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4박 5일 후쿠오카/유후인 여행기(4)

이제 주간연재도 아니고 격주연재되어버린 그런

큰일이다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으니까 순서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중간에 사진이 없는 부분은 기억으로 대충 때울 수밖에.

밥을 다 먹고 우리는 C브랜드로 출발했다. C양이 흔쾌히 백화점 다시 가는 데 동의해 줬다. 그런데 한큐 백화점 내부가 너무 복잡했다. 왜 2층 다음에 M3층이 있고 그 위에 3층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니들 숫자 못 세냐고.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2층 갔다가 3층 갔다가 M3층 갔다가… 아직 물건도 안 샀는데 택스 리펀 카운터나 먼저 구경한 뒤에야 겨우겨우 C브랜드를 찾을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얘네 여기서 장사 시작한 이래 이렇게 남루한 복장의 손님은 처음일 거야. 나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직원도 내가 돌진할 줄 모르고 있다가 진짜로 돌진을 해 오니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보셔도 소용없어요 저는 오늘 여기서 최단시간 안에 뭐 사 가지고 나가는 손님 기록에도 도전할 거거든요… 그래서 응대하려고 직원이 오자마자 냅다 ○○○(별 쓸데도 없는 익명 처리) 있냐고 질렀다. 직원은 설마 내가 그걸 사려고 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하는 듯한 태도로 보여줬다. 그래서 나는 아 네 이거 주세요, 하고 답을 했다.(…)

옆에서 흥미롭게 구경하던 C양이 자기도 뭘 좀 보고 싶다고 했다. 기왕이면 어디 좀 앉아서 보고 싶다고 했다. 직원 Y씨가 우리를 안쪽 소파로 안내하고는 우리가 요청한 귀금속을 꺼내 왔다. 그리고 다른 직원이 와서 음료수를 주겠다고 했다. 귤 주스, 사과 주스, 커피, 또 뭐더라. 사과 주스가 땡겨서 주문했더니 이렇게 줬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링고 주스 짱이라고 칭찬했더니 Y씨는 터졌다… 아니 아무도 이런 얘기 안 하는 거냐고.

C양이 자기가 고른 귀금속을 이리저리 구경하는 동안 나는 내가 주문받은 귀금속 구매 절차에 돌입했다. Y씨는 나한테 대 보지 않아도 되냐고(이런 매장들은 걸어 보게 안 해 주더라) 물었다. 아니 제 것도 아닌데 제가 차서 무엇에 씁니까… 그렇게 대답했더니 누구한테 줄 거냐고 물었다. 친구요, 그랬더니 또 친구 생일 선물이나 무슨 기념일이냐고 물어봤다. 아뇨 저 그렇게 비싼 거 선물하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냥 여행 간다고 뭐 필요한 거 있냐고 했더니 그럼 가서 사와, 했다(뭐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 건 아닌데 자세하게 일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었다)고 하니까 Y씨는 또 터졌다. 그, 원래 그렇게 웃음이 많으신가요 아니면 고객 응대의 일환으로 웃어주시는 건가요…? 그냥 구매대행일 뿐이니까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멋진 메시지 카드를 주면서 편지를 쓰라고 했다. 나는 백지 카드를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C양은 궁금한 것이 많았고, Y씨의 명찰에는 자세히 보니 일본어/영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 혹시 Y씨 영어 되세요? 하니까 그렇다고 했다. 나는 냅다 C양은 영어 잘해요! 하고 질렀고 C양은 기겁했고 Y씨는 대단하다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C양이 입을 열었는데… 나는 내가 미드 세계관 같은 데 냅다 떨어진 줄 알았다. 이건… 재능 낭비가 아닐까…? 나는 왜 C양을 일본에 데려왔지…? 크루즈 같은 데나 데리고 갈 것을. 아니면 미국 전역 일주라든가. C양이 기겁하며 도망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다. 어쨌든 내가 경악한 만큼 Y씨도 경악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둘만의 세계에서 영어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거의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그냥 내 귀금속이 포장되어 오는 것을 기다리며 사과 주스나 마시기로 했다.

C양은 한참 고심한 끝에 아까 고른 귀금속을 구매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게 내가 부탁받은 것보다도 비쌌고, 우리는 그걸 턱 지를 만한 금액을 들고 오지 않았다. 현금+카드 되나요? 오 된다 된다. 현금+카드A+카드B 되나요? 이건 또 안 된다. 왜 안 되지? 뭔가 이유를 설명해 주기는 했는데 반도 못 알아들었다. 아무튼 원래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C양은 뭔가를 한참 고민하더니 일단은 다시 오겠다고 했다. Y씨는 예쁜 상자에 포장된 내 귀금속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 상자를 빨간 쇼핑백에 담아 주었다.

