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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카] 자각하다

트친님 리퀘스트

  • FF14 아이메리크 HL 연인드림 연성입니다.

  • 드림에 예민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꾸욱!

  • 트친(ㅅㅇ)님 리퀘스트로 작업했습니다.

  • 공백 미포함 3300자 정도 되는 짧은 글입니다.

  • ㄱㅎㅊ 이후 아이메리크에게 당신은 죽지 말라고 말하는 드림주와 그런 드림주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는 아이메리크

자각하다

copyright by. Mer

회복을 방해하는 효과가 붙은 섭리의 창은 쉽게도 창을 뚫고 복부마저 뚫었다. 고작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맹우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스러졌다. A는 자신의 벗이, 자신을 위해서 방패를 들었다가 눈앞에서 허무하게 스러져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깊은 바다 속에 잠식된 것만 같은 숨 막히는 우울감이 지속되었다. 그제야 수면 위로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오르슈팡처럼 아이메리크 또한 자신이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은 그녀의 머릿속을 깊게 잠식했고, 그녀는 그렇게 어두운 동굴 속에갇혀 헤매던 끝내 곪아버렸던 속이 터지며 돌발행동을 하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찾았나?”

“아니요,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이 밤중에 대체 눈이 이렇게도 오는데 어딜 간 건지…….”

 

오밤중에 무작정 뛰쳐나간 A 탓에 포르탕가 저택은 발칵 뒤집혔다.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어느덧 눈보라가 되어 지독하게 쌓이고 있었는데 오르슈팡이 목숨 걸고 구했던 영웅은 뛰쳐나가서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상태도 좋지 않아보였던 사람인지라 걱정은 배가 되었다. 그러나 수상한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마냥 무턱대고 찾지는 못하고 쉬쉬하며 사람을 풀어 찾았으나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는 찾을 수 없었다.

 

* * *

 

“……A?”

 

눈보라를 피할 생각도 없이 그저 울며 무턱대고 걷고 있는 A를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메리크였다. 오랜 시간 야근 끝에 총장실을 나와 보렐가 저택으로 막 들어가려던 그 또한 사실 오르슈팡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일에 몰두하다가 참다못한 부관 루키아의 손에 쫓겨나서 퇴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섣부른 행동으로 인한 유능한 기사의 죽음, 그리고 그의 맹우였던 영웅의 깊은 슬픔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로써는 지나친 자책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총장실에서 취식하고 때로는 밤을 세워가며 일을 하다가 쫓겨난 그가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그는 헛것을 보는 줄 알았더란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춥고 눈보라 치는 한밤중에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이 그녀가 맞았으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여서, 그는 빠르게 집사를 시켜 수건을 챙겨들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수건을 챙기는 사이에 이미 저 멀리까지 걸어 나간 뒤였던 그녀를 겨우 따라잡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가 뒤돌아봤을 때, 아이메리크는 한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A?”

 

그는 영웅의 처음 보는 얼굴에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넋이 나간 그녀는 그도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늘 자신을 보면 “총장님!” 하고 부르며 달려오고 늘 미소 짓는 모습만 보던 그에게 초점이 나간 눈을 한 얼굴은 정말로 낯설기 짝이 없었다. 이미 눈보라를 맞아 얼굴이 눈에 잔뜩 젖어있었음에도 아이메리크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녹은 눈과 흐르는 눈물로 잔뜩 젖은 눈가와 뺨,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정도로 붉게 짓무른 눈시울, 찬바람을 맞으며 창백하게 얼어버린 뺨까지……. 왜 울고 있었는지, 어째서 울고 있는지, 이유를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그녀의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한 아이메리크는 자신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대번에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오랜 귀족생활로 가면을 쓰는데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뭐하고 있는 건가.”

 

들고 있던 수건을 A의 머리 위에 얹으며, 그는 최대한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 또한 그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기 싫을 것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최대한 자신의 시야에서 그녀의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이렇게 밖에 오래 있으면 감기에 들어. 건강에도 좋지 못하네.”

 

일단 가까운 우리 보렐 저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그녀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분명 독한 감기로 크게 앓을 것이 분명해서, 그는 그녀를 최대한 실내로 데리고 가기 위해 말을 지속적으로 걸며 이끌려고 했다. 그 때였다.

 

“……총장님.”

