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과 춤을
빌런 소굴은 호크스의 상상 이상으로 한심했다. 그들의 식생활이 특히 그랬다. 매번 바뀌는 아지트에 들를 때마다 호크스는 공안이 그래도 그럴듯한 보육을 제공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토가 히미코의 경우 호크스와 나이차가 아주 많이 나는 것은 아니어도 엄연한 미성년이었는데, 그녀의 영양은 내방쳐진 상태였다. 거점이었던 바가 습격당하고 나서 빌런 연합은 도주에 도주를 거듭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초라한 곳으로 떨어졌다. 작금의 아지트란 공실이 많이 난 상가의 어느 버려진 방이었다. 일 층에는 코인세탁소, 사 층에 정체 모를 학원이 영업하고 있는 흉흉한 건물의 꼭대기 층 끝에 있었다.
늦은 저녁에 손을 흔들며 입장한 호크스는 폐기가 찍힌 도시락 더미를 쿵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공안에 적당히 볼품없어 보이는 음식을 구해 달라고 하여 받아왔다는 사실은 숨긴 채로. 그것만으로도 반가워하며 스피너가 달려들었고, 트와이스가 대뜸 엄지를 치켜들었다. “호크스, 넌 정말 최고야! 매번 말하지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말만이 아니야, 기다려 줘!” 시가라키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그마저도 호크스가 자주 음식을 가져오는 것을 마지못해 기꺼워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제대로 된 숙식을 제공하지 못하니 시가라키는 부하들을 모아 놓는 결속력을 잃어 가는 중이었다. 어쨌든 빌런에게도 기본적인 복지는 갖추어져야 했다. 아니면 사람은 빌런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법칙의 유일한 예외는 다비로서, 허겁지겁 나무젓가락을 쪼개는 일행과 종일 함께한 다비도 저녁식사를 걸렀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호크스의 뇌물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다비는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연신 파지직거리는 화면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수신료를 어떻게 냈는지 방송이 송출된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비의 무료해 보이는 얼굴에 히어로 뉴스가 비쳤다.
호크스는 악당들이 찬밥을 펼쳐 놓고 머리를 박게 내버려 두었다. 호크스가 제일 좋은 부분을 먹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트와이스가 커다란 가라아게 도시락을 내미는 것까지 사양하지는 못해서, 받아들고 조각을 우물거렸다. 데워 오지 않았더니 얼음 조각이 씹혔다. 텔레비전에는 엔데버가 나왔다. 넘버원의 자리에 걸맞게 화려한 실적을 올리며 잡범들을 상대로 연승을 거듭한다는 뉴스였다. 올마이트 은퇴 이후로 해결되는 사건의 수는 오히려 늘었다. 사건의 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엔데버 다음으로는 호크스의 활약이 보도되었다. 강철 날개가 교통사고 피해자를 화염 속에서 꺼내 구급대 쪽으로 실어 날랐다. 다비가 슬쩍 그를 곁눈질해서 호크스는 민망한 척 미소를 지었다.
“활약이 대단하네. 히어로 씨.”
“빌런 연합을 위해서 히어로 짓도 충실히 해야지.”
호크스가 맡은 임무의 중심은 노우무에 대한 정보를 채취해 오는 것이었지만 연합의 멤버들과 부대끼면서 소소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령 다비 근처에 가면 살 썩는 냄새가 났다. 상당히 가까이 접근해야 맡을 수 있었지만 어찌나 끔찍한 악취인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코를 찔렀다. 다비의 옷에는 피고름의 흔적이 가득했다. 호크스는 아주 불우했던 어린시절에 감사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 비 오는 날 길가에 고인 웅덩이나 다름없는 집에 살았던 그는 빌런 소굴의 형편없는 사정과 다비가 풍기는 냄새도 그럭저럭 견뎌졌다.
