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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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하게 쌓인 얇은 털실 앞에서 고민에 빠진 리암은 동그랗게 맞물린 나뭇가지에 몇 번이나 털실을 감았다가 풀어냈다. 생각보다 디자인이 필요한 거구나. 싶어져 만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서 눈을 감았다. 제 연인을 위해 만들고 있던 것은 악몽을 쫓아준다는 물건이었다. 최근 다른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듯 퍼진 물건이었는데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마음에 안 드는 색감이라 몇 번을 풀어냈다. 플로라를 닮은 색감으로 이것 저것 달아서 만들어 봤음에도 왜 마음에 차지 않는 건지. 미간을 찌푸리고 풀어진 털실과 나뭇가지, 자잘한 보석들을 만지작거렸다.

-똑똑.

"리암?"

노크 소리에 테이블 위를 검은 천으로 덮은 뒤 문을 열자 앞에 서 있는 제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백은발의 머리칼을 정리하듯 가볍게 한 번 쓸어주고서 날이 더워 그런지 열기를 머금은 뺨을 간지럽히듯 톡 건드리는 손길은 퍽 다정했다. 플로라는 제 뺨에 닿은 리암의 손을 잡아 어리광 부리듯 뺨을 부볐다. 방 안을 힐긋 보고서 덮어둔 검은 천에 시선을 두었다가 플로라를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뭐 하고 있길래 불러도 못 들어요?"

"잠깐 뭐 좀 하느라.."

가늘어진 눈초리에 리암은 딴 청 부리듯 시선을 피하다 소파에 앉은 플로라의 앞 바닥에 앉아 그녀의 무릎에 턱을 대고 올려다봤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기는 결백하다는 그의 모습을 보며 플로라는 작게 웃어버리고서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짧아진 리암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촉은 부드러웠다. 리암이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억지로 묻지 않는 플로라를 바라보다 허벅지에 이마를 대고 살살 부볐다.

"요즘도 악몽 계속 꿔?"

"예전만큼 매일 꾸지는 않아요."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얌전히 플로라의 손길을 받고 앉아있었다. 그래도 좀 줄었다는 것에 위안을 가지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플로라 역시 웃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요 근래에는 꿈의 강도가 약해지기도 했으니.

"그러고보니, 할 말이 있어요. 아마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울 거 같아요."

"... 일주일이나?"

"니아님과 장거리 임무를 나갈 거 같아서요. 혼자 가기엔 좀 그렇다고 모험가 소대에 지원 요청이 들어왔거든요."

다른 임무들도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빛의 전사와 가는 임무라니. 플로라가 빛의 전사 산하의 모험가 소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고 그녀의 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겉으로 기분이 잘 드러나는 사람은 아님에도 리암의 감정이 불안해 보여서 플로라는 그대로 상체를 숙여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

"위험한 일은 아니에요. 다만 멀리 다녀와야 하는 일인데, 거길 따라 갈만한 체력이 다른 소대원은 좀 부족한 느낌이 있어서 그래요. 정찰 임무일 뿐이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언제 가?"

"이틀 뒤 출발이에요."

"... 그래."

"빨리 끝나면 귀가도 빨라질 테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속삭이며 리암을 달래듯 말하는 플로라는 걱정 말라는 듯이 웃어 보였다. 자신의 실력이 빛의 전사 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모험가들 사이에선 두각을 드러내는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기간이 긴 것을 제외하면 정말 간단한 임무라고 생각했으니까. 짧게 시간을 보내고 플로라는 빛의 전사와 임무에 대해 마저 준비할 것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 이틀 안에는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이 옆에 있으면 그나마 덜 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아직도 밤마다 악몽을 꾸는 것 같다는 주변의 말도 들렸기에 자신을 대신 할 만한 것이라도 쥐어주고 싶었다. 플로라가 임무를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리암은 드림 캐처를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플로라의 머리 색과 눈 색을 담은 실로 나뭇가지를 감싸고, 그녀와 어울리는 느낌의 보석류를 달아도 어딘가 아쉬운 기분이었다. 작업물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녀에게 보여주면 예쁘다고 말해줄 것이 분명했음에도 어딘지 마음에 안 차서. 그러다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연보라 색 나비 모양 수정이 시선을 끌었다.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크기의 수정을 달자 꽤 흡족하게 마음에 들었다. 크기가 너무 크면 임무를 나갈 때 들고 가지 못할 테니 손바닥 만하게 만든 드림 캐처 중앙에 자리 잡은 나비, 주변을 별 무리처럼 장식하는 물빛의 작은 보석들과 드림캐처 아래로 꼬리처럼 떨어지는 흰 색의 깃털들을 보고 있으면 플로라를 떠올리게 만들기 쉬웠다. 아마, 연보라 색 수정은 그녀를 닮은 물건에 자신의 흔적이 남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흰 색 바탕에 푸른색 리본으로 포장된 선물 상자에 드림 캐처를 잘 접어 포장하고 해가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귀가 한 플로라를 이끌어 테이블에 앉혀 놓은 리암은 잠시 망설이다 선물 상자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풀어 봐도 되냐는 듯한 눈빛에 리암이 고개를 끄덕이자 플로라는 조심스럽게 리본을 풀어나갔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조명 빛이 반사되며 반짝이는 보석들 뒤로 아름다운 문양을 짜 자리 잡은 둥근 실타래와 부드러운 깃털이 눈에 들어왔다. 플로라는 조심스럽게 드림 캐처를 꺼내서 한참을 바라보다 드림 캐처와 리암을 몇 번이나 번갈아 봤다.

"너무 예뻐요. 무슨 물건인지는 모르겠는데... 뭐예요? 설마 직접 만든거예요?"

"나쁜 꿈을 꾸는 걸 막아주는 물건 이래."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리암과 그 말에 드림 캐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 참을 바라보던 플로라는 리암의 눈 색을 닮은 나비 모양 수정을 만지작거리다 무척 소중한 선물을 꼭 쥐고서 품에 끌어안듯 행동했다. 안 그런 듯 하면서도 늘 자신에게 신경 쓰고, 걱정해주고 있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언제 이런 걸 만들었어요.."

"내가 없으면 악몽 계속 꾼다고 들어서."

그건 그렇지만.. 작게 중얼거리는 플로라의 곁으로 가 앉은 리암은 플로라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아주며 토닥였다. 이렇게 그녀의 밤이 고요해졌으면 하고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어서. 

"고마워요... 리암, 덕분에 꿈은 꾸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로요."

자신이 악몽을 꾸는 것을 안 이후로 종종 제 옆을 지켜주던 연인이 이런 선물까지 준비해주었는데 어찌 감동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손 안에 올려진 드림 캐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할게요."

"잃어버리거나 끊어지면 새로 만들면 되는 거니까. 임무 중에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

"장담은 못하지만 노력해볼게요. 어떡하지, 오늘은 너무 기뻐서 잠을 못 잘 거 같은데요?"

"그럼, 옆에 안 있어줘도 되겠네."

"아니, 그건 아니죠."

뜻 깊은 선물에 보호 마법을 걸어 둘 방법은 없을지, 어쩜 이렇게 손재주도 좋은지 하는 가벼운 대화를 이어가며 고요해질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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