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무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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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by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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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홀로 남았다. 고개는 여전히 그대로 둔 채 눈만 돌려 TV를 바라보았다. 품에 안은 봉투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쓰레기를 껴안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줄어든다. 끌려오느라 두 개밖에 못 들고 왔는데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든다.

남자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던 방이 그리웠다. 봉투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으면 그들과 같이 하등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쓸모가 없었으므로 저와 같은 것들에게 애착이 들었다.

“….”

남자는 병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얗기만 한 병실이 낯설었다. 남자는 이곳에 온 뒤로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것에 골몰했다. 여느 때와 같이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아플 지경이었고, 쓰레기봉투에 파묻혀있었다.

며칠에 한 번은 마실 물과 빵을 줬는데. 그날은 방 바깥이 소란스러울 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 해봤던 것 같다. 그냥 살아있으니 숨을 쉴 뿐이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기어가 문을 벅벅 긁어댔다.

쾅!

그러자 바깥에서 방문을 발로 퍽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인은 겁을 먹어 쓰레기봉투 사이로 몸을 숨겼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무슨 밥이야, 씨발 새끼…. 아 목말라! 우리 물, 물 받아다 놓은 것 다 어디로 갔어?’

‘알잖아요, 인공 비 안 내린 지 오랜데. 뭐해요? 목이 마르면 바깥에 나가서 물이라도 달라든가 해야 할 것,’

‘씨발, 네가 저걸 낳지만 않았어도 입은 줄었을 것 아니야! 죽이는 수도 없고, 씹.’

‘나 혼자 낳았어? 개새끼가, 네가 그날 질질 들러붙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물건을 내던지는 소리가 났다. 쿵쿵대는 소리가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와 닮아있었다. 남자는 쓰레기봉투를 한 아름 모아 세게 껴안았다. 불안함을 잠재우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생애 가장 최초의 기억부터 남자는 이 방에 존재했다. 몸 하나 겨우 뉠 수 있는 비좁은 방은 바깥의 이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었다. 남자는 이곳에서 제 주제를 알았다. 나는 버림받았구나.

벽 한구석에 핀 곰팡이가 우는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무치게 외로울 때면 바깥의 이들이 하듯 곰팡이에 말을 거는 시늉을 해본 적도 있다. 남자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봤다. 바깥은 여전히 쿵쿵댔고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처럼 배가 아팠다.

‘안 되겠다, 이 씨발 새끼. 오늘이야말로 죽여버려야겠어.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씨발 것, 저 새끼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남자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쿵쿵대는 발소리가 방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때리려는 건가. 이따금 그들은 생필품을 걸고 하는 도박에 갔다. 도박에서 일진이 풀리지 않으면 저를 때리러 오고는 했다. 맞다가 정신을 잃으면 깨워서라도 팼다. 죽도록 맞은 뒤엔 일주일 내내 빵도 물도 조금밖에 먹질 못하고 그마저도 게워내곤 헀는데, 입이 줄었다며 좋아하는 것을 얼핏 들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형형한 눈이 살기를 띠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는가. 죽으면, 그제야 쓰레기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죽을 때가 되니 두려웠다. 남자는 처음으로 그게 좀 웃긴다고 생각했다. 

‘씨발 새끼,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런 데서 썩어날 사람이 아닌데, 내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칼날이 무뎌진 식칼이 들려있었다. 손이 무척 컸고, 빛을 등진 채라 방 안으로 드리우는 그림자가 길었다. 저 손으로 맞으면 정말 아픈데. 남자는 쓰레기봉투를 품에 안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드는 생각이 있었다. 칼을 쥔 큰 손, 길쭉한 키….

우리가 닮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가 칼을 쥔 손을 드는 순간, 제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기이한 힘이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배가 고픈 감각이 이상하다고 느낄 무렵 남자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하얗게 바래질 정도의 빛이었다. 그게, 남자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삐-, 삐-, 삐-.

목을 죄던 장치에서 빨간불과 함께 경고음이 울렸다.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불안한 소리를 내는 장치를 손으로 세게 움켜쥐었다. 왜,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새하얗던 병실의 문 위에 달린 것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얗던 방이 벌겋게 물드는 것을 아연실색한 채 바라봤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대여섯, 아니 어쩌면 열댓명은 되는 것 같은 장정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윽고 병실 문이 열렸다. 남자는 봉투를 껴안은 채 병상 침대의 시트를 발뒤꿈치로 밀어 좀 더 뒤로 몸을 물렸다. 잔뜩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

검은색 군복을 입은 에스퍼들은 숨을 죽인 채 남자의 동태를 확인했다. 별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선두에 선 에스퍼가 제 뒤에 선 열댓의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임 없습니다, 시작하세요.”

에스퍼의 말이 끝나자 뒤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하, 한대위님! 저희 아직 팀장님 안 오셨는데요! 이렇게 들어오시면 안 돼요!”

“도하진 어디 갔습니까?”

“긴급 호출로 보안국 가셨어요.”

선두에 선 에스퍼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사납게 쏘아붙였다.

“지금 안 보여요? 등급도 없고,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에스퍼 하나 중앙 구역에 떡하니 들여앉혀 놓고는, 뭐, 구호? 웃기지도 않아.”

“그게…, 저희가 아직 파악한 게 없는 건 죄송한데요.”

옆에 서 있던 윤이 버릇처럼 머리를 질끈 올려묶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팀장님 허가 있으셔야지 들어올 수 있거든요.”

