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결백.
이쪽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인 존재를 생각해 봐. 그걸 궁금해할 정도로 결백해?
이후로 몇 번 유즈리하 양의 날선 물음과 자신의 대답을 곱씹었다. 나, 그 아이에게 제대로 대답해준 걸까.
유즈리하 양은— 스스로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적어도 내 인상으로는 확신에 가까웠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못하는 반푼이인 삶을 오래도 살아오면서 느낀 건,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라는 거였다. 어떤 죄는 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그렇게 되도록 쌓아올려진 것이 분명히 있어서, 개인을 단죄하는 것으로는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결벽을 원했다. 불가능한 결벽이기에 긍정을 원했다. 긍정을 원했기에 명분을 원하고— 그게 곧 간수 군의 목을 조르는 행위가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둘다 상처입을 것이 뻔했다. 스스로의 잣대로 스스로를 책망하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꼴이었다.
스스로도 결백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애초에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니까. 서로의 합의, 약속, 지향, 그 모든 걸 처음부터 속이고 있던 건 나였으니까. 그렇지만 밀그램의 시스템은 ‘유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용서’를 따지는 거라서. 그 다면에서 참작의 여지를 읽어내는 과정이라서. 간수 군이 내려야 하는 건 판단이지 판결이 아니라, 유즈리하 양과는 애초에 같은 곳을 목표할 수 없다. 그 지점을 알아줬으면 했다.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하다고 깨달아야 비로소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되니까. 완전히 깨끗한 사람 같은 건, 세상에 있을 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악인’이라는 표현은 인정할 수 없었다. 노력한 것 때문이 아니다. 나 같은 것의 감정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이 마음을 악행이라 규정한다면 인간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어버리니까. 아무도, 꿈을 꿔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하게 되는 거니까……. 그 논리는 유즈리하 양 본인을 찔러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을 기어가고 있으면 달려가서 구해주는 게 당연하다고도 하지 않는가. 적어도 [인간]들은 마음껏 꿈꾸기를 바라는 상냥함 정도는, 내게도 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스스로의 결백하지 못함을 경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것도 재수없다고 생각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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