助演¹

1차 by 센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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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결혼식, 눈부신 조명 아래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주인공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무지개빛이었으며, 주인공들은 수많은 영주민들의 축복 속에서 서약을 맺었다. 언제까지나 서로를 위하고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사랑을 하겠다는 맹세.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하고도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서로의 반지를 자신의 반려자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그 후 애정을 담아 서로를 끌어안으며 살포시 뺨에 입을 맞추는 행위에 주인공들을 향한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 찬란한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모두가 웃는 가운데 혼자만 웃지 못하고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랑받아 행복하게 웃는 주인공과,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구는 주인공. 서로 밖에 없다는 듯이 손을 마주 잡고 감사를 표하는 주인공들. 남자의 시선은 퍽이나 행복해 보이는 주인공에게 향해있었다.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남자의 금빛 눈동자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그는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기 무섭게 화려한 불빛 속을 떠났다. 주인공을 포함하여 몇몇 이들이 남자를 찾았으나,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기에 당연하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아마도, 주인공의 행복을 질투한 조연이었던 것 같다.


짜악-! 살갗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가고, 한쪽 뺨에서는 얼얼함이 느껴졌다. 답지 않게 올라온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실언을 뱉은 탓에 기어코 화를 부른 것이다.

비록 사랑한 이에게 맞은 것이었지만, 이 정도의 물리적인 고통은 괜찮았다. 빨갛게 부어오른 건 천천히 찬물에 식혀 가라앉히면 그만이었고, 어릴 때부터 숲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이보다 더한 고통도 경험해 봤는데 뺨 맞는 것쯤이야 참을만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그의 확인사살 같은 말은 심장이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대가 걱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우받고 있어. 괜한 걱정이야. 그대가 와서 오히려 나를,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잖아.... 왜 이러는 거야. 잊을 법 하잖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우받고 있으며, 내가 오히려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말. 더 이상 그의 삶에 '미온'이라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그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다. 이미 2년 전부터 그에게는 미온은 그저 배우자의 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텐데, 난 계속 그를 여전히 과거의 다정했던 기사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미온은 그저 침묵한 채로 허공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시간만 멈춘 것처럼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실망했겠지. 이젠 날 싫어하려나. 마음 한 편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의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리 대해도 괜찮다는 듯이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지막이 사과했다. 이런 취급이나 받는 와중에도 때리는 힘을 보면서 그가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멍청하고 미련한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자신의 혈육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왜 아직도 추하게 그를 붙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춥지 않게 옷을 벗어주고, 비에 젖은 모습을 뻔히 봤으면서도 그는 오로지 자신의 배우자만 찾는 걸 두 귀로 똑똑히 듣지 않았던가. 자신과 입술을 부빈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가도록 달래주었는데 결국 없었던 일로 하자며 부정하는 모습도 전부 겪었으면서 또 멍청하게 그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미온은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이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기에는 그를 너무 깊게 마음에 품어버린 탓이었다. 아무리 그가 밀어내고 거절해도 미온에겐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끝내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해도 미온은 오직 한 명만 바라보았다. 꼬리가 잡혀 구설수에 오른 순간까지도 소문보다는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신경 쓰고 있을 정도이니, 진심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떠나는 마지막 밤에 자신의 방에 찾아왔을 때는 마냥 기뻤다. 마지막이라고, 이제 잊으라며 반지까지 빼고서 제게 많은 것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아주 먼 훗날 시간이 오래 지나고 소문이 잦아들면... 그때는 웃으면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사랑이라 치부하며 추억할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몸을 섞을수록 어쩐지 기이한 한기가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에게 체온을 뺏기기라도 하듯, 그의 목덜미를 닿은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오한이 돌았다. 심장이 멀쩡히 잘 뛰고 있음에도 발끝부터 서서히 식어갔다.

그저 기분탓이라고 생각했다. 옷을 다 벗고 있어서, 깜빡하고 창문을 열어둬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몸을 섞을수록 점점 한기가 느껴졌고, 마지막에 그와 하나가 되어 추삽질을 할 때는 반쯤 온기를 잃은 상태였다. 그렇게 그의 입에서 혈육의 이름이 불렸을 때, 결국 체념해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눈치가 없었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 그는 순수하게 날 위해서 온 게 아니라, 그저 병을 옮기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입안이 씁쓸했다.

그렇게 미온은 혈육의 행세를 했다. 겹쳐 보이는 게 눈에 훤히 보여서, 저가 아는 혈육의 모습을 꾸며내며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배우자와의 관계를 원하는 것 같았으니, 이렇게라도 그가 좋아한다면 다행이지 않은가. 그의 흐릿한 시야에 '미온'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완벽히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끝이 다가왔다. 그와 절정을 맞이하고, 그의 품 안에서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는,

"...미온, .......따듯해?"

바보같이 뻔뻔하게 굴지 못하고 제게 묻는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 텐데도, 마음이 참 약한 사람이었다. 미온은 그의 품 안에서 조용히 두 눈을 깜빡였다. 뼛속까지 파고든 시린 한기는 어서 춥다고 말하라는 듯이 저를 떠밀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 정반대가 되어버린 체온. 그가 곁에 있음에도 사무치게 시려웠다. 미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날 그렇게나 죽이고 싶을 만큼 정이 떨어졌던 걸까. 2년의 시간 동안 잊지 못하고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그래서 이런 나를 방해물로 여기고 없애고 싶었던 걸까. 그의 입으로 절대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들만 하염없이 떠올랐다.

그의 물음에 당장이라도 춥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 따뜻하게 안아달라고, 날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죽는 걸 반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을까. 나도, 목숨 아까운 줄 아는 한낱 인간일 뿐인데. 하지만, 그리 굴기에는 미온은 너무 그를 사랑했다. 죽어가는 이 순간까지도 그의 미래를 생각할 만큼 형을 사랑했었다.

그를 더욱 간절하게 끌어안으면서 그의 체온을 느꼈다.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그가 괜찮을지 머리를 굴렸다. 아마 배우자가 있으니 그렇게 힘들어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배우자의 동생이니 미워도 신경이 쓰이긴 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저 담담하게.

"...응, 따뜻해. 아주 많이."

한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저와는 다르게 형은 참 따뜻했다. 마치 제 온기라도 가져간 것처럼, 포근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오한에 덜덜 떨던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이제는 멀쩡하게 다 나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에 자국을 남겼다가는 그가 또 저로 인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그의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서 만든 흔적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행복할 일밖에 남지 않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이 이후는 얼마나 행복한 나날들이 가득할까.

문득 결혼식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때가 생각났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옆에서 행복하게 웃었던 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 앞으로는 형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가 없으니 그때처럼 환하게 웃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 편에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다. 내 삶에서도, 그의 삶에서도 더는 '미온'은 없다. 끝을 향해가는 마지막까지도 미온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혈육의 대체재가 되어 쓸모를 다하고 사라진다. ...쓸쓸했다. 뭐든 다 괜찮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이었다. 감정도, 생각도, 전부 할 수 있는 인간이었으니. 그의 기억 속에서 과연 '미온'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금방 잊혀지는 건 아닐까. 두렵다.

아, 쓸모없는 걱정이다. 어차피 이젠 그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지 않나. 마지막까지 그를 시야에 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빌려주었던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조연(助演)¹ : 한 작품에서 주역을 도와 극을 전개해 나가는 역할을 함. 또는 그 역할을 맡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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