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13화
추락한 성녀 13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추락한 성녀 13
루블, 보쓰, 히즈
***
“이봐, 아트레우스. 돌아왔구나. 찾아다녔잖아.”
돌아오자마자 불러세우는 동료의 말에 아트레우스가 반문했다.
“왜 찾아다녔다는 거야?”
“그야 보스가 너 오면 데려 오랬거든. 땡땡이 친 거 걸린 거겠지.”
말을 전한 동료는 꼴 좋다며 키득거렸다. 적당히 분해 보이는 반응을 보여주고는 당장 보스의 서재로 달려갔다.
“보스, 찾으셨다고요?”
“왔구나.”
헬레니온은 아트레우스가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그것은 잘 있던가?”
“예. 아주 잘 지내던 것처럼 보이던데요.”
아트레우스는 오자마자 데려와선 바로 성녀에 관해 묻는 것이 역시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 수고했다. 앞으로도 네게 맡길 수도 있겠어. 아마 당분간 내가 없을 테니까.”
“예? 잠깐, 그 말씀은·····.”
“내가 직접 아우레티카에 간다.”
아트레우스는 작게 신음했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각한가 했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보스. 저는 보스가 주신 특별임무로 빠진다고 친다면 누굴 데려가실 겁니까? 최소한의 호위는 데려가십쇼.”
“나에게 호위는 필요 없다. 너도 명목상이란 것을 알잖아.”
“여차하면 보스 대신 죽을 놈을 골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자원할 사람 많습니다. 저도 이 임무만 아니었다면 진즉 간다고 했을 테고요.”
헬레니온은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참아 삼켰다. 그래서 더 문제라는 거다. 그를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들어줄 사람이 많다는 건 결코 그에겐 좋지만은 않았다.
“적당히 몇 명 차출할 테니 잔소리는 그만해. 이제 가봐도 좋다.”
아트레우스는 적당히 고개를 까닥거리고는 서재를 나섰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헬레니온의 걱정이 커졌다.
‘내가 없는 동안 성녀의 상태나 이곳의 동태가 걱정되는군. 아트레우스에게 계속 맡겨도 괜찮을까?’
아트레우스는 이곳 사람과 달리 아우레티카 출신이다. 그는 가족 전체가 그곳에서 도망쳐 아녹스로 왔다.
하지만 탈출하는 과정에서 추격대에 쫓겨 부모와 여동생을 잃었다고 했다.
그가 개명을 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아우레티카에 대한 분노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직접 아우레티카로 가봐야만 한다.’
놀랍게도 아우레티카 주변에서 수장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수장이 어디까지 나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긴 시간 행방불명인 이상 찾아내야 했다.
‘전에 수장의 의중을 알 수 없다며 한탄하는 그레이스를 나무라긴 했으나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긴 했었다.’
대체 수장은 적진 한가운데로 가서 무엇을 할 생각인 걸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장이라면 들키더라도 저 하나쯤은 몸을 뺄 수 있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전면전을 각오해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아녹스의 정확한 위치를 들키지 않았고 아우레티카 역시 수색에는 소극적이었기에 이리저리 기묘한 균형을 유지 중이었다. 아우레티카 내부에서는 아녹스가 생각보다 영향력이 센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우레티카에 비하면 작고 약했다. 아우레티카 측에서 전력으로 수색을 시작한다면 결국 들키고야 말 것이다.
이정도로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역시 헬레니온은 직접 갈 수 밖에 없었다.
‘최소한 가기 전에 그레이스에게는 소식을 전해줘야겠지.’
헬레니온은 그레이스를 만나러 간다는 구실이었으나 마음 한쪽에선 그게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 들려왔다. 물론 아직은 구체화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저희는 침묵을 강제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 알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해주셔야 겠습니다.”
그레이스의 말 이후 응접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아마데아는 의외로 화내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레이스. 그건 계약 같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우레티카에서 사용하는 노예계약과 비슷한 방법입니다.”
“이곳에 노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방법이 존재하죠?”
“저희가 한없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대답에 아마데아는 눈만 깜빡였다. 다행히 그레이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아녹시아의 신도 백 명보다 성녀 하나가 훨씬 강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찾은 수단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그레이스는 일단 아마데아가 노예계약 따위를 제안했다며 화내지 않는 것에 내심 감탄했으나 또한 의아했다. 사실 그레이스는 아녹스의 위치를 물어왔을 때 두루뭉술하게 넘겨버릴 수 있었으나 일부러 직설적으로 맞서보았다. 아까 아트레우스에게 대하던 것이 진심이라면 이런 말 또한 도발로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평생 특권을 누리기만 하며 살아온 최상위 계층이라 안하무인일 줄 알았더니. 의외의 면이 있단 말이지.’
그레이스는 곁에서 보면서 계속 욕심이 났다. 수많은 정예를 키워낸 스승의 혼이 다시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허나 그러면 노예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게 맞는 건가요? 노예 계약은 한쪽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니 받는 이 입장에선 싫어할게 뻔한데.”
그레이스는 궁금증이 많은 제자를 상대하듯 인자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직접 아우레티카로 파견되는 소수의 일부 동료에게만 행하고 있고, 모두 그들의 동의를 받습니다. 동의가 없다면 애초에 강제는 없습니다.”
아마데아는 그레이스의 미소에 멈칫했다. 그녀가 이런 표정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마치 지금이라면 무엇을 묻더라도 관대하게 대답해줄 것만 같았다.
“그레이스. 나에게 그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고 입가에만 맴돌았다. 말로 들었다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헬레니온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나요?”
아마데아는 원래 하려던 질문 대신 다른 것을 택했다. 이 또한 궁금하던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쉬워하는 마음을 달랬다.
‘역시 알고 있었나.’
그레이스는 머뭇거리던 잠깐의 틈에서 그녀의 원래 질문을 이해했으나 모른 척 넘겨버렸다. 그 감정이 구체화되어 헬레니온을 속박하길 원하지 않았기에 그래야만 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무언가 중요한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아마데아는 차가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죠. 이번에는 아녹시아의 신도들의 힘까지 포함해서 가르쳐줘요. 나는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많거든요.”
아마데아는 아트레우스와의 대화, 헬레니온의 진심 등등 온갖 상념을 다 넘겨버린 채 후련하게 웃었다. 아직 그녀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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