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해바라기 -3-
운이 좋게 그 날 이후로 그 남자와 마주치지 않았다. 이번달은 집에 일찍 갈 생각 말라는 사내공지를 받았기 때문에 밤 늦게 퇴근을 해서도 이상한 사람에게 시달릴거라는 두려움은 괜한 걱정이 된 셈이다. 걱정거리가 하나 줄어들자 점심시간에 먹는 밥이 맛있게 느껴졌다.
별 것 아닌 돈부리나 라멘을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자처럼 완식하면 배가 너무 불러서 소화가 될 때까지 상념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소화가 다 된 후에는 서류의 산을 처리하는 중이라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허튼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상한 가게들을 빼면 문을 연 곳이 없는 시간이 되었을 때 퇴근하면 지쳐서 잠들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사이에 머그컵에 담긴 가짜 해바라기에 먼지가 쌓였지만 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취객 때문에 생긴 꽃을 신경쓰는건 바보같은 일이니까.
이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쉼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면서 미치지 않은건 집이 가까운 덕분이라고 중얼거리며 힘없이 걸어가는데 누군가와 부딪혔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곧바로 사과가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서있다가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바로 지나치려고 했는데 부딪힌 사람이 앞을 막아서더니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상한 놈에게 붙잡혔구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이상한 놈인지, 몇 번을 고개숙여야 나를 놓아줄건지 가늠하기 위해 고개들어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 놀라고 말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눈 큰 남자가 입을 살짝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구면인데… 기억 나세요?”
오늘은 술냄새가 나지 않았다.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서 훤히 드러난 눈은 붉게 붓지 않았고, 촉촉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이 남자가 제정신이고 내가 제정신이 아닌 셈이다.
“술냄새 풍기면서 울던 해바라기 남자… 기억나네요.”
눈 큰 남자는 넉살좋게 웃었지만 부끄러워진 모양인지 볼이 조금 빨개졌다.
“아, 그 땐 제가 많이 이상하게 굴었죠.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예의바른 태도를 보자 구부정하게 굽은 어깨가 펴지고 반쯤 감긴 눈이 힘겹게 떠졌다. 예의를 갖춘 사람은 예의바르게 대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런 내게서 눈을 떼지 않던 남자가 조금 걱정스러운 투로 계속 말했다.
“그런데 괜찮으신게 맞나요?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는데. 눈 밑에 그늘이 엄청 짙고 피부가 푸석해보여요. 저랑 부딪혔을 때 정신이 나간 것처럼 허공만 바라봤던거 알아요? 조금 무서울 정도였는데.”
예의바른 태도로 사실만을 말하는 이 눈 큰 남자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조금 돌려서 말 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대꾸하고 싶은걸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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