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이스케이프

thinkinu by 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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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의 등에는 점이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게자리 뭐 그런 것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멀리서 박병찬의 등을, 그리고 박병찬이 땀을 식히고 있는 걸 쳐다보다가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느슨해져 있었는지 내 귀에서 피어싱이 바닥에 떨어졌다. 제자리에서 고개만 아래로 내려 휙휙 돌렸으나 주변이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땀에 절어버린 반팔 티를 살에서 떼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박병찬은 없어져 있었다. 상쾌하지 않았다.

 

 

 

럭키 이스케이프

 

 

 

 

정 선배가 날 붙잡고 뒤풀이로 끌고 갔다. 아 싫어요.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선배는 빼지 말라고 내 소매를 잡았다. 공짜 밥이랑 공짜 술 거절할 거냐고 조잘조잘 거렸다. 나이에 안 맞게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선배의 가르마가 하얬다.

삼겹살 집은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나는 알 턱이 없었기 때문에 선배 옆에 앉았다. 선배가 수저를 놔줬고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쓰고 있던 모자는 벗지 않았다. 그들의 앞접시는 이미 다들 뻘겋게 기름져 있었다.

이야기가 테이블 위로 시끄럽게 오갔다. 난 얌전히 술만 받아 마셨다. 오늘 그 사람 드디어 봤다면서 떠들고 아까 누가 건반 페달 빼먹었다고 흉보고 왼쪽 모니터 스피커가 사실 기증 받았던 것이라고 추켜세웠다가 하는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이야기에 리액션 할 때마다 선배의 팔꿈치가 닿았다. 선배는 눈으로 웃으면서 나를 가끔 쳐다봤지만 마주 보진 않았다. 마침내 취한 선배의 정수리가 내 어깨에 닿으려 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저, 화장실 좀.”

“여기 화장실 밖에 있는데.”

 

고개만 끄덕이고 식당을 나왔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씻은 손을 셔츠에 대충 문지르고 담배를 찾았다. 손끝이 빠르게 건조되어 있었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는데 주머니에 라이터가 없었다. 앉을 때 뒷주머니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벽에 뒤통수만 대고 필터를 질겅질겅 씹었다. 다시 뱉어서 담뱃갑에 넣어두려 했는데 골목으로 누가 들어왔다. 벽에 다시 등을 대고 붙었다.

가로등이 역광이었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모든 걸 뚫고 그 사람이 골목에서 나에게 발을 틀었다.

 

“어.”

“….”

“안녕.”

“….”

“……근데 이름이 뭐더라. 미안.”

“…알려준 적 없는데요.”

 

등을 뗐다. 박병찬의 얼굴은 역광을 뚫고 나에게 인사했다. 딱 붙는 바지 주머니가 네모나게 불룩했다. ‘그럼 너 이름 뭔데?’ 그런 표정이었다.

 

“화장실 가세요?”

“응.”

“혹시 저, 불만 지금 좀 빌려주실래요?”

“그래.”

 

박병찬이 흔쾌히 라이터를 건네주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이번에도 이름은 묻지 않았다. 라이터 가스가 간당간당했다. 박병찬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불은 붙지 않았다. 오른손 엄지가 따가웠다. 돌아온 박병찬은 두세 번 만에 불을 붙였다. 박병찬의 오른손에서 불을 빨아들였다. 고맙다고 말한 뒤에 박병찬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너 이 씨 맞지?”

 

나와 마찬가지로 담배를 문 박병찬이 물어봤다. 어둡고 모자를 써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실 좀 예의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아무나 붙잡고 이 씨냐고 물어봐도 오분의 일은 그렇다고 할 걸요.”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박병찬은 말끝만 흐리고 연기를 뿌옇게 뱉었다. 이러고 있는데 박병찬이 날 알아 본 것이 요행이었다. 내 이름도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네가 벌써 어른이야?”

“……나 누군지 아는 거 맞아요?”

“알지, 당연히.”

 

조형고. 밴드부. 너 이제 진짜 밴드 하나보네. 박병찬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형도 아직 춤 추나보네요. 나도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박병찬은 말을 이어했다.

