해지며 달려나왔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예쁜 꽃이 다 있을까?” 꽃을 받아들며 그녀는 바쿠고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얘, 너도 토도로키 군 반만 닮아 봐라! 생전 꽃 선물 같은 건 할 줄도 모르지.” 그리고 바쿠고가 떽떽거리는 대답에 맞추어 우당탕 소리를 내며 화병을 찾아 헤맸다. 토도로키 가와는 모든 움직임이 달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엔데버가 내는 큰 소리를 두려워하여 조용하게 움직였다. 고양이처럼 사뿐하고 소리 없는 몸놀림이 토도로키 가의 질서였다. 아무도 집에 없는 것처럼. 토우야 형은 예외였던 것 같지만, 토우야가 어떤 아이였는지 자세히 기억하기에는 쇼토가 너무 어렸다.
바쿠고의 어머니가 찬장 문과 서랍을 열어젖히고 또 닫을 때마다 굉음이 났다. 쇼토는 움찔하지조차 않았지만 얼어서 굳어 버린 것에 가까웠다. 바쿠고네 집이 아직까지 우르르 무너지지 않은 게 기적처럼 느껴질 때쯤 “여깄다! 꽃에 딱 맞는 병을 찾아냈어.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고 노래하는 듯한 탄성이 들려왔다. 너무도 활기찬 목소리였다.
잼이나 소스를 담았던 듯한 유리병을 들고 주방에 돌아온 그녀는 수돗물을 콸콸 틀어서 붓더니 꽃을 터프하게 꽂아넣었다. 마치 검집에 검을 꽂듯이. 그리고 돌아서서 김이 오르는 냄비로 도로 달려갔다. 미끄러지듯 다가온 아버지가 조용히 꽃을 다시 꺼내며 쇼토에게 “고맙다” 속삭이고는 줄기 끝을 손질했다. 이어서 사방에 튀긴 물을 닦고 꽃을 한결 깔끔하게 담갔다.
쇼토는 눈을 끔벅였다. 짧은 사이에 사건이 끝도 없이 벌어졌다. 바쿠고는 그새 심기가 구깃구깃해 보였다. 바쿠고가 크르릉거리며 끓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아직 끓는점까지 도달한 건 아니었지만 머지않았다.
“뭘 얼빠져 있어? 바보 놈이.”
“너희 어머니.”
“우리 엄마 뭐?”
“너랑 똑같으셔. 세상에 바쿠고 카츠키가 두 명인 기분이야.”
“그게 당최 뭔 기분인데, 엉? 헛소리 작작 하지 않으면 아무 기분도 못 느끼게 대가리를 날려 버릴 줄 알아.”
쇼토가 귓속말해도 들릴 거리에 서 있는데도 바쿠고는 귀청이 떨어지도록 소리치고는 주방으로 성큼성큼 가 버렸다. 어머니와 닮았다는 말에 왜 화를 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바쿠고가 왜 화내는지 알 수 있었던 적이 더 드물었으므로 쇼토는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박물관에서 길을 잃은 관광객처럼 바쿠고 뒤를 묵묵히 잰걸음으로 따라갔다.
바쿠고가 늘상 쓰는 표현에 따르면 ‘모자라고 둔해빠진’ 쇼토라도 이 집에는 가정부가 없으며 아들도 식사 준비에 종종 동참한다는 것을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요리를 완성해 나가는 세 사람에게서는 일련의 흐름이 느껴졌다. 모두 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알고 수행하고 있었다. 가령 손질되지 않은 채소들은 전부 바쿠고의 몫이었다. 흙이 묻은 당근, 양파, 감자. 쇼토는 바쿠고를 따라 싱크대에서 손부터 씻었다. 그것만으로도 바쿠고는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찡그렸다. 한껏 홉뜬 새빨간 눈에 똑똑히 써 있었다. ‘설마?’ 곧 바쿠고는 감자를 잡는 쇼토의 손을 탁 쳐냈다.
“왜?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바쿠고는 대답하느라 단어를 소모하는 것조차 낭비라는 듯이 한숨만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바쿠고의 발끝이 쇼토의 종아리를 툭툭 찼다.
“내가 한다니까.”
쇼토가 고집을 부리자 바쿠고는 그대로 놔두었다. 바쿠고의 허락은 단 몇 초간 지속되었다. 감자칼을 든 쇼토의 오른손이 아슬아슬하게 왼손을 스쳐 지나가자마자 바쿠고는 감자칼을 낚아챘다.
“나와. 히어로 지망생이 감자 하나 못 깎아서 과다출혈로 병원에 실려갔다고 뉴스에 나오고 싶지 않으면.”
바쿠고가 감자칼을 들자 샥샥샥샥, 하고 마치 쇼토가 얼음판을 연달아 생성할 때처럼 기분좋게 차가운 마찰음이 났다. 쇼토는 현란한 손놀림을 구경하느라 넋을 잃었다. 게다가 바쿠고는 요리하면서 대화도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의 귀재이기까지 했다. 쇼토가 말을 거니 평소와 똑같이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골 파티 때 부추 때문이야?”
“네놈은 그전부터 티가 줄줄 났어. 너네 집에서. 너희 누나가 주방에서 후추 좀 집어 달라고 하는데 후추가 어딨는지도 모르던 걸 보고 이 자식은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구만 싶었다고.”
감자 두 알이 순식간에 깨끗하고 맨들맨들해졌다. 대파도 금세 가늘게 채썰어졌다. 바쿠고의 손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면서도 일정했다. 쇼토는 옆에서 야채를 도마 쪽으로 건네주는 게 고작이었는데, 바쿠고는 그것조차도 미덥지 않다는 듯이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바쿠고가 뭐라고 생각하든지 혼자만 농땡이를 부리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둘러보니 둥그런 양배추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칼날이 붙은 판들이 있었는데, 꼭 히어로 보조 도구처럼 생겼다.
“양배추는 어떻게 썰어야 해?”
“불쌍한 양배추를 지옥에 보낼 일 있냐? 너 따위는 관심 꺼라.”
“채썰어서 샐러드 하려고.”
지나가던 어머니가 알려주자 바쿠고는 그쪽으로 이를 갈았다.
“저걸로 하면 돼?”
바쿠고는 당근을 깍둑썰던 손을 멈추고 쇼토를 잡아먹을 것처럼 빤히 쳐다보았다. 쇼토가 어리둥절할 만큼 한참이나. 그러더니 검지 끝으로 쇼토의 이마를 대뜸 삿대질했다.
