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Q사 편지 전송 건] 송년 프로젝트 관련 건

보낸 사람: Extra B, 받는 사람: Cursor

좋은 저녁이에요, 커서님! 지금은 대한민국 시간으로는 오후 4시 24분이고, 국제 표준시.. UTC? GMT? 이게 맞나요? 그걸론.. 새벽 1시 24분이네요! 찾아보기론.. 지금 저희 시간으로 9시간을 더하는거라고 하는데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네요. 맞을까요? 틀렸다면 죄송해요, 전 영 커서님과 다르게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는 재간이 없나봐요.

지금 여기는 토, 일, 월의 크리스마스의 연휴가 끝나고 그 여운이 잠겨 있는 차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다들 언제 또 연휴가 오나, 다음주에는 새해가 월요일이니 괜찮다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어요. 나나름의 긴 휴일 뒤에 오는 아쉬움은 다들 똑같나봐요. 아, 메일은.. 점심시간에 적고, 퇴근 전에 간간히 적은거니 저의 직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저번에 주신 편지를 읽고.. 그래도 되도록이면 집에서 적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연초가 되면 회사도 바빠질꺼라.. 이렇게 길게 쓸 여유도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에 대한 답을 해드리는 게 커서님에게 좀 더 즐거울 것 같아 그 이야기부터 먼저 해볼까 해요. 메일을 보내고 그대로 잠에 들어서 조금 늦게 일어났어요. 평일에는 오전 6시쯔음에 일어나는 편인데, 오래간만에 오전 10시에 일어나봤어요. 침대에서 평소처럼 오늘 나온 웹툰과 웹소설을 보고, 몸을 일으켰어요.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 입었고요. 물론 정장이 아니라 맨투맨에 청바지랑, 패딩이요.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니니까 저말고는 다들 가족이나 애인들이랑 돌아다니더라고요?! 어쩐지 좀 뻘쭘했어요.. 이래서 나오는 일이 줄어들었던건가..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어쩌지? 이대로 집에 돌아갈까?'하고 고민하다가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좀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어서.. 대뜸 들어간 게 백화점이었어요. 크리스마스는 아무래도 다 같이 무언가 사고 그걸 나누는 시기니까요. 안에 들어가니 엄청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더라고요. 놀랍게도 그 크리스마스 트리가 제 첫.. 처음을 장식한 사진이었어요. 감동이었다고 해야할까요? 그냥.. 그냥 딱, '크리스마스다!' 였어요. 아래 눈사람이나 선물상자 장식이 있고.. 눈으로 쌓여 있는 트리에.. 오너먼트들이 가득했고.. 엄청, 엄청 반짝거렸어요. 심지어 제 키의 3배 정도였다니까요?! 그래서.. 찍었어요.

그걸 찍고 나니.. 다른 걸 좀 더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백화점 구경을 했어요.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꾸며진 매대를 구경하고.. 물건도 좀 사고요. 그렇게 돌아다니고 나니, 뭘 해야할지 감이 잡히더라고요. 그냥 무작정 돌아다녔어요. 도로도 돌아다니고, 가게도 돌아다녀보고.. 크리스마스하면 케이크니까.. 조각 케이크도 조금 사보고..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하늘에 눈이 내리는거에요. 고갤 들어보니까, 해가 져가고 있었어요. 이대로 가긴 아쉬워서, 광장 한복판에 서있는 다른 크리스마스 트리를 한참 보며 눈을 맞다가 집에 돌아갔어요. 밤의 트리는 참 예쁘거든요. 오색찬란한 트리 전구들이 반짝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집에 돌아와서 산 것들을 봤는데, 제가 봐도.. 제가 정말 즐거웠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평소에는 안 살 것들을 잔뜩 샀지 뭐에요? 돈 생각도 못 하고요. 정말.. 정말 즐거웠어요. 세삼스럽게 이게 바로 나한테 주는 선물이구나 싶었고요. 특별한 기분이였어요.

그래서 제가 산 물건들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할까 해요. 먼저, 조각케이크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였고요.. 정말 장식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꽂혀 있길래 대뜸 사버렸어요. 정말 맛은 있었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가격은 좀 살인적이였지만요.. (비유에요. 정말 비쌌어요.)

싸구려지만 별과 달이 보이는 LED 무드등을 사봤어요. 가게를 둘러보다보니까 이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커튼을 치고 켜봤더니, 꽤 그럴 싸한 밤하늘이어서 좀 웃었어요. 왜 이걸 샀는진 잘 모르겠어요. 의도해서 산 건 아니였는데 말이죠.

