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2차 창작

우정에 대한 소송.

즈앙의 죽음에 대하여.

부서진 사람들을 사랑하기.

친구가 모두 민중이 된다. 우리의 개인적인 우정은 위대한 깨우침의 첫번째 단계이자, 영혼이 지나가는 정거장과 같은 것이다. 영혼은 조금씩 상승하여 마침내 조국이라고 부르는 더 낫고 더 사심 없고 더 높은 영혼을 알게 된다. 

- 쥘 미슐레, <민중>. 

사람은 진정으로 홀로인가?

"일동 기립!" 

법정 경위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공간 안의 모두가 벌떡 일어선다. 부러 지체하는 이도, 망설이는 이도 보이지 않는다. 움직임이 알리는 것은 단 하나다. 이 공간은 어떠한 규칙에 의하여 통제되는 곳이라는 것. 

검은 법복 입은 판사가 들어온다. 옷깃 장식도 없고, 그 어떤 상징도 그려지지 않은 검은 옷. 공간을 따라 판사의 움직임 또한 뻣뻣한 자동인형과 같다. 즈앙은 기립한 채로 숨을 멈추었다. 위압감이 어린 청년의 어깨를 누르고 있을 때다. 

판사가 자리에 앉는다.

"일동 착석!"

이 공간은 어떠한가. 변호사도 없이 홀로 앉은 이는 즈앙이다. 방청석에는 드문드문 인영이 어른대고, 판사는 높이 앉아 모든 것을 바라본다. 이 법정을 책임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자비를 고려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판사가 입술을 열었을 때, 그 숨결에서 화약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즈앙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허리를 펴 앉았다. 두려워해서는 아니 될 듯 하여. 

"검사측, 발언하세요."

저기, 이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검사가 온다. 

"존경하는 판사님."

아주 익숙한 목소리다. 

"이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법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 순간에 발을 헛디딘다. 곧 자세를 고쳐 소탈하게 웃어 보인다. 독수리 같은 저 머리. 즈앙은 그를 알고 있었다. 영영 법정에 발 들일 일 없을 만치 운이 없던 이가 여기 서 있잖은가. 레에글, 레에글 드 모. 그의 동지가 아닌가. 즈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판사 때의 기립보다 훨씬 힘찬 몸짓으로. 판사가 청년을 바라본다. 

"앉으세요."

"자네..."

"앉으라고 했습니다."

레에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즈앙은 몹시도 당황하여 허둥대는 꼴로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판사의 말이 떨어진다. 검사측, 발언하세요. 그 말에 맞춰 레에글이, 그러니까 이 법정의 검사가 판사를 보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1832년 6월 5일 경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두 개의 바리케이드 중, 코랭트 주점을 목으로 하여 세워진 바리케이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장 프루베르, 다른 이름으로 즈앙이라 불리는 이가 정부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보쉬에!"

"정숙하세요."

즈앙이 입을 열어 새된 소리로 자신의 벗을 불렀을 때, 판사가 그를 저지한다. 그러나 작은 반응이나마 돌아온다. 레에글 드 모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것이다. 등골에 축축한 기운이 깃든다.

즈앙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눈길은 감정이 따라 걷는 길이라서 눈길이라 했던가. 즈앙은 그 너머로 무언가를 보았다. 슬픔.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해서든. 이 다감한 청년은 슬픈 벗을 도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그리고 또한 벗이 자신이 할 말을 마저 마치도록 도와 주어야 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이 있고 나서, 그는 홀로 사라졌습니다. 또한 홀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정부군들에 둘러싸여 몇 마디를 남기고 난 후 우리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냈습니다. 이 사건은 우정에 대한 소송입니다. 우리는 그의 벗들을 이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증인 신문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첫 번째 증인을 부르세요."

