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감쳐문 슬픔을 먹고 자라는 마음에게

1.5 오리지널 (w.태인)

너는 일만 중요하지. 

내가 너한테 중요하긴 해? 

너는… 연애하기에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만 너 사랑하는 것 같아서 힘드네.

입관 후 경험한 연애가 하나같이 비슷한 내용의 말로 끝을 맞았다는 건 아무래도 저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어쩌면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유는 아닐지도 몰랐고. 물론 이에 대해 할 말이야 많았다. 먼저 다가온 상대에게 희연은 선을 그었고, 원하는 크기의 마음을 되돌려줄 수 없으리라 예고했다. 밀어낼 만큼 충분히 밀어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확언하며 기어이 희연의 손을 잡았었다. 내가 너를 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내가 그만큼 네게 더 주면 된다고. 지금 그들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희연은 묻고 싶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뭐,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을 구태여 하나하나 곱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희연이 타인과 긴밀한 관계를 쌓아 올리는 과정에 지독한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니까. 몇 번을 밀어내도 고집을 부려 연인의 자리를 꿰차고 앉은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걸 바라다 종내엔 그들 스스로가 희연의 최우선 순위가 되고자 하더니, 원하는 위치를 점하지 못하면 약속이라도 한듯 희연을 탓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며. 뭐든 이해할 수 있다며? 그런데 왜 하나같이 다 내 일 순위가 되려고 하지. 내겐 당신들보다 중요히 지켜야 할 옳음이 있는데.

연애를 하는 기간만큼은 희연도 연인으로서 충실하려 노력했다. 그중엔 상대를 제법 좋아한다 느꼈던 경우도 있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같이 만드는 추억에 설레고 가슴이 떨리기도 했으나, 그 어떤 순간도 비상 출동 알림을 앞설 수는 없었다. 긴급 알림이 핸드폰을 울리면 희연은 어김없이 호출에 응했다. 한이관의 요원이 된 이후 그 무엇도 센티넬로서의 일 앞에 내세운 적이 없었다. 그 결정은 오롯한 제 선택이었고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저 하나와 불특정 다수의 일상을 저울에 놓고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무거울지는 자명한 일 아닌가. 기실 무게를 재어볼 종류의 문제도 아니었다. 뭇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센티넬 사희연이 옳다고 믿는 방향이었으니까. 

그렇게 네 번째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은 이후 대부분의 순간에 혼자라는 사실은 희연에게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제게 있어 일과 일상은 칼로 자른 듯 나누어질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적게 배분하면 할수록 외로움이나 위태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어차피 이능력이 발현하기 이전의 인연들도 모두 잘라냈으니 일 외적인 일상에 시간을 써야 할 구실도 드물었다. 일에만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어 차라리 편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한 대로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인 것도 사실이라. 제아무리 희연이라 해도 제 마음 속에서부터 비어져 나오는 외로움이나 기대고 싶은 욕구를 완벽히 밟아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하여 홀로 선 채 모든 걸 견뎌내는 일이 불현듯 벅차게 느껴질 때가 찾아오면 희연은 스스로를 꾸짖었다. 나약하게 굴지 말자고. 타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 존재만으로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은 사치나 다름없다. 결국은 어긋난 채 끝나고 만다는 걸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잖은가. 물론 몇 번의 부정적 기억이 백 퍼센트의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희연은 잘 알았다. 그러나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저 하나 기댈 수 있는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게 낭비 같았다. 희연에겐 저 하나 기댈 곳을 찾는 일보다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더 가치있고 중요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희연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연애 상대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니 처음부터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게 나았다. 

“희연아. 오늘은 어땠어.” 

“아, 고마워요. 안 그래도 커피 사러 나가려고 했는데.” 

그런 지점에서 기태인은 정말 독보적으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곁을 내준 적이 없는데도 문득 의식하고 보면 바짝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어떻게? 의문을 깊이 곱씹어 볼 틈도 주지 않고서 태인은 희연을 염려했다. 임무에서 다쳐 온 건 아닌지, 외부 일정에서 마음에 짐을 얹어 온 건 아닌지, 지치고 힘들어 기댈 곳을 찾지는 않는지. 희연이 누군가의 걱정과 살핌을 받는 게 당연하고 옳은 일인 것처럼 굴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희연이 그 누구에게도 기대려 하지 않는다는 걸 훤히 들여다본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런 태인의 염려—라고 쓰고 호들갑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를—가 언제부터 시작됐던 건지는 당사자인 희연조차도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정말 그냥 어느 순간부터 기태인이라는 존재가 옆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마치 응당 그리 될 일이었다는 듯, 그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는 듯 자연스러웠는데 묘한 점은 희연이 느끼기에도 모나거나 거슬리는 곳 없이 꼭 맞는 조각 같았다는 사실이다. 한 번씩 새삼스레 인식할 때마다 성큼 가까워져 있는 태인의 존재를 느끼면 거북한 동시에 기분이 이상했다.

