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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카] 수호천절도 보렐가에서

트친님 리퀘스트

  • FF14 아이메리크 HL 연인드림 연성입니다.

  • 드림에 예민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꾸욱!

  • 트친(ㄷㄱ)님 리퀘스트로 작업했습니다.

  • 공백 미포함 4300자 정도 되는 짧은 글입니다.

  • 눈 펑펑 오는날 보렐 저택에서의 일상 느낌 + 약간의 수호천절을 끼얹어보았습니다.

수호천절도 보렐가에서

copyright by. Mer

 

사시사철 추운 겨울인 이슈가르드. 매서운 눈바람이 불고 추운 그곳에도 어김없이 수호천절이 찾아왔다. 이방인의 축제라는 느낌으로 생각하던 그것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축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라면 수호천절을 즐기기 위해 나섰을 K은 오늘따라 어쩐 일에서인지 이슈가르드에 방문했다. 수호천절을 준비하는 수상한 호박머리의 여성을 돕고 난 직후 바로 텔레포트를 통해 이동해 온 것이었다. 이유야 뭐 달리 있겠는가? 그녀는 느긋하게 신전기사단의 총장실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하게 그녀의 얼굴을 보고 통과를 허락해주는 보초병을 지나 총장실로 조용히 들어가 보면, 한창 서류작업을 하느라 한창인 그녀의 연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간 것도 아닌데 어찌나 서류작업에 열중한 것인지, 그녀의 연인인 아이메리크는 그녀의 입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럼 이 기회에 슬쩍 장난이나 쳐볼까? K은 속으로 실실 웃으며 살금살금 다가갔다.

 

“……음? K?! 그대, 언제 왔는가?!”

“아이, 놀래키려 했는데 실패했잖아!”

“이런, 내가 눈치 없게 아는 척을 했던 모양이군.”

“이미 다 알았으면서 놀라는 척을 했다면 더 화를 냈을 거야.”

 

장난질에 실패한 어린아이처럼 토라진 목소리로 툴툴대던 것도 잠시, K은 총장실에 마련된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보다 그대, 연락도 없이 이곳까지는 어쩐 일인가? 그냥 얼굴 보러 오는 것도 안 돼? 앗, 내 것엔 자작나무 시럽 넣지 마. 아이메리크가 차를 우리는 모습에 다급하게 말을 첨언한 그녀는, 어느덧 제 앞에 내어진 밀크티를 홀짝거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아이메리크가 내오는 자작나무 시럽이 들어간 밀크티는 맛있긴 했지만 지나치게 달았다. 역시 시럽을 빼고 먹는 편이 더 나았다.

 

“보렐 저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었을 텐데.”

“메리, 당신이 언제 저택에 돌아올 줄 알고?”

 

……그래도 요즘은 제때 돌아가려고 하고 있네만. 그래도 이곳으로 오는 게 더 빠르잖아. 그건 맞는 말이네. 나도 그대 얼굴을 봐서 좋고 말이야. 아이메리크는 순순히 인정하는 얼굴로 밀크티를 마시며 웃었다. 그보다 정말로 오늘은 얼굴만 보고 싶어서 온 건가? 얼굴을 보러온 것이 가장 크고, 메리 아직 바깥 구경을 제대로 안 한 것 같아서. 바깥 구경? 지금이 무슨 시즌인지는 알고 있어? 무슨 시즌이냐니……. 잠시 생각하던 아이메리크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천절인가? 알고는 있었네? 이슈가르드의 거리에도 수호천절을 맞이하여 도시를 장식하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었기에 벌써 그런 시기가 되었나 하고는 있었지. 물론 이방인들의 축제에 열을 낼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많아서 묵살되고 모험가 거주구로 쓰이는 지고천 거리만 수호천절 분위기를 내고 있다고 듣긴 했었지……. 듣기만 하고 아직 보지는 못했나보네? 종종 지고천 거리를 가자 탈을 쓰고 돌아다니기는 하네만 최근에는 확실히 가질 못했지……. 아이메리크의 말에 K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구경하러 갈래?”

“지금 말인가?”

“잠깐도 안 되는 거야?”

“그럴 리가.”

 

그대가 원한다면. 아이메리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업무는 그간 꾸준히 해왔기에 이정도의 짬은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럼, 가보겠나? 에스코트하려는 듯 내민 손을 K은 기쁘게 잡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총장실 밖으로 향했다. 행선지는 당연히 지고천 거리였다.

