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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X농장주] 너란 꽃

살아간다는 것에는 거창한 목표나 이유를 필요로 하진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삶을 놓아버리는 것에 있어서도 거창한 사건이나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쳐 버린 사람일수록 더욱.

셰인은 살아가는 것에 있어 목표나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삶을 포기할까 싶을 때에도 거창한 이유가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삶을 유지할지, 포기할지 선택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치고 무기력한 상태였을 뿐이었다.

방치된 삶을 술에 절어 보내는데 있어  __는 꽤나 거슬리는 존재였다.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바람에 멍하니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셰인은 사실 __이 자신을 이리저리 찌르는 것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만인에게 친절한 그녀는 자신의 몫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기에 상처받기 전에  빠르게 포기하며 기대를 외면했었다. 그 자체가 상처란 것도 모른 채로.

그는 상처가 상처인지도, 외로움이 외로움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시간 속에서 셰인은 잡동사니와 쓰레기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신도 쓰레기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인생……. 한심한 농담 같지.”

그는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술에 떡이 된 채로 __에게 제 치부를 말했던 날.

‘그때 __는 뭐라고 했었지?’

비가 무섭도록 쏟아지던 와중에도 또렷이 들렸던 목소리였건만 기억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것 같았는데. 

아니,  이 마저도 술김에 제멋대로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몰랐다.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__을 떠올리던 그는 조금씩 잠이 깼다. 하지만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며 숙취가 몰려오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물만 겨우 마시고는 기듯이 집을 나왔다.

‘젠장. 아침이었군.’

셰인은 아침을 끔찍하게 여겼다. 그것은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끝을 바라는 그에겐 매일 찾아오는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바쁜 와중에 멈춰있는 자신이 가장 한심하게 느껴지는 때 이기도 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던 그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셰인!”

수 없이 들었던 거슬리는 목소리. __이였다.

“뭐야, 꺼져.”

“응. 좋은 아침이야.”

욕을 안부 인사로 취급하는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는 다시 집으로 가려고 했다.

“셰인. 바빠?”

“어. 바빠.”

“그럼 나랑 저기서 밥 먹자. 샌드위치 가져왔어.”

그는 자신의 말을 멋대로 해석하는 __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지만, 자신을 잡아끄는 손을 밀어내진 못했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라. 천천히 먹어라, 꼭꼭 씹어 먹어라, 주스도 마셔라…….

그녀는 셰인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쉼 없이 종알거렸다. 그를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못내 신경 쓰였던 그는 미니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__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시끄러우니까 물고 있어.”

웁웁. 막무가내로 들어온 샌드위치를 씹으며 불만을 터트리는 __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셰인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보며 웃었다. __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 눈꼬리를 사르르 접으며 화답하듯 웃었다.

그 웃음에 셰인은 금세 얼굴에 열이 올랐다. 빠르게 웃음을 지우곤 고개를 돌려서 부러 투덜거렸다.

“오늘은 얼결에 끌려왔다만, 앞으론 쓸데없이 이러지 마.”

“뭐가 쓸데가 없어?”

샌드위치를 꿀꺽 삼킨 그녀가 물었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 같은 인간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너 같은 인간이 뭔데.”

어느덧 웃음이 사라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는 신랄하게 웃었다. 자신을 향한 비웃음 이었다.

“뭐긴 뭐야. 쓸모없는 인간이지. 왜 사는지도 모르는 인간.”

“셰인.”

잔뜩 굳은 목소리에 그는 호숫가를 바라보며 여상히 생각했다. 또 울상을 하고 쳐다보고 있겠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__는 미소 짓고 있었다. 휘어진 눈꼬리가 처연해 보였다.

그녀는 말없이 피크닉 가방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불쑥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것이 꽃이란 걸 확인한 셰인은 얼굴을 와락 구기며 화를 냈다.

“이런 쓸모없는 걸……. 저리 치워.”

그는 꽃을 든 손을 팍 쳐냈다. 생각보다 세게 쳐진 손에 그는 아차 싶었지만 내색하진 못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떨어진 꽃을 주워들곤 일어났다. 가려는 건가 싶었지만 호수에 꽃을 던지고는 다시 그에게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호수에 떠 있는 꽃은 물결을 따라 출렁였다.

“쓸모…….”

__는 그가 습관처럼 뱉어내던 단어를 중얼거렸다.

“셰인. 꽃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은 거야.”

그는 __의 이상한 말을 그저 듣기만 했다.

“만약에 저 꽃이 여기저기에 흔히 쓰이는 것이었다면, 내가 저걸 너한테 주는 게 특별했을까?”

그 말은 내가 너에게 조금은 특별하다는 걸까.

“그저 저 꽃의 쓸모에 대해서만 생각 하지, 내가 어떤 마음을 담아 줬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을 걸.”

셰인은 자리를 피하고 싶으면서도 그녀의 말을 계속 듣고 싶었다. 그의 이중적인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그녀가 이어 말했다.

“모든 것이 쓸모가 있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런 건 부가적인 거지.”

__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에 반사되는 빛이 잘게 부서져 그녀의 눈에 담겨있었다.

“큰 것에서부터 사소하고 작은 것 까지……. 그것들이 담고 있는 의미에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그 의미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유가 될 거야.”

“…….”

“그래도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면.”

그녀가 호숫가에서 눈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늘 서려 있던 장난기가 사라진 눈빛은 무섭도록 잔잔했다.

“내가 너에게 살아갈 의미가 되도록 노력할게.”

“그럼.”

 그는 목이 메여 말이 끊겨 나왔다.

“난……. 네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솨아아-. 숲속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자 그늘도 이리저리 흩어졌다 뭉쳐지길 반복했다. 그 아래에서 __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그에게 다시금 무언가를 내밀었다. 아까 쳐냈던 것과 같은 꽃이었다.

선명한 분홍색 튤립.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압화(押化)란 것이었다.

“…….”

셰인은 천천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여리고 연해 망가질 것 같던 생화와는 달리 시들지도, 망가지지도 않을 꽃이었다. 유리 사이에 고정된 꽃에서 그녀의 향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무슨 의미긴. 이런 거야.”

분홍색 튤립. 그것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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