“사희연! 팔 다쳤잖아! 왜 치료 안 했어!” 

언젠가의 임무에서 팔을 조금 찢어먹고 온 걸 발견하곤 기함하는 태인을 마주했을 때였다. 삽시간에 심각해진 얼굴을 마주하며, 희연은 그가 제 부상을 보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면 조금쯤 서운했으리란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당연히 치료를 안 하려던 건 아니었다. 다만 치명적인 부상이 아니었기에 치료를 후순위로 밀어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태인의 무반응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서운함을 느낀다니. 드디어 미쳤나? 희연은 제 마음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팔 이리 줘. 치료하자.” 

“싫어요. 또 능력 쓸 거잖아.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쓰지 마요. 나 경고했어.” 

붙잡으려는 태인을 피해 뒤로 물러선 희연이 퍽 사납게 엄포를 놓으며 자리를 떴다. 그의 능력으로 치료받아 통증 따위를 전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더 마주하고 있기가 불편해 피하는 것이기도 했다. 의무실을 향해 성큼성큼 걷는 내내 희연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애초에 무슨 가정을 하든 서운하다는 감정을 느껴선 안 됐다. 서운하다는 건 상대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을 때나 드는 감정이니까. 기대를 품기 시작하면 의지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나약하게 굴지 않기로 했잖아, 사희연. 정신 차려. 

사실 같은 센티넬이라 해도 치유계인 태인은 그리 자주 얼굴을 마주할 일은 없는 인물이었다. 희연이 아직 훈련생일 때엔 교육을 위해 두어 번 얼굴을 본 게 다였고, 다시 인사를 나누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이후 선후배 사이로 막 마주쳤을 때만 해도 ‘보기보다 웃긴 선배님’ 정도의 감상만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태인은 희연에게 ‘보기보다 웃기고, 이상한 데다 푼수 같은 구석이 있으며, 묘한 거북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희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태인의 존재가 제 옆자리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태인과 함께하는 동안 느끼는 편안한 기분이나 즐거운 감정에 휩쓸릴 게 아니라 그가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뻗지 않도록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갈퀴를 들고도 희연은 선뜻 행동하지 못했다. 결국 어긋난 채 끝날 걸 알면서 태인의 존재를 방관하고만 있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다.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실은 끝까지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마음속 밑바닥에 뚜껑까지 덮어 처박아둔 외로움을. 

하여 조금은 희망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태인은 그동안 제 옆에 다가서려 했던 이들과는 조금 달랐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기대려 하지 않는다는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사람처럼 굴면서 네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원하면 언제든 기대라는 듯 자꾸 곁에 머물렀다. 희연이 습관처럼 저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어 가고 있으면 귀신같이 나타나 눈길을 돌리게 했다. 태인과 있는 동안 희연은 많이 웃었고, 자주 유치해졌으며 덜 경계할 수 있었다. 태인은 희연이 최우선으로 지키고자 하는 ‘옳은 가치’를 존중했다. 굳이 그 앞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점점 더 좋아졌다. 곤란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제 마음을 감싸 안으려는 양 넓게 뻗어가는 뿌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태인에게서 느껴지던 일말의 거북함은 어느샌가 조그만 기대와 희망으로 싹을 틔웠다. 이 사람은 조금 다른 것 같아.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생각의 빈도가 늘어날수록, 헛된 기대는 그만 품고 지금이라도 높이 벽을 세우길 종용하는 머릿속 경고등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수천 번을 반복하는 낙숫물에 기어이 갈라지고 마는 바위처럼. 들어앉은 냄비 속 물이 끓는 줄도 몰라 그대로 익고 마는 개구리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태인의 영향권에 삼켜졌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웃기고 다정한 푼수인 줄로만 알았던 태인에게서 칼 같은 냉정함을 발견한 것이. 찰나간의 스침일 뿐이었지만, 깨달음은 무엇보다 또렷했다. 희연은 꽤나 확신할 수 있었다. 기태인은 상황에 따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도 망설임 없이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연 그의 마음에 담긴 제 존재가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지는 몰라도, 태인은 유사시엔 저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두렵긴커녕 기뻤다. 

다른 동료들이 그러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희연은 그들 모두가 피치 못할 상황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움직이리란 걸 알고, 믿는다. 그럼에도 태인의 냉정함에 더 마음이 놓이는 데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미 여동생을 잃었고 부모님과도 돌아선 사람이니까. 저처럼 끈끈한 정을 나누는 가족이 없으니 직접 동료를 사살하더라도 금세 냉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덤덤하게 그 기억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실제의 태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혼자 품은 비겁한 믿음과 태인의 곁에서 얻는 안정감에 조금씩 의지해나갔다. 함께 퇴근을 하고 식사를 하고 여가를 보내는 일이 늘었다. 태인의 머리칼이나 옷깃에서 저와 같은 냄새가 나는 날이 많아졌다. 삼척에서의 임무를 마친 후 돌아왔을 때 제가 폭주 위기에 빠졌었단 소식을 어디서 접한 건지, 마주치자마자 그 어느 때보다 단단히 끌어안아 주는 품에서 희연은 깊은 안도를 느꼈다. 신기하게도 온기만으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태인이라면 무엇이든 끌어안아 줄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몸집을 키웠다. 

