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요우리코 교류회] 세레나데
해당 글은 코시국의 도래로 인한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온라인으로 2021년 3월 13일에 개최되었던 '제2회 요우리코 교류회'의 게스트북에 제출했던 원고로, 당시 교류회 원고의 주제는 '교환일기'였기에 그에 맞춰 작성되었습니다.
펜슬에도 업로드한 '너를 위한 세레나데'(https://penxle.com/greenscarfcat/1517522077)와 연결되는 글입니다.
20XX. 12. 7.
안녕 요우쨩? 한창 바쁘던 도내 ‘여성 피아니스트 11인 순회 연주회’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어. 나 혼자였다면 절 때 서지 못했을 많은 객석 수를 보유한 홀 들에서 연주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어. 항상 무대에 오를 땐 긴장이 돼서 손이 저린 듯한 착각이 드는 날도 있었는데, 정말 자신이 없던 날엔 객석에 요우쨩이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연주를 해봤어. 마침 그날 연주했던 마지막 곡이 요우쨩이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 그 곡이어서 유독 요우쨩 생각나더라. 돌아오면 꼭 무대에서처럼 완벽한 연주로 들려줄게.
20XX. 12. 10.
하루에도 수십번씩 요우쨩이 보고 싶어. 한가해지니까 더욱. 요우쨩이 출항한지 벌써 1달쯤 지났구나. 씩씩하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니깐 사실은 좀 외로워.
그래도 오늘 드디어 이주 만에 연락이 닿았네? 사진 전송이 원활했다면 오랜만에 요우쨩 얼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마침 오늘, 요우쨩이 마음에 들어 하던 그 속옷 입고 있었거든. 사진을 본 요우쨩 반응이 보고 싶었는데.
ps. 찍어둔 사진은 지우지 않고 뒀어. 얼른 돌아와서 봐줬으면 좋겠네.
“리코쨩.”
“응?”
“잠깐만 이리로 와 줄 수 있어?”
“무슨 일이야? 요우쨩?”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음, 잠시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싱크대에서 설거지할 식기들을 정리하고 있던 리코는 그릇을 내려놓고 손을 씻은 뒤, 그가 앉아있는 거실 소파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맑은 바닷빛으로, 일렁이는 눈동자와 살짝 붉어진 볼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요우와 마주했다.
“사진, 아직 그대로 있어?”
“무슨... 사진?”
“여기...”
요우는 검지손가락으로 ‘그 사진’에 대해 쓰인 일기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기장을 건네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요우가 일기장을 다 읽은 뒤에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란 판단을 내려 두었던 리코는 한 번 더 요우의 표정을 살폈다.
이 일기장은 요우가 6개월의 장기 항해를 다녀오는 동안 홀로 도쿄에 남아있던 리코가 외로움을 달랠 겸 틈틈이 써온 일기였다. 그도 연주회와 음반 작업을 비롯한 크고 작은 일정이 지속되어왔기에 매일은 아니었지만, 틈틈이 페이지를 채웠다. 사흘 전에 집으로 돌아온 요우는 어젯밤에야 침대에 마주 누워있던 리코에게 이 일기장의 존재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야기를 듣자마자 요우는 나른한 몸을 일으켜 일기장의 위치를 물어대며 찾으려 했고 가만 누워 그런 제 연인을 바라보다 싱긋 웃고는 조금 느린 듯한 몸짓으로 제 품에 요우를 꼭 끌어당겨 안으며 밤이 늦었으니 이만 자고 일어나서 식사한 뒤에 보여주겠다고, 리코는 그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피곤한건 사실이었기에, 그리고 연인의 품을 좋아했기에 요우는 이에 순응했고 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깐의 짧은 키스를 나눈 뒤, 그렇게 잠을 청했었다.
전날의 속삭임대로 리코는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일기장을 찾아와 요우에게 건네주었고 본인은 오늘의 설거지 당번이므로 부엌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이 쓴 일기지만 그것을 읽고 있는 제 연인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건 부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맑은 바닷빛으로 일렁이는 눈동자와 살짝 붉어진 얼굴과 귀 끝. 리코는 이런 요우의 표정을 고등학생 때부터 매우 귀엽다고 생각해왔다. 비록 이제는 서로에게 매우 익숙해지기도 했고 나이도 들어서인지 그때보다 횟수는 줄어든 것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휴대폰에 잘 저장되어 있는 ‘그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일기를 읽는 흐름도 끊길뿐더러 설거지도 제때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 응, 요우쨩 보여주고 싶어서 찍은 거였으니깐.”
“보고 싶어!”
“좀 있다가 보여줄게~”
“어째서? 지금 보고 싶어, 리코쨩!?”
“있다가~ 다 읽고 난 뒤에 보여줄게”
“지금은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것까진 아니지만 요우쨩이 일기를 다 읽어준 뒤에 보여주고 싶어. 지금 보여주면 흐름이 끊길 것 같거든...”
살짝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눈을 피하는 듯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리코를 보며 요우는 그 의중을 알아챘다. 둘이 함께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꽤 되었다. 비록 항해 일정으로 인해 리코 혼자 집을 지킨 시간이 그 시간의 반에 육박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시작해서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지내오고 있었기에 비언어적 메시지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대의 감정이나 기분을, 때론 생각마저도 캐치해 낼 수 있었고 이런 리코의 눈빛과 태도는 100% 확률로 ‘그런 사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우는 더 요구하지 않고 일기를 마저 다 읽어주길 바라는 리코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 내렸다.
“알았어. 리코쨩이 그렇게 얘기하니깐, 마저 읽을게. 리코쨩도 얼른 설거지하고 와!”
“응! 요우쨩.”
살짝 미소 지어 보이더니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부엌을 향하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요우는 그 사진에 대한 궁금증을 애써 눌러내고 다시 일기를 마저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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