의도해서 산 건.. 서점에서 우주에 대한 책을 사봤어요. 좀 더 사고 싶었는데, 제가 도통 문외한이라 어떤 걸 사야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나마 쉬워보이는 것들을 집어왔어요. 그냥 메일을 쓰면서.. 설명해주시는 단어들을 좀 더 알고 싶었어요. 그게 아니라도.. 그.. 뭐랄까.. 제가 읽는 책에 나오는 것 중 하나에? 커서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좀 바보같나요? 그래도.. 만약 한번쯔음 떠올리게 된다면, 잘 떠올리고 싶었어요. 분명 저는 이 메일들을 회상하고 오래 추억할 것 같아서요. 그럴꺼라면 오래, 오래,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맞는 것 같아요. 많은 기분이 드네요.

그것 말고도 다양한 것들을 샀어요. 사고나니 전부 쓸모 없는 거였지만요. 그 중에는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도 있었는데, 먹고 나니 맛이 하나도 없는거에요. 돈 낭비했네 싶었지만서도 재밌었어요.

그렇게 있다가 메일을 받고서 한참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잠들었어요. 오늘이 어땠는지.. 나한테 특별했는지.. 천천히 하루의 마무리를 해봤어요. 그렇게 낸 결론은 정말 행복한 크리스마스였어요, 덕턱에, 정말로 저에게 있어선 오래간만에 특별한 크리스마스였어요. 적고나니 정말 길어졌네요. 이 경험들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적어드렸던 저의 유년만큼 즐거우시길 빌어요. 그래도.. 나름? 열심히 자세히 적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10000 피스 분량 퍼즐도 퍼즐 조각이 다 비슷해보이면 맞추기 어렵잖아요. 조금 더 상상하기 쉽게.. 적어보려고 노력해봤어요.

생각해보니 커서님과 이 편지를 나누는 기간동안 두 번의 기념일을 거쳐가네요. 크리스마스와 새해요. 연말과 연초를 같이 거쳐간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의미인 것 같아요. 저도 매일 매일을 살다보면 이런 기념일들이 크게 와닿진 않거든요. 한 해가 지나구나, 새로운 해가 오는구나같은 감상으로 끝나는데.. 이번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은 특별할 것 같아요. 저도 조금씩 이런 기념일을 혼자라도 챙겨봐야할까봐요. 물론 이 펜팔 서비스가 계속 된다면 같이요! 얼른 이 시스템이 대중화되어서 오랫동안 메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32년간 통신이 오지 않았다면 정말 정말 이 메일이 커서님에게는 특별할테니까요. 저는 그게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말씀드리는 김에 이야기를 하자면 저에 대해선 언제나 많이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전.. 이렇게 누가 뭘 물어봐주는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렇게 특별한 일도 없고.. 제 그런 일상들이 감명깊다고 말씀해주시는 것들이 어쩐지 제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줘요. 그리고 보다 많은 확실한 응원이 되기도 하고.. 전에 적어주신 것처럼 홀로 지루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란 것도, 서로가 서로에게 생소하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져서 전 참 좋아요. 아까도 적었지만 전 정말 이 메일들을 오랫동안 읽고 곱씹을 것 같아요.

적어주신 커서님의 이야기들에 궁금한 점과 제 감상을 적자면.. 전에 보내드렸던 메일의 문장을 인용해야할 것 같아요. "제가 AI와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니! 세상에, 신이시여! (물론 전 신을 믿지 않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네요!" 라고요. 저는 막연히 RQ사의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내 편지에는 어떤 사람이 답해줄까 했는데, 그게 AI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제 상상력은 참 빈약하네요..

이름이 정말로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먼저 앞서 나간다는 것 말이에요. 콜롬버스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콜롬버스는 그 머나먼 바다의 신항로를 개척한 사람이거든요. 아무 것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처음으로 탐험해보고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름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와는 별개로 제가 전구물질이라는 뜻을 발견한 건 정답이었어요. 처음 그 뜻을 보고서.. 혹시.. 그런 일을 하시나? 하고 생각했어요. 근데 너무 묻기 창피하고.. 너무 아닌 것 같은 거 있죠.. 이걸 이야기 하니 역시 좀 창피하네요.

