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내일은 호숫가에 갈까요

🎶 by A

*애니는 5기까지 봤고 원작은 거의 모르고 다비가 누군지만 아는 상태로 쓴 글… 글은 다비 정체 나오기 전의 시점입니다.

호크스의 발걸음은 가을 순풍 같이 가벼웠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유난히 달게 밤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경계를 늦출 기미가 없는 다비를 애써서 안심시키고 온 다음날이었다. 이중 첩자 짓에 끌려들어간 뒤로 발 뻗고 잔 날이 없었는데 (물론 날개는 예외였다. 호크스는 항상 날개를 활짝 펼치고 엎드려 잔다. 깃털이 비틀어진 상태로 눌려서 상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간 너무나 피곤했던 탓이었는지 간만에 제대로 곯아떨어졌다.

부산한 거리는 비 내음이 가시고 청명한 찬 기운 속에 낙엽이 굴러다니는 것까지 상쾌했다. 옆에는 소년이 묵묵히 따라 걷고 있었다. 벌써 호크스보다 반 뼘 정도 크지만 일단은 소년이었다. 이 소년을 잘 안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대부분에게 그렇겠지만, 호크스에게도 그는 아직 토도로키 쇼토라기보다 엔데버의 막내아들에 가까웠다. 그리고 엔데버의 세 인턴 중 하나. 셋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유에이 학생 세 명의 인턴 생활은 며칠 전에 엔데버를 잠깐이나마 추월하는 결실을 거두고서 완전히 끝이 났다. 쇼토만이 혁작을 배우러 계속해서 엔데버 사무소에 들르고 있었다. 

사무소는 시가지 건물 한 층 전체를 차지했는데 대부분은 사무실이나 회의실이었지만 엔데버가 개인 훈련에 쓰려고 방염 처리를 한 다용도실이 가장 넓은 방이었다. 엔데버는 오전에 그곳에서 쇼토의 연습을 봐 주다가 팀업 요청을 받아 출동했다. 호크스는 느지막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옷을 반쯤 태워먹은 소년이 헉헉거리며 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호크스는 샤워실을 가리키며 가볍게 제안했다. 씻고 나오면 점심 어때? 물론 엔데버 상의 신용카드로, 하고 눈을 찡긋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서 거절하려나 했는데 쇼토는 순순히 선배의 말을 따랐다.

오피스 건물이 늘어선 도심에는 회전이 빠른 덮밥과 라멘집이 주를 이루었다. 호크스가 눈여겨봐 놓은 가게는 회사원들을 상대로 점심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노포였다. 문턱을 넘자마자 한여름으로 돌아온 듯이 공기가 찜통이었다. 사방에서 훈김이 올랐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한 양복쟁이들이 전투적으로 면발을 빨아올리는 틈을 비집고 둘은 간신히 착석했다. 회사 내부 가십거리부터 아직 뉴스에도 보도되지 않은 빌런 이야기까지, 손님들은 그릇 너머로 열띠게 침을 튀겼다.

식탁마다 놓인 매실장아찌 통이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토도로키 군은 회사원들 틈에서 하는 외식이 조금 어색하고, 인파가 버거워 보였다. 호크스는 커다란 면기 속으로 고개를 숙이며 친근하게 눈짓했다.

“이런 가게를 다니다 보면 풍월이 생기거든. 정보 수집에 유리해. 허름한 게 흠이지만.”

“괜찮습니다.”

호크스의 라멘에는 토핑이 잔뜩 올라가 있었다. 온천 달걀과 죽순, 닭고기 챠슈 세 점. 쇼토는 심플한 냉소바를 골랐다. 시원한 것이 들어가고서야 쇼토는 긴장했던 표정을 누그러뜨렸고, 그러자 묘하게 맹하고 순한 낯이 되어 호크스는 그가 겨우 열다섯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더 시켜 줄까 물었더니 거절이 돌아왔다.