 

“노래 늘었나보다.”

 

갑자기 신발끈이 풀렸다. 이상한 일이다.

 

 

 

 

 

**

 

교무실에서 열중쉬어를 하고 주루룩 서 있었을 때였다. 난 교무실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잘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겨야만 했다. 사실은 슬리퍼의 가장자리를 보고 예전에 봐뒀던 다른 나이키 슬리퍼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열중쉬어 한 손으로는 카시오 시계 매듭을 만지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잔소리가 높은 데시벨로 교무실을 울렸으나 우리는 전부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동시에 굉음이 가득한 것 같았다. 그때 누가 교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풀어 헤친 셔츠 안에 회색 반팔 차림의 학생이었다. 딱 봐도 3학년 같았다. 그 사람은 체육에게 키를 반납하고 안녕히 계세요, 조용히 인사했다.

네가 말해봐, 이초원. 선생의 목소리가 틀어졌던 고개를 정면을 보게 만들었다. 아. 그게요. 말을 더듬었다. 선생이 또 버럭 했다. 얌전히 고개를 다시 숙였다. 교무실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3학년이 박병찬였다. 교복도 제대로 안 입었으면서 교무실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서 공손하게 인사까지 하고 돌아 간 게. 나는 그때 박병찬보다 많이 챙겨 입은 교복이었지만 계단 청소까지 받은 뒤에야 교무실에서 나갈 수 있었다.

 

 

 

갓 중졸이었던 때는 교실만 아니면 다 괜찮은 듯 나돌았다. 교내여도 상관없었다. 별관에 따로 동아리실이 있는 밴드부를 들어간 것도 그 탓이었다. 연주할 줄 아는 악기도 변변찮았다. 석연찮은 얼굴로 다들 마이크를 내줬다. 난 거의 내지르는 것처럼 노래를 불러야 했다. 드럼 치던 형은 자기가 드럼을 쳐서 다행이라고 했다. 드럼을 세게 치면 내 목소리가 조금 덜 들려서 그렇다고 했다. 마이크를 쥔 손에서 땀이 났다. 장난감 같은 은색 마이크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질 것 같았다. 그래도 노래하는 게 싫지 않았다.

나는 마이크를 계속 쥐고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일 때는 센 척하는 것이 당연했다. 손가락이 미끄러질 것 같으면 왼손으로 마이크를 바꿔 쥐었다. 드럼 형은 뒤에서 북을 쿵쿵 쳤고 스피커는 내 목소리를 증폭시켰다. 이윽고 드럼 소리가 스피커 속 내 목소리보다 커졌을 때, 부장 누나가 조용히 날 운동장 포플러 나무 아래로 끌고 갔다.

 

저, 초원아. 너무 겁먹지 마.

겁 안 먹었어요.

김민우 원래 좀 그런 거 알잖아. 걔한테도 말할게.

괜찮아요.

 

난 부장 누나 앞에서도 열중쉬어를 했다. 몸이 좀 꼬여서였다. 누나는 제출 안 한 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너 이 노래 알아? 초원이 너 이런 노래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누나의 폰에서 흘러나온 것은 버벌진트 노래였다. 어떠느냐고 묻는 누나의 귓바퀴에 교칙을 어긴 피어싱이 반짝반짝 했다. 나는 그때부터 부장 누나를 짝사랑했다.

 

 

 

가을 축제에서 버벌진트 노래를 했다. 드럼 박자가 가끔 엇박이었지만 내가 수백 번 연습한 버벌진트 랩이 더 정확하게 떨어졌다. 기타를 치던 누나가 여자 파트를 불러줄 때는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는 날 안 봤다.

무대를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다. 곧 무대에 올라갈 것인지 옷을 맞춰 입은 여럿이 한 구석에 모여 있었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관객한테 뿌리고 남은 사탕이 나왔다. 부원들이 각자 악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누나에게 가서 사탕 남았는데 먹을래요? 말을 걸었다. 조명 때문에 얼굴이 화끈화끈 했다. 짙게 그린 누나의 눈썹이 씰룩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막 내려온 드럼 형에게서 드럼스틱이 날아왔다.

