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가 눈을 뜰 때

자작 캐릭터 x 애인 캐릭터 판타지 퇴마물 창작

說話 by 傳達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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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는 모든 오컬트적 정보는 뇌피셜과 허구임을 밝힙니다.*

 

발을 들이면 들일수록 어두워지는 실내. 들리는 소리라고는 저 밖에 꽂아두고 온 깃대가 바람에 요란스레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 피부로 느껴지는 눅눅한 공기와 그것을 애써 헤치며 나아가는 가냘픈 등불. 저 끝에서부터 다가오는 역한 냄새와 그에 반응하여 토악질을 내놓는 몸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이성. 륜은 이 상황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하여 간절히 묻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께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이라.


“액귀요?”

덤덤히 되묻는 말에는 그다지 흥미가 묻어나오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는 더 열을 올리며 이 이야기에 륜을 끌어들였다.

“그렇다니까. 액귀! 예전엔 꽤 나왔는데, 요즘 들어 이상하게 자취를 감추나 싶더니. 글쎄, 요 한 달간 희생자가 스물이 넘는다니까.”

그래, 그렇군요. 고개를 주억거리곤 할 일에 집중하는 륜과 달리 상대는 좀처럼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낄낄대며 천장에 올라가는가 하면, 사무실을 빙 돌아 륜의 어깨에 털썩 앉기도 하고, 륜이 정리하는 서류 더미들 위에 눕기도 했다. 륜은 익숙한 손짓으로 잡귀가 누운 서류 더미를 헤쳐 원하는 자료를 찾아냈다. 잡귀는 몸을 뒤틀어 간지럽다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륜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경을 고쳐 올렸다. 그렇게 간지러우시면 다른 데로 가시던가요. 종이 위 촘촘히 박힌 잉크의 산물들을 훑어내리며 륜이 조용히 말했다. 잡귀는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떼곤 곧이어 하던 말을 계속했다.

“왜, 마음이 동하질 않아? 그 액귀도 잡귀라고 생각해? 꽤 큰 것 같대도?”

크겠죠. 한숨을 쉬며 륜이 잡고 있던 서류 뭉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의자에 몸을 푹 기대고 눈을 감은 륜은 생각했다. 애초에 희생자가 나왔다는 건 보통 잡귀가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더군다나 근 한 달간 스물이 넘다니. 아닌 게 아니라 꽤 클 것이다. 정화하는 데 힘 좀 빼겠는걸. 물론, 나 말고.

“그 지역 퇴마사가 알아서 하실 거에요. 왜 저한테 와서 주절대세요?”

그제야 잡귀는 심드렁한 낯빛으로 륜을 노려보았다. 자기 구역 아니라고 그렇게 흥미가 없었구먼? 그럼요, 지역 할당제가 왜 있는 건데요. 할 말 하셨으면 조용히 해주실래요. 확 작열부(灼熱符) 붙이는 수가 있어요. 아아, 미안해. 그냥 가만히만 있을게. 륜은 조금 인상을 쓰곤 허리를 곧게 폈다. 어딘가 미심쩍었다.

지역 할당제. 퇴마사 본부에서 각 지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퇴마하기 위해 세운 제도. 천여 년 전, 고맙게도 누군가가 각 지역의 귀기와 귀신 출현 빈도를 조사해 만들어 놓은 귀기현상도(鬼氣現象導)에 따라, 퇴마사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는 지역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방금 잡귀가 말한 지역은 귀기가 그렇게 센 지역이 아니었다. 그저 하천 지역에 하나쯤 있을 법한 작은 물귀신, 지나가는 사람의 발을 걸어 넘어트리거나 하는 할 짓 없는 미미한 잡귀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지역 퇴마사도 수행 수준이 그럭저럭 인 사람으로 배치되었다. 그런 곳에서, 희생자 스물이 웃도는 액귀가 나왔다?

