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한달째_관계캐를_죽이는_꿈을_꾸고_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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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뜨기도 전, 아직 새벽 빛이 어슴푸레한 모두가 잠들 시간임에도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리기도 하고, 서늘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자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간이 등불을 켰다. 등불에서 퍼지는 작은 온기 덕분에 조금은 따뜻하다고 여겨지기도 잠시 잠들기만 하면 찾아오는 악몽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한 달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매일 제 연인을 죽이는 꿈을 꾸는 건 고문이나 다름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꿈을 꾸는게 낫지. 테이블 위에 등불을 올려두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창 밖을 바라봤다. 죽은 듯한 고요함에 침몰할 것만 같았다. 전투를 하다가, 모험을 하다가 동료가 다치거나 죽을 때나 종종 꾸던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꿈에는 그다지 감흥조차 없었건만, 제 손으로 연인의 목을 조르고 적을 베는 무기로 연인을 베어내는 감각은 허상이었으나 인두로 지진 것 마냥 뇌리에 새겨졌다.
"하..."
깊게 숨을 내뱉으며 진정하려 해도 다시 잠드는 것이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결국 밤을 뜬 눈을 지새우고 남들보다 이르게 하루를 시작했다. 피곤하기는 했으나 그 감각을 다시 겪는 것 보다야 나으니까. 눈 밑이 좀 거뭇해진 느낌을 애써 지워내고 간단한 의뢰를 미리 받아둔 게 있어 지령서를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 칼라인으로 향했다.
"잠을 잘 못 잤나봐? 피곤해 보여."
걱정 어린 말에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서 뮨을 안심시키고 간단히 챙길 식사거리와 무기를 확인한 뒤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미리 가서 지형을 파악해두기 위해 임무지인 기라바니아로 텔레포를 사용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평소보다 잘 느껴지는 현기증에 미간을 찌푸린채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뜨자 작열하는 햇빛이 눈부셨다. 내 기분도 이렇게 눈부셨으면 좋으련만.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임무 내용을 다시 살폈다. 기라바니아 호반 지대 북쪽에 있는 묘지에서 불안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보고를 받아 조사하는 임무였다. ..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묘지 비슷한 곳에 갔던거 같은데. 초코보를 타고 날아가니 짧은 생각이 멈췄다. 아무래도 묘지와 관련된 일이니 저녁 즈음은 되어야 할까. 근처에 초코보를 묶어두고 주변에서 묘지를 손상 시키는 듯한 몬스터들을 정리하며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그러다 일순 느껴지는 두통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비상용으로 받아온 약을 한 알 삼키고서야 두통은 사그라들었다. 몸이 멀쩡하질 못하니 쉽게 짜증이 일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감정적이었던 적은 드물었는데. 상태가 좀 괜찮아진 듯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갈무리하고 주변을 정리하며 오브에 쌓인 백마나와 흑마나를 가늠했다. 마물이 나와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문제가 발생하는 묘지 중앙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망령 계열일 가능성이 가장 큰 듯 싶지만.. 전장에서 변수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 레이피어의 손잡이를 고쳐쥐고 마력을 촘촘하게 짜 퍼트리며 주변을 탐색했다.
"그어어-."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망령이 맞는 듯 했다. 다만 사람을 닮고, 개수가 좀 많을 뿐. 전투력이 높은 편은 아니어서 처리하는데 문제는 없으나 이 망령들은 분명 팔 다리의 구조나 형태가 사람을 닮은게 일반 몬스터는 아닌 듯 했다. 잡념을 떨쳐가며 하나 둘 차근차근 망령들을 처리해갔다. 얼마 안 남은 시점 발 아래에 누워있는 구울에게 발목을 잡혀 레이피어를 아래로 내려 처리하려는 찰나 다시금 찌르르 울리는 두통과 함께 제 발목을 잡은 망령이 위로 제 연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빌어먹게도 지난 날 꾼 꿈과 너무나 같게 누워서 제 발목을 잡은 모양새마저 같을 필요는 없을텐데. 짧은 순간의 머뭇거림이었으나 여러 망령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적지 않은 손실로 이어졌다. 아직 멀쩡히 서 있던 망령에게 공격당하기 직전 몸을 틀었으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오브와 레이피어를 합쳐 마력을 발산해 두 망령을 모두 쓸어버렸으나 망령의 손톱에 허벅지를 베여 낭패였다. 평소였으면 제 옷깃을 스치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아프기도 하고, 열 받기도 하고. 또 제 연인이 보고 싶었다. 레이피어를 다시금 고쳐 쥐고서 남은 망령들의 잔당을 정리하고 나니 허벅지의 아릿함이 확연히 느껴졌다. 초코보 근처로 다가가 간단히 치료하고 나서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의뢰자에게 가 보고하고 칼라인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다친거야? 네가 다쳐서 오는건 햇병아리 모험가일때 이후로 처음보는거같은데. 괜찮은거야?"
