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5까지 스포일러: 주인공 밀레시안과 톨비쉬가 나오는 적폐 날조 단문
C6 신의 기사단, C7 아포칼립스 외 메인스트림 전반 스포일러 포함
지인 분의 회지에 축전으로 드린 단문입니다.
주인공 밀레시안과 톨비쉬의 만담이 있습니다. !! 커플링 요소가 없습니다. !!
C6 신의 기사단, C7 아포칼립스의 주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외 메인스트림 전반에 대해 스포일러합니다.
G25 이후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타이틀 「새벽을 비추는 별」을 습득 후 열람을 권장합니다.
※ 타 플랫폼에 업로드한 것과 동일한 글입니다.
사슬에 묶인 월석이 떠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바닥에 내려선 밀레시안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이놈의 방향 감각은 제멋대로라, 그들은 늘 두리번거리는 듯 보인다. 푸른 들판에 자박거리는 발걸음만이 빠르게 스쳤다.
베그 절벽에 깔린 건 풀이고, 이건 나무고, 그건 허구한 날 크리그를 때려잡기 위해 두들기는 바위다. 밀레시안도 성소에서 ‘돌아온 밀레시안’이 아니라 ‘돌 밀레시안’이 되었으니 참 감명 깊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듀얼건을 몇 번 쏘면 나가떨어지는 저건 한창 기사단원들과 함께 선지자를 추격해 움직이던 때, 밀레시안의 머리를 잘근잘근 씹어 먹던 와이번이다. 금방 새로운 녀석으로 자리가 채워지니 의미 없는 실랑이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밀레시안은 성소로 향하는 문을 넘는다. 벽을 건넌다. 세계의 부하가 심할 때는 3초 이상 빛에 적응해야 한다. 차원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천천히 형체를 구성한다. 선명한 풀 내음이 끼쳤다. 아무리 잘 관리되어도 일상적으로 사람이 오가지 않는 곳은 특유의 고즈넉함이 있다. 밀레시안은 가방에 손을 넣고 뒤적였다. 이내 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마침 잡화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미끼통도 있다. 자리만 잘 고르면 되는 일이다.
“…….”
여신을 구하고, 그림자 세계의 위기를 막고, 별별 적을 다 마주하면서 세계를 구한 밀레시안도 못 하는 일이 있다. 이제 빈 병을 들고 우물에서 손이 미끄러지는 일 같은 건 없는데도 어려운 일이 있다. 바로 수동 낚시다. 이놈의 물고기는 어찌나 힘이 좋은지, 방향이나 힘 조절을 조금만 실수해도 빠져나가 버린다.
“…….”
그리고, 이렇게…. 기껏 힘들게 낚았더니 나뭇가지 같은 것만 걸리니 보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행위다. 밀레시안은 슬슬 모든 기대를 놓고 운에 낚시 결과를 맡기고 싶어졌다. 벨바스트에서도 그렇고, 에린의 수질 오염이 너무 심각한 것이 아닌가? 화분이며 온갖 인형, 여우랑 싸우는 닭에게 줘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병아리 눈물만 한 포션들, 심지어 진짜 쓰레기까지 낚을 수 있다. 밀레시안은 다시금 에레원에게 ‘우리 바다 푸르게 푸르게’ 운동을 제안해야겠다고 다짐한다.
“…….”
“…….”
미끼는 아직 쓰지도 않았다. 물가에 빈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대로 꺼냈다는 뜻이다. 끓이기 요리할 때 쓰는 국자가 냄비 속에 더 오래 잠겨 있겠다. 불편하게 쭈그리고 앉아있던 밀레시안은 제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한 한 쌍의 낫이 그림자로 내리꽂혔다. 이렇게 보니 살벌한 실루엣이군. 누가 어둠 속에서 보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겠냐. 그는 핀잔을 주는 대신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웬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대?” “누군가 허튼짓을 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여기에 있으면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거 참…. 쉽지 않은 답이다. 그는 갑자기 피곤해진 눈치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용 중인 스킬을 취소할 정도의 틈, 한 번의 망설임이면 충분했다.
