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2차 창작

Je te veux.

앙즈앙, 앙쟝.

왈츠 음악.

당신은 왈츠를 출 줄 아나요?

동화 하나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제가 보았던 일이지요. 제가 보았던 일이고 정말 있었던 일인데 왜 동화라는 이름이 붙었냐고 물으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답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꼭 이맘때쯤이었습니다. 한낮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저는 카페의 바깥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잘 나오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애꿎은 펜을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오후의 중간, 열 일곱살 소녀가 책을 들고 뛰어가다 길 한가운데 있던 물 웅덩이를 밟았지요. 그 때부터 모든 것은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물방울이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위로 튀어올랐고 햇볕 및에서 마치 작은 유리알들처럼 흩어졌습니다. 물이 옆에 서 있던 마부에게 톡, 톡, 한 방울씩 떨어지고 소녀의 입은 천천히 벌어지면서, 물 표면에 닿아 있던 발이 웅덩이 한 가운데로 쑤욱, 들어갔습니다. 저 멀리 있던 소녀의 일행이 뭐라고 소리를 내기 시작한 순간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때부터 다시 시간은 왈그락거리는 파리의 거리를 늘이거나 줄이지도 않고 곧장 제 귀로 쏟아붓기 시작했지요. 마부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와 놀란 소녀가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소리까지요. 그 모든 것들이 제게 한 덩어리로 쏟아지자 문득 견딜 수가 없더군요. 쏟아지는 햇볕과 엊그제 비가 온 탓에 축축한 공기까지 모두. 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들고 다니는 잡동사니들을 모조리 챙겨 다른 조용한 곳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거의 무너져가는 성당 벽 앞에 앉아 있자니 방금 전의 일들은 전부 꿈 같더군요. 차분히 노트를 펼치고 펜을 종이 위로 가져다 대는 일련의 과정들이 원래 돌아가던 시간의 속도대로 부드럽고 훌륭했습니다. 저는 만족감을 느끼며 딱딱하고 차가운 바위에 기대 아까 떠올렸던 단어들을 붙잡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나. 둘. 셋. 그러니까 왜 숫자가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맴돌더군요. 하나. 둘. 셋. 둘. 둘. 셋. 꼭 박자를 세는 것처럼요. 셋. 둘. 셋. 고개를 숙이고 노트에 글자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는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건 제가 떠올린 게 아니라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요. 넷. 둘. 셋. 그러고 보니 그건. 꼭. 하나. 둘. 셋. 왈츠 박자 같았습니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왈츠 박자였습니다. 약간 빠른 템포로 말이죠. 강. 약. 약. 음악에 조예가 있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박자를 세며 왈츠 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이 조용한 곳에서. 몽마르트 언덕의 구석에서 누가 왈츠를 연습하고 있는 걸까요. 문득 궁금해진 저는 종래의 목적인 집필을 잊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누가? 그리고 몸을 쭉 빼어 제가 있는 곳의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하나. 둘. 셋. 박자는 천천히 느려지더니 민망한 웃음소리로 바뀌더군요. 저는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보았습니다. 풀밭 위에는 재킷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지요. 그리고 그 옆에는 청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저도 늙은 사람은 아니지만 굳이 그를 청년으로 칭한 이유는 알 수 없는 풋풋한 기운이 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청년은 어색하게 - 감히 설명하자면 매우 어정쩡한 자세로 - 서서 춤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스운 것은 그것이 상대가 없는 왈츠 연습이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도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을 겁니다. 확신하는 이유는 청년의 얼굴이 얼마간 붉어져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그는 스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시. 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더니 소리 내어 박자를 세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 둘. 셋. 둘. 둘. 셋. 그러나 상대가 없어 그럴까요. 청년의 발은 쉽사리 꼬여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광경에 알 수 없는 흥미를 느껴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누굴 위해 그리 열심히 연습하는 걸까 궁금해지더군요. 그 청년은 끈질기게 스텝을 연습했습니다. 풀밭 위에서 한 바퀴 돌고, 있지도 않은 상대방에게 인사를 하고, 종내는 허리를 굽혀 상대를 끌어당기는 시늉도 냈습니다.

