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제

Alexandrite (1)

with. 클라우드


한 장소에서 꾸준히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점차로 그 장소에 스며들게 됨을 뜻한다. 그와 더불어 그 장소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일부가 되거나 관찰자 또는 방관자, 증인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반은 줄곧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러 있었는데, 알렉세이의 소개로 직원들과 얼굴을 익힌 뒤 펍 Holyoke에 반쯤 스며든 채 직원인 듯 아닌듯한 포지션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시시때때로 자리를 비우고 출근을 저 내키는 대로 하곤 했으나 관찰자로서의 촉각은 항상 곤두세우고 있었다. 주로 방문하는 장소와 거리의 주변을 관찰하고 기억해두는 것은 이반의 오랜 습관이었다. 살아남으려면 기민해야 했으므로. 더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삶에 놓여있으나 쉽게 떼어낼 수 없는 습관이고 버릇에 가까웠다. 때문에 이반은 펍을 자주 찾는 단골들의 얼굴을 '거의 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선 펍의 장식품으로 분류해도 좋을 만큼 붙박이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장식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가 갖고 있을 규칙에 맞춰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들 또한 있었으며, 특정 행동으로 인해 눈에 또렷이 남는 이들이 있었다. 

 

앞머리를 내린 더티 블론드에 잿빛 눈을 한 남자는 세 번째 이유로 이반의 기억에 남은 이였다. 항상 혼자 나타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둘이 되어 펍을 나가는 남자. 함께 나가는 상대들은 하나같이 이 근방에서 험하기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그런 이들이었다. 남자의 방문이 다섯 번을 넘겼을 즈음에 이반은 그의 이름이 브루클린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뉴욕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거대한 현수교였다. 더불어 지명이기도 한 브루클린을 이름으로 쓴다는 것에 이반은 그것이 그의 가명 혹은 기호의 문제겠거니 생각했다. 특이한 이름을 좋아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처럼 말이다. 브루클린은 펍이 위치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한 차림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지만 묘하게도 할렘 인근의 사람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반으로 하여금 브루클린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만들었으나 이반은 혼자 찾아온 남자에게 시시콜콜한 내용의 말을 드물게 건넬 뿐 가타부타 캐묻지 않았다. Holyoke에는 이런 곳보다 더 멀끔하고 고급스러운 가게에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지갑을 가진 이들도 심심찮게 찾아들었으므로. 그저 그런 부류의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는 게 다였다. 

 

"브루클린, 여긴 할렘 근처라 질 나쁜 손님들도 제법 많아요. 걸러낸다고 걸러내지만 사람을 깨끗이 걸러내는 거름망은 없더라고요."

 

이반이 브루클린에게 참견다운 말을 건넨 것은 그가 여러 가지 의미로 손버릇이 나쁜 사내와 함께 펍을 나섰던 다음 날이었다. 드물게 연달아 펍을 찾은 브루클린이 자주 앉는 바텐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고, 짧은 시선교환으로 그에게 늘 마시던 것을 한 잔 건넨 이반은 씻어둔 잔을 닦으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심하니 내뱉었다. 꼭 잔을 건네며 본 손목 즈음의 피멍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매에 겨우 가려질 듯 그 위치가 애매해 보였다. 이쯤에서 이반은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브루클린은 상대를 고르는 일에 상당히 재수가 없거나, 혹은 그런 상대를 잡는 것이 그의 취향일 거라고.  

 

"그런 걱정도 해주다니 상냥하네요, 이반."

"친절은 손님이 떠나가지 않도록 붙잡는 전략이죠." 

 

브루클린의 칭찬 아닌 칭찬에 이반이 밉지 않게 적당한 너스레를 떨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스레를 가장한 진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굳이 참견스러운 말을 건넨 것은 사실을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이반은 그가 질 나쁜 이와 얽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펍 밖의 일이라면 신경 쓸 이유가 하등 없었기 때문이다. 말에 내포된 속뜻이야 어찌 되었든 이 대화를 기점으로 브루클린과 이반의 대화 빈도는 이전에 비해 늘어났다. 예컨대,

 

"이반은 손이 아름답네요." 

"미의 기준이 색다르네요, 브루클린."

"숙이고 있을 때 목선이 예뻐요."

"그거 참 드럼통의 라인도 예뻐 보일 듯한 눈썰미인걸요."

"눈동자가 샹들리에처럼 반짝인다는 거 알아요?"

"그랬다면 이 가게엔 조명 없이 저만 천장에 걸려있었겠죠."