 

“이초원 니 적당히 하라고 씨발!”

 

사회자인 학생회장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날아온 드럼스틱은 내 이마를 때렸고, 그거에 정신이 아찔할 틈도 없이 드럼 형이 날 쓰러트렸다. 내 위에 올라탄 드럼 형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소리 질렀다. 뭐라 했던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부장 누나가 형을 말렸던 것만 기억났다. 난 누나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필사적으로 돌렸다. 선생님이 없었다. 누나가 말린다고 되는 것이 없었다. 옆에 몰려 있던 대기 학생들이 점점 주변으로 다가왔다. 야 왜 그래. 형을 아는지 친근하게 형을 말렸다. 형은 아직 날 때리지 않았다. 다만 드럼스틱이 지나간 이마가 조금씩 부어오르는 것 같았다. 누나가 형을 뒤에서 끌어당겼다. 그제야 형이 일어났다. 미안 초원아. 누나가 형을 데리고 나가면서 드러누운 나한테 말했다. 바닥에서 올려다 본 누나는 형의 손을 깍지 껴 붙잡고 있었다. 내 짝사랑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워 끝났다.

주춤대며 몸을 일으키는데 눈앞에 멘소래담이 훅 들어왔다. 옷을 맞춰 입었던 무리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교무실의 그 사람이었다.

 

“이마, 멍들어.”

“네?”

“다 쓰면 저기 파란 가방에 넣어놔.”

 

그 사람이 넥타이가 비뚤어진 내 배 위에 멘소래담을 올려두고 일어났다. 야, 박병찬! 안 와? 무대를 올라가던 무리가 그 사람을 불렀다. 박병찬도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난 배에 있는 흰 플라스틱 통의 멘소래담을 쳐다봤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큰 음악소리에 놀라서 펄떡 일어났다. 벽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을 보고 멘소래담을 왼손 중지에 덜어서 이마에 발랐다. 남은 건 거울 옆의 벽에 문질러 닦았다. 이미 벽은 각종 화장품들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어 있었다. 바닥에 널려 있는 것들 중 유독 색이 튀는 파란 가방을 찾아 멘소래담을 넣고 강당을 빠져나왔다. 무작정 달려서 교실에 갔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을 챙겨서 담을 넘었다. 집까지 달렸다. 한 10분을 뛰는 동안 눈에서 눈물이 줄줄 났다. 아파서도 아니고 누나에게 배신당했다는 마음에서도 아니고 드럼 형에게 화나서도 아니었다. 박병찬이 준 멘소래담에 눈이 시려서 온 얼굴이 눈물로 젖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니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았다. 제대로 된 거울로 본 얼굴은 형편없었다. 눈썹이 빼곡해서 다행이었다. 이마에서 흐른 멘소래담이 눈썹을 타고 광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시뻘겋게 눈알이 충혈 돼 있었다. 데굴데굴 쳇바퀴가 돌았다. 그 옆에서 햄스터가 해바라기씨를 든 채로 날 가만히 쳐다봤다. 나를 타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엔 동아리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 다행이었다. 동아리 활동 시간마다 무단결석을 했다. 출석일수는 모자라지 않을 것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3학년 복도 끝에 있는 도서관 옆 계단에 있었다. 반 층만 더 올라가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곳이었다. 전 교시에 빌려온 과학동아 두 권을 들고 거기에 숨어 있었다. 한 권은 엉덩이 밑에 깔았고 한 권은 읽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그걸 반복했다.

과학동아를 층계에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 내려가는 길에 3학년들을 몇 명 마주쳤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서 1학년 아니냐고 속닥이는 것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우리 학년 복도로 들어서는 자판기에 마이와 조끼가 없는 박병찬이 서 있었다. 박병찬은 얌전히 1학년들 사이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자 박병찬은 3학년 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손에 매실 음료수를 들고 있었다. 나는 박병찬이 위로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라갔다. 종이 울렸다. 복도의 박병찬이 아랑곳않고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도서관 앞 자판기에는 매실 음료수가 아예 없었다.

