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방

자작 캐릭터 X 애인 캐릭터 진단 메이커 소재 글

說話 by 傳達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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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한 칸의 세상에 너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 진단메이커


온통 하얀색이었다. 색이라고는 눈을 찌르며 내려온 나의 검은 머리카락 뿐. 아니, 이것 또한 색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터였다. 해 보았자 병실 천장의 불투명한 전구가 깜박거리다가 힘이 다하면 찾아오는 어둠과 같은 종류였으니까. 나는 유리조각 하나 없는 네모난 방에서 내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결벽적으로 증오했다. 나의 머리카락이 혹여나 세상 밖의 누군가에게, 또 자신에게 닿아서, 손끝부터 거뭇하게 썩어들어갈까 봐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정작 본인의 머리카락도 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그래, 말 그대로 까맣게…….

아버지는 내게 물려준 빨간 눈동자를 증오했다. 내 눈을 마주하기를 꺼려했고, 똑바로 쳐다보려고 하면 피했으며, 어딜 쳐다보느냐고 손을 치켜들다가도 닿기마저 역겹다며 금세 나를 피해 달아났다. 정작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본인의 얼굴이 붉다는 것은 새빨갛게 모르시는 모양이다. 그래, 말 그대로 새빨갛게…….

그러니 내가 어느 색도 없이 그들이 깨끗하다 맹신하는 하얀 방에 갇혀 지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밥을 주거나, 때맞춰 저명하다는 의사를 들여보내거나, 전구가 나가 갈아야 한다거나 하는 일 빼고는 내가 볼 수 있는 다른 색은 없었다. 당연한 일들을 하면서 너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덤이었다. 그렇게 나를 돌보기 싫다면, 그만 두면 될 텐데.

나의 세계와도 같았던 그 방에서 유일하게 바깥을 알려주는 바람 역할을 한 것은 소피아였다. 나의 동생, 그러니까 그들이 낳은 것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 그 착하고 맑은 소녀 말이다. 그 애는 항상 고열에 시달리는 내 이마와 핏기가 가신 내 볼, 힘없이 늘어진 내 손가락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 애한테는 색이 있었고 생명이 있었고 활력이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나와 달리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이해했다. 대체 어떤 이가 그 애를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애는 누구나 잠시만 있다가 가도 치를 떠는 나의 세계에 하루고 이틀이고 머물렀다. 작은 몸뚱아리에는 버거워 보이는 책들이라도 나를 위해 끙끙거리며 이고 오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노래를 불러주거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와 같은 검은 머리칼도 그에게는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고, 악몽이 아닌 행운이었으며, 더러운 것이 아닌 정결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들어와준 것은 나의 유일한 친구, 레이미였다. 당시 내가 가지게 된 착각이란, 모든 인간의 머리가 검고 모든 인간의 눈이 빨갛다는 것이었다. 드나드는 사람은 기껏해야 부모님, 소피아, 그리고 의사 뿐이었지만, 나에게 의사란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느껴졌다. 까만 장옷으로 온몸을 감싼 그들이 들어올 때면, 두꺼운 가죽 가면 너머의 무감정한 눈이 나를 훑어볼 때면, 의사란 성경에나 나오는 악귀처럼 느껴졌다. 나를 치유해 주지도, 부활시켜 주지도 않는, 신의 의지라고는 단 한 톨도 첨가되지 않은 악의 산물! 그러니 그때까지 내가 보아 온 인간의 머리칼과 눈이라고는 온통 검고 붉은 것만 있었던 셈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하지만 나의 친구는 달랐다. 그는 태양같은 금발을 휘날리며 땅속에 반쯤 처박힌 나의 독방 안으로 손을 흔들었다. 정해진 음식밖에 먹을 수 없었던 내게 몰래 간식이나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준다거나, 선물로 최신형 장난감을 준다거나…… 책으로만 알던 세상이지만 내 친구가 중산층 이상의 가정을 가졌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으레 그런 부모들은 제 아들이 불결하고 저주받은 병자와 가까이 하는 것을 심히 유감스러워 하는 법이다.