 

―같은 식이었다. 이반은 브루클린과의 대화 횟수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그를 혀에 꿀을 바르고 다니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듣기엔 퍽 달달할 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대상이 잘못 되어도 심히 잘못됐다. 브루클린의 칭찬 아닌 칭찬이 어떠한 효과―종류를 막론하고―를 내기에 이반은 지나치게 메마른 감정을 갖고 있었으므로. 브루클린과 펍을 나서는 질 나쁜 이들이 그와 같은 달콤한 언사에 넘어가 함께 나가기라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만을 낳았다. 그리고 그렇게 펍을 나선 브루클린은 그 다음 늘 그랬듯 옷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는 손목과 같은 곳에 멍 혹은 상처를 달고 나타났고, 이번에는 손목으로도 모자라 옷깃으로 겨우 가려질 법한 자리의 목에 피멍을 단 채였다. 모르긴 몰라도 옷으로 가려진 몸 이곳저곳에 그것과 비슷한 자욱들이 남아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하면서도 이반은 그에 대한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고, 브루클린 역시 상처에 대해서는 그 어떤 말도 일절 꺼내지 않았다. 

 

브루클린의 멍을 처음 본 이후 멍이 피었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동안 계절은 어느덧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뉴욕 같은 바쁜 도시에도 다음 달이면 찾아올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 따위의 감정들이 가을볕처럼 은은하게 사람들 사이로 퍼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여러 가지 행사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규모로 열리곤 했다. 이를테면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 같은 것들 말이다. 비교적 자주 들리곤 하는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식사―언제나 그러했듯이, 통상적으론 식사를 하기엔 애매한 세 시경이었다―를 끝내고 펍으로 향하던 이반의 걸음이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서서히 멎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니까, 평소의 서너 배 정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사람들과 그다지 부대끼고 싶지 않았던 이반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두어 걸음 물러서다 아예 시멘트로 담을 쌓아 만든 화단 위에 올라섰다. 번잡하게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있었다. 

 

대체 무슨 행사를 한답시고 사람이 오가는 거리까지 점령을 하고 있는 건지. 이반은 냉랭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주었다. 빌딩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나무 단상을 세워놓고 번듯한 정장 차림을 한 이들이 여럿 서 있었다. 그들 앞에 선 한 남자가 단상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포마드로 단정히 넘긴 탁한 블론드와 한 치의 빈 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듯한 각 잡힌 정장차림, 그와는 대조되게 부드럽게 휘어진 입술이 자아내는 유순한 분위기가 남자의 대략적인 사회적 위치를 가늠케 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또렷하고 선명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고, 이반은 그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지지와 신뢰 따위의 감정들을 옅게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불쑥 솟은 위치에서 이반은 남자의 힘있지만 부드러운 연설을 지켜보았다. 내용이 어찌되었건 이반의 머릿속엔 빨리 모든 순서를 끝내고 그가 사라져 거리의 북적임이 해소되길 바라는 생각이 크게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연설이 더 길어지진 않을까 하는 기우와 달리, 남자의 연설은 비교적 짧은 기다림 만에 끝났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단상을 향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인파를 반으로 갈라 길을 내었다. 계단참에 서 있던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모세라도 되는 양 갈라진 길을 따라 계단을 내려와 도로 가에 세워둔 차로 향한다. 이반의 시선이 그들의 가장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눈을 휘어 보이는 남자를 따라 움직였다. 어딘가 미묘하게 낯이 익었다. 고객 중의 하나인가? 이반은 잠시 자신의 번듯한 상위층 고객 리스트를 떠올렸지만 그중에 저런 얼굴은 없었다. 연설을 하는 것으로 미뤄보아 티비에서 자주 보이는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남자의 셔츠 깃 사이로 불긋한 피멍이 눈에 들었다.

순간적으로 가장 최근에 본 타인의 멍 가운데 같은 부위에 피어있던 브루클린의 피멍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이반은 의아한 기색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빠른 걸음으로 옆모습만을 보이며 반듯한 걸음과 함께 스쳐 지난 남자는 이내 뒤통수를 드러낸 채 차에 올라 사라졌다. 정장차림의 그들이 사라지자 사람들 역시 서서히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언제 북적거렸냐는 듯 삽시간에 평소의 모습을 찾은 거리 위로 내려서며 이반은 자신이 떠올린 두 사람의 멍에 대한 상관관계를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그 생각을 털어내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째서 브루클린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이렇게 인구가 많은 뉴욕에서 단지 같은 자리의 멍 하나로 사람 둘을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은 비약이 아닐는지. 

