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2차 창작

공포.

1. 콩브페르.

부서진 잠.

두려워하라.


콩브페르는 축축한 왼쪽 눈을 문질렀다. 눈을 꿈뻑였다. 왼쪽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툭, 툭. 빠져나가는 생명의 점성을 품고서. 손끝에서 심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퉁, 퉁. 콩브페르는 검은 어둠 속에서 손을 휘 둘러보고서 차분히 숨을 내쉬었다.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죄여드는 엄습함이 콩브페르의 등을 타고 손톱을 세웠다. 콩브페르는 눈을 치켜뜨고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헉, 하고 다시 제 품으로 손을 끌어다가 잡았다. 그 손바닥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허공뿐이었다. 어둠에 싸인 모든 것. 몸뚱아리를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태초가 이러했을까. 그 어둠과 혼돈 속에 존재했던 무언가의 감정이 이러했을까. 아니면, - 콩브페르는 미간을 잠시 찡그렸다. 피가 흐르는 탓에. - 아니, 세상을 창조하기 전 신이 그러했을까. 머릿속의 의문을 마치고서 다시 손을 뻗어 보아도 아무 것도 없었다. 손을 바닥으로 뻗자 격자무늬로 짜여진 돌 바닥이 잡혔다. 콩브페르는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괴롭다는 것을 깨닫고서 문득 괴이한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었다. 아야. 그리고 다시 몸을 웅크려 바닥을 짚었던 팔을 만지작거렸다. 멍이 들었나, 어딘가 부러졌을까. 그러나, 알 수 없다. 모른다. 눈을 지나치게 크게 뜨고서 손바닥을 눈동자 가까이 대어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 어둠. 어둠. 그뿐. 육안으로 피부의 상태도 볼 수 없는 그 속에서 콩브페르는 문득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無, 아무것도 없는 허공.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무지의 상태.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뛰어오르는 제 몸의 맥박과 불안한 숨소리뿐이었다. 웅크린 몸 주변으로 추위가 덮여오고 있었고, 몸을 떨던 콩브페르는 문득 입고 있던 조끼가 사라졌음을 알았다. 크라바트도 없었다. 외투도, 코케이드도, 모자도 사라졌다. 누군가 강도질을 위해 그 물건들을 빼앗아 간 후 기절한 그를 아무것도 없는 구멍 속으로 내던져 버린 것 같았다. 아니, 정말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콩브페르는 우선 자신이 아는 이름들을 불러보았다. 앙졸라스? 쿠르페락? 

아주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진실로 공포스럽게도.

즈앙, 들리나? 푀이? 바오렐? 

목소리는 공간에 부딪혀 정정 울리지 않았다. 그저 뻗어나가 바닥 어딘가에 툭, 무력하게 떨어질 뿐. 콩브페르는 조금 절박한 심정으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외쳤다. 

레글르! 졸르를리, 거기 없나? 

그리고 콩브페르의 후두부를 강하게 때리는, 정적. 아무 것도 되돌아오지 않는 빈 공간으로의 비명. 슬프게도, 콩브페르는 자문자답을 한 꼴이 되었다. 그것은 이 공간에 대한 물음이자 답이었다. 거기 없나, 그 질문에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들이 알려준 대답을 콩브페르 스스로 명확히 한 것이다. 홀로였다. 그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한번 더. 

아무도 안 계십니까?

한번 더. 

어이! 

...이!

단말마의 소리. 끝 음절이 어디선가 기어와 콩브페르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얇고 가느다란 소리였지만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콩브페르는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외쳐보았다. 어이! 그리고 숨이 나가고 들어올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어이! 하고, 돌아왔다. 메아리처럼. 그러나 그 목소리는 분명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콩브페르는 손나팔을 입에 대고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외쳤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어이!

여깁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거기 누구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이번에는 기이함이 콩브페르의 등을 타고 올라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

거기 누구 있습니까! 

...

거기 누구 있습니까! 

목소리는 콩브페르의 말을 따라하고 있었다. 문득 콩브페르는 이 일이 자신에게 왜 일어났는지를 먼저 묻기 시작했다. 아니, 저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자신이 정말로 알 수 없는 영역에 닿아 있다는 것을 빼면. 

목소리가 멈추었다. 저것이 이제 침묵을 따라하는 것일까? 콩브페르는 이 상황에 진저리를 쳤다. 알 수 없는 일들만이 존재했다. 콩브페르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마에 흐르던 피는 말라붙어 부스러졌다. 바닥에는 격자무늬 돌을 빼면 아무 것도 없었고, 그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기가 들어올 구멍은 보이지 않았으나 숨을 쉴 수는 있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의문일 뿐이었다. 콩브페르는 침착하게 눈을 감고 - 이 또한 상징적인 언어일 뿐,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 자신의 기억과 지난 시간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제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거리에 나가 팜플렛을 나누어 주고 앙졸라스의 연설을 들었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하나 걸리는 점이 분명히 있었다. 한 석수장이가 그랑테르와 담배를 피우며 떠들다가 자신에게 와인 한 잔을 권했다는 것. 그리고 나서는. 그리고 나서는... 콩브페르는 늘어지는 생각의 꼬리를 탁, 잘라냈다. 기억이 없군. 하고. 