이제 와서 그것을 어쩌겠는가? 그때에 내가 조금 더 욕심을 자제하여, 그들을 내 세계로부터 추방했더라면. 그 좁은 방에 그들을 들이지 말았더라면. 처음부터 나의 세계에는 경멸과 위선, 혐오, 악귀만 존재했던 것처럼 외면했더라면…….

그냥 축복이나 생명, 사랑, 우정이 무언지 몰랐더라면, 신이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앗아가지는 않았을 터였다.

한 칸 밖에 없는 그 세계에서마저 내 자신이 쫓겨난 것은, 내 세계 전부가 뒤집힌 것과 같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하얗고 좁은 방을 되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버티게 하고 숨쉬게 한 두 존재가 나로 인해 신의 곁으로 떠나가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 신에 대한 원망만 불러 일으켰다. 그들의 사후 행복을 위해서는 신을 믿어야 했지만, 평생 해온 기도마저 들어주지 않은 존재가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들어줄 리 만무했다.

생존에 대한 의지도 없이, 되는대로 향했다. 어차피 나를 따라오는 것이라고는 내 목숨을 연명하게 했던 빚더미와, 증오, 경멸 뿐이었으므로. 아니 어쩌면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것인지도 몰랐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 나의 저주가 미치지 않는 곳. 나를 곪아가게 하는 악취와 고름이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곳을 찾아서.

그렇게 찾아들어간 곳에 또다른 세계가 있었다.

몽환적인 색감의 머리칼은, 쉽사리 손에 쥘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내 머리칼을 볼 때처럼 닿기조차 구역질난다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더럽고 쳐다보기도 싫은 쪽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감히 손에 닿게 하기 저어되는 쪽이었다. 신의 전령이라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실존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에 가까울 거라는 확신마저 생겼다.

나의 눈을 불길하다며 피하지 않고, 나와의 대화를 기분 나쁘다며 거절하지 않고, 나와 같은 공간에 있기를 마다하지 않고, 거침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고, 웃어주고……

소피아, 여기 너와 아주 닮은 사람이 있어. 이름은, 야오린.

나의 세계가 또다시 뒤집혔다. 아니, 뒤집힌 것이 아니다. 돌아온 것이다. 다시 건설된 것이다. 산산이 조각나 흩어져 버렸다가 구심점을 찾아 돌아오는 철가루같이. 어떠한 장인이 한 땀 한 땀 깨진 옛 어느 왕조의 유물을 복원하듯이. 그렇게 나의 하얀 방이 다시 돌아왔다. 살아보자는, 버텨보자는 의지와, 다시 기도할 수 있는 힘과, 소멸된 줄 알았던 낡은 사랑도 함께.

정정한다. 하얀 방이 아니라, 옅게 푸른 방.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일상 속에서도 너만은 나를 믿어주고 지지했다. 더 이상 아플 것도 없는 나를 걱정하고, 당장 내일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나를 지키려고 애썼으며, 태어날 적부터 우울한 성정인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나는 신도 내게 하사하지 못했던 생명력과 사랑, 웃음, 행복을 나의 세계에 꽂아넣을 수 있었다. 슬픔과 절망, 체념, 공포 뿐이었던 나의 책장에 네가 들고 와 꽂아준 이러한 감정들을, 꺼내보기조차 아까워 가만가만 펼쳐본 나의 마음을 네가 알까.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온갖 무기들이 날아와 나에게 꽂히고, 나의 시야가 붉게 물들어 뒤집혀도, 너만 있으면 모두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너도, 내게 느낄까…….

전하지 않으면 닿지 않을 마음이라도, 혹시 새어나와 네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외에, 나의 몸을 잠식한 병균이나 저주가 너에게도 옮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말을 들으면 너는 웃을까.

아주 예전에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었다. 나중에는 그것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나중에는 심장이 멈춰버린 듯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존재감을 온 세상에 알리는 듯한 그 붉은 감정을 자제하려, 가슴 언저리를 꾹 누르고……

아주 잠깐만 욕심을 더 내어서, 손을 뻗어도 될까?

내가 네 머리칼을, 감히 어루만져도 괜찮을까?

그 대가로 또 온통 하얀 방에 끌려들어가, 단 한 칸만의 달빛에 의지해 여생을 보내야 된다고 해도……

너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 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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