 

비약이라 결론지은 뒤 그 생각은 이반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가는 듯 했으나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고 펍을 찾은 브루클린과 마주치며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싹을 틔웠다. 그즈음 이반은 그날 길거리에서 봤던 남자가 뉴욕의 상원의원 중 한 사람인 퀸델 의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브루클린의 얼굴을 마주함과 동시에 문득 그의 풀네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텐더에게 늘 마시던 것을 주문하며 스툴에 걸터앉는 그를 쳐다보던 이반이 옆자리로 가 엉덩이를 걸쳤다. 앞머리에 그늘져 짙어진 잿빛 눈이 탁한 녹안과 맞부딪혔다. 

 

"오늘은 일 안하나 봐요, 이반?"

"사실 여기 진짜 직원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냥 내킬 때 일하는 거예요."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양 괜히 소리 죽여 대꾸한 이반이 적당한 웃음을 얼굴에 찰나간 걸쳐보였다.

 

"그런데요, 브루클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혹시 형제 있어요? 있다면 정치인이라거나." 

"퀸델 상원 말하죠? 닮았다고들 하더군요." 

 

마치 말의 진위여부를 가려보려는 듯 조금 가늘어진 눈으로 브루클린을 바라보던 이반이 짐짓 김이 샜다는 양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말을 진심으로 믿느냐 묻는다면 물론 그렇지 않았다. 이름조차 가명일지 모르는 이가 진실을 말한다면 얼마나 말할지. 이반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브루클린과 퀸델 상원의원이라는 두 인물이 모종의 관계에 놓여있을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리라. 단지 그날 본 퀸델 의원의 옷깃 속 멍만으로 브루클린이 퀸델 의원 본인일지 모른다고 엮는 것은 물론 근거 없는 넘겨짚기이긴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 역시 새로이 머릿속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쌍둥이 형제이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쌍둥이라고 멍까지 같은 자리에 생기진 않겠지. 이반은 바 너머로 손을 뻗어 보드카와 손에 집히는 아무 잔이나 꺼내들어 제 몫의 술을 따랐다.  

 

"며칠 전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퀸델 상원의원을 봤는데, 오늘 브루클린을 보니까 문득 닮은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예요." 

"많이 들어요, 그런 이야기. 난 잘 모르겠던데 닮긴 닮았나 봐요. 이렇게 많이 듣는 걸 보면?" 

"지금 봐선 또 잘 모르겠는데 그날은 브루클린을 닮은 것 같다고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거기까지 말한 이반은 적당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반의 호기심―을 빙자한 의심―은 옅어지지 않았고, 이후 얼마간 이반의 관심사는 몇 가지 주제에 집중되었는데 하나는 브루클린과 퀸델 상원의원의 표정과 제스쳐였고 또 다른 하나는 버릇이었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은 지문, 귓바퀴 모양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남처럼 군다 해도 형제나 동일인물의 경우 닮은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브루클린이야 펍을 찾아올 때 만날 수 있으니 걸음걸이 등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퀸델 상원의원의 경우 뉴스 또는 신문 기사 등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만큼 어려운 관찰 대상은 아니었다.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두어 주 간의 관찰 끝에 이반은 여러 가지의 차이점들 사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첫째로 브루클린과 클라우드는 웃을 때 눈웃음을 짓는다. 둘째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할 때면 허공을 바라본다. 셋째로 체격의 비슷함이었다. 서로 다른 걸음걸이와 입는 옷 스타일의 차이가 커 느낌이 사뭇 다르긴 했지만, 체형과 체격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제법 들여다보였다. 물론 이것은 서로 다른 인물에게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공통점이었으나, 이반은 똑같은 위치의 멍을 결정적인 증거로 보았다. 처음 그 사실을 떠올렸을 때에는 그것이 과한 비약이라 생각했었으나 다시 생각하면 똑같은 자리,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크기의 피멍이 들 가능성은 과연 몇에 수렴할까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이반은 브루클린이 다시 펍을 찾는 날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오늘 첫 잔은 내가 낼게요, 클라우드. 아니, 지금은 브루클린인 걸 존중해야 하나요?"

 

평소와 다름없이 며칠의 간격을 띄우고 펍을 찾은 브루클린에게 이반은 언제나 그랬듯 여상한 어투로 불쑥 물었다. 어떤 표정의 동요도 없이 가만히 이반을 마주보던 브루클린의 입매에 피식 바람 새는 웃음이 걸린다. 질문과 함께 내밀어진 잔을 당겨가는 손끝이 매끄럽다. 이반은 짧게 마주 웃었다. 

 

"아주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보는데… 어떤 답이 듣고 싶어요?" 

"알고 있잖아요."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닮았단 소리 많이 듣는다고."