 

흐릿한 목소리가 A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녀를 마주하고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에 아이메리크가 멈칫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고개를 드는 바람에 흘러내린 수건에 의해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

 

A는 아이메리크의 푸른 눈과 마주하고 나서야 심해의 무저갱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은 암흑을 걷는 기분이었다가, 이제야 겨우 암흑 속에서 빛을 본 느낌인 듯 싶었다. 처음으로 심해에서 빠져나와 본 상대의 얼굴은 그녀에게도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 사람이 이런 얼굴도 하는 사람이었나? 그의 걱정이 담긴 표정을 처음 마주한, 아니 이전부터 그런 표정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그녀는 문득 다시금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겨우 심연에서 빠져나오는가 싶었는데, 다시금 심연이었다. 아, 안되겠다. 슬슬 한계……. 그녀의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다급하게 다가온 몸이 그녀를 부축하는 것이 느껴졌다. A는 갑주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아, 그래도 기절할 때는 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아이메리크, 당신은 죽지 마요.”

 

당신까지 잃으면 내가 못 버틸 것 같아. 울음을 참고 겨우겨우 그 말을 뱉은 채 기력이 다하여 기절한 A를 보는 아이메리크는 한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제 품에 있는 이가 저를 ‘아이메리크’라고,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있던가? 조금 전 우는 얼굴을 봤을 때 느꼈던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감각에 빠져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제 품안에 쓰러진 불덩이부터 빠르게 실내로 옮겨야만 했다.

 

“빨리 포르탕가 저택에 기별을 넣게. 어서!”

 

집사에게 지시를 한 뒤, 보렐가의 기사가 보르탕가로 뛰어가는 걸 본 아이메리크는 그 길로 A를 공주님안기로 품에 안아들고 다급하게 포르탕가로 향했다.

 

* * *

 

보렐가에서 사람을 이미 보내어 기별을 한 덕에 영웅이 없어져서 한바탕 뒤집어졌던 포르탕가의 저택 앞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왁자지껄하게 나와 있었다. 걱정으로 어둡던 낯들이 아이메리크와 A를 발견하고 밝아지는 듯 했으나, 꽁꽁 얼어서 혈색이 창백함에도 불구하고 온 몸은 불덩이마냥 뜨거운 A의 상태를 발견한 이들의 낯은 금방 퍼렇게 변했다. 다급하게 시종들을 시켜 그들의 영웅을 준비된 방에 눕히고, 간병을 위한 메이드들이 찬물이 담긴 대야와 물수건을 들고 바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조용하던 저택이 시끌벅적해졌다. 열에 의해 인사불성이 된 A를 케어하는 한 편, 마찬가지로 꽁꽁 얼은 상태로 그녀를 안고 이곳까지 달려왔던 아이메리크에게도 그들은 편히 쉬며 몸을 녹이기를 권했으나, 상대의 상태를 이미 누구보다 잘 알아왔던 그가 마음을 진정하고 편히 쉴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로 테라가 머무는 방 문 앞에서 서성이던 아이메리크에게 A의 소식을 전해준 것은 안에서 치유술을 쓰던 알피노였다.

 

“아이메리크 경.”

“……아, 알피노 경.”

“그녀의 상태를 물어보시는 거라면 이젠 좀 괜찮습니다.”

“아……. 다행, 다행입니다…….”

 

한순간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고, 아이메리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태가 괜찮다면 다 되었다고, 그리 대답한 그가 한숨을 쉬고 있노라면, 알피노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을 하고 말을 걸어온다.

 

“아이메리크 경,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네.”

 

그렇게 대답하고 여전히 물에 젖은 생쥐꼴로 멍하니 사람이 있으면 괜찮다고 답을 해도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알피노가 다시금 아이메리크 경? 하고 그를 부른 뒤에야 아이메리크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아, 야심한 밤에 실례했네. 전해줘서 고맙네, 알피노 공.”

“……예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알피노를 뒤로하고 아이메리크는 포르탕가 저택을 나왔다. 보렐가까지 걸어가는 내내 아이메리크는 자꾸만 곱씹는 것이었다. 우는 얼굴을 보며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던 기분, 처음으로 저를 아이메리크라고 부른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심장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 그리고 불덩이 같은 몸을 품에 안았을 때, 불안에 차서 빠르게 뛰던 심장이, 그녀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서 진정되었던 것까지…….

 

“……그런가.”

 

그는 이 감정이 무엇 때문에 느끼는 감정인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오늘의 일이 없었더라면 오랫동안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고민했을 터였지만, 오늘과도 같은 경험을 하고나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난 그녀를 연애감정으로 좋아하는구나……. 아이메리크는 기어이 제 심장이 그녀를 향하여 왜 뛰는지 그 이유를 자각했다.

 

기나긴 삽질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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