“여기에는 분명히 우동, 아니, 소바 덩어리만 들은 거야. 칼을 못 쓰게 했더니 채칼을 쓰겠다네.”
“저게 채칼이구나.”
“하아... 채칼이 칼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 거라고 기대한 내가 머저리지. 저게 채칼인지도 모르는 놈한테.”
“채칼이 칼보다 위험해? 그럴 리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일단 칼날이 훨씬 작았다. 바쿠고가 손을 휘휘 저으며 채칼을 뺏어들었다.
“야, 비켜. 거치적거려.”
한 손에 칼, 다른 손에 채칼을 든 바쿠고는 상당히 무시무시했다. 바쿠고와 싸우기를 체념하며 쇼토는 마지막으로 항변했다.
“나도 요리 하는데.”
“누굴 귀머거리로 아냐? 가정부가 관둬서 누나가 다 한다며. 저번에 너네 집에서 나불거렸잖아.”
“소바는 내가 만들어. 면을 삶고 장국에 물을 붓는 거야.”
“그딴 것도 요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딨냐? 앙? 장국부터 직접 끓이면 모를까.”
드디어 때가 온 것을 느끼며 쇼토는 뿌듯하게 가르쳐 주었다.
“마트에 가면 이미 완성된 장국을 판다, 바쿠고. 무만 갈면 돼. 알려 줄까?”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바쿠고는 칼끝으로 거실을 가리켰다.
“저기로 썩 꺼져.”
쇼토는 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부엌 구석을 지켰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행색이 되었지만 원체 사교적인 편은 못 되었으므로 그런 역할에는 익숙했다. 바쿠고는 분주하다가도 한 번씩 돌아보고 입을 삐죽이며 쇼토를 밀쳐냈다. 한 걸음씩 쫓겨나다 보니, 그렇게 멀리 밀려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느새 부엌보다는 거실 쪽으로 경계를 넘었다. 토도로키 저택에 비하면 바쿠고네는 넓지 않았다.
냄비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너머로 바쿠고와 어머니가 옥신각신할 때마다 쇼토는 말려야 하나 주춤거렸다. 부모가 싸웠던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쇼토는 큰 소리를 본능적으로 겁냈다. 그러나 쇼토가 나서야 한다고 결심할 즈음이면 두 바쿠고의 말다툼은 예외 없이 잦아들었다. 옥신각신하다 평온해지기를 반복하는 밀물과 썰물 속에서 쇼토는 어쩔 줄 모르다가, 그들의 다툼이란 불을 조절해 가며 완성되는 국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거실에는 갈색 소파 두 개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마주보고 있었다. 키가 큰 책장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히어로학 전집이 빼곡히 꽂혀 있었는데 몇 권만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바쿠고가 그 책을 들고 다니던 것이 떠올랐다. 유리칸에는 바쿠고가 초등학생 개성 콩쿨에서 받은 트로피며 회사 로고가 새겨진 우수 디자인 상패가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뼘 크기의 황동 지구본이 멋스럽게 녹슬어 있었다. 피서철이면 셋이 돌려보며 휴가를 가는 꿈을 꾸었을까. 정말로 단란하게 가족여행을 다녔을까? 후자가 정답이라는 힌트처럼 작은 기차역이 든 스노우볼과 특색 있는 지층이 드러나는 돌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창턱에 놓인 분홍색 꽃이 활짝 피어난 꽃바구니가 쇼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쿠고는 분명히 가족들이 꽃을 즐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저 왜 빈손으로 안 왔냐는 타박이었던 듯했다. 쇼토가 시킨 대로 따르지 않아서 심통이 났던 모양이었다. 아름다운 꽃이었다. 쇼토는 용담꽃 말고는 이름을 거의 알지 못했지만.
주방은 거의 서양식인 데 비해 거실은 일본식과 서양식이 다채롭게 조화되었다는 인상이었다. 자잘한 물건이 많았고 구석구석 손을 탄 공간이 따뜻한 느낌이었다. 토도로키 가의 휑함과는 완벽한 대조를 이루었다. 집에 친구들을 데려갔을 때 바쿠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도리야는 집안이 정갈하고 단정하다, 토도로키 군과 잘 어울린다며 연신 칭찬했지만 망설이는 기색이 있었다. 미도리야의 날카로운 눈이 그곳의 쓸쓸함을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토도로키 주택의 청결함은 전부 부재의 흔적이었다. 어머니는 안 계신 지 오래였고, 쇼토에게 불 붙은 각목을 던지며 윽박지르던 시절이건 요즘이건 엔데버에게 집이란 눈만 붙이는 공간이었다. 둘째 형과 쇼토마저 또다른 보금자리가 생긴 요즘은 누나만이 간신히 가정의 형태를 붙들어매고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게 애쓰고 있었다.
쇼토는 똑같은 소파 중 어느 것에 앉을지 고민하다가 주방이 보이는 쪽에 앉았다. 바쿠고는 놀라울 정도로 쇼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예 기대도 않는다고 할지. 사람 취급도 안 해 준다고 할지... 뭐랄까, 사람이 아니라 이를테면 고양이에게 요리 실력을 기대하지 않듯이.
하지만 쇼토는 분명히 사람이었고, 게다가 어디를 가든 1인분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똑바로 박혀 있는 사람이었다. 일어서서 주방에 가니 바쿠고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어깨를 밀쳤다. “반땡 너는 방해만 될 뿐이야.”
용감하게 오뚜기처럼 되돌아가면 또 쫓겨나오기를 수도 없이 하고서야 쇼토는 완전히 포기했다. 복작거리는 분위기를 가만히 즐김으로써 나름대로 동참하는 것도 점점 편안하게 느껴졌다. 재료가 익어가는지 냄새가 맛있어져서 기대감도 더해 갔다. 김이 피어오르는 주방을 건너다보는 것, 특히 여기서 냄비를 휘저었다가 저기서 집게로 튀김을 뒤집었다가 하며 신출귀몰하는 바쿠고를 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꾸벅꾸벅 잠이 왔다.
쇼토가 졸다가 눈을 떴을 때 바쿠고는 처음 자리에 서 있었다. 채소를 자르는 도마 앞에. 아주 천천히,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바쿠고의 뺨을 타고 흘렀다. 쇼토가 세운 얼음벽을 스스로 녹이기 시작할 때면 얼음은 그렇게 울곤 했다. 쇼토는 바쿠고가 양파를 썰고 있다는 걸 곧 깨달았다. 그런데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봐 버린 느낌이었다. 다행히 바쿠고는 이쪽을 보지 않고 노련한 칼질을 계속했다. 눈이 마주치기 전에 쇼토는 얼른 눈을 감았다.