"그래요? 닮은 사람들끼리 멍도 같은 자리에 생기고 그러던가?"

"그런 우연도 있을 수 있죠."

"웃는 느낌이랑 버릇도 비슷하고, 체격에 체형도 비슷하기까지 하고요?"

"닮았다고들 하는데 당연하겠죠, 뭐…본인이니까."

 

두어 차례 부정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쉬이 인정해버리는 브루클린의 대답에 이반은 이야기를 듣느라 조금 숙였던 허리를 곧게 폈다. 브루클린과 클라우드 퀸델이 확실한 동일인물이라. 평소에 그와 함께 펍을 나서던 이들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결론이었다. 민주당 상원의원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라니. 의도치 않게 알게 된 비밀에 이반은 잠시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관계도 아닌 그가 어떤 사생활을 영위하든 이반과는 관계없는 일이었으므로 알고 싶던 진실을 알아낸 이상 굳이 더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숨겨오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발길을 끊을 법도 한데 브루클린의 모습을 한 클라우드는 여태껏 그래왔듯 종종 펍을 찾았다. 이반이 사실을 알아낸 후 관심이 식은 듯 같은 주제를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이 이유인지, 그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브루클린으로 대하는 태도가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하튼 클라우드는 펍을 찾았고, 이반은 자신이 바에 있는 날이면 그의 주문대로 술을 건넸다. 

 

"이반. 혹시 사람을 알아봐주거나 구할 수 있어요?" 

 

잔을 닦던 이반의 시선이 클라우드에게 가 닿았다. 여러 차례의 방문이 별 일 없이 이어진 때였다. 그러고 보면 그는 한동안 펍에서 다른 이와 나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혹은 이반이 보지 못했거나. 이반은 그가 사람을 구하려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클라우드'로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텐데. '브루클린'의 모습을 한 채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어딘가 비밀스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이반은 닦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바텐을 짚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주로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어려운 일인 것도 아니었다. 마약을 포함한 뒷세계의 일이란 건 늘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엮여있는 법이므로.

 

"글쎄요. 한 번 해보죠, 뭐. 어떤 사람이면 되는데요?"

"점잖고, 조용하고, 묶는 기술이 좋은 사람이요."

 

그런 사람은 어디에 쓰려고요? 이반이 지나가듯 물었고 클라우드는 자신을 가리키며 필요해서란 대답을 내놓았다. 못마땅한 사람을 잡아다 묶기라도 하려는 건가. 그의 조건을 들은 이반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우드가 말하는 기준의 사람이 어떤 일에 필요한 건지 쉽게 유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 적합한 사람을 찾기에 쉬운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아보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 축에도 들지 않았기에 이반은 일단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 답했다. 클라우드는 나름 펍의 단골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손님이니, 일의 순서가 조금쯤 뒤바뀌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소개비 등의 대가를 받는 것은 클라우드가 제시한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은 후에 자세히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클라우드가 다시 펍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였다. 

 

"아무래도 할렘 주변이고, 사람들을 걸러도 거기서 거기라 찾는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은 찾지 못했어요. 조건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때요?"

 

말 그대로, 클라우드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조용하고 점잖은 사람을 찾으면 묶는 기술이 좋은 이가 달리 없었고, 묶는 기술이 좋은 사람을 찾으면 성격이나 품행이 조용 또는 점잔과 거리가 멀었다.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으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이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뭘 묶으려는 건지는 몰라도, 묶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 자신이 돕는 것은 어떨까. 그는 뉴욕 시의 상원의원이기도 하니, 클라우드의 부탁을 하나쯤 들어주면 혹시 모를 미래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 세 가지 조건이 꼭 필요해요." 

"찾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정 급한 일이라면 내가 도와줄까요?"

"무슨 일인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뭐, 대충 사람이나 뭔가를 묶는 일이겠죠. 아닌가요?"

"……좋아요. 그럼 며칠 뒤에 펍 밖에서 한 번 만나죠. 연락처 있나요?"

 

이반이 가게의 레몬만큼이나 많이 굴러다니는 냅킨 한 장을 빼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따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클라우드가 가게를 나서고, 이반은 그가 까다롭게 조건을 따지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제안을 쉽게 수락하는 것에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이내 그가 자신을 점잖고 조용한 사람으로 착각 혹은 판단을 했겠거니 하고 말았다. 딱히 소란함을 즐기는 쪽은 아니거니와 그가 쉽게 수락하는 것이 제게 나쁜 일도 아니었으므로. 약속된 당일, 클라우드와 만나 가까운 호텔로 들어설 때까지도 이반은 묶어야 할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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