 

*

 

잭 오 랜턴이라 불리는 호박 장식과 박쥐 장식으로 가득한 지고천 거리. 축제 때 성도 밖을 나가지 않았던 아이메리크로서는 이곳 지고천 거리가 유일하게 축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수호천절이 시작하고 이곳을 처음 방문한다는 말에는 거짓이 없었는지, 그는 바뀐 거리 풍경을 둘러보며 즐거운 미소를 그리곤 했다. 평상시에는 가자 탈을 쓰고 방문하던 거리를 탈 없이 방문한 터라 기분이 더 생경한 듯 싶었다. 거리 산책은 짧은 시간에 끝났지만, K도 아이메리크도, 수호천절의 분위기를 느끼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으로 만족한 얼굴이었다. 공사가 다망하신 총장과 영웅님이니 이런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이리라. 어차피 아이메리크의 일이 끝나면 보렐 저에서 만날 수 있을 터였지만, 저택에서 만나는 것과 야외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니까. 신전기사단 본부 앞에서 K은 아이메리크의 손을 놓았다.

 

“메리는 이제 일 하러 가야하죠?”

“보렐 저에 가 있겠나?”

“응, 그러려고.”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고 노력하겠네. 기다려주겠나?”

 

K은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얼굴로 웃으며 아이메리크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 길로 보렐 저로 향하는 것이었다. 신난 발걸음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메리크도 이내 총장실로 돌아갔다.

 

* * *

 

“먀아악!? 세상에, 메리! 이러다가 눈사람이 되겠어!”

 

오는 길에 눈이 어찌나 많이 내렸으면 아이메리크의 머리위로 쌓인 눈을 보며 K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소란을 피운다. 덕분에 사용인 중 일부가 놀라 수건을 들고 뛰쳐나오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아이메리크는 조용히 수건을 받아들고 사용인들을 물렸다. 늦은 시간에 굳이 쉬고 있던 그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한편으로는 K과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을 굳이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저 더운물을 준비해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 차를 내오겠다는 집사마저도 물린 그는 제 옆에서 호들갑 떨고 있는 K의 손을 잡고 안쪽에 마련된 거실로 향했다. 그 사이에 눈이 많이 내렸나보네? 나 들어올 때만 해도 눈이 내릴 기세는 없었는데. 일을 끝내고 나오니까 이미 잔뜩 쌓여있더군. 춥진 않았고? 이정도 추위는 이슈가르드인에게는 익숙한 편이네.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거잖아? 메리 지금 귀 끝이 완전 빨갛다고. K이 손을 뻗었다. 높이가 맞지 않아 닿지 않을 테지만, 익숙하게 허리를 숙여주는 아이메리크 덕에 그녀는 손쉽게 그의 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발갛게 얼어붙은 귀를 슬쩍 문질러주면 간지러운지 쿡쿡 웃는 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괜히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히고 있노라면 숙였던 허리를 펴서 옅은 미소와 함께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없는 동안 뭐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

“음, 역시 수호천절 분위기가 났으면 싶어서…….”

 

이걸 만들고 있었어. K은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작은 잭 오 랜턴을 들어올렸다. 호박을 깎은 뒤 안에 작은 초를 넣어 만든 잭 오 랜턴은 짓궂은 표정을 하고 있음에도 그 크기 탓인지 제법 귀엽게 보이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걸 테이블에 놓아두면 나름 수호천절의 분위기도 살고 좋지 않을까? 잘 못 만든 것 같지만 말이야. K의 말에 아이메리크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대가 만든 것이라면 뭐든 좋아서 탈이군. 진심을 담은 말에 괜히 뺨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 K은 괜히 먀~ 소리를 내며 잭 오 랜턴을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두었다.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티타임은 무리겠지만, 내일 이것을 테이블 위에 켜두고 티타임을 즐기면 나름의 좋은 수호천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 그녀는 문득 아이메리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티타임 하면 쿠키가 빠질 수 없지 않겠는가? 시판용 쿠키도 나쁘지 않지만 만약 아이메리크가 일을 가지 않는다면 오랜만에 둘이서 쿠키를 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은 탓이었다.

 

“메리, 내일도 일 가야해?”

“그대도 왔으니 내일은 오랜만에 부디 쉬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저택에 있을 예정이네만?”

“먀~ 정말이지?”

