룐톨이 그저 꽁냥대는 무언가
그러니까 우리는 가을의 톨비쉬 밖에 못 보는 거에요.
“아, 맞아. 톨비쉬! 우리가 마시는 물은 무슨 모양이게?”
장난기로 눈을 반짝이며 저를 올려다보며 웃는 연인을 보며, 톨비쉬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글쎄요, 기준에 따라 다를 것 같군요. 본디 물에는 정형화된 형태가 없지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담수에 한정한다면….”
“……. 동그라미야! 왜냐면 물이 넘어가는 목구멍이 동그라미니까! 그래서 우린 동그란 물만 먹고 있는 거래.”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방긋 웃으면서 냅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뱉는 그 당당함도 이젠 익숙해진 톨비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물이 넘어가는 통로는 원기둥에 가까운 형태니까요. 물은 담긴 곳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 하니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답변이기도 하고 철학적으로 꽤 흥미로운….”
“처음 그 말을 한 발화자의 의도는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려던 것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나는 철학적 화두를 던지기보단 넌센스 퀴즈 내는 느낌으로 장난치고 싶었던 거고. 예를 들어, 내가 우리의 데이트는 알반 엘베드니까 나는 가을의 톨비쉬 밖에 모르는 거라고 한다고 해서 그게 알반 엘베드에만 만날 수 있을 만큼 바쁜 널 질책하는 내용인 건 아니잖아? 뭐, 알반 엘베드라곤 해도 에린은 계절에 따라 무언가가 변하는 것은 거의 못 봐서 가을의 정취나 가을다운 풍경 같은 건 없기도 하고.”
“굳이 예시로 들었단 점에서 이미 꽤 신경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절기에 따른 변화라…. 두갈드 아일에 생기는 버섯이 달라진다거나 꽤 이것저것 있지 않습니까.”
“그치만 봄에 꽃이 핀다거나 여름에 덥다거나 가을에 단풍이 든다거나 겨울에 춥다거나 하진 않잖아? 어디든 사철 비슷하지.”
뺨을 부풀리면서 제 의견을 펼치는 리온이고, 평소라면 톨비쉬도 그렇군요. 하고 넘어갔겠지만, 아버지가 빚은 에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오늘은 톨비쉬도 순순히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땅에는 아튼 시미니님의 축복이 깃든 곡식들이 영글어 있고, 하늘의 빛을 받아 물은 아름답게 반짝이는데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아니, 에린이 예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절기마다 풍경이 바뀌거나 하진 않잖아? 그게 조금 아쉽단 거지. 왜~ 우리도~. 단풍이 든 나무들 아래에서 단풍 구경하면서 소풍같은 거 하면 좋잖아?”
그제야 자신이 톨비쉬의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는지 톨비쉬의 팔짱을 끼며 그의 곁으로 파고들어온 리온이 방긋방긋 웃었다.
“나, 대학에서는 매년 가을마다 교수님이 수업 대신 단풍으로 물든 산에 데려가셨거든. 거기에 다같이 앉아서 술도 마시고 안주도 먹고 하면서 서로 얘기도 나누고. 응? 그런거 좋잖아?”
톨비쉬의 팔 하나를 양팔로 껴안고, 톨비쉬의 어깨에 기댄 리온이 애교있는 목소리로 속살대는 것을 톨비쉬는 잠시 바라보았다.
애교를 부리면 톨비쉬가 화내지 않으리라 여기는 건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과 사랑만 받고 자란 순진함 중에 어느 쪽인지, 그러나 조금 날카로워졌던 마음이 다시 부드럽게 풀리는 걸 보면 자신도 꽤 중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톨비쉬는 리온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당신이라면 분명 그런 자리에서도 중심에서 가장 떠들썩하게 놀았겠죠.”
“음? …뭐, 그런 걸로 해둘까나.”
실제로는 아니었단 뉘앙스에 톨비쉬가 리온의 표정을 살피기가 무섭게 리온이 다시 방긋 웃었다.
“얘기하다보니 그 때 생각이 나긴 하네. 다음 가을에는 여기 오기 전에 멀린이랑 나무 많은 데서 술이나 마실까봐. 에린엔 그 술이 없으니까 내가 가지고 올까나? 으음…. 주류 반출 규정이 어떻게 되더라….”
정말로 별 생각없이 다른 화제로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말을 돌린 건지 조금 헷갈려 가만히 리온을 바라보던 톨비쉬가 이내 순순히 장단을 맞추었다.
“반출 규정만 맞추면 이쪽에선 반입 허가를 내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안 해줄거야?”
톨비쉬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리온의 뺨을 살살 쓰다듬으며 톨비쉬가 웃었다.
“외간 남자와 술을 마시기 위해 반입하면서요?”
“멀린이 무슨 외간 남자야? 난 걔랑 목욕탕도 같이 갈 수 있어.”
코웃음을 친 리온이 톨비쉬의 표정을 살피더니 뻔뻔하게 덧붙였다.
“나는 여탕, 걔는 남탕에 들어갔다가 찜질방에서 만나서 놀면 되잖아?”
그러면서도 슬쩍, 어차피 그 녀석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 일이니 네가 싫으면 추진하지 않겠다며 칭찬을 바라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덕에 톨비쉬는 속절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흐음. 에린에 단풍이 없다는 말은 취소해야할 거 같아.”
리온의 엉뚱한 말에 성소의 나무에 무언가 변화라도 있는 건지 살피던 톨비쉬의 얼굴을 리온의 부드러운 손이 매만졌다.
“내 톨비쉬의 얼굴에 단풍이 들었네. 하긴, 가을은 그런 계절이지.”
웃으면서 그리 말한 뒤에도 리온의 손이 계속 톨비쉬의 귀끝을 매만진 탓에 조금 어쩔줄 몰라하던 톨비쉬가 가만히 리온의 손길에 얼굴을 맡겼다.
리온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잠시동안, 성소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둘은 그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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