륜은 눈을 번쩍 떴다. 거기 퇴마사 이미 먹힌 거 아냐? 어쩌다 생성된 원한이 깊은 액귀가, 수행력이 그럭저럭한 퇴마사를 야간순찰하는 틈을 타 먹어버렸다면? 아무리 수행력이 낮아도 지역을 배정받을 정도라면 영력이 적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퇴마사를 흡수하고 기하급수적으로 기가 세진 액귀. 관리하는 퇴마사도 없어졌다면 제 세상이 온 듯 날뛸 게 눈에 선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륜은 안경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옆에서 눈치만 보던 잡귀가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는지 실실 웃기 시작했다. 잠시 제가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가 싶더니, 가볍게 뛰어올라 륜의 바로 눈앞에 착지했다. 륜은 눈도 뜨지 않고 딱 한 마디를 내놓았다.

“소문 어디까지 퍼진 거예요?”

“네가 첫 번째일걸. 퇴마사 본부도 아직 전해 듣지 못한 모양새던데. 그 지역 주민들이 입 꾹 닫고 있으니 알 리가 있나.”

히죽 웃는 잡귀를 뒤로하고 륜은 집을 나섰다.


 

그으래서. 그래서, 그 뒤로 부족했던 신기(神器)들을 보충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하루. 그리고 오늘,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문제의 액귀 출현 장소를 방문한 참이다. 그런데 이게 뭐람. 륜은 위태롭게 떨리는 등불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본래 액귀란 원한을 품고 자살하여, 다른 이들조차 똑같이 목을 매어 자살하게 농락하는 치밀한 지박령이다. 그렇다면 어찌 되었건 자신이 목매어 자살한 그 나무에 매여 있어야 정상일 터인데. 어째서 나무뿐만 아니라 집터 전체에 귀기가 가득한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일단 부딪히자는 마음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륜은 지금 그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귀기가 넘실대는 것이 혼자는 어림도 없다. 아무리 경험으로 단련된 상급 퇴마사 륜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다. 륜은 본부에도 연락을 않고 달려온 자신을 거듭 질책했다.

순간, 바람이 아닌 무언가가 륜의 머리칼을 훑고 지나갔다. 륜은 품 안의 부적을 꼭 쥐었다. 여차하면 정말 부딪힌다. 이대론 개죽음이다. 나중에 본부와 연락을 취해 준비하고 오는 게 최선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여기서 나가야 한다. 영안으로도 보이는 게 없다. 기척을 지우는 데에 도가 튼 귀다. 륜은 한껏 영력을 곤두세우고 슬쩍 한 발을 뒤로 뺐다. 우지끈. 잠깐, 우지끈?

“으악!”

“으아아악!”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비명과 소리의 근원을 향해 날린 부적은 누군가를 끄집어냈다. 온통 어두운 실내에서 하얀색 범벅인 누군가는 영안을 쓰지 않아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륜은 뒤로 세 발짝 물러났다. 새로운 부적을 손에 들고서.

“당신이 이 귀기의 근원이군요, 정체가 뭐에요? 하는 짓은 액귀인데, 보아하니 액귀가 아니잖아요.”

상대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곤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한 손엔 륜이 날린 부적이 붙어 지지직거리고 있었다. 길게 내린 앞머리가 눈에 띄었다. 반쯤 가려진 표정을 알아볼 순 없었다. 그저 붉은 입술이 뭐라 뭐라 움직였다.

“말할 거면 제대로 말해요. 웅얼대지 말고.”

일부러 말에 힘을 주었다. 이어서 신속하게 부적을 날려 상대의 자유로운 손에 명중시켰다. 양손에 제동부(制動符)를 달고도 상대는 웅얼댈 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일단 공격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륜은 서두르지 않고 창가부(彰假符)를 손에 쥐었다. 상대는 약간 움찔하더니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확실히 액귀는 아니다. 그렇다면 멀쩡한 인간의 형상을 한 저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적을 들고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양손에 제한을 걸어놨으니 급작스레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유리한 건 자신일 것이다. 정확히 상대와 4걸음 떨어진 곳에서, 륜은 창가 부적을 날렸다. 그러나 륜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만약에―

“내가 손이 없는 귀면 어쩌시려고 부적을 손에만 붙이셨어요, 퇴마사님.”