다시 깨어나니 턱밑까지 담요가 덮여 있었다. 그리고 바쿠고가 눈앞에 대고 박수를 짝짝 쳐 댔다. 박수소리마저도 팝팝 스프링클 캔디가 터지는 듯해서 쇼토는 바쿠고가 자신의 눈에다 폭파를 쏘아대는 줄 알았다.
“자러 왔냐? 기껏 밥을 차렸더니 다 식도록 퍼자네.”
“미안. 수저라도 놓을게.”
“진작에 놨으니까 네놈 밥이나 알아서 퍼 와라.”
쇼토는 잠긴 목을 가다듬고서 바쿠고가 들이미는 그릇에 쌀밥을 담아서 자리에 앉았다. 바쿠고와는 마주보고, 아버지의 옆자리였다.
메뉴는 소박하지만 잘 갖춰진 가정식이었다. 후유미가 만드는 진수성찬이나 런치러시의 멋들어진 솜씨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근사해 보였다. 참깨 드레싱을 뿌린 양배추 샐러드와 갓 튀겨낸 새우튀김, 배추에 간장을 뿌린 나물, 명란이 든 계란말이가 차려져 있었다. 큼지막한 돼지고기 조각이 떠 있는 하이라이스에는 바쿠고가 자른 야채를 넣고 한소끔 끓인 미소국이 곁들여졌다. 전부 두꺼운 도자기 접시에 담겨 나왔는데, 튼튼해 보이는 그릇인데도 잔금이 가고 이가 빠져 있었다.
하야시라니 카레보다 흔치 않은 메뉴다,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을 읽은 듯이 어머니가 쾌활한 설명을 곁들였다.
“카츠키가 토도로키 군은 매운 거 못 먹는다고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우리 집에서 하이라이스는 카츠키가 세 살 때 이후로 처음이야.”
“아!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호명된 장본인은 밥상을 뒤엎을 것처럼 역정을 냈다. 어머니는 바쿠고의 말이 아예 안 들리는 듯이 머리를 박박 헝클어뜨렸다. 쇼토는 카츠키의 밤송이 같은 머리에 어머니가 손을 찔리지 않는 게 자못 놀라웠다. 아버지가 머쓱해하며 손바닥을 비볐다.
“토도로키 군이 뭘 좋아하는지를 미리 물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뭐든지...”
“이 사람 잘못이야.”
바쿠고의 젓가락이 어머니를 가리켰다.
“자기 맘대로 만드는 주제에 ‘우리집 밥을 안 좋아하는 쪽이 문제가 있는 거지! 끝내주게 준비할 테니까!’ 같은 소리를 한다고.”
쇼토는 그 말이 정말 바쿠고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단언하는 목소리만 듣고도 바쿠고의 어머니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음식은 쇼토의 입맛에는 생소하면서도 맛있었다. 그 정도가 매운 축에 들 수 있다고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는지 배추나물에 얇게 썬 꽈리고추가 든 바람에 뒷목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밖에는 모두 입에 맞았다. 바쿠고는 심심한 반찬을 하나 집어먹을 때마다 할라피뇨 피클을 우적우적 씹었다. 바쿠고가 해치우는 속도에 맞추어 통에서 피클을 꺼내 담으며 어머니가 운을 뗐다.
“체육대회 때 말이야. 토도로키 군을 못 이겼다고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는지 몰라, 우리 카츠키.”
바쿠고는 바로 사레가 들렸다. 쇼토는 물을 건네며 할라피뇨가 목에 걸리면 꽤나 아프겠다고 생각했다.
“바쿠고가 이겼습니다.”
“그런 건 이긴 게 아니라나. ‘일 등 할 거야! 넘버 원!’ 하고 말은 하면서, 정작 일 등이 중요한 건 아니었나 봐. 카츠키가 좀 특이해서 말야. 친한 친구니까 알겠지만.”
그러자 바쿠고는 형언할 수 없이 뭔가 잘못 씹은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행동 양식에 대한 설명과 ‘친한 친구’ 중에 어디부터 딴죽을 걸어야 할지 정하느라 바쿠고는 짧게 제동이 걸렸다. 그 틈에 어머니는 눈을 흘겼다.
“사실 이 녀석이 자신감이 과했던 거지. 입학하자마자 넘버 투 히어로의 아들이랑 맞먹을 줄 알았던 게. 아니, 이젠 넘버 원이시지? 실례!”
“악! 엄마! 뜬금없이 그 사람 얘기는 왜—”
“인턴하기 전에도 엔데버 상이 따로 훈련도 봐 주고 그러셨지? 얼마나 좋아.”
“하지 말라고! 이 바보 아줌마가.”
“...네. 가끔요.”
그 정도는 이제는 비밀이 아니어도 될 것 같았다. 더 물어본다면 어디까지 밝힐 준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쇼토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아직은 침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쇼토는 밥그릇 속으로 얼굴을 숙이고 밥알을 셌다. 바쿠고가 버릇 없는 호칭을 놓고 어머니와 입씨름하는 동안 아버지가 쇼토 쪽으로 새우튀김을 밀어 주었다.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고 나서 화두는 바쿠고의 어린시절로 옮겨갔다. 바쿠고는 괴상하게 뒤틀린 표정을 짓고 밥을 거의 마시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식사를 빨리 끝내려는 눈치였다. 이제 보니 바쿠고의 어머니는 바쿠고가 온몸을 배배 꼬게 만드는 걸 꽤나 즐기는 듯했다. 쇼토는 조금 배워 놨다가 나중에 바쿠고가 생트집을 잡으며 윽박지를 때 써먹을까 싶었지만 어머니처럼 능숙하게 놀릴 자신은 없었다.
“글쎄, 이즈쿠랑 어린이집부터 같이 다녔거든. 이즈쿠한테 폭파를 자랑하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린이집이 끝나도 집에 오지를 않아서 매일 잡으러 다녔잖아.”
쇼토는 귀를 쫑긋 세웠다. 미도리야는 더 알고 싶은 친구였다. 바쿠고에게 그런 어린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아마 놀이터에서 모래바닥을 폭발시키는 사진도 남아 있을걸. 여보, 앨범이 어딨더라? 둘이 미끄럼틀 앞에 쪼그려 앉아서, 쪼끄만해 가지고. 이 녀석도 앙증맞은 꼬마였던 시절이 있었단다. 말이 되니?”
“봐도 될까요?”
“되겠냐? 밥 먹자마자 다 불태워 버릴 테다.”