몇 번 더 박병찬을 마주쳤지만 박병찬은 그때마다 교복을 제대로 입고 있지 않았다. 날이 추워도 조끼와 마이를 갖춰 입은 것을 본적이 없었다. 박병찬은 셔츠 안에 거무튀튀한 색의 반팔만 입고 복도를 활보했지만, 겉옷은커녕 교복도 챙겨 입지 않았지만, 박병찬이 항상 꽁꽁 감싸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박병찬은 곧 수능을 보고 졸업할 거니까 신경 끄면 그만인 거였다.

 

 

 

학교 앞에 세븐일레븐이 생겼다. 고등학교 2학년 말쯤이었다. 고3 직전, 야자를 우르르 신청했던 애들은 저녁 간식을 세븐일레븐으로 몰려가서 사오곤 했다. 난 학원에 가겠다고 야자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세븐일레븐 반대쪽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학원에 갔다. 밤이 되면 그 건너편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갔다. 밤까지 학원에서 공부했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개차반인 점수가 적힌 시험지를 가방에 넣고 돌아오는 밤에도 세븐일레븐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처음으로 세븐일레븐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학원 숙제를 집에서 가져오는 길이었다. 추웠다. 패딩 안에 손을 넣고 세븐일레븐을 지나쳐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하고 있었다. 온통 유리로 이뤄진 세븐일레븐은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무심코 그 안을 쳐다봤을 때, 누가 카운터의 알바생에게 손을 들었다. 알바생의 고개가 손을 맞고 휙 돌아갔다. 돌아간 얼굴이 날 봤다. 난 반사적으로 세븐일레븐의 유리문을 열어젖혔다. 안의 데워진 공기가 갑자기 코로 훅 들어와 헛기침이 났다. 콜록 대면서 문을 잡고 있었다. 멎지 않은 풍경소리가 딸랑거렸다.

맞은 뺨이 벌겋게 된 박병찬과, 박병찬을 때린 여자가 날 쳐다봤다. 나도 둘을 쳐다봤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아서 내 발을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안쪽의 음료 냉장고로 향했다. 다시 딸랑 소리가 들렸고, 냉장고 문짝으로 여자가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냉장고 아래의 매실 음료수를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박병찬이 바코드를 찍으며 천 이백 원, 하고 말했다. 나는 체크카드를 꽂았다. 박병찬의 뺨이 부어 오르고 있었다.

 

“……그거요.”

“그거?”

“그거요.”

 

나는 손바닥으로 내 볼을 눌렀다. 박병찬은 손을 들으려다 아, 하고 짧게 소리만 냈다.

 

“그거엔 멘소래담 바르면 안 돼요.”

 

눈만 시리고 효과 없어요. 계산한 매실을 그대로 두고 세븐일레븐을 나왔다. 교복 조끼를 입지 않던 박병찬은 세븐일레븐 조끼를 입고 있었다. 하나를 더 입었는데, 예전보다 하나를 더 벗겨낸 것 같았다.

 

 

 

박병찬은 대학도 군대에도 가지 않았는지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세븐일레븐 조끼를 입고 알바를 했다. 매실을 산 이후로 다시 세븐일레븐에 들르는 일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점포는 사방이 통유리였으니까.

 

 

 

스무 살 2월, 졸업을 했고 졸업 기념 선물로 뭘 원하냐는 부모님의 말에 사실 대학에 등록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집에 몇 개 있지도 않은 학생 이초원의 상장 액자들이 거실에 나뒹굴었다. 너 뭐하는 애야? 어깨 근육이 바짝 당겼다. 저 음악할 거예요. 햄스터와 쳇바퀴만이 나를 배웅했다. 데굴데굴. 나는 쳇바퀴 소리에 도어락 소리로 화답했다. 나는 졸업식 날에 가족을 졸업하게 됐다. 쫓겨나온 집에서 멀어지려면 다시 세븐일레븐을 지나쳐 버스정류장으로 가야만 했다.

박병찬이 여자에게 맞고 있지 않았지만 난 세븐일레븐 문을 열었다. 박병찬은 카운터 뒤에 앉아서 폰을 보다가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오랜만이다 너.”

“네. 안녕하세요.”