복귀하는 직장인들 틈에 섞여 걷는 길, 뱃속이 든든하고 가을바람이 선선했다. 쇼토가 없었다면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고 훌쩍 날아갔을 텐데. 호크스는 후식까지 야무지게 엔데버의 카드로 긁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식당은 매번 바뀌어도 커피는 그의 입에 맞는 집이 따로 있어 자주 찾았다. 뜨겁고 향 좋은 커피를 손안 가득 받아들기에 기온이 딱 적당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 보니 프림을 가득 넣어 찰랑거리던 커피컵에서 손등으로 뜨거운 액체가 튀었다. 호크스는 앗뜨뜨 하는 소리를 섞어 흥얼거렸다.

“넌 불 체질이라서 커피 정도는 뜨겁지도 않으려나.”

“잠깐 들어 드릴까요?”

“매너가 좋구만.”

호크스는 냉큼 잔을 맡겨 버리며 씩 웃었다.

“이렇게 배려심 많은 게 엔데버 상의 아들이라니. 원래 같으면 못 믿었을 거야. 그런데 요즘 보니 엔데버 상도 꽤 상냥한 구석이 있는 분이시더라고?”

토도로키 쇼토가 엔데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떠보는 말이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다. 격렬하게 부정할 줄 알았던 쇼토는 이제까지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상냥하다니, 호크스 상한테나 그렇겠지만... 엔데버한테 당신이 있는 건 다행이에요.”

“호오... 과분한 말씀. 쇼토 군 옆에도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겸사겸사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순간을 호크스는 놓치지 않았다. 쇼토와 인턴하러 왔던 두 꼬맹이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친구들은 어떤 애들 같아?”

호크스는 팔꿈치로 쇼토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쇼토가 땀에 절은 유니폼을 벗고 도톰한 손뜨개 니트로 갈아입고 나온 덕분에 촉감이 포근했다. 취미로 뜨개질을 하는 둘째 형이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쇼토는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말을 골랐다.

“바쿠고는 처음엔... 무서웠죠.”

“걔를 안 무서워하기는 쉽지 않겠더라.”

“바쿠고 때문이 아녜요. 바쿠고를 보면 전 누군가 생각나곤 했었어요.”

“엔데버 상?”

“첫째 형이오.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바쿠고의 난폭한 정열이 첫째 형을 닮았어요. 제 기억 속에서 형은 항상 화가 나 있었거든요.”

“너한테?”

“저한테도 조금은요. 그래서 바쿠고가 무서웠다는 건 아니에요. 바쿠고도 저한테 화가 난 게 아니고요. 바쿠고가 힘껏 열을 올리는 순간마다 자기 불꽃으로 스스로를 태워 죽일 것처럼 느껴졌어요. 첫째 형이 그랬던 것처럼.”

거기서 호크스는 왠지 다비의 개성을 떠올렸다. 하이엔드를 격파한 엔데버와 그를 에워싸던 세차게 푸른 불꽃. 언젠가 원이 단숨에 조여드는 때가 와도, 어째서일까, 다비 자신도 그 원 바깥으로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보여?”

“아뇨. 지금은 그냥 바쿠고 같아요.”

“체육대회 결승 잘 봤어.”

“보셨어요?”

“중요한 순간에 네가 넋을 놓던데.”

“이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미도리야 군은?”

“미도리야를 커서 만난 덕분에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미도리야가 해 준 말을 조금씩이나마 알아들을 만큼은 성숙해진 뒤니까요. 더 어려서 만났더라면 전 그애의 무개성을 질투하느라 눈이 멀었을 거예요.”

요지는 그랬다. 아주 평범하게 태어난 미도리야가 특별한 피를 받은 쇼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자신에게 더러운 피가 흐른다고 느끼던 쇼토도 무개성으로 살아온 미도리야의 정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것. 이야기는 자연스레 토도로키 가의 가정사로 방향을 잡고 흘러갔다. 엔데버가 아내와 별거 중이고 요절한 첫째아들을 두었으며 막내아들에게 여러 의미로 끔찍하다는 정도는 호크스도 얼추 풍문으로 알던 바였다. 분야를 막론하고 그는 어려서부터 모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쇼토는 망설였다.

