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샤오] 타오르는 별
여느때처럼 크리스타리움을 순찰하던 수정공은 드물게 어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샤오 티아를 발견했다. 평소의 그라면 상대하기 귀찮다며 아이들의 곁에도 가지 않았을 터인데. 어떤 이유에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인지, 혹여 본인의 모험담이라도 들려주는 것인지 궁금했던 수정공은 무얼 하는지 멀리서 지켜보았다. 한 손엔 천구의를, 다른 손엔 아르카나 카드를 들고 있던 그는 마치 점을 봐주는 듯 했다. 한때 샬레이안의 현자 '그라하 티아'의 삶을 살아왔기에 점성술에 대해 모를리가 없었다. 가설을 내새우고 증명을 해내는 현자들 또한 미래를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떤 결과가 도출되든 나아갈 길을 개척해간다……. 점성술을 하던 이들이 늘 그렇게 말해왔던 걸 기억해냈다. 아마도 비관적인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운명에 순응한 채 나태해지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발언이었으리라. 벤치에 앉아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매우 반가운 듯한 얼굴을 하고서 밝은 목소리로 크게 수정공을 외쳤다. 그 소리에 뒤돌아본 샤오 티아는 난처하다는 양 서있는 수정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몰래 지켜보다 떠날 생각을 들킨 기분이었다. 사실이었겠지만. 아이는 샤오 티아에게 귓속말을 하고 싶은지 고개를 내려달라 손짓한다. 왜? 하고 의문문을 뱉긴 했지만 순순히 고개를 숙여 준 그는 아이의 말을 듣더니 곧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흥미로운 듯 해보였다. 개구진 얼굴으로 귓속말을 전부 전달한 아이는 맑게 웃더니 수정공에게 어서 이리오라며 신나게 손짓했다.
"이 애가 네 점도 봐달라는데?"
"얼른요! 수정공은 어떤지 알고 싶어요!"
"미안하지만 나는 점은 그닥……."
"그치만 어둠의 전사님이 이번만 특별히 해주신댔는데!"
"나중엔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줄 건데 정말로?"
필히 아이들은 수정공이 어느 부분에서 약하게 구는지 알고 있었으리라. 크리스타리움에 정착한 사람들과 이 세계를 구해준 은인인 어둠의 전사. 이 둘의 조합이니 안될 것도 될 것이라고 아이 스스로 생각해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점을 친다는 행위는 탐탁치 못했지만 이 부탁을 단호히 거절할 성정은 절대로 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수정공은 해보자며 한걸음 물러났다. 어떤 결과든, 어떤 해석이든 자신이 뒤바꾸면 되지 않는가. 모든 걸 뒤바꾼 결과가 지금이니 말이다. 샤오 티아는 천구의에 있던 카드를 모두 회수한 뒤 한 손에 겹겹이 쌓아두었다.
"현재, 과거, 미래 순서로 카드를 뽑을 거야. 해석은 내가 해줄 거고. 그럼, 우선 카드에 숨을 불어봐."
샤오 티아는 손으로 들고 있던 카드 뭉치를 수정공 앞에 내밀었다. 단순한 점일 뿐인데 수정공은 다소 긴장한 여력이 가득한 모습으로 카드 뭉치에 후, 하고 숨을 불어넣었다. 바로 직후 샤오 티아는 카드를 몇 번 섞더니 천구의에 던지듯이 카드를 넣었다. 금속 띠를 이루는 천구의 안에서 아르카나 카드는 저절로 회전하며 마치 그것이 정해진 운명인 것같은 형상을 보였다. 천구의를 두어번 돌린 뒤, 샤오 티아는 한 장의 카드를 뽑아 자신의 정면에 두었다. 그리고 다음장을 뽑아 첫 장의 왼편에, 마지막 장은 오른편에 두었는데 다른 두 장보다 조금 높게 두었다.
"자, 그럼 현재는……. 아제마네. 알다시피 이건 균형을 의미해. 네가 지금 현재를 얼마나 균형있게 유지하려 하는지 드러나지."
