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라의 꽃
살아서 완성되는 것이 있다
단언한다. 이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차라리 뒤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 길도 아닌 것을 길이라고 착각하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요즘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시간은 금이다. 이해할 가치 없는 것들을 굳이 이해하려 붙잡고 있는다면 감정도 낭비하게 된다. 소모되는 것들을 마음껏 낭비하다 보면 분명 언젠가 가난해진다. 그러니 이해할 가치 없는 것에 노력을 쏟느니 조금 더 경제적인 일을 하도록 하자⋯⋯.
스스로도 가치를 찾지 못 해 내버린 것이 어딘가에 있다. 이제 와 새삼스러운 관심을 가지기에 그의 삶은 지나치게 무기질하고 몰개성하다. 어리고 유치한 발악같은 삶이다. 모든 시대, 모든 문화권을 통틀어도 비명 따위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태껏 제 얘기를 털어놓지 않은 이유? 그것도 간단하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야기 해야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건 키가 지금의 반도 안 되던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아주 오래된 욕망이기 때문에. 이해와는 결이 다르나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뿌리를 파악하려 드는 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습성이라 단언했나? 단언했다.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자. 근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자.
리디아 알트너스타, 스물 아홉, 직업은 화가. 그의 부모는 역사학자다. 그들은 구시대의 것들을 파헤치고, 이미 죽어 쇠락하고 있는 것들을 꾸역꾸역 끄집어내 전시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사장된 것 굳이 헤집고 왜곡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이한 성질머리는 유전이다. 당연하게도. 손윗형제가 한 명 있긴 한데, 걔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리디아 알트너스타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개념이라는 게 어설프게 존재하는 트로이시엠에서 그건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떤 기이한 성정은 유전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타고 나기를 좀 하자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건 말 몇 마디 나눠보면 금방 티가 나길래 그닥 숨길 의지도 안 생겨서 그냥 방치하고 있다. 하여간 사람을 잘 모른다.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말했듯 안 되는 거 억지로 붙들고 어떻게든 해내겠다고 노력하는 열정적이고 성실한 인간은 못 된다. 그러니 그냥 마음 놓고 편하게 싫어하기로 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주제에. 대단한 모순이다. 처음에는 별 일 아닌 줄 알았을거다. 사람 좀 싫어한다 한들 뭔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궁금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얘기할 건 이름에 대한 것. 알트너스타. 다른 표기로는 탄탈로스. 성씨라기엔 흔하지 않고, 부르기도 난해한 발음이니 분명 어떤 의도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리디아 알트너스타로서는 도무지 그 근원을 파악할 수 없다. 식견이 부족한가? 그렇다. 관심사 아닌 것들을 집중해 들여다보는 건 다른 모범생들에게 외주 맡겼다.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애초에 잘 불리지도 않는 성씨.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든 알 게 뭐란 말인가. 천성이 성실하지 못 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없는 셈 치며 살고는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개중에서도 특히 이름이라는 건 삶을 요약하기에 딱 좋은 것이라 의도치 않게 이름값을 하고 있다. 아주 끝장나게. 자각도 없이.
죽지 않아야 완성되는 것들이 있다. 나누었던 약속도, 맞부딪힌 손의 온기도, 언젠가 들었던 다정한 말들도 저 멀리에 두고, 영영 혼자서만. 함께 떠나지 못 한 채 영원히 혼자만 살아 남아서⋯⋯ 리디아 알트너스터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홀로 영원해져야 의미를 얻는다.
그는 이따금 영원히 고인 것들을 퍼내다보면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요컨대 그게 리디아 알트너스타가 여태 걸어온 길이다. 삶을 도저히 사랑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산 목숨 허투루 내버리기엔 아까워 나름대로 찾아낸 생존 전략이다. 이딴 게? 이딴 게. 그러니 결국 그의 삶은 아주 오래 된 신화의 재현을 위한 것이다. 불온하고 삿된 예언 같은 삶. 이미 정해진 미래. 지리하고 멸렬한 요약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멸망⋯⋯. 삶을 기만한 죄로 아주 느리게 멸망하고 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위해 낭비되는 목숨. 그럼에도 끝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것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자조는 아주 오래 된 습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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