트와이스나 시가라키에 비하면 다비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머리를 주기적으로 염색한다는 정도. 다비는 거의 혼자 다닌다는 인상을 주는 쪽이었지만 염색만은 누군가 도와 주면 편하다고 했다. “안 그러면 수그린 자세로 팔을 등 뒤로 꺾어야 하는데 그건 몸이 뒤틀린 이형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단 말이지.” 호크스를 완전히 믿지 못하여 컴프레스를 감시역으로 세운 채였다. 다비는 염색약을 건네고서 몸을 앞으로 구부렸고 호크스는 술을 따르듯이 약을 부어 주었다. 마치 등목을 시키는 것 같았다. 머리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검은색 물방울의 화학적인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다비의 체취도 잊을 정도였다.
“정말 우리를 위해서인 게 맞아? 그냥 불길에서 사람을 구하고 싶었던 거 아니고?”
호크스가 예쁘게 염색해 준 머리로 소파에 늘어진 다비는 자세가 몹시 불량했다. 군데군데 기운 옷자락이 해파리처럼 흘러내렸다. 소파는 가죽이 까져 스펀지가 드러나 있었는데 다비는 그 안으로 스며들 것 같았다.
“히어로 활동을 소홀하게 하면 공안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당할 걸. 공안의 실체가 얼마나 잔인하고 억압적인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하지 않았어?”
빈틈이 많은 말이었지만 다비는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한결 친근한 목소리로 또다른 시비를 걸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닭이 닭을 먹어도 돼?”
다비는 호크스를 닭이라고 불렀다. 토가도 안 하는 짓이었다. 다른 빌런들은 제대로 이름이나 활동명으로 부르면서 유독 호크스에게 그렇게 유치한 별명을 달아 놓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다비의 주변에만 가면 호크스의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는 이유의 하나이리라. 이름 얘기도 염색한 날에 했었다. 호크스가 먼저 물었기 때문이었다. “왜 머리 색을 바꾸고 다녀? 원래 흰색도 보기 나쁘지 않은데. 단순히 빌런 활동을 위한 변장이야?” 그러자 다비가 심드렁하게 말했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하니까지. 어디 머리 색 뿐이겠어, 본명도 버렸고.
“본명이 뭔데?”
“히어로에게는 알려 주고 싶지 않네.”
그간 다비의 신뢰를 사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는지 모른다. 수많은 유형과 무형의 선물이 히어로 측에서 빌런 측으로 건네졌다. 이중 스파이 짓이라는 게 그랬다. 출혈을 숱하게 감내해야 했다. 호크스는 깃털 몇 개가 떨어져도 날개는 날개더라는 경험을 위안 삼았다. 어디까지 떨어져도 날개일 수 있는가는 불명확하지만... 때로는 공안과 합의되지 않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이루어졌다. 그래야 하는 빈도는 엔데버가 언급될 때마다 높아졌다. 웅영고 체육대회 얘길 건너건너 들었는데 추천입학생 하나가 불꽃을 거의 쓰지 않은 건 글쎄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일환이라더라, 그렇게 별난 사춘기가 다 있나. 호크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잡담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비의 눈에 총기가 돌았다. 그래서 엔데버가 토도로키 쇼토를 어떻게 했는지 다비는 집요하게 물었다. “뭐 내가 거기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엔데버를 자주 만나니까, 눈치로는 쇼토 군의 퍼포먼스가 아주 불만족스러웠나 봐.” 다비는 그 말을 대단히 만족스러워했었다. 다비가 호크스에게 바짝 다가섰다. 뱀처럼 매끄러워진 목소리가 호크스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는 넌 본명이 뭘까, 호크스.”
“호크스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너도 가족에 얽힌 사연이야?”
“다비 네 가족은 어땠길래?”
“그냥 일반론이야. 여기 있는 놈들은 다 배척당하고 가족에게 버려졌으니까. 그게 빌런 연합의 실체야. 실망스럽지?”
“웬만한 걸로는 실망하지 않아.”
“그럼?”
“뭐... 나도 가족에 얽힌 사연 정도는 있으니까.”