문득 졸음이 밀려왔다. 콩브페르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잠드는 일이 과연 이로울 것인가를 따져 보기에는 지나치게 지쳐 있었다. 말라붙은 피를 닦아낼 물도, 옷도 없었다. 셔츠는 이미 식은땀이 한 차례 말라 소금기로 눅눅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평화로웠다. 콩브페르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돌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웠다. 검은 무지 속에서 눈을 붙이자. 아무것도 모를 때. 그것을 빼고 할 일이 있을까. 그리고 콩브페르는 긴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그때였다. 

어이!

 .......

어이!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어이!

조금 더 커졌다. 이제는 콩브페르의 바로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콩브페르는 벌떡 몸을 일으켜 어둠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손에 쥐이는 것이라고는 허공뿐이었다. 

어이! 

이봐요!

다분히 공격적인,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콩브페르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어이! 어이! 어이! 하고. 콩브페르는 오싹 소름이 돋아 뒷걸음질쳤으나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콩브페르가 한 발을 옮기면 따라 한 발을 옮겼다. 귀를 막으면 바로 손등에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소리를 냈다. 어이! 거기 누구 없습니까! 콩브페르는 눈을 뜨고 손을 격하게 휘저으며 내뱉었다. 그만. 그만. 일순간 그것은 소리를 지르기를 멈추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마치 의문문처럼 끝을 올려서. 

그만해. 

그만해?

난 지쳤어.

그만해?

그래, 그만해.

그만해?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은 끝나지 않는 질문만 무수히 던져 댔다. 이것은, 뭘까? 이 존재는 대체 무얼까? 콩브페르는 눈을 다시 감았다. 그러자 그것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이! 어이! 콩브페르가 눈을 뜨면 그것은 다시 속삭였다. 그만? 그만해? 주저앉은 콩브페르의 주변을 검은 어둠이 감쌌다. 콩브페르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기실, 그가 남들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늘 그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콩브페르는 의학을 공부했기에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졸르를리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과 달리 그랬다. 그는 백과전서를 읽고 대조하는 일을 즐겼기에 어느 질문이 던져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콩브페르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알았기에 세상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가 살아 있는 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두려워 할 일은 없다고 믿었다. 다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너머의 것. 운명이나, 혹은 죽음과 같은 것들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늘 알기 위해 애를 썼다. 더 알기 위해. 더 알고서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아는 것들을 꼽아 보며 다시 자신을 다지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올때면 그는 늘 자신이 죽더라도 남을 것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곁에 있는 동지들을 생각했다.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확신을 주었다. 죽음이 그리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죽더라도 그것은 가치 없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그러나 만일.

아주 만일.

그가 여기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어디인지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정확히 말하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와 이 어둠 속에 갇혀 죽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콩브페르는 감히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죽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자신이 아는 한에 있어서는. 가장 두려운 죽음이었다. 알지 못한 채 죽는 것. 무지 속에서 자신을 죽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콩브페르는 문득 속삭이는 목소리가 멈춘 것을 깨닫고 사방을 둘러보다 뛰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콩브페르는 그리 생각했다. 어둠 속을 달리고 달려 바람이 흐르고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야 했다. 삼 일도 채 되지 않아 물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다. 혹은, 이대로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었다. 음식과 햇빛도 큰 문제였으나. 가장 큰 것은. 잠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눈을 감으려 애쓸때마다 목소리는 다가와 콩브페르를 깨워댔다. 속삭이거나, 소리를 지르며. 그만해, 그만해? 어이! 어이! 콩브페르는 어둠속을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는 동안 그것은 끈질기게 콩브페르를 따라와 소리를 질러댔다. 어이! 어이! 거기 누구 없습니까! 반복하며. 콩브페르는 처음으로, 자신이 자제력을 잃고 있다고 느꼈다. 침착하려 애썼지만 그의 심장과 머리는 쿵쿵 뛰어대며, 소리에 펄쩍 놀라며 이성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 주지 않았다. 콩브페르의 명료한 이성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앎과, 확신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저 어둠 속을 달리는 공포에 질린 한 생명체가 남았을 뿐.

콩브페르는 모순적이게도, 이 순간 자신이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꼈다. 심장이 뛴다, 땀이 흐른다. 숨이 차고 두렵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생각하며 콩브페르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하구나. 하고. 그래서 콩브페르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뛰었다.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잠들지 말라고 계속해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떨춰내려가 아니었다. 숨이 턱 끝까지 밀려올때면 멈춰 고개를 숙이고 돌바닥을 더듬었다.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격자무늬에 손을 얹고 다만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했다. 목소리는 그 순간 멈추었다. 그가 생각을 하는 순간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콩브페르는 뛰고, 또 뛰고, 멈추어 숫자를 세고, 그리고, 그리고. 무지에 대한 공포 속에서 달렸다. 끝없이. 끝없이 달렸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달리기를 영원히 이어 갈 요량으로. 그렇게 달렸다. 두려웠으나 그것을 제하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감히 두려움 속을 달렸다. 

그러니 콩브페르가 몰랐던 것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는 일이 얼마냐 슬프랴. 이 감옥 속에는 감히 그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리도 애타게 외쳐 댔던 그의 동지들 또한. 콩브페르가 마주한 것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무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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