불행히도 이 즈음에서야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현대인은 카드로 뭘 자꾸 사기 때문에 소비하는 느낌을 못 받는다 하더라. 그게 아무래도 나한테도 적용된 것 같았다. 나는 이 물건을 살 때까지… 정확히는 카드를 긋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이렇게 비싼 뭔가를 샀다는 생각을 안 해 봤다. 그런데 막상 그 작고 예쁜 상자가 확 튀는 빨간 쇼핑백에 담겨 내 손에 들리자… 현실감이 어마어마하게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망상이 머릿속에서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얘들은 왜… 내 앞에서 포장을 안 해 줄까? 상자 나중에 뜯었는데 속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돈은 냈는데 귀금속이 없으면? 아니 왜 이렇게 튀는 쇼핑백에 담아 주는 거야? 심지어 한쪽 면에는 금박으로 브랜드명이 써 있는데. 이 백화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여기서 귀금속을 샀다는 걸 눈치챌 거야. 지나가던 소매치기가 내 쇼핑백을 낚아채면 어떻게 하지? 너무나 기술적인 어떤 누군가가… 바꿔치기라도 하면? 택스 리펀 카운터에 서 있는 동안 작은 상자가 돌멩이로 바뀌었는데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오늘 하루를 계속 돌아다니다가 한국 돌아가서야 알게 되면?

나는 쇼핑백을 반 바퀴 돌려 브랜드명이 내 몸 쪽으로 가도록 들었다. 더불어 뭐가 됐든 택스 리펀은 받아야 했으므로 리펀 카운터도 갔다. 이제 웬만큼 돈 쓸 건 다 썼으니 그 많은 현금을 다시 받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 카드로 리펀을 받았다. 이것도 중대한 실수였으나… 이때는 아직 깨닫지 못 했다. 젠장. 돌이켜 보니 그땐 깨닫지 못 한 게 왜 이렇게 많아.

(그리고 중간에 쓰는 걸 깜빡했으나 어디 끼울 공간을 못 찾아서 추가 기재하자면… 아침에 M브랜드(C양 신발 산 거기 말고 생활용품샵) 가서 이것저것 물건을 많이 털었다. C양이 바구니를 채우는 동안 나는 가위와 필러를 또 찾아서 헤맸다. 생활용품샵인데 왜 필러는 존재를 안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세기의 미스터리가 아닐까? 가위는 있긴 한데 달랑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썩 마음에 안 든다… 아무래도 저녁에 로프트를 다시 가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는 사진도 찍은 것이 없고 결심도 그거 하나였으므로 간략하게 쓰고 지나가도 되겠지.)

하카타 역은 언제나 분주하고 붐빈다. 우리는 다음날 유후인으로 기차를 타고 출발할 예정이었고, 당일에 여기 와서 급하게 뭘 찾으려다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기에 온 김에 미리 기차표를 찾아 두기로 했다. 이제 하카타역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C브랜드 귀금속을 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위를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소매치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게 정신병인가. 이게 정신병이지. 나는 C양의 짐을 나눠 들고는 그 쇼핑백 안쪽에 내 쇼핑백을 눌러서 감추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남들 눈엔 진짜 수상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겠다 싶다… 괜찮아 나는 외국인이고 그 사람들도 나 모르고 나도 그 사람들 모르니까. 우리는 표를 발권한 후 근처에 있던 빵집에서 빵을 좀 샀다.

무지 유명한 크로와상 집이라고 한 것 같은데 음.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먹으면서 자○도 소금빵을 생각했다(맛이 비슷하단 뜻은 아니다).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건강빵을 사랑하는 C양도 생각은 과히 다르지 않은 듯했다. 괜히 많이 샀나. 하나나 두 개만 살 걸.

표 찾을 것 찾고 빵도 사서 입에 물었으니 이제 또 쇼핑을 갈 시간이다. C양은 요도바시 카메라에 가자고 했다. 뭐 전자제품 살 게 있냐고 했더니 장을 보는 거라고 했다.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장을… 볼 수 있나…? 뭐 좀 공부 좀 해 올 걸 나는 아는 게 없다. 다시 자아를 잃고 C양 뒤를 따라갔다. 알고 보니 요도바시 카메라 4층에 로피아라는 거대 마트 비슷한 것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고기만두와 연어 들어간 김말이초밥 같은 걸 샀다. 사케마키라고 하려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 라벨을 자세히 안 봐서 기억이 안 난다.