"맞아요! 수정공은 도시를 위해 힘내고 있으니까!"
"바로 앞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으니 조금 민망하네."
"다음, 과거는 니메이아. 원래 이 카드는 살리아크를 뜻하는데 위아래가 뒤집히면 뜻이 달라져."
"의미는 어떻게 되는가?"
"도박, 운명."
딱히 샤오 티아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과거의 도박과 운명이라고 하면 한 가지만이 떠올랐다. 검은 장미에 습격 당한 우리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 이 한 몸을 전부 희생하지 않았나. 여럿, 많은 도움들 끝에. 이게 과연 성공할지 실패할지 가능성을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이 선택이 희망을 이끄는 길이라며 수정공에게, 그러니까 그라하 티아에게 모든 걸 맡겼다. 백년도 더 지난 일임에도 아직도 눈 앞에서 생생했다.
"이거는……."
"아냐, 괜찮네. 과거 해석은 듣지 않아도 돼."
"저는 궁금한데……."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단다."
"음- 알겠어요!"
수정공은 수정으로 덮히지 않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뒤집는 아르카나 카드에 시선을 돌렸다. 이번 카드는 미래라고 했던가. 확실하지 못한 미래를 미리 알아버리는 건 수정공에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희망적인 결과가 나왔음에도 실제 미래는 그렇지 않다면? 혹은 절망적인 결과가 그대로 현실이 되어 이어진다면? 모두가 이어준 미래를 향한 길을 내가 잘못 들어서 망쳐버린다면? 수정공은 당장이라도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샤오 티아가 해주는 것이니, 우리의 큰 희망이 곁에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뒤집은 카드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백색. 그 뿐이었다.
"응? 이게 왜이래. 카드를 잘못 넣었나."
하얗게 빛나기만 하는 카드를 흔들기도 해보고, 천구의를 주먹으로 쳐보고, 카드를 회수해 처음부터 다시 쳐보아도 나오는 카드는 모두 똑같았다. 아제마, 니메이아, 백색의 카드. 샤오 티아의 행동을 보니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눈치였다. 똑같은 방식의 점을 다섯 번째로 다시 치려고 할 때 즈음, 수정공은 샤오 티아를 막았다. 어떻게해도 결과가 똑같다면 같은 방식을 고수해선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알려주었다.
"그저 점일 뿐이잖나. 내 미래는 스스로 개척하라는 의미일지도 몰라. 나는…… 이런 점을 믿지 않기도 하고."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싶지 않아. 미래는 내 행동으로 인해 바뀔 수 있으니까."
샤오 티아는 애꿎은 아르카나 카드에 주먹질을 꽂으며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여전히 왜 백색 카드가 나오는 건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순간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샤오 티아는 다시 화색을 되찾곤 수정공과 시선을 맞춘다.
"스승님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미래는 스스로 개척하는 거라고 하셨거든. 그러니 네 미래가 백색으로 나와 보이지 않는다면, 현존하는 별들이 앞을 밝혀줄 수 없다면, 내가 너를 위해 타오르는 별이 될게. 어떤 미래든, 네가 어느 곳으로 나아가든."
샤오 티아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한 말이 수정공에겐 영원히 가슴에 남을 말이었다는 것을. 어떤 순간이든 그가 있어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앞길을 밝혀주겠다고. 마지막 숨결이 꺼진 높은 건물 위에서 잘 잤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과 흡사했다. 비록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했고, 함께 살아있다는 가정을 추가해야했지만 영웅의 곁에 살아있다. 그 사실만으로 해낼 수 있었다. 그가 죽지 않을 미래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수정공은 이번에도 해낼 것이다. 어떤 미래가 오든,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더라도 운명을 깰 정도로. 이미 수 없이 많은 필연을 깨부숴왔다. 더이상 어려울 것이 없었다. 수정공은 샤오 티아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혼자 타오르게 두지 않을 거야. 반드시."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