“미도리야 사진 보고 싶은데.”
“그럼 당장 데쿠네 집으로 꺼져! 여기서 찾지 말고.”
“토도로키 군은 집에 앨범 있니? 어릴 때 아주 귀여웠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수줍게 끼어들었다. 쇼토는 젓가락을 멈추었다. 입안에서 음식 맛이 사라졌다. 바쿠고의 얼굴에는 희번득한 미소가 필름 현상되듯 떠올랐다. 삐죽거리며 내려갔던 입꼬리가 다이나믹하게 치솟았다.
“...모르겠습니다.”
“네놈 집에 다시 가야겠어. 내 사진 한 장이라도 염탐했다간 네놈이 기저귀 차고 있는 앨범까지 다 털어볼 줄 알아.”
쇼토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대화가 자꾸만 예상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다. 아마 그런 이유로 친구네 집에서 식사하는 게 고등학생이 된 오늘에서야 처음일 것이다. 유에이 이전에도 또래와 어울린 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에서도 학기 초마다 살갑게 말을 걸어 주는 동급생이 매년 한두 명씩은 있었다. 때로는 놀러오라고 쇼토를 초대하기도 했다. 쇼토는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몰라서였다. 그렇게 몇 번의 거절을 하고 나면 다시 쇼토 곁에 다가오는 학생은 없었다.
“안 볼게.”
쇼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바쿠고는 웃음을 거두며 쇼토를 아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이마에 주름이 가득 잡힌 채로. 하지만 쇼토를 더 건드리지는 않았다. 바쿠고의 표정은 미도리야와는 또 다르게 역동적으로 구겨지곤 했다.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바쿠고는 머지않아 노인처럼 주름이 가득해질 것이다. 아무리 고등학생이래도 아직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게 신기했다. 벽걸이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채우는 침묵 후에 바쿠고는 미소국을 후루룩 털어넣었다.
“학교는 재미있니? 수업은 어때? 카츠키한테 물어봐도 알려 주질 않으니.”
“네.”
“카츠키는 자기 얘길 통 안 해. 집에만 오면 애가 과묵해져서 선비가 따로 없는 거 있지. 클수록 더 심해진다니까. 보니까 토도로키 군도 그런 걱정 듣고 자랐을 거야, 맞지?”
누나와 형이 남몰래 그런 걱정을 했는지는 모른다. 쇼토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 보지는 않았다.
“아니오.”
“그러면 우리 토도로키 군한테 좀 들어 보자. 유에이가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하거든.”
쇼토는 바쿠고의 부모가 묻는 것마다 성실히 대답했다. 히어로 유니폼을 고칠 때는 하츠메 상의 작업실에서 상담할 수 있고, 단 들를 때마다 세 시간 정도는 못 나올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메뉴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런치러시의 식당에 대해서, 바쿠고는 주로 살사를 잔뜩 곁들인 멕시코 음식이나 한국식 부대찌개를 먹는다는 것도. 구조훈련 수업에서 심폐소생술을 배우던 날 바쿠고는 그만 더미 인형을 박살내고 말았다는 것도. 엑토플라즘의 수학 수업이 가장 어렵지만 바쿠고는 같은 반 학생들에게 곧잘 가르쳐 주는 편이고, 쇼토도 바쿠고 덕을 보았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래서 비슷한 문제가 쪽지시험에 나왔을 때 쇼토는 제대로 풀었는데, 실수로 틀린 바쿠고는 일주일 동안 화를 냈다는 것도. 바쿠고는 여차하면 그릇을 던질 분위기였다. 아마 그 성격에 어렸을 때는 실행하고도 남았겠지? 그래서 전부 이가 빠졌구나. 쇼토는 갑자기 보지도 않은 과거를 이해했다.
히어로 훈련이 커리큘럼의 중심이었으므로 그것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했다. 일대일 대련을 하면 쇼토는 자주 바쿠고와 짝이 되었다. 실력이 비등한 편이기도 하고, 얼음과 폭파가 서로를 억제하기 때문에 바쿠고가 쇼토를 요청할 때도 많았다. 전적은 쇼토가 살짝 앞서고 있었다. 불을 쓰게 된 직후에는 손쉽게 이기다가, 조금씩 따라잡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체육대회 때처럼 머뭇거리며 바쿠고를 절반의 힘만으로 상대한 적이 없었다. 매번 전력을 다해야 했다. 아마 바쿠고가 안 그러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바쿠고처럼 빨간 어머니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미소를 지었다. 미도리야를 닮은 미소였다.
“카츠키의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맙다, 토도로키 군.”
그러자 바쿠고의 표정은 붉으락푸르락 말로 다할 수 없이 험악해졌다. 쇼토는 바쿠고의 머리통이 통째로 폭발할까 걱정되었다.
그릇이 전부 깨끗하게 비워졌다. 쇼토는 설거지라도 도우려고 일어섰지만 바쿠고가 한 팔로 가로막았다. “저 아저씨 전담이니까 내버려 둬. 못 하게 하면 실망하니까.” 바쿠고는 쇼토에게만 들리는 볼륨으로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서 접시를 하나하나 건네주었다. 둘이 고개를 찰싹 붙이다시피 나누는 대화는 회사가 화제인 듯했고, 물소리까지 섞여 쇼토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미 충분히 먹었는데 바쿠고는 냉장고에서 기다란 상자를 꺼냈다. 우유크림이 든 롤케이크가 큰 조각으로 나누어졌다. 크림은 아찔한 설탕 맛이 아니라 점잖게 은은한 단맛이었다. 마치 소바용 쯔유의 단맛처럼. 곁들여진 딸기는 알이 작고 시기만 했다. 바쿠고는 쇼토를 향해 찌푸리기만 하다가 자기 접시까지 쇼토에게 밀쳐냈다.
“네가 먹지 그래? 할라피뇨는 매웠을 텐데.”
“하? 우리 집은 단 거 먹지도 않아. 손님 올 때나 사지.”
“손님이 자주 와?”
바쿠고는 고개를 팩 돌렸다.
“몰라! 아무튼 손님은 너밖에 없으니까 실컷 처먹어. 난 케이크 쪼가리는 입에 안 대. 이딴 건 근육 붙이는 데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설거지를 끝내고 조금 서성거리던 아버지는 쇼토에게 잘 놀다 가라는 덕담 몇 마디를 건네고 방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사건사고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시청 중이었다. 커다란 볼륨을 뚫고 빗소리가 더 굵어진 것을 쇼토는 문득 알아챘다.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비가 많이 와서야... 밖에 나갔다간 그대로 떠내려가겠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 안 되겠다. 토도로키 군, 자고 가지 그러니?”