륜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집채만 한 하얀 구렁이의 형형히 빛나는 자홍색 눈을 코앞에서 마주한 장면이다. 본래 요물이 사람을 홀릴 때 사람의 육신 중 1순위로 미혹되는 곳은 눈이라, 요물을 마주치면 절대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말고, 시선은 언제나 인중으로 두어라. 사람의 눈은 거울과도 같아서, 어떤 이의 눈을 들여다볼 때 나의 모습이 비치지 않으면, 그 상대는 필히 사람이 아니란다. 아득히 멀어지는 의식 속에 할머니의 말씀만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리곤, 암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같이 티 한 점 없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 퇴마사의 복장을 갖추고 신기를 잔뜩 두른 그가 이 집터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기척을 지우고 긴장을 놓치지 않은 채 쭉. 그는 퇴마사들이 으레 그렇듯 대문에 깃대 하날 꽂고는, 인간들이 목을 매단 앞마당 나무를 한참이나 살폈다. 그러곤 나무뿐만 아니라 집터 전체가 이상하다고 판단했는지, 갸웃대며 현관 앞에 섰다. 잠시 뭔가 꼼지락대더니 이내 작은 등불을 만들어 손에 쥐고 겁 없게도 성큼, 문턱을 넘어섰다. 뭐가 도사리고 있을 줄 알고. 헛웃음 지으며 어둠 속에 숨어 기척을 지웠다.

부러 어둠을 많이 깔았다. 괜히 휘말리지 말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 반, 발견해 주길 바라는 마음 반. 지켜보고 있자니, 잠시 뒤 떠날 요량인지 약간 뒷걸음질을 쳤다. 잠깐만, 그쪽 바닥은 나무가 썩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우지끈 소리. 그리고.

“으악!”

“으아아악!”

이 소리는 예상하지 못했다. 미처 기척을 지우는 일을 잊고 반사적으로 무작정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렇게 놀란 마음을 부여잡기도 전에, 저쪽에서 빠르게 날아드는 무언가를 손으로 쳐냈다. 아니, 정확히는 쳐 내려 했다. 급히 손을 살피니 날아든 건 제동부. 덕분에 한 손이 묶였다. 성격도 급하셔. 멋쩍어져선 조금 웃었다.

일단 양손을 들어 해할 의도가 없음을 밝혔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뭔가 이 만남은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다른 때였다면 벌써 삼키고 남았을 작고 작은 인간 퇴마사. 어째서 이 사람에게만은 자신의 무해함을 알리려 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왜지?

“...눈동자가 티 없이 맑아서?”

무의식적으로 중얼대곤 곧이어 날아든 두 번째 제동부를 다른 손에 맞이했다. 다행히 상대는 못 들은 듯했지만. 무안해서 몇 마디 더 웅얼거렸다. 그랬더니 상대는 품에서 창가부를 꺼내 들었다. 저거 던지면 저분만 손핸데.

주안은 구렁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구렁이. 몸뚱이는 하얗다 못해 순백으로 빛이 나고, 비늘은 유약을 바른 도자기도 가히 따라오지 못할 매끄러움을 지녔다. 크게 뜬 두 눈은 가늘게 끝을 맺었고 자홍색 눈동자가 달빛만큼 밝았다. 천 년간 세상의 음지에서 어둠을 먹고 명을 이어왔다. 자신보다 아둔한 요물의 귀기를 먹고 힘을 키웠다. 그리 쌓인 힘으로 몸집을 불리고 또 불렸다. 풀숲을 넘어, 사람을 넘어, 대문을 넘어, 기와집 한 채만큼. 크지 않으면 잡아먹히니까. 그게 음지의 불문율이니까. 주안은 맹목적으로 생존을 갈구했다. 누군가 말했다. 천 년을 산 요물은 더는 요물이 아니라 영물이라. 마음만 먹으면 인간이 되어 다른 이와 섞여 살아갈 수 있다고. 악착같이 살아내야 한다. 어떻게든 천 년을 살아내야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래야, 그래야지만.

