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발렌타인데이 진짜 계심
...뭐 이런 전단지가 다 있지.
그게 조시우가 오늘 눈 뜨고 처음으로 읽은 문장이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리야, 정말. 집 안에서 책을 펼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밖에 나가서 본 것이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좀 이상한 찌라시였다. 의도도, 만든 사람도 알 수 없는 그런 무의미한 전단지. 진한 분홍색이라 단숨에 눈이 그쪽으로 가버렸는데, 읽고도 뭘 광고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발렌타인데이가 사라지기라도 했었나? 아니, 날이 어떻게 없어져. 그래서 한참 그 종이 조각에 눈을 뺏긴 채 가만히 있다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그래서 느린 발을 어떻게든 재촉해 학교로 온 거였다. 2월에 등교하는 건, 그것도 일찍 가는 건 정말 싫어했지만, 좋아진 지 꽤 되어버려서.
2월은 꼭 춥다. 추워서 그 마음을 따뜻하게 보관할 곳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핫초코 같은 게.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따뜻한 건 열을 잡아두기가 어려워서 조시우는 언제나 고민이 많았다. 나는 언제나 따뜻하고 싶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따뜻하게 보였으면 했으니까. 그런 사소한 고민을 접게 된 것은 벌써 아주 오래 전 일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꽤 긴 시간이 지난 상태였으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 아침에 본 그 종이 쪼가리도 나한테 뭔가 알려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올라간 교실은 조금 이상했다.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분명,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친구가 반의 모든 책상에 뭔가 올려둔 것을 봤었는데. 아마도 초콜릿이었을 것이다. 그 애는 마음도 여렸고 평소에도 반 친구들을 잘 챙겼으니까, 그 샛노란 포장지에 담긴 건 분명 초콜릿이었을 거라고.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뭐, 그래도 책상 위를 치우는 건 흔한 일이니까. 서랍 안에 다시 숨겼을지도 모르지, 하며 손을 넣어 봤지만 여전히 텅 빈 상태였다.
…어제 잘못 봤나.
애초에 다른 사람한테 그런 걸 함부로 기대하는 건 안 좋은 습관이니까, 빨리 남이 형이나 보러 가야지. 그러면서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실은 이 시기에 조시우의 가방에 무언가 들어 있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2월은 휴식이나 재충전의 시기라고 머릿속에 못박아둔 만큼 학교 대신 다른 곳으로 나돌아다니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내일도 조시우는 학교 대신 어느 숲 속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
그 희멀건 얼굴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당혹감이었다. 거의 일주일 전부터, 하루종일 레시피를 찾고, 재료를 사고, 만들고, 굳히고,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가방 안에 넣어둔 초콜릿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 머리는 없지만 원체 기억력 하나는 좋아 이런 작은 일은 잊지도 않는데. 가방의 공간이란 공간은 전부 열었다 닫았지만 여전히 초콜릿은 흔적도 없어서, 조시우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치우지도 않은 온갖 조리도구과 남은 포장지가 아침이 되자 전부 사라져 있었다. 누나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지 오래고, 부모님도 어제는 늦게 들어오셨었는데.
…역시 뭔가 이상했다. 아침에 봤던 그 전단지마냥, 정말로 발렌타인데이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다고 그냥 넘기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발렌타인데이가 사라진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조시우는 애써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동성애 실천 중이라 그런지 잘은 안 됐다. 다시 가방을 멘 것도 모르고 3학년 교실로 뛰어갔으니까.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빈 복도는 느릿하지만 힘있는 발소리만이 울려서 조금 시끄러워졌다. 뛰어가는 내내 조시우는 아침에 봤던 전단지만을 원망했다. 아니, 어떻게 전단지 한 장이, 내가 선배를 위해 준비한 걸 이렇게 없애 버릴 수가 있어. 정말, 정말 너무하다. 내가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던 건데.
조시우의 발이 멈춘 건 양 볼과 눈가가 같이 빨개져서 얼굴의 원래 색이 거의 사라졌을 때 쯤이었다. 남이는 이제 막 교실에 들어올 참인 것 같았다. 타이밍은 괜찮게 도착한 것 같지만, 손에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는데 다가가서 뭐하려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식은땀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없이 우울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어쩌면 그냥 내가 집에 초콜릿을 두고 온 것만 같아서, 가벼운 충격만 주고 간 줄 알았던 그 분홍색 전단지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발렌타인데이가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우야!”
그 목소리에 다시 체온이 돌아왔다.
“그, 이거, 초콜릿인데…”
초콜릿?
“조금... 망한 것 같아. 아, 아니 근데 진짜 조금이니까…”
수줍게 밝아진 그 얼굴로 내민 상자는 가방 안에 든 것과 꼭 닮은 색이었다. 막 흐르려는 눈물을 꾹 참고 가방을 열었다.
“저, 저도 잘은 못 만들었어요. 그래도 선배 주고 싶어서...”
사라졌던 발렌타인데이는 문득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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