"괜찮아요. 얕게 베였는데 위치 때문에 상처가 커 보이는거니까요."
뮨에게도 보고를 해 두고 칼라인 한 켠에서 부상을 대충 치료하고서야 집으로 향했다. 텔레포를 쓸까 하다가 괜히 몸에 부담이 갈까 싶기도 하고 먼 거리는 아니었으니 생각을 정리할 겸 그리다니아의 나루터를 통해 거주구로 이동했다. 집에 가까워지자 대문 앞에 서 있는 인영에 깜짝 놀라 바라봤다.
"플로라."
"리암?"
당신이 왜 여기있어요?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성큼 다가온 그가 제 턱을 살몃 붙잡더니 이곳저곳 확인하듯 둘러봤다. 요 며칠 부러 자신이 그를 피하기는 했다. 꿈이 현실이 될 것 같아서, 현실의 그와 붉어진 꿈 속의 그가 겹쳐 보일까봐. 얼굴을 살피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질까 그의 손을 잡고 시선을 마주했다.
"괜찮아?"
"그럼요. 아픈 곳도 없고 멀쩡한.."
"매일 잠을 못 자는 거 같던데."
매사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빛인데도 이런데선 예리해선. 변명 거리를 생각하다 사뭇 진지해진 눈빛에 작게 한숨을 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할리가 없었다. 괜히 숨기기도 애매하니 사실대로 말하고 그의 눈치를 보다 잡은 그의 손을 살살 주물렀다.
"괜찮아요. 조금 피곤한거 말고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걸요?"
"악몽이라도 꾸는거야?"
"...조금요."
"..."
".. 한 달 조금 넘었어요."
그게 조금이냐고 질책하는 눈빛이 선연히 느껴졌다. 어느 미코테가 이렇게 눈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지 원. 밖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기엔 뭐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테이블 위에 두었던 등불이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다시 불을 밝혀 온기를 주고서 마주 보고 앉았다가 그의 시선이 계속 자신에게 향하는게 느껴져 손가락을 꼼질거리다 자리를 옮겨 그의 옆에 가 팔에 기대어 앉았다. 말하기 꺼려하는 걸 알고 기다려주는 모양새를 보니 침묵으로 답하기엔 너무 미안했다.
"...매일, 매일. 리암이 죽는 꿈을 꿨어요. 그냥 죽는 것도 아니지, 내가 매번 당신을 죽이는 꿈을 꿔요."
순간 그가 움찔 하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죽임 당하는 꿈을 꾼다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고서 손만 주물 거렸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걸 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계속 그런 꿈을 꾸는 건 고통스러웠다.
"오늘은 옆에 있을까."
"...네?"
"자고 일어났을 때 내가 있으면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더 빨리 알 수 있잖아."
"그런..가요?"
"악몽은 내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라도 해 보는 건 어때. 그리고 내일 다른 사람들한테 자문을 구해보자."
몸이 약해진 건지 마음이 약해진 건지. 잡혀주고 있던 손이 되려 단단히 얽혀 제 손을 잡아오자 괜스레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꿈은 정신세계의 또 다른 문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이 일로 미움 받을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걸까. 되새겨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음을 깨닫고 작게 웃었다. 그와 관련된 일이어서 미련해 진 걸까.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플로라."
"네?"
"왜 다리 다친 건 말을 안 해주는 거지?"
정말, 쓸데없이 이런 것만 눈치가 빨라서. 가벼운 부상이고 치료도 다 했다고 충분히 설명을 했음에도 꽤 오래 잔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씻고 나서 리암이 다시 붕대를 감아 줄 때 까지. 벽난로에 불을 켜고 숙면에 도움이 되는 거라며 가져온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셨다.
밤이 깊어져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또 악몽을 꾸겠지. 두렵기도 했으나 옆에 누운 그를 향해 돌아 누우며 손을 잡고 느릿 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암 혹시..자다가 제가 잠꼬대로 리암을 공격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
안 괜찮을 텐데.. 걱정 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잠시 품에 가두듯 끌어안고 눈을 감는 행동에 눈만 깜빡였다. 이제 잠꼬대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하는 중얼거림에 웃음을 터트리고 파고들듯 안겨서 눈을 감았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만에 맞이하는 평온한 밤이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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