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의 유령
이까짓 것도 산 목숨이라고………
타인과 공존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지금에서야 어떤 무리를 꾸렸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나 가지지 못 한 것 실감하는 능력만큼은 여전하다. 섞여들 수 없다. 미성숙함의 탈을 쓰고 그 곳에 명백히 자리하는 것은 필경 외로움이다. 막연하니 어렴풋이 존재하는 건 꿈이요, 실재하는 건 악의처럼 보이는 선의다. 이 얘기 하려면 아주 오래된 결핍에 대해 말해야한다. 그러나 제 몫을 남에게 곧이 곧대로 내보인 적 없다. 이 나이 먹고 안 하는 건 결국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을 인지하기란 중력을 실감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설픈 노력은 결국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남은 건 결국……. 새파랗게 어린 소원이다. 미성숙한 감정이다. 자라지 못 한 채 꺾인 기대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일은 결국 죄악과 다를 것 없다. 그렇지만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말라. 꿈 정도는 누구나 꿀 수 있는 법이다. 미성숙은 언제나 좋은 핑계가 된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꿈을 꿨다. 아주 오래 전에. 구체적으로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기 전. 키가 지금의 반도 안 되던 시절……. 사실 농담이다. 그 때의 기억 같은 건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고있는 '그것'에게는 무엇이 남았나? 관성.
비과학적인 얘기 하나 해볼까. 유령이라는 건 원래 그런 존재다. 생전의 얼마 안되는 기억을 가지고 허무맹랑한 목적을 위해 존재를 낭비한다. 기실 그것을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생각해보라. 기억은 원래 소모품이다. 풍화되고 부식되는 성질을 지녔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곱씹을 때마다 흐려지고 왜곡되는 것들을 온전히 제 것이라 믿으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손등으로 손뼉치는 것, 사과가 아래에서 위로 떨어지는 것. 그게 유령의 행동양식이다. 이쯤 되면 거진 악령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이제 와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 죽은 것들이 현세에 남아 제 뜻 이루려고 발악하는 건 보기에 악의와 다를 것 없다. 미련은 사랑의 동의어가 아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이런 당연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고 설치다보면 잘못 걸려 퇴마당하기 마련. 제 살 곳 잃고 원래 가야 할 곳으로 영영 쫓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건 곧 실패에 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어째서? 혼자서만 영영 그 자리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관성 같은 삶을 견디다 보니 변화와는 어쩐지 아주 멀어졌다. 그러니 그 자리에 영영 정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 자신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헤메다보니 영영 길을 잃게 됐다. 혼자 되는 것이 싫어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실 그 노력이라는 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었다.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결국 다시 불을 붙였다. 붓을 꺾었다. 사명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덮어 씌웠다. 사실 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 해서. 그런데도 죽을 용기는 없어서. 함께 묻혀줄 이가 있다면 조금은 덜 무서울까? 알 수 없다. 그러니 저질러보기로 했다.
이까짓 것도 산 목숨이라고, 버리려니 자꾸만 아깝고 애틋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보자는 얘기는 여전히 하지 못 한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니 다소 극단적인 결말을 추구한다. 함께 죽어줘, 여기에 나 혼자 내버려두지 마…….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다. 터무니없는 바람이라는 것 정돈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꿈 정도는 꿀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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