 

K은 꼬리를 기분 좋게 살랑이며 웃었다. 그럼 내일은 둘이서 요리를 하자? 요리? 무엇을? 쿠키라도 굽는 거 어때? 수호천절이니까 호박이라던가 모양을 내서 구운 다음에 많이 구워지면 주변에 나눠주면 되니까. 나눠주지 않고 둘이서 먹어도 충분할 만큼만 구워도 되지 않겠나? 그런가? 그렇지만 막상 굽다보면 재밌어서 왕창 구워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녀의 말에 아이메리크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것이었다. 먀악! 머리 헝클어져! 어차피 곧 잘 텐데 상관없지 않나. 그래도! 가볍게 투정부리는 말을 웃으며 넘긴 그는 이내 손을 거두며 말했다. 쿠키를 다 굽고 나면 둘이서 오붓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둘만의 티타임? 그래. 좋아! 내일이 기대된다. 그렇다면 얼른 자는 것이 좋지 않겠나? 아이메리크는 허리를 숙여 K을 공주님안기로 안아 올렸다. 먀아악!! 놀라서 소리치는 것은 가볍게 무시한 채, 그는 성큼성큼 침실로 향했다. 설마, 같이 잘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 붉게 물든 채 빼액 소리지르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아이메리크는 침실 문을 열었다. 다정하게 침대에 그녀를 내려준 뒤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오면 어느덧 잘 준비를 끝내놓고 누워있는 모습에 그는 웃음을 흘리며 다가가는 것이었다.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올 것 같아.”

“그래도 내일 피곤하지 않으려면 자는 것이 좋을 텐데?”

“그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이 올 테니 눈부터 감게나.”

“……치이, 알았어.”

 

잠투정을 부리듯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흘리던 K이 이내 몸을 돌려 아이메리크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잘 자, 메리. 그대도. 좋은 꿈을 꾸길. 아이메리크가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바깥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지만, 어쩐지 따뜻하고 고요한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 * *

 

다음날. 아이메리크의 부드러운 굿모닝키스를 이마에 받으며 잠에서 깬 K은 침실 창문을 통해 바깥에 쌓인 눈을 구경하다가 그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인과 영웅님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조리장은 간단하게 먹고 주방을 쓸 예정이라는 제 주인의 말에 준비하던 것을 중단하고 아침 대용의 스프만을 내온 채 잽싸게 주방에서 사라졌다. 쿠키를 굽기 위한 재료들은 어제 잠들기 전 집사를 시켜 준비시켜둔 덕에 주방 한켠에 곱게 놓여있었다. 스프를 빠르고 깔끔하게 다 비운 두 사람은 앞치마를 하고 조리대 앞에 섰다. 주방 밖에서 집사가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물린 아이메리크는 허술하게 매인 K의 앞치마 리본을 고쳐 맸다.

 

“그럼 쿠키 굽기를 시작해볼까?”

“너무 의욕만 앞세우지는 말았으면 하네만.”

“먀악! 그거 무슨 뜻이야, 메리?!”

 

그 뒤로 주방에서는 한동안 소란이 이어졌다. 중간 중간 K이 비명을 지른다거나 아이메리크가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사용인들은 주인의 단란하고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절 그곳으로 걸음하지 않았다고 한다.

 

*

 

우여곡절 끝에 쿠키를 다 구운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욕실에서 씻고 거실에 앉았다. 티타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씻는 동안 집사가 준비를 해둔 모양인지 테이블 위에는 밀크티를 만들기 위한 티팟과 잔 두 개, 그리고 그들이 아까까지 열심히 구웠던 쿠키가 한 접시 놓여있었다. 아이메리크는 K을 앉혀두고 능숙하게 티를 우려냈다. 이윽고 제 앞에 놓여진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았다.

 

“앗, 달아! 메리! 또 자작나무 시럽을 잔뜩 넣었지?!

“얼마 넣지 않았네만?”

 

거짓말! 그렇다면 이렇게 달리 없어! 내가 적당히 넣으라고 늘 말했잖아!? 먀아악! 소리와 함께 화를내는 K을 바라보며 아이메리크는 적당히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라는 얼굴로 밀크티를 한모금 마신다. 그의 입에 딱 적당한 단맛.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좀 많이 단 듯 싶었지만 그에게는 딱 이정도가 적당했다. 씩씩거리다가도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쿠키를 먹기 시작하는 K을 보며, 아이메리크는 슬쩍 웃었다. 수호천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보내는 수호천절이라면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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