레에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절규도 없었으나, 판사는 마치 그 건조한 선언문 속의 감정을 읽어낸 사람처럼 굴었다. 아, 그러니까. 마치 자신을 제외하고서 일어나는 일처럼 여겨진다. 이 소송의 중심은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즈앙은 그렇게 느꼈다. 모든 행동은 제지당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뿐이다. 레에글의 손짓을 따라 들어오는 증인 또한 그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콩브페르. 지친 얼굴처럼 보이는 것은 어째서인가? 가슴 위의 붉은 총검 자국은 무엇인가? 즈앙은 아주 먼 곳에서 자신의 벗을 바라보는 기분에 빠졌다. 마치 아무 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증인 선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없다. 무엇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것일까. 콩브페르가 선서한다.

"마음을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거짓을 말한다면 기꺼이 그에 대한 벌을 받으리라 맹세합니다." 

"검사측 질문하세요."

레에글이 콩브페르에게 다가간다. 두 사람의 얼굴이 마주볼 때에, 지척의 거리에서 즈앙도 그것을 보고 있다. 아니, 지척의 거리였는가? 아주, 아주 멀어보이기만 하는 것을. 즈앙은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의 벗들이 이름조차 불러 주지 않는 일에 대하여 깊히 아파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이 소외됨에 대하여. 그러나 그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너무 젊은 청년에게 벗들이란 어떠한 의미인가? 그것은 이 세상에 나아가 처음 스스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그랬다. 그래서 장 프루베르는 지금, 아주 떨고 있었다. 

"콩브페르."

"예."

"즈앙이 사라진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맞습니까?" 

"예."

"발견한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때여, 콩브페르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즈앙은 알았다. 그것은 지친 얼굴이 아니었다. 차라리 혼란에 가까운 것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일그러진 표정 사이 사이로 후회의 겹이 끼워져 있다. 미간과 입주름 사이에. 즈앙은 순식간에 자신의 벗이 너무도 늙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점호를 다시 했습니다." 

콩브페르의 목소리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들려온다. 스물 다섯 살에 대머리가 되었던 레에글 드 모는 지금, 그럴 일이 없을 정도로 늙어 보이는 콩브페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즈앙은 레에글이 콩브페르에게 다가가는 광경을 보고 있었고, 몸을 떨고 있었다. 레에글이 말한다. 

"곧바로 즈앙을 찾으러 가지 않고서요?"

"예."

"왜 그랬습니까?"

"......"

"증인, 왜 점호를 다시 했습니까?"

콩브페르 또한 떨고 있었다. 대답이 나오지 않자 판사가 그를 부드러이 다그친다. 

"증인, 질문에 답하시길 권유합니다." 

".......혹시나 해서 그랬습니다."

"그 혹시나, 하는 것은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겁니까?"

"제가 즈앙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거나......"

청년이 고개를 든다. 즈앙은 벗의 얼굴이 축축히 젖어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뻐근한 숨이 갈빗대를 늘렸다. 즈앙은 당당히 펴고 선 가슴 한 구석이 심히 저려옴을 느꼈다. 

"......다쳤거나, 혹여 살아 있으나 어딘가 숨어 있거나....."

"증인,"

판사가 몸을 일으킨다. 아니,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른거리는 주황빛의 불꽃처럼 느껴졌을 뿐. 

"증인이 점호를 다시 함으로 인해 정부군 손에 떨어진 저 청년의 발견이 늦어졌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예."

콩브페르가 입을 다시 열었을 때, 즈앙은 무엇인가 자신을 꿰뚫고 지나간 것 같아 그만 헛숨을 토해냈다.판사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자리에 앉고. 법정의 시계는 도로 흘러간다. 저기, 속기사 자리에 선 기계장치는 끊임없이 종이를 토해낸다. 방청석의 형체들은 몸을 움직이거나, 기침을 하고. 때로 조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들기도 한다.

그러나 즈앙의 시간은 멈추어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죽음에 관한 다른 이들의 재판. 즈앙은 머리를 감쌌다. 저린 가슴 위에 얹어진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입술이 다물어짐과 함께 콩브페르의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과 가슴 위로 흘러내린 핏방울들이 더더욱 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벗이 후회로 가슴이 터져나갈 지경에 처한 것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죽음 후에 누군가를 법정에까지 불러내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진대. 즈앙은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의 있습니다!" 