 

아는 체하는 박병찬을 대충 대하고 컵라면 쪽으로 가서 육개장 사발면을 골랐다. 빠르게 계산하고 끓는 물을 넣고 기다렸다. 다리가 달달 떨렸다. 남은 돈을 계산하면서 급하게 라면을 먹었다. 헛기침이 나올 때마다 박병찬이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국물까지 싹 다 마신 다음 쓰레기를 버렸다. 그대로 나가지 않고 생활용품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세면도구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 작은 물티슈도 들어왔다. 길거리 생활에 이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계산대에 그걸 내려뒀는데 박병찬이 물었다.

 

“어디 가?”

“네?”

 

갈 곳은 없었다. 그냥 나온 거지.

 

“가출했어?”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스무 살 넘어서 집 나온 것도 가출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건가 고민됐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박병찬은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10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아까 육개장을 먹었던 의자에 앉아서 10분을 기다렸다.

10분 뒤, 박병찬이 조끼를 벗었다. 다른 알바생이 들어와 그 조끼를 입었다. 어디서 유행 다 지난 검은색 카파 패딩을 꺼내온 박병찬이 유리문을 열면서 나에게 턱짓을 했다.

 

“따라 올래?”

 

묻는 말이었지만 ‘따라 와’로 들렸다. 나는 일어나서 박병찬을 따라갔다. 더 두꺼운 옷을 입은 박병찬은 그 전보다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았다.

박병찬을 따라 가자 도착한 곳은 고등학교 후문으로 가면 있는 원룸빌이었다. 박병찬은 혼자 살았다. 고등학교 다니던 중간에 가족이 이사를 갔는데 박병찬은 여기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세븐일레븐의 알바는 박병찬의 생계유지였다. 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그때 경계가 심해서 가만히 박병찬이 하는 말만 들었다.

 

“짐 있어?”

“아뇨.”

“그러네.”

 

박병찬이 패딩을 벗어 행거에 걸었다. 난 좁은 현관에 계속 서 있었다. 박병찬은 분주하게 화장실로 갔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손을 씻는 것 같았다. 신발을 벗을지 말지를 계속 고민했다. 작은 방을 함부로 구경하지 않기 위해 신발끈 매듭만 쳐다봤다.

물소리가 멎었고 박병찬이 나왔다. 왜 그러고 있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닥 차가우니까 너무 놀라진 말고.”

 

민망하거든. 하는 말은 다정했다. 난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왔다. 장판이 차가웠지만 박병찬이 보일러를 틀었다. 겉옷 줄래? 패딩을 꾸물꾸물 벗어서 넘겼다. 행거 끝에 내 패딩이 걸렸다.

 

 

 

박병찬의 자취방에서 사흘을 살았다. 세븐일레븐에서 사왔던 세면도구는 쓸 필요도 없었다. 박병찬의 칫솔 옆에 내 것을 꽂긴 그래서 세면대에 내려뒀다. 박병찬도 굳이 그걸 칫솔꽂이에 옮기진 않았다.

일어나면 박병찬은 밥을 먹으라고 하면서 출근했다. 난 박병찬이 싱크대에 내놓은 오뚜기 3분 카레와 햇반을 돌려먹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박병찬이 퇴근하기 전에, 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에 쳇바퀴만 있는 가족들의 집으로 들어가서 짐을 챙겨 나왔다. 퇴근하고서 돌아온 집에 내 가방이 있는 것을 보고 박병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방이 가득 찬 사흘 째 낮. 나는 짐 맨 꼭대기에 새 세면도구를 넣고 가방을 잠갔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박병찬의 원룸을 빠져나왔다. 박병찬의 집에는 간단한 메모지도 있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도 남겨둘 수 없었다. 하지만 세븐일레븐에 들러 얼굴을 볼 용기도 나지 않아서 길을 돌아돌아 버스정류장에 갔다.

진짜 가출이었다. 박병찬은 내 이름도 전화번호도 몰랐으니 날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되고 싶은 대로 된 적이 없었다.