“그런 건 아니니까 그렇게 보지 마.”
밀레시안은 변명했다. 오랜만이지? 라고 첨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찬란한 금발을 가진 청년의 시선이 낚싯대에 닿는다. 그는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고개만 조금 기울여 보이는 것이다. 문제라도 있냐는 듯한 뻔뻔한 낯을 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꽤 많았다. 알터라면 몰라도, 톨비쉬에게 성소에서 낚시하려다 들켰다니. 아벨린이 이마를 짚고 카즈윈이 웃을 일이다. 이 밀레시안은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위기감 없이 휴식 중이었지만.
“낚싯대는 벨바스트에서 던지는 편을 추천해 드립니다. 설마하니 당신이 내려가는 길을 모르지는 않을 거고요.”
“그렇지만, 물이 있으면 해보고 싶지 않아?” 낚시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청년이 선선히 수긍하자 밀레시안의 눈길이 다시 올라간다. 올려다본 톨비쉬는 어느새 낚싯대를 들고 있다. 그는 낚싯대를 든 모습에서 엘베드 조장 갑옷을 다시 떠올리려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한때는 그 모습으로 마주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때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떤 현실은 꿈보다 흐리다. 하지만 몇 번을 돌아와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밀레시안은 말했다. “돌려줘.” 낚싯대 하나밖에 안 들고 왔거든. 덧붙인 말은 웃음 같이 들렸다. 그러겠습니다. 돌아온 답도 그 장난에 어울려 주는 듯 가벼웠다. 두 손으로 받아 든 길쭉한 나무 막대는 고귀한 검이라도 되는 것 같다. 나 이거 무릎 꿇고 받아야 하는 거 아니지. 너스레 떠는 밀레시안에게 무어라 말하는 대신 톨비쉬는 손을 거두었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좋아했던 모양이야. 낚시하는 거.”
“돌이켜보자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말 안 듣는 밀레시안 하나는 낚은 것 같군요. 내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엇. 낚싯대를 들고 까딱거리던 손이 멈췄다. “나 낚였어?” 현장 검거는 당하셨지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시선이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는 괜히 눈을 돌려 애먼 해골들이나 바라봤다. 이것들 떼놓고 오면 안 돼? 부담스러운데. 종알대며 그런 투정이나 부리는 것이다. 밀레시안은 간과했다.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하게 들어줄 상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땅에 내려서지도 않은 청년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호자의 심복을 물렸다. 그의 아연한 표정은 덤이었다.
그리고 긴 침묵.
밀레시안은 미약하게 항변했다. “네이드 때문에 낚시 금지라는 아브 네아 호수도 낚시할 수 있던데….” 성소라고 너무 깐깐하게 구는 거 아니냐는 소리다. 하지만 성소가 왜 성소겠는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명제에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찬란하게 미소 짓는 청년의 모습이 이렇게 얄미운 적이 없었다. 심지어 팔라라의 빛이 은은하게 내려 정말 환하게 보였다. 밀레시안은 죄 없는 모자만 깊게 눌러썼다.
“알겠어, 복어 낚으러 갈 거야.”
“벌써 돌아가는 겁니까? 다음에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밀레시안은 투덜거리는 척하며,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그랜드마스터 모험가가 되기 너무 힘들다는 둥, 레자르 양심이 없는 거 아니냐는 둥 궁시렁거리며 몇 걸음. 그리고 갑자기 돌아섰다.
“다음에는 알반 엘베드에 맞춰서 올게. 낚싯대 두고 올 테니까 그때는 쫓아내지 말라고.”
그는 꾸준히 괜한 소리를 한마디 더 했다. 손을 흔들어 보인 인영은 문 너머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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