저는 웃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고요. 그것은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의 멋진 노력에 대한 경탄 같은 것이었지만, 누가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청년이 알게 되면 더욱 부끄러움을 타 어디론가 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랬지요. 청년의 얼굴에는 타고난 수줍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약간 찡그려진 미간에는 망설임이, 꼭 다문 입술에는 멋쩍음이 얹어져 있었지요. 발걸음을 옮기는 행동은 부드럽지 못하고 조금 뻣뻣했습니다. 영 자신감이 없는지 몇 번이고 멈춰 뒷머리를 긁적이더군요. 그러나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반 시간동안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여기까지가 제가 본 광경이었다면 이것은 동화가 되지 못 했을 겁니다. 기껏 해야 백 페이지도 안 되는 수필집에 실릴까 말까 한 단상이었을 테고요. 다행스럽게도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문득 저 멀리, 붉은 인영 하나가 보이더군요. 언덕을 꿋꿋한 발걸음으로 오르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 눈 앞의 청년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여전히 왈츠 스텝을 밟고 있었습니다. 숫자를 세어 가면서요. 둘. 둘. 셋. 여기서 여러분이 주목해야 할 사실 하나는. 언덕을 오르는 다른 청년의 발걸음도 어느새 그 박자에 맞춰져 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춤 연습을 하는 청년이 셋. 둘. 셋. 하고 소리를 내자 그도 맞춰 발걸음을 쿵, 쿵, 쿵, 하고 내딛었습니다. 강. 약. 약. 그렇게요. 저는 언덕길을 오르는 청년과 춤 연습을 하는 청년 모두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뒤로 조금 물러섰습니다. 갑자기 제 심장도 왈츠처럼 두근대더군요. 4분의 3. 하나 둘 셋, 둘 둘 셋. 숫자 사이에 마침표를 넣을 필요도 없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그것은 곧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에서였을 겁니다. 언덕길을 오르던 청년은 잠시 멈춰 서서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풀밭에서 흘러나오는 박자 세는 소리를 붙잡았다는 듯이 그곳으로 다시 발을 떼었습니다. 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때까지 들고 있던 노트를 바닥에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잘 보기 위해 조심스레 옆에 있던 흙더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제가 그 행동들을 하는 순간에, 붉은 재킷의 청년이 우뚝 발걸음을 멈춰 이름 하나를 부르더군요. 그 목소리가 퍽 다정하기도 해서 저는 한 순간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저들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요.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아주 확실하고 부드러운 말투였습니다. 즈앙. 하고요. 저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노트를 도로 들었습니다. 꼭 적어 내려가야만 할 것 같은 말들이 조곤조곤 새어 나올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 다정스런 말소리에 춤 연습을 하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던지 급하게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 허둥허둥한 몸짓으로 풀밭에 있던 외투를 집어들더군요. 앙졸라스. 하면서요. 저는 숨을 죽였습니다. 다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언덕을 올라온 탓에 청년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굴러내리고. 자신의 친구 혹은 동지가 - 제가 예상한 바로는 그렇습니다만. 아닐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요.- 손에 어정쩡하게 푸른 외투를 들고 소매를 들어 천천히 얼굴을 훔치는 행동 가운데 그가 선선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꼭 부드러운 햇볕처럼요. 쿵, 쿵, 쿵, 내딛었던 발걸음의 박자 위에 얹히는 고운 선율처럼 웃더군요. 새빨개진 얼굴로 제 얼굴을 소매로 스윽 닦는 청년은 아주, 아주 부끄러워 보였습니다. 새벽에서야 고개를 내미는 별처럼 그의 흰 소매 위로 눈동자가 살짝 올라왔을 때, 붉은 옷을 입을 청년이 그 팔목을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턱, 하고 팔목을 그러쥐는 순간 시간은 다시 도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저도 모르게 속으로 박자를 세고 있더군요. 붉은 재킷의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자네를 한참 찾았네. 저는 그 말 한 마디를 노트 위에 꾹꾹 눌러 썼습니다. 춤 연습을 하던 청년도 입을 열었습니다. 나를 무엇 하려고 찾았는가? 저는 그 말도 노트 위에 꾹꾹 눌러 썼습니다. 그러자 여전히 선선한 미소를 띄고 있던 그 청년이 주머니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더군요. 자네가 왈츠 교본을 두고 간 것 같아서. 그러자 부끄러움에 붉어졌던 다른 청년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런 손길로 그 책자를 받아 챙기더군요. 고맙네. 하는 작은 말 한 마디를 남기고요.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책자를 가져온 청년은 다시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괜찮다면, 내가 자네의 춤 연습 상대가 되는 건 어떻나. 그러자, 춤 연습을 한창 이어가던 청년이 화들짝 놀라 아, 하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적어 내려가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가타부타 말이 나오기도 전에, 앙졸라스라 불린 그가 외투를 벗어던졌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춤을 추기 위한 자세를 잡더군요. 엄중하고 올곧아 보이던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 한 가닥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즈앙, 하고 불린 청년은 아직도 어정쩡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그 얼굴에서도 저는 한 가닥의 웃음을 들었습니다. 둘. 둘. 셋. 하는 박자가 지나고. 곧 자세를 잡고 서 있던 청년이 다시 상대편에 있던 청년을 잡아 당기더군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나와 함께 출 춤이니 같이 연습하세. 하고요. 얼떨결에 팔을 붙잡고 서게 된 둘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다가 경쾌한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치 손바닥 두 개가 맞아 들어가서 박수 소리가 나는 것처럼 시원한 웃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춤 연습을 하던 청년이 말하더군요. 자네와 함께 춰도 되겠는가? 붉은 재킷을 내던진 청년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자네가 아니면 아무도 원하지 않네. 그 말 뒤에 이어 여유있는 동작으로 허리를 감더니. 손을 맞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물었습니다. 자네는 나를 원하는가? 

저는 즈앙이라는 청년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요.

왈츠 세 마디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둘은 함께 박자를 세 가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둘 둘 셋. 얼굴에 웃음을 띄고요. 그 때 저는 제가 그 자리를 떠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방금까지 그들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관객으로서의 책임감을 그 때 느낀 것입니다. 온전한 둘의 시간을 위해서 말입니다. 대화를 적었던 노트는 곧장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군요. 아. 잘 했다. 나는 그 왈츠 스텝을 영영 잊지 못할 겁니다. 밀고, 당기고, 끌어안고, 서로의 발을 보며 웃을 청년들을 상상하며. 얼굴에 내려앉은 한낮의 빛을 상상하며. 그렇게 웃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지요.

한 여름의 햇볕 아래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 그 청년들은 다음에 있을 댄스 파티에서 제법 멋들어지고 고운 춤을 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왜 동화인지에 대한 대답은 그걸로 충분할 겁니다. 예쁘고, 부드러우며, 4분의 3박자를 가진. 그런 동화입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