동네 고등학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동네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그래서 피한 교실 바깥의 밴드부에선 노래를 못했다. 노래 말고 랩을 하라는 부장 누나를 좋아했지만 그것도 헛것이었다. 출석이 좋지 않으니까 정시를 해야 한다고 학원을 따로 다녔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대학에 추가합격했지만 그것도 꼴보기 싫어서 등록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누나가 알려준 음악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발악했지만 집에서 쫓겨났다.

그때 난 박병찬에게 감사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외면과 희망고문의 반복은 감정과 예의를 깎아 먹어 몸집을 불렸다. 박병찬이 없는 박병찬의 방에서 나는 내 생각만 했다. 박병찬이 나를 왜 데리고 왔는지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일지 않았다. 박병찬이 어떤 인간인지 알 것 같다가도, 알려하지 않았다.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난 쉽게 정을 주고 쉽게 절망하는 편인 걸, 상장 액자가 깨지던 순간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여러 번 구한 박병찬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

 

그래서 페스티벌 백스테이지에서 박병찬을 알아봤을 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남이 나에게 실망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박병찬의 옷이 그렇게 벗겨진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늘 박병찬이 더 껴입을 수록 그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적 사실은 그런 어쭙잖은 유추보다 늘 힘이 세다. 박병찬의 등에 박혀 있던 여러 개의 점들은 객관적이었다. 박병찬은 등에 점이 있다. 이 사실은 박병찬은 매실 음료수를 좋아할 것이다, 같은 유추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확실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박병찬을 알 것 같았던 그때보다, 박병찬의 점박이 등을 마주본 지금이 훨씬 더. 나와 박병찬이 생각보다 가까웠고 동시에 생각보다 모르는 사이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사흘 동안 6평짜리 방에서 같이 지낼 때도 몰랐던 걸 페스티벌 백스테이지에서 알게 되다니.

 

“밴드 안 해요.”

“그래?”

“음향 보조하러 온 거예요.”

“아아.”

 

그래? 박병찬이 담배를 빨았다. 나는 모자를 고쳐 썼다. 담배 연기만 희게 벽을 타고 올라갔다.

아는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렸다. 골목에 들어오는 가로등이 인영에 가려졌다.

 

“이초원!”

 

정 선배였다. 나는 담배를 내렸다. 붉은 얼굴의 선배가 와서 팔을 가볍게 때렸다. 화장실 간다더니, 왜 이렇게 늦냐? 대답 대신 담배를 든 손을 까딱했다. 밥 챙겨 먹으라구 데려왔더니. 잔소리가 연타로 들어왔다. 알겠다고 눈 감으면서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나를 째려보면서 골목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박병찬이 담배를 피우다 말고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초원이야? 이름?”

“…네.”

“성은 맞았네.”

 

박병찬이 웃었다. 웃긴가보다. 나는 웃기지 않았다. 가시방석 같았다.

 

“저 사람이 너 좋아하나 봐.”

“……알아요.”

“재수 없다.”

“그런가.”

 

화장실에서 정 선배가 나왔다. 손에서 물기를 탈탈 털며 나에게 굳이 한 마디를 더 건네고 갔다. 고기 식어. 나는 또 고개만 끄덕였다. 선배의 양갈래 머리가 사라졌다. 나는 꽁초를 하수구에 던지고 새로운 담배를 꺼냈다. 박병찬은 라이터에 불을 당겨줬다. 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하면서 담배 끝을 가져다 댔다. 박병찬은 꽁초를 버리고 뒷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새 담배를 꺼내 물지는 않았다.

 

“왜 안 사귀어? 귀여운데.”

“…저보다 나이 많은 여자랑 안 만나요.”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눈을 피했다.

 

“아. 드럼 때문에? 아니 기타였나.”

 

악의 없는 질문이었겠지만 난 얼굴이 화끈해졌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밤이라 다행이라고 또 생각했다.

 

“기타랑 드럼 때문에요.”

“그래.”

“……형은 아직도 그 동네 살아요?”

“응.”

“왜요?”

 

나는 처음으로 박병찬에게 이유를 물었다. 다른 모든 걸 제치고 물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동네에서, 아직까지도, 그 좁은 방에서. 친구도 가족도 없는 박병찬은 왜? 그러나 지금 박병찬은 티에 바지 차림이었다. 그 말인즉슨, 알 턱이 없다는 거다.