"받아들입니다. 피고, 발언하세요."

판사는 그다지 놀라지 않은 투로 말했다. 즈앙이 오히려 그 자신의 이의가 받아들여짐에 놀랐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말을 신호탄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청년은 옹색하게 어깨를 굽힌 수줍은 이처럼 보였으나, 말을 이어나갈수록 그의 어깨가 펴지고, 눈이 맑아지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누구나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콩브페르는, 나의 벗은 그 바리케이드의 중책을 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만약의 만약을 위해 신중을 기했을 뿐입니다.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부당한 일이에요. 최선을 다한 이에게...!"

"으흠."

작은 고려의 소리가 튀어나오며 즈앙의 말을 막아섰다. 그러나 수긍의 뜻은 아니다. 손이 내저어진다. 그 움직임을 따라 즈앙은 끌어내려진 것처럼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판사는 다시 검사를 부른다.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나간 채. 즈앙은 양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갈비뼈의 서너 곳이 저려 오고 있었다. 

"피고의 발언은 이 법정의 요지에 어긋났으므로 기각합니다. 이 법정을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검사, 계속하세요."

"......존경하는 판사님. 두 번째,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어째서일까. 이제는 레에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진다. 즈앙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자꾸만 자신을 찌르고 오는 고통이 이 법정이라는 공간의 소외성인지, 혹은 벗들의 괴로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알 수 없다는 안타까움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저 멀리, 붉은 점이 어른대며 박혀든 금발이 휘날린다. 즈앙은 이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증인, 선서하세요."

"마음을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거짓을 말한다면 기꺼이 그에 대한 벌을 받으리라 맹세합니다." 

그제서야, 즈앙은 증인들이 손을 얹고 선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흰 손마디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아래 찢겨진 붉은 깃발이 곱게 개켜져 있었기 때문이구나. 즈앙은 산산히 깨부숴진 바리케이드의 잔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깃발과 마찬가지로 붉은 외투를 입은 앙졸라스가 증인석에 앉을 때에. 그 외투 위로 잔악하게 펼쳐진 화약과 총탄의 자국을 보았을 때에. 그는 깨닫고야 말았다. 죽음으로 인해 알지 못했던 진실이 그를 짓눌렀다. 실패했구나. 최후에는 모두가 죽었어. 

"검사측, 질문하세요."

"증인."

"예."

앙졸라스가 바람 새는 소리로 답한다. 숨을 쉴 적에 공기가 폐부를 채우지 못하고 어딘가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목소리는, 본디 위엄 있던 카랑카랑함을 애처로이 바꾸고 있었다. 즈앙은 이제 한 손으로는 가슴이 아니라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울음소리를 억누르기 위해서. 그는 도저히 이 법정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이제 혼란에 잠긴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1832년 6월 6일, 증인이 있던 바리케이드는 진압당했습니다. 맞습니까?"

"예. 

"그 바리케이드를 이끄는 자라고 불릴 만한 이는 누구였습니까?"

앙졸라스의 입이 열리나, 붕어처럼 뻐끔대는 입술 외의 다른 것은 감각되지 않는다. 양 손으로 가슴의 구멍을 틀어막고서 다시 수령이 말한다. 희디흰 눈꺼풀이 핏물에 젖었다. 속눈썹을 적시고 굴러떨어지는 것이 핏방울인가, 혹은 눈물인가. 즈앙은 알 수 없었다.

"접니다."

"증인, 피고와 어떤 관계였습니까?"

"......."

"증인, 답을 해 주셔야 합니다."

판사가 이번에는 한층 단호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앙졸라스는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한다. 눈가에 짓무른 피딱지들을 손등으로 닦아내었을 때에, 즈앙은 마침내 투명한 한 줄기 눈물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질문에 답을 할 적에, 앙졸라스의 바람 새는 목소리는 어쩐 연유에서인지 선명해지고야 말았다. 

"우리는 가족과도 같은 벗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피고가 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었지요?"

"......"

"앙졸라스."