하여간 주안의 손에 붙은 제동부란 정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의 모습에 부적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면 제동부는 그와 호환되는 부위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즉 손이 없는 요물일 경우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기만 하면 제동부는 그 힘을 잃고 떨어진다. 손이 있는 다른 요물이었다면 몰라, 하필 당신 앞의 요물은 손도 다리도 없는 구렁이에요.

상대의 손에 들린 창가부가 번뜩였다. 저도 모르게 조금 섬찟하여 고개를 돌렸다. 저게 날아오면 단숨에 전세가 역전되어 활개를 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외적인 힘으로 인한, 그러니까 부적으로 강제되는 변신은 언제나 기분이 그리 썩 좋진 않았다. 온몸이 불살라지는 듯한 환각은 덤이고. 자동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할 수 없지 않은가. 저 이는 늦든 빠르든 저 부적을 쓸 것이다. 눈을 살짝 감고 부적이 날아오길 기다리는 순간. 왔다, 부적.

몰려오는 현기증과 함께 잠시 온몸이 마비되는 듯하더니, 이내 시야 가득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하얗게 물드는 시선을 힘주어 바로 했다. 제동부는 기세에 날아가 떨어져 버린 지 오래고, 커지는 몸뚱이는 갑갑한 실내를 꽉 채워 여차하면 집을 부술 듯했다. 가엾은 퇴마사님, 어쩌다 이곳에 오셨나요. 자유로운 신체를 한 차례 부르르 떨곤 어벙하게 자신을 향해 서 있는 퇴마사 쪽을 돌아보았다. 부적을 쓸 새조차 빼앗긴 듯한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 버렸다.

그래, 제아무리 상급 퇴마사라 하여도 생전 이렇게 큰 요괴는 처음이실 테니. 그래도 골려주고 싶은 심정은 어쩔 수가 없는 터라, 대뜸 머리부터 들이밀곤 무어라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나 이미 넋이 나가 보이니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미지수다. 자신이 홀리지 않아도 얼마 후면 혼절할 듯했으나, 주안은 구태여 그 맑은 눈앞에 제 큰 눈망울을 디밀었다.

시선이 서로 얽혔다. 마주 보니 더욱 맑구나. 되려 천 년을 살아온 제 눈빛이 먼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주안은 잊고 있던 무언가를 갈망하듯 눈을 한껏 빛내고는 집중했다. 깔려오는 주변의 침묵이 그런 자신을 비웃듯이 짓눌렀다. 이 맑은 눈은 언제까지고 이렇게 눈빛을 헤집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오래, 더 깊이.

 돌연 맑은 눈이 약간 흐릿해지나 싶더니, 까무룩 뒤집혀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주안은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이를 살폈다. 아직 혼이 미약하게 남아있다. 조금만 더 마주하고 있었다면 혼을 모두 앗을 뻔했다. 누군가를 홀릴 때 자신까지 이렇게 빠져든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수차례 심호흡을 하고선 다시 인간의 형체로 둔갑했다. 아무래도 인간을 간호하려면 인간의 모습이 편했으니.

자, 이제 이분을 어찌한담. 길게 내린 앞머리를 슬쩍 옆으로 치우면서도 주안은 상대에게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의복을 보아 꽤 상급인 듯하고, 달고 온 신기나 쓰는 부적이나 모두 영력이 심상치 않게 들어갔다. 그에서 나온 무모함인지, 상부에 따로 보고는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온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깥이 지금까지 조용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홀로 성급한 행동을 하셨을까?

힘없이 축 늘어진 몸을 그나마 멀쩡한 침소로 옮기면서도 생각은 멈출 길이 없었다. 이 지역에 진을 치고 있으며 본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변 지역 퇴마사도 아닐 것이고, 이런 수준의 퇴마사라면 배정받는 지역이 보통 귀기가 넘치는 곳이 아닐 테지. 귀기가 강한 곳은 이 지역에서 제일 가깝다고 쳐도 십오 리가 넘었다. 뭐 퇴마사야 영력을 사용하여 이동해오니 거리가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먼 곳의 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있냐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들려서 달랑대던 소맷자락에서 돌연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물에 젖은 종이 인형 같은 이를 침소에 가만히 내려놓고 돌아와 정체를 살폈다. 어느새 저무는 날에 대응하여 노을빛을 받아 빛나는 동그란 물건. 주워들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옥패네. 정교하기도 하지.”