“엔데버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호크스 상에게 하는 건 역시 아니겠죠.”

“아아, 괜찮아. 엔데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라면 나도 얼마든지 갖고 있지.”

“그냥... 듣기 거북하실까 봐요. 엔데버에 대한 얘기가 아니고 토도로키 엔지에 대한 얘기긴 하지만요.”

그렇게 뜸들이며 의미심장해 놓고서 쇼토는 주로 토도로키 엔지보다는 본인에 대해서 말했다. 호크스가 듣기에 나름대로 재밌는 얘기였다. 조금 겸연쩍어하는 설명을 듣고 호크스가 유추해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쇼토의 유소년기를 지배한 감각은 대강 다음과 같다.

쇼토의 왼쪽에 끓는물을 끼얹은 어머니의 행위는 쇼토의 존재 자체가 잘못됐다는 확언으로 기능했다. 어린 쇼토는 어머니가 집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 방에서 나가지 못했다. 마주쳐서 그녀를 괴롭게 할까 두려워서였다. 다음 한동안은 밤마다 몽유병자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는 시기가 이어졌다. 남은 형과 누나는 마음을 졸이며 비틀비틀 걷는 막내를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사는 동안 기억이 부분부분 희미해졌다. 그중에서도 “괜찮아, 쇼토. 되고 싶은 너 자신이 되렴” 하고 말씀해 주셨던 것을 가장 먼저 잊었다. 원칙상 불가능한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쇼토가 오랫동안 되고 싶어했던 쇼토는 불이 깃들지 않은 쇼토였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몸에서 불을 떼어낼 수도 없었다.

엔데버의 집에 남은 가족들이 조금씩 무뎌져 갈 무렵에는 피부가 짓물렀던 화상도 흉터만 남기고 아물어 있었다. 그때 쇼토는 이미 사실상 몸의 오른쪽에만 기거하는 중이었다. 왼쪽 반신은 생명 없는 나무토막처럼 거추장스러운 무게만을 더하면서 쇼토에게 붙어 있었다. 왼손으로도 물건을 들어 날랐고 양쪽을 똑같이 씻기고 옷을 입혔지만 그뿐이었다. 몸의 절반은 쇼토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고, 혹시라도 의미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했다. 그러다 미도리야 덕분인지, 혹은 미도리야 탓인지, 다시 불을 쓰게 되었으니 쇼토의 왼쪽이 불의 먹이로서의 장작이었다는 비유는 나날이 더욱 적확해져만 갔다. 어쨌든 무시했던 절반을 되찾아 가는 요즘 쇼토는 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가족들에게는 털어놓고 싶지 않은 고민이라고 했다.

“저도 모르게 자꾸 아버지의 마음을 가늠하려고 하게 되는 게 싫어요. 저희한테 왜 그랬는지요. 어머니와 누나, 형의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요. 저한테 반쪽 들어있는 불이 그런 짓을 벌이는 기분이에요.”

목소리가 가라앉고 시선이 깊어지는 쇼토는 걸음이 자꾸 처졌다. 호크스는 곤란한 체 볼을 긁었다.

“글쎄, 난 모르겠네. 그게 어떤 기분인지. 그다지 부모한테 길러지지 않아서 말이지.”

“죄송합니다.”

금세 고개를 숙이는 쇼토는 너무도 순종적이었다. 젊은 엔데버에게서 느껴지던 열기가 이 소년에게는 없었다. 원하는 거라고는 물 한 잔이 다인 애가 평생을 얼음과 불 속에 갇혀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어느덧 호크스도 쇼토를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그는 한숨도 짓궂은 미소로 능히 바꾸어 냈다.

“널 보는 엔데버 상도 퍽 답답했겠다 싶어.”

“네?”