레에글의 말에 수령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 것도 없는 법정의 천장을 바라보는 눈이 푸르다. 상상해 보라. 죽음 후에 자신의 동지의 죽음에 대한 소송을 마주하게 된 자의 심정을. 즈앙은 지나치게 따뜻한 영혼으로서,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였으니. 그래서 그 푸른 눈 속에 담긴 혼란스러운 속죄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즈앙은 목구멍을 꽉 채운 울음을 비명처럼 토해냈다. 

"예, 그랬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즈앙이 소리쳤다. 판사의 손이 내저어진다. 기각된다. 짜디짠 눈물과 저린 가슴의 통증으로 즈앙은 거의 제정신이라 할 수 없었다. 어떤 착란을 일으킨 사람처럼. 그는 공격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피고인석을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려 애쓴다. 그러나 나아갈 수 없었다. 판사가 순식간에 잔인한 한 마디를 내뱉음으로서 그 걸음이 막혀 버린 것이다. 

"정숙하세요."

".....판사님!"

"정숙하세요. 피고. 판결하겠습니다. 모두 나오십시오."

즈앙이 비틀대며 자리에 기어이 섰을 때, 발 밑에 기이하게 질척대는 액체가 깔린 것을 눈치채었다. 방청석에 앉아 졸던 이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이가, 내내 눈을 떼지 않던 이가, 걸어나온다. 저기, 검사석에 앉았던 레에글도 걸어나온다. 앙졸라스가 증인석에서 내려온다. 퇴장했던 콩브페르도 다시 걸어나온다. 즈앙은 신발 밑창을 축축히 적신 핏물을 보고 있었다. 온 몸에 상처가 난 나의 동지들. 그들이 높게 올라앉은 판사석 앞에 서는 것 아닌가. 청년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진정으로 무서웠던 것이다. 자신의 손에 닿지도 않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구는 동지들을 눈으로 보고 있으니. 또 자신이 어찌할 도리도 없는 판결을 받아야만 한다는 이것이. 어떠한 처분을 받게 된 그들을 손 놓고 선 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그는 너무도 두려웠던 것이다. 공포가 그를 감싸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이 우정에 대한 소송은 길게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즈앙은 책상을 양 손을 내리쳤다. 판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피고를 제외한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법봉이 들린다. 단두대의 칼날처럼, 방아쇠처럼, 당겨지고 내려쳐지기 위해 그저 들려진다. 그 잔인한 집행에 저항하지 않을 혁명가는 없을진저! 

"이의 있습니다!"

여덟 명의 동지들이 울상을 지은 채로 또 고개를 돌린다. 어쩐지 그 눈들이 자신을 만류하는 듯 하여. 즈앙은 신뢰와 신념 사이 길고, 길게 망설였다. 벗들에 대한 믿음과 사상에 대한 올곧음은 언제나 그 신信이라 하는 말 하나에 묶여 있었으나. 이 법정 앞에서 기어이 갈라서게 된 것이다. 그는 잠시간 신뢰를 내려놓고자 했다. 그것은 기어이 자신의 벗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또 다른 대담함이었다. 

"피고, 발언하세요."

"......나의 친구들은."

숨이 막히는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공포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저 멀리 법정의 양 문으로 총을 든 병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것은. 즈앙은 판사의 입에서 풍겨 나오던 화약의 냄새를 알았다. 그는 굳어졌다. 저기, 저 병사들은 정부군의 군복을 입고 있구나. 총구 앞에 선 자신의 동지들을 보니. 아, 즈앙은 저려 오는 가슴께에 불이 타는 듯한 통증이 얹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발언하지 않는다면 판결을 집행하겠습니다."

병사들이 정렬한다. 말이 끊어졌으나 여기서 언어를 놓을 수 없음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다. 즈앙, 가장 대담한 자. 그 이름이 날아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그는 양심을 눌러 담아 소리친다.

"나는 죽을 때에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너무나도 두려웠단 말입니다!" 

"......"

"홀로 동떨어진 채 저 총구 앞에 섰을 때에 나는 두려웠습니다......"