(제법 그럴싸한 고기만두의 모습)

짐이 정말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일단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걸어갈 엄두가 안 나서 이번에는 지하철을 탔다. 무슨 신용카드 쓰면 바로 타네 어쩌네 하는 광고를 본 것 같은데 그대로 카드 찍고 탄 C양이 나가다 턱 걸렸다. 역무원을 불렀더니 어떻게 해결을 해 주긴 했는데… 아니 뭐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어놨냐. 나는 현금 내고 지하철표를 사서 걸리진 않았는데 그 작은 걸 어디다 넣었는지 헷갈려서 한참 헤맸다.

호텔로 돌아온 즉시 나는 캐리어를 열고 빨간 쇼핑백을 입었던 옷 넣는 백인백에 집어넣은 후 캐리어 지퍼 안쪽에 엄중 봉인했다. 그리고는 캐리어를 다시 잠그고 비밀번호도 유추할 수 없도록 000으로 맞춰 놓았다… 물론 이쯤 해서는 재차 정신병이 도져서 누가 청소하러 왔다가 내 캐리어를 집어가면 어떡하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그런 일 없을 거야. 이성의 소리는 작고 약했지만 그런 생각이라도 자꾸 해야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재밌게 놀려고 왔는데 저 빨간 쇼핑백 따위에 이렇게 휘둘릴 순 없다. 정신 차리자!

마침 그 즈음 언니한테서도 연락이 왔다. 고르라고 그렇게 얘기했던 오페라글라스의 모델을 마침내 골랐다는 모양이었다. 좀 빨리 좀 연락해 주지… 더도 말고 딱 한 시간 반만… 그랬으면 요도바시 카메라 간 김에 샀을 거 아니냐고. 투덜투덜 하면서 다시 호텔을 나왔는데… C양이 C브랜드 다시 가자고 했다. 꼭 하카타에 가서 Y씨를 만날 이유는 없으니 텐진 쪽 백화점으로 가자고 했다. 뭔가 방법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래요 갑시다. 안 될 것 없지요.

(기왕 브랜드명 익명처리한 김에 괜히 해 보는 모자이크)

이번에 갔더니 무려 샴페인을 준다고 했다. C양은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고 나는 귤 주스나 시켰다. 음, 사과 주스가 더 맛있다. C양은 뭔가 확인을 한 다음에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또 안 됐다. 아니 된다면서요? 이 카드로는 안 된단다. 아니 그게 왜 안 되는데요? 직원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와서 공짜 샴페인과 귤 주스 축낸 사람 되었다. 아니 어이없네? 이게 안 되네? 직원도 황당하고 우리도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된다고? 어이가 없는 와중에 나는 직원을 붙잡고 오페라글라스 파는 매장이 어딨냐고 물었다. 그 사람도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매장이 어딘지도, 오페라글라스가 뭔지도. 문제는 나는 망원경을 일본어로 말할 능력이 없었고… 어색한 바디 랭귀지를 한참 보다 그 사람이 저쪽에 빅 카메라가 있으니 가 보라고 했다. 그래요 그럽시다… 공짜 음료 축낸 자들은 이만 물러갑니다…

우리는 얼척이 없어 웃으면서 밤거리를 걸었다. 실의에 빠진 C양을 끌고 텐치카로 내려갔다. 내가 딸기 모찌 사줄게. 아침엔 비싸다고 고개를 저었는데 얼마나 실망했는지 끄덕끄덕 한다. 그래 단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나는 그냥 딸기 모찌를 사고 C양은 딸기 말차모찌를 골랐다. 내 건 늘 그렇듯 홀랑 먹어서 사진이 없고 C양 것만 남았다.

맛있었다는데 나는 말차를 잘 못 먹어서… 아무튼 그냥 딸기 모찌도 맛있었으니까 이것도 맛있었겠지. 힘내라 C양. 로프트 가서 가위랑 필러나 사자… C양도 내가 사는 걸 보고 양산 구경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양산 코너 어딘지 알려줄 테니까 너는 그거 구경하고 나는 가위랑 필러 골라서 계산대에서 만나자. 근데 여기 엄청 귀여운 곰돌이 있다. 내가 거기 올라가면 보여줄게. 근데 너무 귀여워서 벌써 팔렸을 수도 있어…

곰은 아직도 거기 있었다. 그 자세 그대로. C양이 마음에 들면 그냥 사지 그러냐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글쎄 가격 얼만지나 좀 보고… 가격표가 있긴 한데, 곰이 너무 많다 보니 이 가격표가 어느 곰의 가격표인 건지 감이 안 잡힌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 한 명을 붙잡고 물으니 가격을 알려 주긴 했다. 네? 10,500엔이요? 그것도 세전 가격으로요? 그럼 이 귀염둥이가 10만원이라고요? 불현듯 P양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귀여운 곰 전시회 같은 데 가서 곰을 샀댔나… 안 샀댔나… 그때 그 곰이 얼마랬더라… 내가 딱 그 짝일세… 너무 귀엽지만 차마 10만은 못 내겠다. 현금 거의 다 쓴 판이라 더 그랬다. 아까 현금으로 리펀 받을 걸 그랬나. 근데 그랬다 한들 내가 얠 데려갈 수 있었겠나. 데려가서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래. 잊자.