호크스는 거기까지만 하고 함구했다. 그의 양친 정도는 되는 인간만이 그를 실망시킬 수 있다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스파이 짓과 별개로 호크스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 정도는 있었으니까. 가정사가 있다는 정도의 언질만 가지고도 다비가 뒷조사를 시작할 단초를 제공했다는 건 몰랐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서 다비는 더 캐묻지 않았다. 그때는 의외로 젠틀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되돌아봤을 땐 전부 우습지도 않은 오해였지만.
“그런 게 빌런을 만들지... 어서 와.”
그날로 다비는 조금 친근해졌다. 호크스가 보기에도 다비는 빌런 연합이 벌이는 그 어떤 행각에도 열의가 없어 대체 왜 그들 틈에 끼어 있는지 저의를 알기 힘들었다. 물으면 스테인의 유지를 받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다비는 그다지 히어로들을 죽이고 다니지는 않았다. 한편 자신의 불에 휘말리는 민간인을 굳이 꺼내 주지도 않았고, 무슨 연유인지까지는 호크스가 알지 못했지만 기분을 크게 잡친 날에 모르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다비의 태도는 무작위에 내키는 대로였다. 다비의 존재에는 이유도 인과도 없게 느껴졌다. 무엇이 빌런 연합에 다비를 붙들어매는 닻인지 몰랐는데, 호크스에게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그 닻이 호크스인 것 같았다. 그것도 진상을 알고 나니 그보다 더 빗나갈 수 없는 착각이었다. 아무튼 호크스는 결과적으로 신뢰를 사는 데는 실패했고, 어쩐지 환심은 조금 샀다.
새로운 멤버가 생기면 주워온 사람이 돌본다는 게 빌런 연합의 불문율이었다. 그러니까 호크스의 주인은 트와이스였다. 하지만 어느덧 호크스는 트와이스보다 다비의 것이 되었다. 늘 무심하던 다비가 그나마 호크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니 멤버들도 반기는 눈치였다. 다비의 발언권이 트와이스보다 위였으므로 트와이스는 또 빼앗기기만 했다. 사람을 모아 놓으면 보이지 않는 위계가 생겨나는 것은 쓰레기 소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친구를 사귀었다고 트와이스는 호크스와 더 어울리고 싶은 눈치였는데 들어줄 수 없어서 호크스도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다비는 엉거주춤 서서 도시락을 먹던 그를 그대로 끌고 나갔다. 얌전히 따라나서 비상계단을 오르니 도착한 곳은 옥상이었다. 교복을 입던 학창시절이라면 괴롭힘과 구타가 시작되기 적당한 장소였다. 호크스는 학교를 제대로 안 다녔으니 경험담은 아니고, 날아가면서 수많은 옥상을 보아 아는 사실이었다.
머리 위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광활하고 별이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초롱초롱했다. 하늘을 보면 호크스는 아주 어려서부터 가슴이 뛰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짓거리를 전부 집어치우고 당장 날아가고 싶었다. 사슬에 묶여 있는 듯이 답답한 심정에 참 오래도 찌들어 있었다. 여기도 새장이고 저기도 새장이었다. 심지어 간첩이 되고서는 층층이 중첩된 수많은 새장에 갇힌 것처럼 옥죄여서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괜히 동행인을 향해 짜증이 치밀었다. 빌런들과 너무 어울려서인가? 그들의 나쁜 성격을 닮아가는지, 인내심 많기로 당해낼 자가 없었던 호크스도 성미가 급해지고 있었다. 호크스는 신경질을 감추지 않고 다그치듯 물었다.
“왜 불러낸 거야. 아직도 의심해? 뭘 해주면 만족할 건데?”
“긴히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말이지.”
“하든지.”
“네 가방에 언뜻 보이던 거.”