“히아아악?”
바쿠고는 사람 목에서 나올 수 있나 싶은 괴성을 내질렀다. 쇼토도 심장이 갑자기 달음질쳤다. 친구네 집에서 잠까지 잔다는 건 지극히 낯선 경험이었다. 쇼토가 낯선 경험을 감당해 내는 속도는 유에이에 입학한 뒤로 제법 향상되었는데, 오늘 벌어진 일들은 그것보다도 너무나 빨랐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괜찮지. 여기가 뭔 호텔이냐고. 다 처먹었으면 꺼져야지.”
“얘, 카츠키! 친구한테 말본새 좀 봐. 미안, 토도로키 군.”
“괜찮습니다. 익숙해져서...”
“익숙해지긴 뭐에 익숙해져!”
“아무튼, 돌아갈게.”
바쿠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쇼토는 다시금 사양했다. 잠까지 자게 되면 얼마나 심하게 신세를 지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쇼토의 의견은 이미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바쿠고는 어머니와 설전하느라 쇼토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이즈쿠도 많이 자고 갔어.” “그건 유치원 때잖아!“ “그때나 뭐가 다르니? 이즈쿠나 쇼토나 똑같이 놀러온 친구구만.” 바쿠고는 반박하지 못하고 마른세수만 연신 해댔다. 하기야 정말 반대할 거였으면 지금쯤 하우저 임팩트라도 쏴서 밖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그 정도로는 바쿠고를 알게 되었다.
“그럼 비가 그칠 때까지만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쇼토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아침까지 그치지 않는다... 바쿠고는 어깨 너머로 힐끗 보더니 대번에 체념했다. 금발머리 아래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 찰나에 스쳤다. 역시 바쿠고는 뭐든지 빠르다고 쇼토가 내심 감탄하려는데,
“토도로키 군은 어쩜 말투도 의젓하니. 아유, 어머니가 좋으시겠다. 그치? 아들이 너무 멋있다고 맨날 그러시지?”
들려온 칭찬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이제는 어머니라는 단어와 마주치는 것만으로 쇼토는 그대로 돌고 있는데 지구가 자전을 멈춘 듯한 현기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미도리야와 바쿠고에게는 말해야 하는 만큼은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입으로 어머니 얘기를 듣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어쩜 그렇게 쓸데없는 말만 골라서 해?”
다행히 아무도 쇼토의 안색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다. 바쿠고는 어머니의 팔뚝을 찰싹 때리더니 등짝을 열 배로 얻어맞았다. 어머니는 하품까지도 호탕하게 하며 당부했다.
“부모님께 여기서 잔다고 전화 드리렴. 걱정하실 테니까. 아니다, 내가 말 전해 드릴까? 카츠키, 엔데버 상 전화번호 있지?”
“우리가 알아서 해! 유치원생인 줄 알아? 참견 작작하고 빨리 들어가.”
바쿠고는 팔을 크게 휘둘러 어머니를 침실로 쫓아보냈다. 뒷일이 결정되고 나니 바쿠고는 새로운 목적의식을 갖고 거침없이 움직였다. 쇼토가 먹은 케이크 접시 두 개를 빛의 속도로 닦고는 곧장 쇼토를 화장실로 떠밀며 툴툴거렸다.
“반쪼가리 새끼 너 먼저 씻어라.”
“괜찮다.”
“하? 너희 집이냐? 여기선 내 말이 룰이야.”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가서 티셔츠를 꺼내 왔다. 험한 말씨과 달리 행동으로는 손님 대접이 나름대로 극진했다. 바쿠고는 지구 최고의 집주인이 될 작정을 단단히 한 듯했다. 목표달성 모드의 바쿠고와 입씨름해 봐야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아는 쇼토는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였다. 물을 틀자 순식간에 화장실이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찼다.
샴푸와 바디워시 펌프를 누르면서 쇼토는 바쿠고와 가까이 걸을 때마다 나던 체향을 무의식 중에 기대했다. 바쿠고는 특유의 좋은 향기를 가졌다. 하지만 그건 섬유유연제나 향수였는지, 목욕용품에서는 바쿠고의 독특한 향이 아니라 깨끗한 비누 냄새만 났다. 바쿠고의 옷이 작을 것을 각오했는데 티셔츠는 쇼토의 사이즈보다도 한참 헐렁했다.
수건을 얹은 쇼토의 머리가 복도 바닥에 물방울을 점점이 떨어뜨렸다. 바쿠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화장실로 쿵쿵 들어갔다.
여덟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엔 뭘 해야 되는 걸까. 친구네 가정방문이란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는 일정인가. 화장실의 물소리를 들으며 쇼토는 고민에 잠겼지만 알아낼 수는 없었다. 바쿠고가 나오자마자 쇼토는 입을 열었다.
“저, 바쿠고. 원래 넌 이쯤 자러 가지 않나?”
그러자 바쿠고는 경악의 눈길을 던졌다.
“베이비시터냐? 아주 곧 있으면 자장가도 부르겠네.”
불을 끈 거실에서 바쿠고는 티비 채널을 돌렸다. 화면 불빛이 고집스럽게 앙다문 턱을 비추었다. 리모콘을 쇼토에게 양보할 생각은 한치도 없어 보였다. 둘은 쇼토가 잠들었던 소파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서 티비를 보았다. 쇼토는 그다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평소 챙겨 보는 프로그램도 없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맞닥뜨려야 했던 하루가 지나치게 피곤했다. 쇼토는 생각이 바쿠고, 올마이트, 미도리야, 어머니, 가면허 훈련, 1학년 A반, 인턴십, 다시 바쿠고에게로 멍하니 흘러가게 두었다.
바쿠고는 초조한 듯이 몇 분 단위로 채널을 바꾸었다. 후유미가 좋아하는 전원적인 가족 드라마, 아홉 시 뉴스, 펭귄 다큐멘터리, 톱 히어로에 버금가는 속도로 달리게 해 준다고 광고하는 운동화 홈쇼핑이 지나갔다.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는 듯했다. 그런데 왜 안 자지? 바쿠고가 일찍 잔다는 걸 모르는 1학년 A반 학생은 없을 텐데. 쇼토나 미도리야, 야오요로즈, 이이다 등 클래스메이트들을 경멸조로 모범생이라 부르는 바쿠고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습관이 들어 있었다. 쇼토는 반대로 눈꺼풀을 지탱할 수 없을 때까지 버티는 버릇이 든 탓으로 아침이면 1교시 전까지 교실에서 조는 때가 많았다.