“그럼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에스퍼 붙들고 가이딩이라도 해보든가요.”

대위의 말에 하얀 가운을 입은 무리와 대척점에 선 검은 군복의 장정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말대로였다. 장벽 너머에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빛이 아직도 흔적처럼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럴 때 군이 아니면 나설 인물이 없다는 것을, 사실 그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선뜻 아무도 나서려는 이가 없자 대위가 비죽 웃었다.

“도하진은 F급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 짓거릴 하고 있어. 부를 때 재깍 오기나 하던가.”

쯧, 혀를 찬 대위가 뒤에 선 대원들에게 신호했다. 군복을 입은 에스퍼들은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남자가 목숨줄처럼 끌어안은 쓰레기봉투를 빼앗으려 했다. 

“…!”

남자가 거세게 저항했다. 봉투를 껴안고는 몸을 완전히 등져 버팅겼다. 체격이 커서 한 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대원 둘이 합세해 한참을 씨름하고 나서야 봉투를 빼앗았다. 도중에 봉투가 터져버려 병실 안에 쓰레기가 흩뿌려졌다. 그리고는 식은땀으로 뒤덮인 몸을 억지로 끌어내 차가운 바닥에 내리눌렀다.

“약물 주입하겠습니다.”

완전히 제압당한 채 꼼짝하지 못하는 자세가 됐다. 그런데도 바닥에 뺨을 붙인 채 남자는 터진 쓰레기봉투를 바라보았다. 대원들은 남자의 사지를 결박한 채 알 수 없는 약물이 담긴 주삿바늘을 목에 찔러넣었다. 

“약물 주입 및 제압했습니다.”

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갤 돌렸다. 외곽 출신 에스퍼란 이유로 사람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됐다. 하진이 구호팀을 맡고 나선 벌어지지 않아 앞으로도 볼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그가 없는 틈을 타 또 벌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하필 하진이 마음에 걸려 하던 인물이었다.

윤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제압된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에 가려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주사의 피스톤이 내려가고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몸들이 남자를 새롭게 결박한다. 남자는 과호흡으로 꺽꺽 숨을 들이켰다.

“기기 연결하세요.”

“꺼억, 꺽…, 흑…, 으….”

대위가 명령조로 말하자 윤을 제외한 가이드들이 바쁘게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줄이 치렁치렁 달린 기기들을 밀고 들어섰다. 누군가가 남자의 목에 걸린 장치에 지문을 인식해 경고음을 껐다. 그리고는 옷을 벗겨내 가슴과 손목에 패드를 붙였다.

패드 위에는 줄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줄이 향하는 끝에 남자의 심박수와 파동을 나타내는 기기가 있었다.

“상황 종료까지 대기한다.”

대위의 옆에 선 신입 대원이 의아한 얼굴로 기기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기기 화면에는 심박수 외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기기를 연결하던 초반, 우상향하던 선이 천장을 찍고는 측정 불가라는 경고메시지가 뜬 것이 전부였다.

“이 에스퍼, 파동도 안 나오는데 기기 연결은 왜 하는 겁니까?”

대위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춘 대원이 윤에게 물었다.

“이 에스퍼 같은 경우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어서 심박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안정되었다고 짐작하는 수밖에 없어요.”

“약물로 심박수를 떨어트리면 안정이 되는 건가요?”

윤은 고개를 저었다. 

“에스퍼는 가이딩을 통해서만 안정될 수 있어요. 약물은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가이딩은 본래 파동 측정 기기를 달고 진행된다. 방사 가이딩과 접촉 가이딩. 방사 가이딩은 가이딩 기기를 통해 진행되는 가이딩으로 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에스퍼에게 가이드의 힘을 전달한다. 보통은 접촉에 거부감이 있거나 전담 가이드가 있을 경우 진행되는 것으로, 접촉 가이딩보다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며 급이 높은 에스퍼의 경우 가이드 여럿이 필요하다.

반대로 접촉 가이딩은 에스퍼의 신체와 접촉하여 직접 가이딩하는 것으로 피부와 피부가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가이딩 효과가 크다. S급 가이드들이 접촉 가이딩을 선호해 전담 가이드들을 하나씩 두는 것이 바로 그 예다.

그러나 가이딩 상황에서는 둘 다 기기가 필요하다. 파동 측정 기기. 에스퍼의 이능을 파동으로 전환해 나타내는 기기로, 가이드의 힘이 전달되고 있는지, 에스퍼가 안정을 찾아가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러나 남자는 파동이 읽히지 않는다.

섣불리 여럿이 붙어 방사 가이딩을 했다가 파동을 읽지 못해 기절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 접촉 가이딩도 그렇다. 접촉에 거부감이 있어 보이는 그에게 섣불리 들러붙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스퍼가 기절에 몸에 무리가 가거나 접촉 가이딩을 시도했다가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게 되면….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지게 될 거고 아주 작은 확률로는 또 폭주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남자의 시야가 점차 흐려지기 시작한다. 매섭게 뛰어대던 심장은 어느 순간 아주 느리게, 작은 소리로 뛰었다. 남자는 그것에 귀 기울였다.

“걸어 다니는 폭탄 같은 거네요.”

“…뭐, 표현이 좀 그렇긴 한데. 맞아요.”

졸리다. 윤의 대꾸 뒤로 남자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밀려오는 수마를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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