고백을 해내며 즈앙은 무너졌다. 책상을 붙잡은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가슴께의 통증은 이제 어느 때보다도 명확했다. 아주, 아주 아프고, 아주 공허했다. 

".......진실로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즈앙?"

판사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법적인 용어로 대변되는 그 누군가가 아니라. 장 프루베르, 즈앙으로서. 즈앙은 고개를 끄덕인다. 흐느끼는 말소리 사이로 고개 끄덕임과 함께 수백 번의 긍정이 튀어나온다. 그는 애원하지 않는다. 다만 고백한다. 당당한 자는 자신의 언어로 설득할 뿐이다. 법정이란 응당 그러한 언어에 힘을 주지 않으면 아니 되는 곳이라. 즈앙은 그렇게 믿었다. 

"나는 홀로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의 동지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떠올리며 나는 차라리 행복했습니다. 벗들에게 미안함을 전하지 못함이, 그것이 원망스러웠을 뿐이지. 내가 극복하지 못한 나의 인간적 공포에 대해서 이렇게 드러내어야 함이 미안합니다. 내 친구들, ... 내가 의연하지 못해 미안해. 나는 너무도 두려웠지 뭔가. 자네들이 보고 싶었네. 차라리 우리가 함께 있었다면, 그랬다면..."

"즈앙."

여덟 명의 동지들은 이제 손을 잡고 선 채 그의 앞에 서 있었다. 판사가 몸을 일으킨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불꽃과 빛으로. 온기로. 이 공간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안에 자리한 모두가 울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판사가 법봉을 다시 들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단 한 올의 두려움도 품지 않았기에. 즈앙은 그저 눈을 들어 벗들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의 죽음을 재판결합니다." 

아베쎄의 벗들이 손을 벌린다. 몸에 난 상처들은 사라지고, 일그러진 표정은 다시 평온해진 채로. 그를 맞아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판사석은 다시, 높이, 비틀어진 채로 높이 솟아오른다. 이 층짜리 건물만치 높아진다. 방청석 앞에 있던 울타리들은 몸집을 키워, 바리케이드처럼. 그렇게 얼기설기 쌓아올려진다. 

"피고를 포함한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린다. 

"역사가 그리 해야만 했으므로."

즈앙은 피고인석을 넘어 벗들에게 뛰어갔다. 활짝 벌려진 팔이 그를 맞는다. 

"그러나 모든 죽음은 두려움을 떼어 놓은 채 이루어질 것이다."

여덟 명의 동지가 즈앙을 한가운데로 감싸 안는다. 와글와글한 웃음소리로 그를 끌어안는다. 그를 보호하고자, 가장 가운데에 둔 채로. 벗들은 얼싸안았다. 

"이와 같이 판결을 확정한다."

즈앙은 뜨거운 온기와 웃음 소리 사이에서 양 팔을 뻗어 되는 대로 자신의 동지들을 끌어안았다. 판결은 이미 그의 귀에 들리지 않음이 분명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벗들이 두려움 가운데 홀로 죽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사실만을 자각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으므로. 법봉이 들린다. 아베쎄의 벗들은 서로 끌어안은 채 몸을 숙였다. 법정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탕. 

탕. 

탕. 

하고, 정렬한 병사들의 총이 불을 뿜을 때. 법정은 사라지고. 아침 밝은 바리케이드에서. 대포 소리가 울린다. 모두가 총을 들었다. 아, 기이한 꿈을 꾸었어.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앙졸라스가 외친다. 1군, 준비! 즈앙은 총을 겨눈다. 콩브페르와 눈짓을 나누고. 쿠르페락이 등을 두들기는 손길을 받는다. 그의 뒤에 푀이와 졸리, 레에글, 바오렐이 화약을 장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랑테르는 어디선가 졸고 있으련가. 그러나 그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아직 펄럭이는 붉은 깃발 아래. 즈앙은 숨을 들이킨다. 바리케이드가 외친다. 조국을 위해! 즈앙도 함께 소리친다. 프랑스 만세! 미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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