 

“그냥. 난 그 동네 좋은데. 넌 그렇게 나가고 한 번도 안 왔어?”

 

그럼 형 등에는 왜 그렇게 점이 많아요. 그 동네엔 해를 오래 쬘 곳도 없는데. 그런 질문에도 ‘그냥’하고 대답할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네.”

“한번 올래? 많이 바뀌었는데.”

“……네, 뭐.”

 

박병찬에게 왜 나를 도와줬느냐고 물어도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거의 뻔했다. 왜 나한테 이름도 안 물어봤냐고 물어봐도 ‘그냥’이라고 할 것 같았다. 옷을 얇게 입은 박병찬은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예상하기는 쉬웠다.

 

“귀 뚫은 거지? 그런 거 안 할 이미지였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알아봤어요?”

“똑같은데? 같은 사람이 바뀌나?”

 

너나 나나 똑같지 뭘.

박병찬은 춤을 추는 것도, 나는 음악을 하는 것도. 박병찬이 얇은 옷을 입는 것도, 내가 답지 않게 귓바퀴 끝 귓볼에 구멍을 낸 것도. 박병찬은 거기에 살고, 나는 거기에서 벗어난 것도. 박병찬은 아직도 멘소래담을 가지고 다닐까. 그것마저도 같다면 서로의 항상성에 감탄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근데 드디어 알았네 이름.”

“안 물어봤잖아요.”

“물어보면 네가 집 나갈 것 같길래 그랬는데. 너한테 말도 잘 못 붙였잖아.”

 

네 이름을 몰라서. 이건 ‘그냥’이 아니었다. ‘그냥’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때 박병찬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초원아, 밥 먹어. 그랬더라면 계속 그 집에서 밥을 먹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내 이름에 약했으니까.

박병찬이 핸드폰을 꺼냈다. 다행히 그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다이얼 화면을 나에게 내민 박병찬이 번호 좀 주라, 하고 말했다. 나는 열한 자리를 눌러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것도 이제야 아네. 박병찬이 내 이름 석자를 토독토독 입력했다.

 

“그때는요, 형.”

“어?”

“감사했어요.”

 

인사도 못하고 떠버려서 죄송해요. 묵혀뒀던 말을 꺼냈다. 나는 이제 고딩도 스무 살도 아니었지만, 짝사랑에 실패한 밴드부 보컬도 아니었지만, 버벌진트 신보는 듣지 않지만, 박병찬의 말처럼 사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리를 숙였다.

 

“사실은 있잖아.”

 

박병찬이 말끝을 흐렸다. 표정이 딱딱했다.

 

“난 그때 네가 죽으러 간 줄 알았어.”

 

근데 살아있는 거 보니까 괜찮아진다.

박병찬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굽혔던 허리를 펴고, 피어싱 없이 구멍만 남은 귓불을 만지작댔다. 박병찬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모자 챙을 꾹 잡아 눌렀다. 예전의 박병찬은 나를 살리기 위해 그랬던 것만 같았다. 내가 뭐라고.

청소년이 아니게 된 가출 청소년도 귀가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나의 귀가지는 박병찬의 6평짜리 원룸이다. 동네에 돌아가면 박병찬의 집으로 갈 것이다. 상장 액자가 깨진 집은 그 다음이 되겠지.

박병찬의 카파 패딩은 그대로일까. 세븐일레븐은 계속 장사 중일까. 버스정류장은 아직 거기에 있을까. 3학년 복도 끝 자판기에는 아직도 매실 음료수가 없을까.

 

 

 

 

 

 

+)병찬을 때린 건 병찬의 가족 중 한 명.

+)초원이 밴드부 공연에서 부른 노래는 버벌진트의 기름 같은 걸 끼얹나.

+)병찬은 초원의 칫솔을 버리지는 않았고 싱크대 청소할 때 씀. 패딩은 잘 입고 다님.

+)초원 집의 깨진 액자에 있던 상장들은 고이 파일에 들어가 보관.

+)초원이 집을 나간 뒤, 햄스터의 쳇바퀴가 부서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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