“들어가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퉁명스러웠지만 바쿠고 특유의 화난 말투는 아니었다. 쇼토는 바쿠고가 자신의 리듬에 맞춰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느꼈다. 쇼토는 다시 말해 보았다.
“일찍 잘래.”
“겨우 아홉 시잖아.”
“아홉 시에도 잘 수 있어.”
몇 마디 열없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바쿠고는 마침내 티비를 끄고 리모콘을 소파에 집어던졌다.
바쿠고의 방은 백열 전등이 태양처럼 눈부셨다. 책장에 헤드폰이, 컴퓨터 양쪽으로 스피커가 놓여 있었다. 그밖에 음반이나 악기 같은 것은 없는데도 주인이 미래의 락스타라는 인상을 주는 방이었다. 올마이트가 보는 사람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날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침구와 커튼은 오렌지와 검정의 스트라이프 무늬였다. 벽지가 군데군데 그을려 있었지만 전반적인 깔끔함을 해치지는 않았다. 바쿠고는 정리정돈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가지런한 칼질 솜씨를 알기에 쇼토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누가 안쪽에 누울 것인지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곧 쇼토가 순응했다. 바쿠고는 책상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몸을 돌렸다. 쇼토도 이리저리 뒤척이며 편한 자세를 찾았다. 확실히 너무 많이 먹었다. 식도가 은은히 화끈거렸다.
“바쿠고.”
“뭐.”
“매운 거 먹으면 폭파를 잘 쓰게 되나? 그래서 식단이 그런 거야?”
“넌 왜 멍청이일까?”
정적이 내려앉았지만 쇼토의 기분이 상해서는 아니었다. 기실 바쿠고와 쇼토 단둘이서는 조용할 때가 더 많았고, 상대를 모독함에 있어 바쿠고의 잠재력에 비하면 ‘멍청이’ 정도는 양순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바쿠고는 무척 심란해 보였다. 한동안 의자의 회전이 멈추었다. 막상 꺼내는 말은 본인이 쇼토에게 지난 반 년간 상습적으로 퍼부은 모욕에 대한 게 아니었다.
“야. 우리 엄마 말은 신경 쓰지 마. 원래 주책이야.”
잊고 있었는데, 바쿠고네 어머니의 말들에 잠깐 당혹하기는 했다. 이 집은 토도로키 가와 반대로 아버지가 히무라 레이 같고 어머니가 토도로키 엔지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바쿠고네 어머니의 경우에는 비유를 완성하려고 갖다붙인 것이지 정말 엔데버 같으리라 짐작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쇼토로서는 모르는 일이었다. 엔데버 또한 히어로로서 바깥에서의 모습과 가족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주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공기가 가라앉은 김에 쇼토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떼었다. 바쿠고가 도움을 청해야 할 일을 겪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쇼토는 믿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었다. 쇼토는 오랫동안 자신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 왔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바쿠고, 혹시 어머니가 아버지를 괴롭게 한다거나 하면 말해라. 난 그 반대 경우였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바쿠고는 발끝으로 의자를 세운 그대로 쇼토를 뚱하게 쳐다보았다. 쇼토가 일본어 대신 라틴어라도 했다는 듯한 무반응이었다. 내키지 않더라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야 하나 싶어질 때쯤 바쿠고는 커다랗게 코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이렇게도 없네. 네 팔자나 걱정해라, 반쪽짜리 새꺄. 누가 누굴 보고.”
“괜찮으시다면 다행이다.”
“하아? 저 둘이 그냥 괜찮은 정도로 보이냐? 둔해 빠진 자식.”
“그렇게 사이가 좋으셔?”
“손님 있으니까 자제하는 게 저거라고. 둘이 깨가 쏟아져서 징그러워 죽겠어. 바퀴벌레 한 쌍이라니까. 기숙사로 탈출해서 겨우 숨통 트였지.”
저도 모르는 새 쇼토의 얼굴에 미미한 웃음기가 돌았다. 이 가정의 공간과 사람들을 겪을수록 마음에 들었다. 바쿠고의 어머니가 불 같은 기질을 가진 건 분명했지만 아무도 그 불에 태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해도 서로를 위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함께 시간을 쌓아 온 세 사람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웠다. 토도로키 가에서처럼 격리되어 지내지 않고, 벽 없이 왕래하는 가족의 모습이란 다 그런 것일진대 쇼토에게만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였다. 쇼토는 가족과 가족이 되는 법을 서서히 배워 가고 있었다. 가능하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길 위에 이미 서 있었다. 유에이에 들어오면서 열린 길이었다.
자러 갈 때를 넘겼는데도 바쿠고는 침대로 오지 않았다. 누워 있는 쇼토를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어딘가 집요하게 눈을 좁히고,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려 팔꿈치를 괴고서. 바랜 듯한 금발부터 날카로운 집중력까지 사막에 살며 사냥을 일삼는 생물 같았다. 쇼토의 붉은 쪽이 보일 각도였다. 흉터가 보기 좋지는 않을 터이므로 쇼토는 몸을 살짝 돌렸다.
비슷한 타이밍에 바닥에 내려둔 쇼토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올 문자라면, 어떻게 알고서 [토도로키 군, 캇짱네 갔다며! 어때? 괜찮은 거지???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월요일에 이야기해 줘] 하는 미도리야거나, 그 사람이었다. 계속 오는 걸 보니 미도리야는 아니었다. 쇼토는 진동을 무시했다.
“도움도 안 되는 반땡이를 이 시간에 찾는 새끼가 다 있네.”
“...”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이 쉼없이 징징거렸다. 여섯, 일곱... 바쿠고는 벌컥 신경질을 냈다.
“몇 통째야. 너 뭔 집착이라도 당하냐? 시끄러우니까 어떻게 좀 해.”
“저러다 말아. 잠잠해지면 읽고 놔 두면 돼.”
“...엔데버냐?”
“...”
“대신 답장해 줘?”
“음? 아니.”
뜬금없는 제안을 받은 쇼토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바쿠고가 답장하면 도대체 뭐라고 할까. 천장을 떠돌던 시선을 바쿠고에게로 돌리니, 웃음소리의 데시벨 때문이었을까? 바쿠고는 잠이 완전히 깬 것처럼 보였다. 기민하고, 총명하고, 모든 주의를 하나의 초점에 기울여 맞춘 모습. 폭파가 만들어내는 색색깔로 아롱이는 반짝임 속에서. 한낮의 바쿠고였다.