“선배. 있잖아요. 임무 중에 꺼낼 말이 아닌건 아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음? 뭔데.” 

“...내가 선배한테 좀 더 기대도 되는 건지 묻고 싶어서.”

“…….”

“남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고 줄곧 생각하면서 살았더니 내가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선배를 질리게 만들거나 지치게 할지도 모르잖아.”

죽도의 작은 마을회관, 태인과 기대앉아 손 대신 손가락 하나만을 서로 걸어놓고 밤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다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눅진한 바람을 깊게 들이마시면 저만치서 부패 중인 시취가 희미하게 묻어나는 상황에 고해하듯 속삭일 이야긴 아니었다. 하지만 희연에게 지난 십 년의 삶이란 대체로 이러지 않았던가(물론 조각난 시신은 좀 다른 문제지만). 일상이 이럴진대 특정한 말을 건네기에 적절한 때라는 건 한 봉지에 두 알이 들어간 사탕을 발견하는 일 만큼이나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 너한테 엄청 소중한 사람이구나.”

…좀 열받네. 딱 한 대만 칠까? 태인의 어깨에 머릴 기대고 있던 희연이 고갤 살짝 들며 눈을 흘겼다. 

“선배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짜증 나요. 내가 이렇게까지 기대는 사람 선배밖에 없어요. 나는 기본적으로 모두를 지키려고 하지만, 그중에서… 적어도 선배만큼은 나로 인해 티끌만큼도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치게 하기 싫어.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요. 그래서 기대면 안 될 것 같은데, 사실은 기대고 싶어요. ……나도 혼자만 서 있기 지쳐….”

시간 낭비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는데. 나약하게 굴지 않기로 했는데. 의도된 외로움 사이를 파고들어 차오른 다정이 제게 너무 치명적이었다. 태인이 건넨 다감한 기억들이 자꾸만 갈구하게 했다. 점점 더 큰 온기와 위로 같은 것들 말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다독이는 말과 손길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갈퀴를 손에 쥐고도 꼼짝하지 않았을 때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가장 솔직하고 나약한 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희연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생각했다. 과거의 짧은 인연들이 그러했듯 태인 역시 제게 지치는 날이 오고야 말 터다. 

“희연아.”

“……응, 선배.” 

“너는 나의 좋은 영향이자, 내가 영원히 딛고 설 땅이야. 네가 오늘 이후 어떤 생각이 들든 이것만은 잊지마.” 



끝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맡겨. 너는 그저 사람들 사이를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희연아,

살아가는 건 본질적으로 소모를 기본으로 해.

누군가를 소모시킨 것 같으면, 다음날 베풀면 되는 거야.

그날도, 오늘도, 잘 버텼어, 사희연.

딸깍. 스위치를 켜듯 갑작스레 잠의 세계 밖으로 쫓겨난 희연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제 것 아닌 호흡이 낮고 느리게 베갯잇 위로 내려앉는다. 마주 보는 자세로 곤히 잠들어 있는 태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방금 전까지 꿈에서 보던 얼굴이면서, 현실의 태인을 보는 게 기껍기만 하다. 그의 존재로부터 시작되는 달가움은 여전히 낯설었으나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 거북하진 않았다. 참 이상하지. 당신은 어떻게 내 속을 훤히 아는 걸까. 어째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사실 그건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건데. 희연은 가만 손을 뻗어 태인의 뺨을 매만졌다. 엄지로 광대 어름을 살살 문질러볼 즈음이면 얼핏 잠에서 깨어난 태인이 낮게 침음하며 눈꺼풀을 팔락이는 게 보였다.

“…희연아. 왜 깼어.”

“그냥 깼어요. 다시 자.”

가벼이 뒤척인 태인의 몸이 희연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붙는다. 짧은 망설임 끝에 희연이 꾸물꾸물 태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선배, 자요?”

“…왜애. 잠이 안 와?”

태인의 가슴팍에 이마를 대고 바짝 다가붙는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으면 생명이 맥동하는 움직임을 희미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나랑 약속 하나만 해줄래요.”

“응. 말해, 듣고 있어.”

지금 느껴지는 이 고동은 당신의 것일까, 내 것일까.

“이번처럼 총부터 잡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말고, 멈칫해서도 안 돼요.”

사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내가 얻고 싶은 건 그 무엇으로도 꺾이지 않을 약속이야.

“우리 사귈까요.”

내 고동을 멈춰세우는 건 당신이었으면 해.

“선배가 나 잡아줘요. 안심하고 기대서도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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