“네, 맞아요.”

언제 일어났는지 침소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이가 보였다. 아직 눈이 조금 흐릿한 것으로 보아 홀려있구나. 지속 시간은 기껏해야 한 식경 정도일까. 해가 완전히 저물면 정신을 차리겠구나. 다시 옥패로 눈을 돌려 찬찬히 살폈다. 귀한 물건이다. 세월의 흐름을 맞이하여 조금 변색하긴 했지만, 그 자체로도 아주 고왔고, 말마따나 정교히 조각된 정향이 아름다웠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피니 새겨진 이름자 하나가 보였다. 륜, 인가. 륜. 이게 이름이구나. 이름을 알았다. 괜스레 올라가는 입꼬리가 새초롬했다.

“돌려주세요.”

꽤 소중한 물건인지 홀린 상태인데도 집념이 있었다. 천천히 내미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져봤자 소용없는 물건이다.

“그럼요, 드려야지요. 귀한 물건 같은데. 누가 줬어요?”

“…할머니께서요.”

소중히 받아들곤 망설이며 말하는 모양이 퍽 풋풋하다. 아깐 부적을 날리는 모습이 노련해 보였는데. 문득 나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더는 무언가를 물을 수 없게 되었다. 예상한 한 식경보다도 더 빨리, 해가 떨어졌다. 흐릿했던 눈빛이 제자리를 찾아오고 있었다. 아쉽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 싶은데.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상대의 눈이 맑은 빛을 띠었다. 아쉬운 듯 비쳐 들어오는 달빛만을 눈으로 좇다가 숨을 내쉬었다. 더 기운을 차리시기 전에 비켜드리자.

먼지가 내려앉는 허공을 갈라 기척을 숨겼다. 천 년간 더없이 무언가를 이토록 바라본 적은 오랜만이다. 오늘은 참 오랜만인 것이 많다. 다음을 소망하며 이름자를 되뇌었다. 륜. 륜. 소리 내어 말하니 간질간질한 것이 썩 좋았다. 


“...뭐야.”

정신을 차리니 침소다. 쓰러질 땐 분명 나무로 된 딱딱한 바닥이었는데. 어느새 옷소매 안을 벗어나 제 손에 들린 옥패도 그렇고, 사라진 구렁이도 그렇고,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잠깐, 구렁이!

황급히 바닥으로 내려와 주변을 살폈다. 아깐 그렇게 넘실대던 귀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시간은 흘러 벽 틈새로 새어 들어오던 햇빛은 달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륜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제가 가져온 신기들의 상태를 살피곤 밖으로 나왔다. 신기들은 손댄 자국 없이 깔끔했고, 마당에는 귀기는커녕 액귀의 소행으로 생각했던 나무마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홀려 헛것을 보았나, 지금 홀려있는 건가. 괜히 고개를 세차게 저어본들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마당에 무성히 널린 달빛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무는 것뿐이었다. 집에 들어올 때 꽂아 둔 깃대를 빼 들고 륜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퇴마사는 먼 지역을 이동할 때 몸소 걷거나 말을 타지 않는다. 아니, 탈 필요가 없다. 그야 영력을 사용하여 순간 이동 주술을 쓰면 그만이니. 하지만 륜은 곧 자신이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무슨…, 영력이 적다니?”

륜은 자신의 손을 바로 보았다. 느껴지는 영력이 꽤 미미했다. 륜은 미간을 찌푸리곤 구렁이 요물을 떠올렸다. 마주 보이던 그 형형한 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홀렸기로서니, 이렇게 혼을 한 번에 많이 앗아가는 요물을 보았나! 그 작자가 정녕 날 죽일 셈이었을까! 침소에 옮겨 둔 행태로 보아 그럴 작정은 아니었던 듯한데. 그러나 죽이려던 게 아니고서야 영력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퇴마사를 이리 놔둘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게 아니면, 설마, 다른 재미를 원했던 것일까. 굳이 침소에 옮겨놓은 것이 설마…. 그렇게는 안 봤는데.