발이 잘 안 떨어졌지만 가위 코너로 갔다. 당근을 국수처럼 채쳐 준다는 신비의 필러를 일단 하나 주워 담고(평범한 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일곱 가지쯤 되는 가위 중에 뭘 가져갈지 고민했다. 그래 역시 이 정도 선택지는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티타늄제를 원했는데 티타늄 소리가 써진 가위가 하나도 없다. 결국 소재를 눈이 빠지게 보다 제일 비싼 걸로 골랐다. 한 번 사면 오래 쓸 테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그 뒤에 빅 카메라에 갔다. 발도 아프고 해서 꼭 이날 가려던 건 아니었는데 걷다 보니 눈앞에 있길래 그냥 들렀다. 오페라글라스 어디 붙었는지 몰라서 한참 헤매고, 겨우 찾고 보니 배치가 무슨 기준으로 된 건지 몰라서 또 한참 눈 빠지게 들여다봐야 했다. 어쨌든 언니가 원한 그 기종이 막연히 각오한 것보다 훨씬 싸게 있어서 냉큼 집었다. 요도바시 카메라고 빅 카메라고 매장 내부가 무슨 미로 같아서 나갈 길을 찾느라 또 한참 헤맸다. 니들은 진짜 화재 대책 잘해라… 여기서 불 나면 대형참사다.

그 뒤에는 이제 진짜로(?) 돈키호테에 갔다. C양이 바구니를 채우는 동안 나는 파스만 찾아서 헤맸다.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걸로… 너무 많이 사지는 말고… 이만한 거랑 저만한 거랑… 근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사람 왜 이렇게 많은데. 매장 왜 이렇게 좁은데. 파스 왜 이렇게… 많은데… 일단 저기 사람이 불타는 그림이 그려진 건 아닌 게 확실하다. 이거? 이걸로 하나? 다들 이거 집네? 약간 그런 느낌으로 두 종류를 골랐다. 아래쪽에 진열된 거 집겠다고 쪼그리고 앉았다가 사람들한테 발로 차일 뻔 했다. 니들도 화재 대책 잘해 놔라… 여긴 그냥 연기만 나도 대형참사니까 그런 줄 알고.

거기까지 하고 나니까 9시가 넘어 있었다. 야 우리 아직 저녁도 못 먹었다… 물론 중간에 이것저것 먹은 게 많아서 배가 엄청 고프진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끼니를 넘어가기 뭐해서 라멘집에 가게 되었다.

C양은 그날의 모든 울분을 담아 맥주도 한 잔.

그러고도 오늘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10시 가깝도록 외국에서 바깥을 돌아다닌 적이 없어서 오만 생각이 다 들었으나 C양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시작 아니야?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고 나는 어… 음… 그렇구나… 같은 헛소리만 했다. 다음 목적지는 재즈바였다. 뮤지션이 와서 공연을 한다나. 라이브 좋죠. 시간이 2시간쯤 일렀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뭐. 네. 그래요. 가요.

그래서 왔다.

근데 들어가 보니까 밴드가 없었다.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와서는 오늘 라이브를 안 한다고 미안한 듯이 말했다. 왜요?! 어째서요?! 어째서 하필이면 우리가 오니까 장날인 건데요? 어이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들어와서 이미 앉았는데 뭐? 라이브 안 한다고? 잘 있어라. 하고 저벅저벅 가기는 또 좀 그랬다. 아니, 사실 C양은 그러고 싶었는데 나 때문에 주저앉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칵테일을 한 잔씩 하고, 이름 모를 재즈 음반을 좀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로 돌아와 보니 이날 거의 2만 6천 보를 걸었다… 쇼핑으로만 이럴 수 있었다는 게 좀 놀랍긴 한데, 어차피 내일부터는 온천 가서 푹 쉴 거니까요! 완전 녹아 있을 거니까요! 짐이나 잘 챙겼다가 내일 출발해야지. 캐리어에 든 빨간 쇼핑백이 다시 정신을 압박해 오긴 하지만… 일단은 잔다. 언제든 아침 해는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다음 편에는 드디어 유후인으로… 돌아오겠습니다…(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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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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