쇼토는 바쿠고 앞에서 그렇게 파안한 적이 없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아니, 바쿠고 앞에서만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도 소리내 웃지는 않았다. 아마 초등학생 때도, 그 이전에도. 그 사건의 전후로는 한 번도. 그러니까 쇼토가 기억하는 평생에서 처음이었다.
바쿠고의 표정은 쇼토가 얼른 읽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바쿠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로 미소지었다.
“뭘 쪼개냐, 반땡.”
바쿠고와 그 가족들을 보면서 엔데버나 토우야를 떠올렸던 건 부당한 처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두 활활 타오르는 열기로 움직이지만 모든 불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같아 보였던 것이 다를 때마다 쇼토는 눈을 감고 더듬어 헤매는 기분을 느꼈다. 시상대에서 올마이트는 말했다. 상대평가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자기만의 절대적인 기준을 지키는 사람이란 얼마나 귀한지. 그 드문 이들 중 하나가 바쿠고였다. 바쿠고는 넘버 원의 타이틀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바쿠고가 되고 싶은 거였다. 쇼토가 히어로네임을 쇼토라고 지은 것처럼... 두 마음이 얼마나 다르고 같을까?
오렌지빛 커튼 너머로 비는 계속 내렸다. 장작불처럼 따닥거리는 소리로 잦아들어서. 새우튀김이 자작이며 끓던 부엌의 소리와 비슷했다. 아무것도 쇼토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밤새 큰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는 크게 빗나가서 쇼토를 이곳에 있게 만들었다. 안온한 집안에. 폭우가 들이붓거나 화염이 치솟지 않는 중간적인 평화가, 절절 끓거나 혹한으로 치닫지 않는 미온의 공기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얼마간 더 늑장을 부리던 바쿠고는 일어나서 불을 껐다. 바쿠고가 옆자리에 몸을 던지자 침대가 출렁였다. 바쿠고는 이불부터 절반 넘게 뺏어갔다. 주도권을 주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쇼토는 몸의 대부분이 아직 덮여 있다는 데 만족하고 눈을 감았다. 사월부터의 잔상들이 순서 없이 산란하게 춤추며 지나갔다. 즐거운 학교 생활이며 학창 시절만의 우정, 그 어떤 것도 쇼토가 계획한 바는 아니었다. 쇼토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유에이에 입학했었다. 거기서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도, 그중에 바쿠고 카츠키가 있을 줄도 몰랐다. 바쿠고의 집이 평범하게 화목할 줄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히무라 레이와 토도로키 엔지가 화목하던 찰나도 있었겠지만 그건 쇼토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가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평범할 수 있는지 쇼토는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이곳의 평화는 쇼토를 헷갈리게 했다.
“꽃은 사온 거냐?”
“아니. 우리 집 정원에서 길러.”
“누가?”
“가정부랑 누나가 물을 줘. 가끔은 내가.”
“심은 건 누군데?”
“그 사람.”
“하? 엔데버가 꽃을 심는다고?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집을 지을 때부터 키웠다고 했어.”
어머니는 푸른 꽃을 사랑했다. 어머니는 엔지의 피해자였지만, 그게 어머니의 전부는 아니었다. 바쿠고는 할 말을 찾다가 헛기침을 했다. 어두운 공기가 낮게 울렸다.
“너희 어머니 말야. 네놈도 그쪽을 더 닮았냐? 그 아저씨와는 그다지...“
“그렇다고 하더라.”
쇼토는 핸드폰에 어머니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었다. 병문안을 다녀도 요즘의 어머니를 사진에 담지는 못했고, 집에 있는 앨범을 찍은 것이었다. 바쿠고에게 사진을 보여주면 어떨까. 어쩌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아직은 너무 일렀다. 단 하룻저녁에 친구네 집을 둘러보고, 식사하고, 자고, 십 년을 닫아 놓았던 세계까지 열어 보인다니 지구가 열 배로 빠르게 도는 양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모든 길은 주저하며 한 걸음씩 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허둥지둥 따라잡기 벅찼던 이 저녁나절에 쇼토는 어렴풋이 깨치고 있었다. 어쩌면 바쿠고가 어머니와, 또 미도리야나 다른 친구들과도 사사건건 일으키는 충돌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서 거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고.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서. 불길이 지나가는 자리가 반드시 전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촛불에서 촛불로 옮겨붙는 것과 같다.
그렇더라는 말을 쇼토는 어머니에게 급히 전하고 싶어졌다. 당장 손에 연필과 편지지가 없다는 것이 애가 탔다. 첫 편지를 쓸 때만 해도 한두 문장을 짓는 것조차 힘겨웠는데, 점점 하고 싶은 말이 말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빠르게 터져나와 목이 막혔다. 하루하루가 전력질주였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한 해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역시 입학식 때는 꿈꾸지 못했던 미래였다. 미래란 경이로 가득한 법이다.
어느 한적한 밤에 바쿠고와 나란히 누워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같은 공기 속으로 숨을 내뱉으며.
피부가 닿아 있지 않아도 침구를 타고 체온이 전해졌다. 개성을 가라앉혀 몸의 왼쪽과 오른쪽 온도를 같게 하면 바쿠고가 있는 쪽 팔이 확실히 따뜻했다. A반 누구와도 친해질 줄 몰랐지만 이 녀석과는 특히 그랬다. 그건 쇼토 자신이 아니라 미도리야 덕,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쿠고 덕분이었다. 그들이 미도리야를 가운데 놓고 손을 잡은 이래로 바쿠고는 그 성마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손을 거두지 않았던 것이다. 쇼토는 지금껏 벌어진 일들을 믿을 수 없었다.
가슴 안에 더운 기운이 몽우리지며 맺혔다가 뜨거운 것들이 으레 가벼워지듯이 위로, 목 안까지 올라왔다. 화염을 쓰는 것과는 달랐다. 개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감정이었다. 토도로키 쇼토에게 불이나 얼음과 무관한 것이 몇이나 있었던가? 바쿠고가 그 중에 있었다. 그만하면 바쿠고를 잘 알게 된 줄 알았는데 이제 와 보니 아니었다. 충동적이고 혈기왕성한 면도,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바꿀 듯이 찬란한 대담함도, 다정한 마음을 영 서투르게 숨긴다는 것도 쇼토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원래부터 알았다. 그런데도 바로 지금 직전까지는 바쿠고를 하나도 몰랐던 것만 같았다. 뜨거운 기운이 하나의 덩어리로 형체화했다.
‘지금은 안 돼.’