“…성불도 못 할 요물 같으니.”

작게 닿지 않는 험담을 뇌까리고 륜은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륜은 제 앞에 선 상사라는 타이틀을 단 밉살스럽기 그지없는 이를 바라보았다. 퉁명스러운 눈이 자신을 향했다. 그의 퉁퉁 부은 듯한 붕어 같은 입술에서 나온 말은 이러했다.

“지난번에 본부에 연락도 안 넣고 단독 행동을 했지?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퇴마에 성공하지도 못했고, 얻은 정보는 하나도 없고, 되려 홀려서 오다니. 정신이 있어, 없어! 상급 달고서 왜 처리가 그 모양이야? 게다가 네가 봤다는 그 구렁이 요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선 나오질 않아. 본부에서 지시하길 네가 책임지고 이 일 끝내라더라. 조수 하나 붙여줄 테니 둘이 알아서 끝내!”

“아무리 그래도 둘은 조금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 요괴가 얼마나 컸는데요. 생전 그렇게 큰 요괴하고 강한 귀기는 처음이었어요. 적어도 수백 년은 묵었을 건데 고작 둘이요?”

기가 막혀서 따지려 드는 륜을 상사는 귀찮다는 듯이 무시했다. 인제 그만 가보라는 무언의 압박에 륜은 입을 비죽이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둘. 둘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이런 지시나 받으려고 본부까지 온 줄 아나. 저절로 아파지는 머리에 손을 짚고 앓는 소리를 내던 찰나였다.

“륜, 홍륜 선배님. 맞으시죠?”

멀찍이서 들리는 제 이름에 고개를 들어 상대를 살핀 순간, 륜은 기함했다. 그것은 절대 본부에 와서까지 저를 알아보는 이가 있기 때문도 아니었고, 예상치 못한 호칭에 어색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제 이름을 능청스레 부르며 다가오는 얼굴이 낯익었기 때문이라. 아, 사실 얼굴이 낯익다기보다, 눈빛이 익숙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또 보네요. 이렇게. 여기서.”

어차피 앞머리로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으니까. 륜은 오늘은 재수가 옴 붙은 날인 것 같다고 마음속에서 소리쳤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상대, 아니, 요괴는 잘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미소가 입에 걸렸다. 거기에 상급 퇴마사 복장까지. 설마 본부에서 붙여준다던 조수가, 이 요괴였단 말이야? 륜은 내색하지 않으며 서둘러 상대의 손목을 낚아채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뭐가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잖아요.”

“어떻게 만들었을 것 같은가요?”

“설마, 다 홀린 거예요? 본부를 모조리? 다?”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상대를 보며 륜은 혀를 내둘렀다. 퇴마사 본부는 이미 당했다. 그렇게 모질게 책망을 하더니, 결국 자기네들도 홀렸다. 아무도 모르게. 여기 이 구렁이보다도 더 능구렁이 같은 고참 선배들이 널렸는데, 본부에 똬리를 틀고 좀처럼 얼굴도 안 비치는 그 양반들마저 죄다 당했단 말인가. 방금 전까지 상사에게 깨지고 왔다지만 륜은 한순간 본부의 그 늙다리들이 그리워졌다.

그러니까, 제 눈앞의 이 자는 아무래도 여간 강한 요괴가 아닌 듯했다. 뭐 이런 요괴가 다 있지? 한숨을 푹 내쉬는 륜을 보더니 상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터지는 속도 모르고 연신 실실 웃더니, 곧 옷자락을 잡아끌어 인적 드문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해요? 목적이 뭐에요?”

“그냥, 우리 퇴마사님 다시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본부로 가서 이름자 하나 댄다고 퇴마사님을 내 눈앞에 데려다줄 리는 없잖아. 그래서 그랬어요.”

“누구 하나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어쩔 작정이었…. 잠깐만. 이름? 내, 내 이름을 어떻게 먼저 알아요? 본부에서 알아낸 게 아니었어요?”