“괜찮아. 내가 보기엔 엔데버 상도 답답하니까. 너보다 더하면 더했지.”

호크스의 손 안에서 쇼토의 커피컵이 빙글빙글 흔들렸다. 호크스 자신의 것은 진작 다 마셨고, 쇼토가 반쯤 마시고 두 손 든 것도 호크스가 마저 해치우는 중이었다. 집에서는 식수로 연한 녹차를 마셔 왔지만 아직 강한 카페인은 익숙하지 않다고 쇼토는 털어놓았다. 블랙 커피는 쓰고 시큼해 영 맛은 없어도 정신을 깨워 주었다. 어제 잘 잔 것도 미래를 위한 일종의 대비였다. 오늘은 다비의 전화를 기다리며 불침번을 설 예정이었다. 컵 안에서 투명한 갈색 물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다가 호크스가 할 말을 찾아내는 것과 맞추어서 맑게 개었다.

“얼음과 불 중에 하나가 되려고 하지 마. 왜 아버지의 길 아니면 어머니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해?”

잔잔해진 수면에 쇼토의 놀란 얼굴이 상으로 맺혔다. 호크스는 다시 컵을 빙글빙글 돌렸다. 한가운데 비치는 쇼토의 머리 위로 단풍잎들이 세차게 돌아갔다.

“얼음과 불을 다 가진 사람은 당신이 인류 최초예요, 토도로키 쇼토 씨. 두 번째가 아니라고요. 되고 싶은 너 자신이 되라고 어머니가 그러셨다며. 이제는 그 말이 기억난 거 아니었어? 어디 보자... 내일은 휴일인데 뭐해?”

엔데버 상도 내일까지는 일이 바빠 돌아오지 않을 테고, 학교도 쉬는 날이고. 호크스의 머릿속에 일본 전도가 세세히 펼쳐졌다가 금세 적당한 행선지를 향해 좁혀졌다.

“경치 좋은 데가 있는데 산보나 하러 갈래? 내일 오후쯤에. 내가 은퇴하고 별장을 지으려고 봐 둔 곳이야.”

물론 별 뜻 없이 둘러댄 말이었다. 최근에 호출을 받고 직선 항로로 날아가다 우연히 지나친 호수가 뇌리 한귀퉁이에 남아 있었을 뿐이다. 이 제안은 토코야미를 창공으로 데려간 것과는 달랐다. 하늘은 호크스의 제집이었고, 토코야미에게도 그렇게 되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물은 좋아하지 않았다. 호크스에게 날개가 축축하고 무거워질 시간 따위는 없었다. 흐르는 바다나 강조차 아니라 한 자리에 머무르는 물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쇼토에게는 호수 같은 곳이 잘 맞아 보였다. 쇼토라면 그런 장소에서 호크스는 모르는 무언가를 읽을 것 같았다.

그 호수는 아주 깊고 맑았으며 수평선이 생길 만큼 넓었고, 계절에 물드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호크스는 물가에 쓰러진 나무에 기대앉아 수면을 응시하는 쇼토를 상상해 보았다. 아마 쇼토는 오늘 호크스에게 고백한 고민을 잠잠히 이어갈 것이다. 토도로키 소년이 어우러진 호수의 풍경이 제법 괜찮다고 느껴졌다. 뭐랄까, 누구나 자기 집이 있는 법이니까. 호크스의 집은 공안의 별실 하나로 아주 좁았다. 그런 동시에 어디에도 없었고, 한편 하늘 전체 혹은 세계 전체로 아주 넓었다. 호크스는 그 모호함이 익숙할 뿐만 아니라 일단은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그에 비하면 쇼토가 자기만의 호수 하나를 가지는 건 아주 평범한 결말일 테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결말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결말이 나는 미래는 반드시 과거와 맞물려 있다. 미래를 당겨 오는 것을 주된 사명으로 받은 바, 호크스는 시간의 속성에 대해 여러 지론을 가지게 되었다. 쇼토가 호숫가를 거닐고 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나름의 해답을 발견한다면 그 답은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그곳에서 쇼토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괜한 참견인가? 하지만 히어로란 곧 괜히 참견하는 자를 뜻한다고, 올마이트가 언젠가 말했었다. 올마이트는 호크스의 넘버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러러볼 만한 히어로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정석에 가까운 말을 잘 하기로는 올마이트야말로 둘째 가라면 서러웠다.