쇼토는 목구멍을 꾹 닫아 억눌렀다. 혀뿌리를 깊이 눌러서 타들어가는 촉감을 삼키려고 노력했다. 속에서 불덩어리가 곡예했다. 그건 가끔 어머니의 병실에 고개를 떨구고 앉아서 딸기우유를 쥐고 있으면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주 가끔은 후유미의 등을 보면서도.
“어이, 토도로키.”
쇼토는 바쿠고에게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의 형체는 눈을 뜨고 있었다.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가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너 말이야...”
쇼토는 울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뭐가 되었든 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고 또 분명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목이 반쯤 잠긴 소리가 새어나왔다.
“으응.”
바쿠고는 소스라쳐 일어나며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눈이 부셨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어느새 바쿠고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코가 스칠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 쇼토는 울먹일 뻔하던 것을 단번에 잊어버렸다.
생소했던 음식 때문인지 속이 미미하게 울렁거렸다. 목이 타다 못해 목 안에서 말이 증발해 버렸다. 귓가에서 파도 같은 맥박이 들려왔다.
바쿠고는 어떤 말을 꺼내려는 듯 입술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총기가 깃든 눈에 유난히 영롱한 빛이 감돌았다. 바쿠고는 천부적인 센스를 지녔다. 미도리야조차 갖지 못한 종류의 센스였다.
쇼토는 갑자기 자신이 바쿠고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두려워졌다. 쇼토가 호수와 같다면 그 표면에는 파동이 치고 있었다. 쇼토의 자의를 벗어나 파도치는 물결은 물밑의 어떤 것이 만들어내는 울림이었다. 바쿠고가 그 정체를 읽어 버릴까 봐 겁이 났다. 무엇이 이 어지러운 열감을 불러오는지.
누군가 먼저 알아차린다면 당연히 쇼토가 아니라 바쿠고일 것이다. 바쿠고의 기민한 육감과 두뇌 회전은 쇼토가 따라잡을 길이 요원했다. 쇼토는 늘 그래왔듯이 너무 느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그러나 바쿠고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쿠고의 숨결이 온 얼굴에 닿았다. 서로 눈을 들여다보며 이 순간의 함의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쓰는 사이, 쇼토는 비현실 속에 모든 것을 잊었다. 아마 역사에 남을 만큼 멍청한 표정을 지었을 텐데 바쿠고는 웃지 않았다.
바쿠고의 표정, 눈썹과 콧잔등과 입매가 빚어내는 선들이 한순간 부드럽게 느슨해졌다가 바로 예리해졌다. 역시 바쿠고가 어딘가에 먼저 닿고야 말았다. 시간이 멈춘 속에서 바쿠고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언가, 쇼토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는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직감으로 쇼토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쇼토의 이마에 폭파 탄환 못지않은 딱밤이 수놓였다. 눈앞에 전기 충격 같은 별똥별들이 날아다녔다. 별똥별을 배경으로 불이 꺼졌다. 바쿠고는 에잇, 하고 이불 위에 드러누웠다.
침대는 너무 폭신해서 좌식 생활을 해 온 쇼토에게 맞지 않았다. 쇼토는 밤새도록 얕은 꿈 속으로 자맥질하며 자는 둥 마는 둥했다.
카츠키는 커튼을 반 조금 못 되게 걷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접어드는 빛이 길게 비쳤다. 빛은 침대에 대각선으로 흘러들어와 토도로키의 왼쪽 얼굴을 밝혔다.
토도로키는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게으른 자식. 카츠키는 문틀에 기댄 채 소리를 죽여 중얼거렸다. 토도로키의 숨소리는 고르고 편안했다. 카츠키가 옷을 걸치는 소음에도 토도로키는 깨지 않았다.
이랑이 패인 듯 줄이 간 화상 흉터 위로 빛이 약하게너울거렸다. 이제는 만져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나가서 달리기를 시작할 시간이 지나고 있었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설득할 핑계라면 카츠키는 너끈히 준비해 두었다. 약육강식의 거친 세계에서 반랭반열처럼 강한 놈은 분하더라도 챙겨 놓았다가 프로 히어로로서 등을 맡겨야 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래서 자비를 베푸는 거라고. 그러나 알고 있었다. 토도로키의 강한 면만큼이나 약한 구석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그런 자신의 모습이 거슬려 심사가 일어났다. 카츠키는 명실상부 최고의 히어로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채는 것이 히어로의 자격이고 그 결여를 채우려는 마음이 자질이라고 한들, 누가 묻든 그런 마음은 아주 고집스럽게 한 톨도 없다고 잡아뗄 것이다. 묻는 사람이 반땡이래도 마찬가지였다. 카츠키는 시선을 억지로 밖으로 돌렸다. 자느라 늑장 부리는 녀석을 기다려 주지는 않을 테였다. 반땡이가 발뒤꿈치도 못 쫓아올 만큼 뛰어난 히어로가 되어 주리라.
결심을 굳히면서도 카츠키는 현관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발코니 쪽으로 어슬렁거렸다. 토도로키가 부스스 깨어서 따라오기 전에 얼른 해치워야 했다. 부모님이 키우는 식물 중에는 붉은 딸기 화분이 있었다. 나무 지지대를 따라 올라간 덩굴에 발그레한 열매들이 달리고 아담한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 있었다. 여섯 개의 꽃잎이 섬세했다. 카츠키는 무심결에 하얀 꽃을 어루만졌다. 얇고 싱그러운 꽃잎이 손가락 사이에서 팔랑였다.
전날 케이크에 올릴 딸기를 따러 나왔다가 카츠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분이 토도로키를 얼마나 닮았는지. 어젯밤 하염없이 내밀하던 순간에는 하마터면 그 말이 새어나올 뻔했다. 속이 철렁하도록 위험했다. 꽃이 너처럼 보였고, 그래서 네가 꽃처럼 보인다고 어떻게 고백하겠는가? 나설 때 토도로키는 잠들어 있었지만, 깨었더라도 말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내일도. 일단 오늘은. 일단은...
카츠키는 고개를 저어 하지 못한 말들을 떨쳐냈다. 상념에 젖으려고 나온 게 아니었다. 단지 식물이 물과 햇빛을 충분히 마시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카츠키는 발코니 창을 활짝 열었다. 그것이 하려던 일의 전부였다.
카츠키는 얼른 비가 그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산들바람이 금발머리를 흔들었다.
발코니에는 상쾌한 공기와 아침 햇살이 흘러들어왔다. 모든 것이 신선한 아침이었다. 톱니가 촘촘한 잎사귀마다 이슬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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