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해바라기 -5-

연성 by 꿀이다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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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준 음료수는 냉장고에 들어간 뒤로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소를 할 때 잠깐 냉장고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뚜껑이 따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는 뜻이다.

그 남자에게 받은 것들은 전부 먼지만 쌓이다가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냉장고 위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플라스틱 해바라기도 깨끗하게 닦아내긴 했다. 본래의 진한 색을 되찾은 꽃잎이 형광등을 받으며 샛노랗게 빛나는 듯 보였다.

회사에서 겁을 잔뜩 줘서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한 야근은 한 달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퇴근을 한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한 일은 청소였다. 걸어다니고 누워있던 자리만 빼고 눈에 보일 정도로 쌓인 먼지를 무시할 핑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살다가 호흡기 질환이 생기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은 또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

손이 닿는 곳의 먼지를 없애고 걸레를 빠는 행동을 반복하자 바닥이 깨끗해지고 창틀이 반짝거리게 되었다. 얼마 없는 가구까지 전부 닦아냈을 땐 해냈다는 뿌듯함과 더이상 못참겠다는 허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한 달 넘게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있기만 한 회사원은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고파서 울고 싶어진다는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겪을 때마다 서러워졌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야 했다고 혼잣말을 해도 텅 빈 냉장고가 채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한 때는 새 출발의 설렘이 담긴 장소였던 좁은 집안을 둘러본 뒤에 지갑만 챙겨들고 나갔다.

삐걱 소리를 내는 계단을 내려가 단단한 땅을 딛자 다시 회사에 가는 것으로 착각한 배가 잠잠해졌다. 불쌍한 것,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큰 길가로 향했다. 해가 떠있는 이 시간엔 좁은 골목에도 사람이 걸어다닐 정도로 인구 포화도가 높다는걸 잠시 잊고 있었기 때문에 넋을 놓을 뻔했다. 거래처와 전화 통화를 하는 덕에 언어능력을 잃을 일은 없지만 이 세상의 상식을 잊지 않으려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인파 속에 몸을 밀어넣었다.

도보로 출퇴근을 해서 좋은 점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끼이고 밀려나도 쉽게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만큼 예민함이 솟지 않는 것이고, 도보로 출퇴근을 해서 나쁜 점은 몇 겹으로 둘러싸인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는 실력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의점을 두 군데나 지나치고 전단지를 네 개나 받았지만 여전히 인파의 한가운데에 위치해있다. 이것은 내 성격이 무른 것이 아니라 길었던 야근과 청소로 인한 체력 저하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사람의 물결에 계속 휩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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