호크스는 가방을 다비의 발치에 털썩 내던졌다. 가져가서 속이 시원할 때까지 싹 뒤집어 조사하라는 의미였다. 손때 묻은 플라스틱 피규어가 군번줄로 손잡이에 달려 대롱거렸다. 다비는 힘주어 인형을 떼어냈다. 지금 보니 만듦새가 몹시 조악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 물건을 어떻게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을까? 그리고 아직도 애틋해하고 있을까. 수많은 추억이 덕지덕지 입혀져 이제는 인형과 거기에 씌워진 의미를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엔데버 인형의 불꽃은 아직도 찬란히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호크스는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이딴 건 왜 갖고 있는지 줄곧 궁금했다고. 너 엔데버 팬이야?”
다비는 감상에 젖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호크스가 저울질할 시간은 다비를 대할 때면 늘 그렇듯이 아주 짧았다. 다비가 엔데버 얘기만 나오면 반색한다는 건 아는데 빌런의 관심이 좋은 징후일 리는 없었다. 거리를 벌리는 대답이 낫다는 순간적인 직감으로 호크스는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딱히.”
“그럼 쓸모없는 골동품을 왜 매달고 다니시나.”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겨 주신 거라서.”
“엔데버를 사주는 부모도 있어? 신기하네.”
“올마이트는 비쌌거든.”
“아하, 저런.”
다비는 아주 측은해하는 얼굴을 했다. 호크스는 불편해졌다. 이미 말하고 싶은 것보다 너무 많이 말했다.
“그렇다면 별로 소중한 물건은 아니겠네.”
“...”
“그럼 내가 가져도 되지?”
“좋을 대로.”
속이 쓰렸다. 그 인형은 호크스가 애착을 가진 몇 안 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히어로로서 맡은 소임이 그의 사사로운 욕심보다 먼저였다.
“마침 부두 인형이 하나 갖고 싶었거든.”
다비는 도시락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플라스틱 나이프를 떼어내며 키득키득 큰 소리로 웃었다. 한없이 즐거워 보였다. 아까의 시들시들한 태도는 간데없고 괴기스러운 명랑함이 호크스를 불쾌하게 했다. 능력껏 맞춰 주고는 있었지만 다비의 느닷없는 변덕은 호크스의 천성에 어긋났다. 다비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잘 참아 왔는데 문득 역하게 느껴졌다. 뱃속에서 설익은 냉동 가라아게가 출렁거렸다. 다비가 인형을 난도질하는 동안 호크스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 앉아 밤의 찬 공기로 심호흡을 했다.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섬유로 뭐든 바느질하는 베스트 지니스트라면 플라스틱도 복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호크스가 그를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너무 많은 것에 끌려들어왔다. 신경줄 굵고 배포가 큰 호크스조차도 이 임무는 감당하기 힘든 과업이었다. 마치 거미줄에서 몸부림치는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엔데버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주황색, 흰색, 남색, 은색 조각들로 변한 후 다비는 만족하여 사지를 쭉 뻗고 호크스 옆에 드러누웠다.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가 거미처럼 보였다.
“늘 궁금했는데, 다비.”
“뭐든지 물어봐.”
“엔데버는 너한테 뭐야?”
“내 삶의 불이지. 종교 있어?”
“아니.”
“자등명 법등명... 등불을 법 삼아 의지해야 한다. 정토로 이끄는 빛을 따르라. 다비는 내가 지은 이름이야, 불교는 정말 멋진 종교니까.”
“불교 신자였어?”
“불교 뿐이겠어. 이래 봬도 좋아하는 게 꽤 많다고.”
다비는 신이 나서 한껏 부풀어 있었지만 호크스는 다비의 마음을 꽉 채운 열망을 알아갈 기운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다비는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기를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호크스는 장단을 맞추지 않았다. 그만 들어가자는 호크스의 말에 다비는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는 듯이 빤히 쳐다보았다. 흥이 오른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들어가자니 제정신이야? 난 지금 너한테 키스하고 싶을 정도야.”
“이야. 사양할게...”
들떠서 가볍게 뱉은 말이 아니었던 듯 다비는 한 술 더 떠서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다비의 등 뒤로 밝은 보름달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다비는 새까만 그림자만 남았다. 정말 화장되고 있는 시신 같았다.