“정신 차리면 별 수 있나요. 먹어야지. 그 왜, 저번에 기억 안 나요? 정향 새겨진 옥패. 거기 새겨져 있던데요, 고운 이름 하나.”

능청스레 대답하는 모양에 드디어 생각났다. 정신을 차리니 왠지 모르게 손에 쥐어져 있던 옥패. 다시 소매 안에 넣으면서도 의아하던 차였다. 그게 이 자 때문이었다니. 떠오르는 지난번의 기억에 잊고 있던 분노가 되살아났다. 이를 악물고 제동부를 꺼내 들었다. 그 손짓을 보고 있는 상대의 입꼬리에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아. 잠깐만요.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왜 이렇게 급해요. 저 도망갈 생각 없는데. 내 말은, 그거는 안 써도 된다고요. 지금 꺼낸 걸 비롯해서, 품에 숨겨진 모든 부적 전부. 아시다시피 부적 붙으면 기분이 썩 좋지가 않….”

“왜 안 죽였어요? 영력이 전부인 퇴마사한테 혼을 그렇게 앗아갔으면서, 왜 팽개치고 갔냐고요. 죽일 거면 깔끔하게 먹던가, 처리하고 가던가. 침소에 옮겨놓은 건 뭐냐고요. 대체 당신은 뭘 하고 싶은 거예요?”

흡사 따발총같이 쏘아대는 말들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상대의 손이 이리저리 바람에 나부꼈다. 어버버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이게 정말 본부를 전부 홀린 요괴가 맞는가 잠시 잊을 정도였다. 어디 보자, 구렁이 요괴니 팔이나 다리에 부적을 날려본들 저번처럼 힘없이 나가떨어질 뿐이니, 이번엔 몸통에 적중시키면 되겠구나.

그저 본부에 오려고 했던 터라 호신용 부적과 상대의 움직임을 지체시키는 가벼운 부적을 제외하고는 품 안에 든 것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성불은 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이 정도 요괴라면 저 혼자 성불시킬 수도 없었다. 아무리 어려서부터 영력이 타고난 륜이라도 버거운 존재, 그것이 눈앞의 존재였다.

“뭔가를 물어볼 땐 한 번에 하나씩 좀 물어봐요. 도망 안 간대도. 음, 그러니까 첫 번째 답. 그게, 아, 음…. 의도한 게 아니었어요.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홀려서 돌아가게 하려고 했단 말이야. 근데 그….”

무언가 살짝 곤란한 듯이 말꼬리를 흐리고는 상대는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부적을 든 손을 추어올리니 그제야 결심한 듯이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고 입을 뗐다. 익숙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익숙한 자줏빛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으면서도 흐린, 마주 바라봐도 내 모습이 비치질 않는.

“…퇴마사님 눈이 너무 맑아서, 홀리긴커녕 제가 홀린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맑은 눈은 처음이라.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쓰러지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 그런데 정말, 이렇게 그댈 무작정 다시 찾아온 걸 보아하니, 제가 홀린 게 맞는 듯싶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지금 헛것을 듣나? 륜은 의아한 눈초리를 상대에게 고정했다. 다 말해놓고 손을 꼼지락대는 것이 거짓은 아닌 모양인데, 뭐 이런 이야기가 다 있어. 세상에 사람 홀리는 요괴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물며 수백 년은 족히 살아온 듯한 요괴인데 제가 뭐라고 홀린다는 건지. 지금 이것도 수작 아니야? 의심스럽게 바라보자, 뜸을 들이던 상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답. 저도 당황했어요, 이런 적이 천년 살아오면서 처음이라. 자제력은 꽤 좋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의도치 않게 사람이 쓰러졌잖아요. 뭐, 륜 씨라 그렇지 다른 일반인이었다면 거기서 명이 다했겠지만. 어쨌든, 딱히 죽일 생각 없었고 그 음기 가득한 찬 썩어빠진 마룻바닥에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으니 어딘가 멀쩡한 곳에 옮겨드려야겠다, 싶었어요. 눈에 띈 게 침소였고. 깨어나시면 알아서 돌아가시겠거니, 했는데 영력 문제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네. 그건 미안해요. 이제 모두 답이 됐을까요?”

