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상

엔란 by 보슈
2
0
0

란은 천성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였다. 매년 성실하게 책을 내는 만큼 마감은 주기적으로 있는데, 어쩐지 하루하루를 살펴보면 한량마냥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종종 마감 때가 되면 다급해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 뿐이고. 이엔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읽다 만 책이나 보고 있던 TV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곤 했다. 그런 상황을 매일 매일 마주치다 보면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가 쌓이는데, 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란은 물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심해를 촬영한 다큐멘터리같은 건 이전부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둡고 깊은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순간이 란의 마음 속을 어떻게든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낚시 프로그램부터, 지역 명소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수족관 다큐멘터리까지 이어지는 선택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그 검은 바닷속 뿐만이 아니라 유선형의 생물들 또한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징그럽지 않아요? 물어보면 그런가... 하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지만, 그래도 시선이 못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이엔은 인터넷으로 인형을 하나 주문했다. 그건 낮 중에 집에 도착해서-란이 항상 집에 있기 때문에 택배를 받는 것은 대체로 란이었다.- 란의 손에 들렸다. 제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란은 무심코 상자를 열어보았다. 반투명한 얇은 종이로 포장된 것은 푹신한 인형이었다. 그것도 당장이라도 퍼덕거릴 거 같은 아주 사실적인 물고기였다. 란은 잠시 그걸 빤히 바라본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이엔이 돌아왔다.

"형님, 저 왔어요."

다정한 인사를 건네면 란이 기다렸다는 듯이 팔을 벌려온다. 저녁 해놨어. 오늘은 이엔이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했는데...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란이 귀여워서 이엔은 살짝 뺨을 붉히며 웃는다. 그리고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소파를 힐끔거린다. 소파에는 물고기가 떡하니 담요를 덮고 누워있었다. 마음에 들었어요? 물어보면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귀엽네... 솔직히 말하자면 귀엽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사실적인 모양이었지만 란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라고 생각하고 만다. 기뻐하는 란을 바라보며 입을 맞추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란은 그 인형을 언제나 옆구리에 끼우고 다녔다. 그야 물론 이엔이 있으면 이엔을 끌어안고 입맞추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글을 쓰고 있을 때라거나 책을 읽을 때라거나 TV를 볼 때라거나 혼자 멍하니 있을 때는 언제나 끌어안고 있었다. 표정은 덤덤하면서, 하는 짓은 애착인형이 따로 없었다. 누군가 본다면 좋아하는 표정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겠지만, 이엔이 보기에는 신나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여간에 티가 안 난다니까. 속으로 귀여워하며 란의 뺨에 또 입을 맞춘다. 그러면 란은 몇 번이나 입맞추는 것으로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란은 호불호가 옅은 만큼 좋아하는 것에 대한 반응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밍숭맹숭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이엔만은 란을 오래 좋아해온 만큼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뭐든 금방 알아채고는 했다. 좋아하는 걸 보면 란은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손에 쥘 수 있으면 꼭 쥐었고, 가능한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이야기를 할 때면 다정한 말투가 되었고. 눈동자가 반짝거릴 때도 있었다. 이엔에게는 모든 것들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엔을 끌어안을 때나, 입을 맞출 때에 그런 것처럼. 이엔은 란이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