“어이, 닭! 세상이 끝날 때까지 춤이나 추자고.”
다비는 흥에 겨워 나풀거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시취가 더 고약해졌다. 그런 냄새를 발할 때만 다비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냄새조차 없다면 다비는 사람이 아니라 불꽃 같을 것이다. 단단히 뭉쳐 놓은 정념일 뿐이지 물리적인 형상은 없는 것이다. 마치 원 포 올 같다고 하면 신성모독에 가깝겠지만 그밖에는 빗댈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호크스는 원 포 올이 이어져 온 내력을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하나였다. 개성에 개성을 더하여 눈덩이처럼 불어난 극의도 몸을 입지 않으면 아무데도 작용하지 못하는 힘일 뿐이었다. 원 포 올을 뒤집어 놓으면 다비의 존재가 되었다. 다비는 눈앞에 한 인간으로서 실재하는데도 하나의 관념 같았다.
호크스는 배불러서 움직이기 싫다고 투덜거렸지만 다비가 냉큼 그의 손을 잡았다. 음악조차 틀어져 있지 않았다. 다비가 직접 부르는 콧노래는 구슬픈 사랑 노래였다. 아주 오래 전, 십수 년 전에 호크스가 부모와 작별하던 때쯤의 유행가였다. 호크스는 마지못해서 노랫가락에 맞추어 다비가 이끄는 대로 손발을 움직였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호크스가 열과 성을 다해 기분을 맞추어 주고 있는데도 다비는 오로지 혼자서 춤추는 것 같았다. 팔락이는 옷자락이 불꽃 가장자리처럼 너울거렸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바람을 가르는 저승사자의 로브처럼. 세상사에 무심한 다비라면 모두를 거두는 대신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보내진 사신일 것이다.
다비는 주변을 확인하지 않고 몸을 흔들거리며 거닐다가 뒤로 발을 잘못 내딛었다. 한순간 그들은 밤 속으로 자유낙하했다. 호크스가 걱정했던 가능성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날개를 펼쳐야 했다. 다비는 분명히 호크스가 그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데려온 거겠지... 완전히 체념한 채로 호크스는 다비의 손을 맞잡고 허공을 걸었다. 그러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춤을 추는 기분이 들었다. 밤하늘 속에서 다비의 심장 고동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소리가 다비를 다시 실체를 가지고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포옹에 가까운 거리에서 맡으니 고약한 악취를 뚫고 불에 타들어가며 아주 순수한 것만 남아 가는 향이 느껴졌다. 달큰하고 향긋하며 위험하기도 한 냄새였다. 만개하는 꽃송이에 코를 처박으면 날 법한 향기가 진동했다.
다비는 손을 놓을 것 같았고, 호크스는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어 껴안았다. 호크스가 구출하는 본능을 가졌다는 다비의 지적은 유감스럽게도 틀리지 않았다. 손끝에 앙상하게 마른 등이 만져졌지만 아무리 팔을 단단히 여미고 품을 좁혀도 그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다비가 호크스의 손끝에 새겨질 것처럼 날갯죽지 아래를 파고든다 해도 호크스의 지문이 정말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게 왜 그렇게 슬퍼야 했을까. 호크스는 감정으로 일하지 않지만 다비에 대한 감정은 굳이 짚으라면 혐오와 증오 사이에 있었는데도. 빌런을 닮고 싶었던 것도 결코 아니다. 어쨌든 그 밤으로 인해 수많은 빌런들 중에서도 다비는 호크스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겨준 사람으로 남았다. 호크스가 기억하는 밤이라는 시공간도 조금 변하고 말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보금자리였고 꿈의 본산이자 공안의 구석진 방에서 올려다보던 안식처였던 밤하늘은 탄 자국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모든 것이 동일하게 남을 수는 없다. 삶은 변화의 연속이다. 지울 수 없는 얼룩을 지니고,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간극을 머금고, 삶은 계속되었다. 호크스는 그 사실을 아주 일찍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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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흥미로운 딱다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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