고분고분하니 정말 해할 의도가 없어 보이는, 사실은 천년 묵은 구렁이 요괴라니. 뭐 이런 요괴가 다 있지, 진짜. 륜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에게 달라붙은 골칫덩어리를 바라봤다. 가지런한 하얀 속눈썹이 가늘게 떨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덧붙여왔다.

“하나 더. 제 이름 주안이에요. 저만 이름을 알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 이제 당신 말고 이름으로 불러요, 륜 선배님.”

어휴. 진짜 이걸 어쩌지. 천진난만한 이 사람, 아니, 요괴를 어쩐담. 퇴마사 복장을 들어 보이며 빈껍데기뿐인 조수 역할에 쓸데없이 충실한 호칭에, 깊은 시름만 더해가는 륜은 앞으로 피곤한 하루가 이어질 것을 직감했다.


다시금 보고 싶었다. 빠져서 평생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던, 황홀하다는 말까지 붙여도 손색없을 그 눈동자를, 다시. 천년을 지켜온 원래의 소망은 씻은 듯 사라지고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급기야 그 사람을 만나려 천년의 명을 이어온 게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잡생각까지 떠올랐다. 그래서 액귀의 소식을 듣고 무작정 저를 찾아온 그 퇴마사처럼, 자신도 맑디맑은 눈동자를 쫓아 무작정 퇴마사 본부에 발을 들였다.

외부인의 복장을 하고 본부에 다짜고짜 찾아와 이름자 하나를 애타게 찾는 정체불명의 이. 날 의심해도 좋아요, 하고 홍보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개미집을 빠져나오는 무수히 많은 개미를 집어삼키는 개미핥기처럼, 주안은 마주치는 하나하나의 퇴마사를 모조리 홀려버렸다. 사실, 어떻게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명색이 본부니 상급 퇴마사뿐임은 물론이고 수십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퇴마사들이 수두룩했다. 자신이 어떻게 그 전부를 홀린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마치 잡아먹히지 않으려 몸집을 불리길 갈망했던 예전의 자신처럼, 오직 이름자 하나를 생각해내며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그런 후에는 적당히 하나의 구실을 꾸며내어, 륜에게 다가갈 방도를 마련했다. 상급 퇴마사복도 슬쩍 가져와 갖춰 입고. 그래, 그렇게 다가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상황을 어쩌지. 주안은 그다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하지? 퇴마사 하나, 요괴 하나로 꾸려진 이 이상한 조합의 목적은 요괴인 자신을 잡는 것이었으나 애초에 그 두 명 중 하나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 조합을 구성하길 지시한 본부마저 자신이 홀랑 홀려버렸으니, 사실상 할 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순간에 백수가 되어버린 둘은 그저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견디지 못해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주안이었다.

“선배님, 이제 뭐 할까요, 우리?”

“우리? 언제부터 그쪽하고 제가 우리였어요?”

헛웃음 치며 되묻는 륜에 주안은 싱글싱글 웃어 보였다. 거 참, 이름으로 불러 달라니까 말 되게 안 들어주시네. 긁적이던 주안은 곰곰이 생각하곤 무언가 생각난 듯이 입을 뗐다.

“저한테 궁금한 거 더 없어요?”

“네?”

“아니, 할 일도 없어졌는데 이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이제 아군인데. 궁금한 거 속에 담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요. 저한테 물어보실 거 더 없으면 제가 질문할,”

“왜 액귀의 소행으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한 거예요?”

빠르다. 군말 하나 없이 바로 치고 들어온 질문에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청명한 햇빛 아래 주안을 바라보는 륜의 눈동자는 지난번 낡은 집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욱이 빛을 발했다. 그 빛을 마주 보고 있으면 주안은 어째서인지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인적 없이 고요한 공터 가운데, 풀잎을 훑어가는 바람 사이에서, 주안은 또 한 번 륜의 눈동자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었다.


드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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