“호크스 상과 제가요?”

“집도 좋고 사무소와 기숙사도 좋지만, 나들이할 장소를 하나 알고 있으면 즐겁잖아.”

“정말 그것뿐이신가요.”

“그러면 이렇게 말할까? 너라면 내 산책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미도리야는 너무 쉽게 감격하고 바쿠고는 시끄럽더라고.”

승낙하기까지 쇼토는 한참이나 생각했다. 소년이 조용해진 동안 호크스의 주의는 이미 온 사위를 향해 옮겨갔다. 시절이 수상해졌으므로 이토록 평화로운 거리에서도 오래 방심할 수는 없었다. 빌런의 동태를 잡아낼 단서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었다. 호크스의 시선이 날카롭게 분주한 도로변을 훑는 동안 쇼토는 보이지 않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호크스 상은 엔데버를 좋아하시죠?”

호크스는 ‘무슨 의미로?’하고 쇼토를 놀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신실하게 대답했다.

“히어로들 중에서는 봐 줄 만하지.”

“토도로키 엔지까지도요? 그래서 엔지가 토우야를 상실했다는 게 안타까우신가요. 저희가 마땅히 가졌어야 하는 맏형 노릇을 호크스 상이 대신해 주려는 걸로 보이는 건 제 착각인가요? 되고 싶은 너 자신이 되라고 해 놓고, 호크스 상은 다른 사람이 되려고요.”

쇼토는 추궁하듯이 호크스를 노려보았다. 눈빛을 날카롭고 매섭게 하면 호크스가 숨기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는 양. 그런 점이 귀엽고 안쓰럽고 되바라져 보였다. 쇼토가 드물게 말대꾸를 할 때마다 어쩐지 다비의 오만함이 그림자처럼 비쳤다. 다비는 쇼토의 발버둥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미 호크스를 다 파악했다는 듯한 느긋함을 갖추고 있었지만. 호크스는 빙긋 웃었다.

“별 걱정을 다 하는구나. 토도로키 가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안심해. 별로 즐거워 보이는 집은 아니던데?”

잡담하는 동안 어느새 사무소에 거의 도착해 있었고, 쇼토는 또다른 걱정에 천착했다. 표정은 한층 더 심각해졌지만 그 내용은 도리어 엉뚱했다.

“호크스 상.”

“네, 쇼토 상.”

“정말 은퇴하실 거예요?”

“아직 멀었어. 세상이 놔 주질 않네. 내가 은퇴할 때쯤 되면 네가 넘버원이려나?”

“제가요?”

“이변이 없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넘버원이 되면 차트를 폐지할 거예요.”

“엉?”

“정말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일 등이 되려고 뭔갈 하는 게 싫어요. 그렇다고 넘버원도 아닌 사람이 소신이랍시고 우겨 봐야 우스울 뿐이겠죠. 말에는 행동이 따라야 하니까요. 우선 넘버원이 되어 자격을 갖추고 나면, 엔데버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도록 랭킹 자체를 없애야만...”

“아하하... 기특한 생각을 하는구만.”

쇼토의 포부야 어쨌건 당장 호크스로서는 엔데버에게 전할 수 없는 말만 하나 늘었을 따름이었다... 호크스는 주먹을 꼭 쥐는 쇼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쇼토는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웃지 마. 정 든다.”

그렇게 말하고 호크스는 활짝 웃으며 사이좋게 쇼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쇼토는 더이상 호크스의 미묘한 표리부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저 고분고분 멍한 무표정으로 돌아가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사무소 건물 앞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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