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인

#1 장마전선

butterfly lovers by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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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中人

찾았다.

눈 앞의 남자가 손목을 갑자기 낚아채고 어딘가로 향할 때 에디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어, 근데, 그도 그럴 것이, 그러자마자 아스팔트 바닥이 초원으로 변하고 전신주는 높게 솟은 나무로 변했으니까. 에디는 분명 손에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있었고, 옆에는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면서 길을 지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중요한가? 반지의 제왕이나 사운드 오브 뮤직 속의 한 장면 같은 그 초원은 이상하게도 초록이었다. 그러니까, 비정상적이도록 색이 깊었다. 에디는 귀를 잡아 당겨 봤다. 아팠다. 깨지도 않았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다 해도 이세계 전생물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근데 보통 그런 건 어디 치이고 시작하지 않나? 아직 단언하긴 일렀다. 아, 잠깐. 남자가 사라졌다. 논리는 아무래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에디는 마냥 주위를 둘러보다 걷기 시작했다.

걷는 와중에 앞을 보니 거울이 있다. 정신 멀쩡한 누군가의 반응은 이런 허허벌판에 대체 이런 게 왜 있을까 또는 그런 비슷한 사고겠지만 이 순간에는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에디는 어느새 거울 앞에 서 있었고 손을 뻗었다.

눈을 떴다. 잠을 기분 나쁘게 깬 것마냥 한동안 머리가 울렸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 낯선 도시다. 비가 하늘에서 퍼붓고 있었다. 비를 피해 뛰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어떤 비디오 게임의 배경 인물 같았을 뿐 외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어떠한 의문도 들지는 않았다. 아,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 에디는 주머니를 뒤졌다. 휴대폰이 있었다. 그게 당연한 것 같았다. 찾았다. 그 말 한마디에는 어딘가 안도나 확신보다 이상하게 애절함과 불안이 있었다. 전화번호부를 연다. 그 어떤 이름들도 스쳐지나간다. Y. 이니셜 하나. 화면을 누르니 신호가 간다. 전화를 걸었고, 또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는 방 안이었다. 이 모든 게 현실이었다. 주위의 소품들은 선명했다.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고 묵직한 공기가 숨을 눌렀다. 얇은 이불을 걷어내고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에디는 몸을 일으키고 밀린 알림을 확인했다. 참 많이도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어떤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 우리 오늘 보는 거 맞지 ]

[ 저번에 그 카페 앞에서 ]

[ 기다리고 있을게 ]

처음 보는 연락처였다. 문자가 도착했던 시간을 보니 문제의 그 사람을 봤던 때 같았다. 에디는 자판을 누른다.

[ 죄송한데 잘못 보내신 것 같아요.

그 분은 잘 만나셨나요?

- E. ]

답장이 언제 올 지도 모르는 꼴이지만 에디는 화면에서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몇 분 쯤 지났을까, 갓 내린 커피가 어느새 다 식었을 무렵 보냄 표시가 읽음으로 바뀌었다. 에디는 마른 침을 삼켰다.


"찾았어요?"

"반 정도는요."

어딘가 창백한 안색으로 눈 앞의 플랫 화이트가 담긴 머그를 괜히 손으로 이리저리 옮겨댔다. 손이 떨린다. 맞은 편의 여자는 반 쯤 찾았다는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려 눈썹을 올리고 의문 담긴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시 묻기 전에 여자는 롱 블랙을 마신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기니 분주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몇 시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 때 휴대폰 진동이 한 번 울린다. 확인하니 문자였다. 죄송한데 잘못 보내신 것 같아요. 참을 수 없는 기침이 두어 번 튀어나왔고 가슴깨가 아파왔다. 여자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내가 찾았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그러면요?"

"나는 꿈 속에 살아요."

냅킨으로 입 주변을 정리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온기가 몸 안으로 들어와 이상하게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문자를 바라본다. E. 이니셜 하나. 본인에게 향한 게 아니라고 힌트라도 주는 듯이. 그러면 다시 밖을 본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다리가 저리고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는 익숙하다. 두 개의 커피 잔이 동시에 바닥을 보일 때 겉옷을 챙겼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정리한다.

"근데, 이름은 안 알려줄 거예요?"

"…브렛이요. 브렛 양."


휴대전화가 울린다. 장마의 시작인지 공기는 여전히 눅눅했다.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면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손가락의 상처가 아릿했다. 종이에 베었나. 언제 따랐는지도 모를 물잔을 입에 갖다 대면서 에디는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그런데 눈에 익었다. 그 분은 잘 만났냐는 에디의 질문에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고 잘못 보낸 것 같다는 말에는 개의치 않았다. 어디야, 내가 갈게, 하는 비슷한 내용이 읽지 않은 채로 방치되었다. 근 며칠이 그랬다. 상대는 꼭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전보를 보내는 것 같았다. 차단할까 싶었지만 그냥 가만 두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미지근한 물을 한숨에 들이킨다. 에디는 잠시 가만히 서 휴대전화를 바라보다 빠른 동작으로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연락이 되네."

"잘못 거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에디."

정적이 흐른 뒤 전화가 끊어졌다. 이쪽에서 끊었는지 반대편에서 먼저 끊었는지는 모호했다. 다만 에디는 당황했다. 그래도 이제 확신 하나가 남았다. 지금껏 저 상대는 에디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잠깐, 아니 몇 분 동안 허공을 응시하고 에디는 공상한다. 이미지가 스쳐지나간다. 다시 그 초원이다. 거울은 그대로 있다. 다시 한 번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에 들어간다. 빠져나올 때는 누군가 몸을 잡아끄는 기분으로.

아, 점심 약속. 현실감이 돌아왔다. 순간 머릿속의 빛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암전되었다가 돌아온 듯 번뜩인다. 확인한 시간은 아슬하게 10분을 남겨두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나선다. 우산은 필요하지 않았다. 절대 멎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그치고 아픈 해가 자신을 맞았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악몽에서 깨기라도 한 듯이 머리가 개워진다.

전화는 받지 않았다.


점심도 다 지나갔다. 오늘따라 하루의 전개가 느리다. 점심 약속 때의 생선과 이야기를 다시 되씹어본다. 입 안이 쓰다.

"요새 이상한 꿈을 꿔요."

"어떤 꿈을요?"

"희한한 공간을 자꾸 오가요."

"잠은 자고요?"

"글쎄요."

"네에, ......아, 하고 싶은 말 있었는데."

"어떤 거요?"

"전화 좀 제때제때 받고 그래요."

들여다 본 하늘이 적당히 파랬다. 언뜻 바라본 하늘에는 옅은 달이 떴다. 나갔을 적 끄지 않았던 텔레비전에서 날씨 예보가 들려온다. 비가 계속 내리다가 다음 주가 시작될 무렵 비구름이 물러간다는 내용이었다. 한시름 놓는다. 어느덧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자리하고 다시 비를 쏟았다. 컵에 물을 받아 탁자에 올려놓고 창문을 본다. 낮과 밤의 경계는 어떤 계절이든 분명 아름답고 짧다. 푸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면 금세 어두워진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옷가지를 챙기고 이불을 다시 침대 위로 올린다.

침대에 누워서는 머리맡의 디지털시계를 본다. 알람은 아침 여덟 시에 맞춰져 있다. 괜히 버튼들을 딸깍댔다. 알람은 아마도 울리지 않을 것이다. 몸을 돌려 반대편의 요란한 책들을 본다. 내일은 저것들을 정리해야지. 익숙하지 않은 밤이 고요했다. 아직 저녁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집 안의 모든 전등은 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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