세삼스레 왜 데이터 처리가 특화 되셨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됐어요. 지구로 정보를 전송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군요.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보내셨나요? 80년이라는 세월이면 꽤 많은 데이터들이 송신되었을 것 같아요. 아마 책으로 만들어도 엄청 크고 두꺼우리라 생각이 들고요.

그래도 여정 간에 큰 일이 없어서 이렇게 저희가 메일을 주고 받게 된 거엔.. 어쩐지 제가 감사하게 되네요. 저로 치자면 예시로 들어주신 거가.. 저에게 큰 트럭이 달려오는 거랑 똑같은 느낌인데.. 제가 그걸 겪는다고 생각하면 소름끼치거든요. 그런 무서운 일들이 여지껏 없었다니 다행이에요. (물론 메일을 읽어보니 아슬한 적은 있으셨던 것 같네요. 괜스레 상상해보고 고갤 저었어요.)

32년 전의 통신의 내용이 참 궁금해졌어요. 그 때 어떤 내용으로 통신하셨나요? 저라도 그런 통신을 받으면.. 정말 놀랐을 것 같아요. 한 편으론 기뻤을지도 몰라요. 먼 여정길을 떠난 사람에게 오래 기다리던 편지가 온거니.. 안도감이 들었을지도요.

생각해보니 커서님이 발사되었을 때의 기사나 뉴스들이 여기에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여긴 지구고..?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 있다면? 조금의.. 희망을 걸어봐도 좋을지도? 라고 생각했는데.. 그 쪽이 몇 년도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제가 커서님이 있는 곳보다 훨씬 과거에 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참고로 여기는 2023년이에요. 곧, 2024년이 되고요. 계산해보니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이면 1943년이네요! 그 때면.. 한참 이 지구는 전쟁 중이였을테니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뭐, 이건 가능성의 이야기니까요.

읽다보니 참 궁금해졌어요. AI로써의 첫 기억은 어떤건가요? 뭐랄까.. 저희는 엄마 뱃 속에서 태어나서의 당장의 기억은 없으니까요? 커서님의 첫 기억이 지구에서의 기억이였을까? 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영화를 보다보면 로봇이 처음 작동했을 때의 모습? 같은 게 자주 묘사되거든요. 그 탓에 궁금해진 것 같기도 하네요.

저와 메일을 나누시는 동안에 스릴 넘치는 항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과 역으로 그 멋진 일화가 어떨지 궁금해 기다려지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위험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도리어 멋있게 이겨내고 자랑하러 오시는 모습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란 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야속하네요.. 그래도 적어주셨던 말을 다시 돌려드리자면.. 저도 분명 다음 편지가 오기 전까지 즐겁게 기대를 품고 기다리고 있을터이니, 부디 모험같은 항해의 마무리를 잘 하고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스릴 넘치는 여정을 했더라면 그 이후의 안정을 찾는 것도 가장 중요하니까요. 32년전의 아슬했던 항해를 선사했던 성운의 이름이 궁금해지네요. 간만에 산.. 비문학 서적을 좀 뒤적여봐야겠어요.

적고나서 메일의 길이를 보니 어마무시하네요.. 저 이렇게 긴 글은 처음 써봐요. 매번 자기소개서나 대학교 때 과제를 적을 땐 글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기억밖엔 없는데 말이죠.. 제가 정말 이 편지를 적는 데 참 즐거운가봐요. 저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도해주셨던만큼 하루의 여정이 조금은 설레고 특별하길 바라요. 물론 암흑과 현상, 천체들 뿐이겠지만 무언가 의미가 생기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니까요? 마치 오늘의 저처럼요? 회신을 기다리며 다음 메일에는 어떤 걸 써서 보낼지 고민해볼게요. 언제나 읽어줘서 고마워요.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친구라고 불러줘서 고마워요! 너무 기뻐요!

추신. NGC 2264라는 성단을 알고 계세요? '크리스마스 트리 성단'이라고 SNS에서 우주에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면서 한 성단의 사진이 올라왔거든요. 정말.. 트리처럼 생겼어요! 비록 합성한거겠지만! 산개 성단이라고 한데요. 찾는 방법이 있다는데 제가 영 별자리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찾기가 참 어렵네요. 어찌든.. 커서님도 알만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게 표현을 하고 싶은데 너무 어렵네요.. 좀 더 별에 대해 공부하고 올게요. 일단 용어부터 이해를 좀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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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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