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해바라기 -1-
“사랑을 믿으시나요?”
이상한 말을 하는 남자는 옷차림이 멀끔했지만 술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술냄새는 아니었지만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엄청난 바보짓이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옆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러자 취객이 잽싸게 앞을 가로막았다. 야근을 하면 좋은 일이 없어,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다. 그것도 바보짓이기 때문이다.
“… …”
몇 초의 침묵과 대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옆으로 한 걸음 옮기자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순히 추워서 콧물이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를 들자 그제야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꽤 길게 자라서 목덜미를 덮는 머리는 반을 나눠서 아래는 밝은 금색, 위는 검은색이고 커튼처럼 늘어진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은 큼지막했다. 밝은 빛은 가로등밖에 없는 곳이지만 저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뿐이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남자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보여서 당황해버렸다.
인사불성으로 취해 풀어진 표정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지 몰라서 술을 들이마시고, 취하는 것에 실패해서 주사인 척 난봉을 부리지 못하고 마음놓고 울지도 못하는 억울한 사람의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대답 없는 나를 계속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노란 해바라기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사랑… 훌쩍, 안 믿으시나요?”
100엔 샵에서 샀는지 술집 인테리어 장식품을 가져온건지 모를 샛노란 플라스틱 해바라기는 더러운 곳 없이 깨끗해보였다. 얼굴은 멀쩡한 취객과 플라스틱 해바라기의 조합이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어서 그랬는지 야근 때문에 멍청해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그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쨌건 나는 그 꽃을 받았다. 취객이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닦자 더 이상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정말 바보같은 짓을 했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가짜 꽃을 눈 앞에 바짝 대고 살펴보자 먼지가 쌓였던 흔적이 없고 때가 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싸구려 플라스틱 제품 특유의 냄새가 맡아지기도 했다. 다행히 코 끝을 스치는 정도로 미약하게 맡아져서 기분이 나빠지진 않았다. 뻣뻣하고 딱딱하고 냄새가 나지만 컵에 꽂아두면 나름대로 분위기를 밝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을 나 가지라고 준 것인지, 내가 받으면 돈을 요구할 것인지, 오늘은 물러갔다가 나중에 터무니없는 값을 요구할 지 알 수 없어서 그대로 내밀었다. 남자가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바보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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