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ER.
질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랑테르가 말했다. 그는 창조주를 마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말하거라, 아이야.
창조주는 흐릿한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신성한 땅이니 신발을 벗어라, 혹은 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하는 어떠한 전조도 없이. 그는 모습을 드러내 그랑테르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의 창조주이니라. 그랑테르는 짙푸른 멍이 올라 앉은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짓눌렀다. 전능한 존재 앞에 예를 갖추기에 그는 지나치게 회의적이었으며, 질문을 하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학구적인 영혼이었다.
왜 우리를 만들었습니까?
사랑하기에.
우리를?
그래.
사랑하기에. 그랑테르는 그 말에서 하나의 온전한 절망을 느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평생 부정해온 것들이 있다. 대문자 R에게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그는 평생 사랑을 부정해왔다. 그가 긍정하는 것들이란 오직 부정적인 것들 뿐이었다. 아,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아주 복합적인 한 가지. 그랑테르가 숫제 주먹을 쥐어 제 가슴께를 짓누르자 창조주는 어둠 속에 자리한 몸을 기울여 그를 살피는 것 같았다.
아이야. 어찌 그러느냐.
그 말에 대답하려면 나는 당신에게 질문을 수백 가지는 더해야 할 겁니다. 당신도 고통을 느낍니까? 신체적 통증은 느낍니까? 감정이나 생각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만일 그렇다면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고통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습니까?
아이야.
창조주의 목소리는 약음천을 내린 채 오래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 같았다. 흐릿하고 둔탁한 연주. 그랑테르는 그런 소리를 내려면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은 그 무엇보다도 명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창조주는 자기 뜻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그런 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사랑하기에, 그래서 그랬다.
사랑하기에 고통을 준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는 너희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기를 바랐다.
그리고 창조주는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체는 거대한 성당의 종소리처럼 보였다. 소리가 보이는 감각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순간이었다. 압도. 그랑테르는 선 자리에서, 종탑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거대한 종탑 바로 가까이 서서히 끌어당겨지는 기분을 느꼈다. 종소리는 울리고 있지 않았으나 그의 영혼이 소리의 파동과 함께 공명하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힘으로. 가슴께의 멍이 욱신거렸다. 이내 관통하는 쇳소리처럼. 창조주가 차가운 손을, 손이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뻗어 그 회의주의자 영혼의 가슴에 얹었다. 그랑테르는 헛숨을 들이켰다. 차갑디 차가운 물질이 푸른 멍 위에 얹어지자, 황홀하면서도 아린 고통이 찾아왔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랑테르는 눈에서 얼음덩어리 하나가 쑤욱, 흘러나오는 것을 알았다. 오래되어 흘리지 못한 눈물이 빠져나왔다는 것을 그 영혼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창조주는 그랑테르가 흘린 그 오래된 눈물에 탄식을 내뱉는 것 같았다. 마치 그의 눈물을 위해 함께 울어 주는 사람처럼.
나는 고통을 통해 배웠다. 나는 냉소를 통해 고립되었으며, 나는 사랑을 통해 길을 찾았다. 너희가 그 모든 것을 알기를 바랐다.
신이시여.
그것은 관용구였다. 사람들이 놀람에, 아픔에 어머니를 찾듯이. 사소한 존재인 심장과 감각이 펄떡, 하고 뛸 때 신을 찾듯이. 그러나 창조주는 관용구를 모르는 것 같았다. 가슴에 얹어진 차가움이 거둬지고, 창조주는 다시 어둠 속에 자리했다.
내 이름을 그리 부르지 말아라.
그렇다면 무어라 불러야 합니까?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 ...
잊었느냐, 아이야?
그 영혼은 떨고 있었다.
잊지 않았습니다.
너희 결혼식의 주례를 내가 서게 되어 기쁘구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창조주가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랑테르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설렘, 혹은 자랑스러움.
결혼이란. 내 아이들이 만들어낸 것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며, 가장 증오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리 기뻐 보이느냐고? 너와 네 사랑하는 이의 경우에는 말이다. 아이야.
그리고 창조주는 그 존재를 일으켜, 그랑테르의 눈앞에 생생한 광경을 펼쳤다. 미소와 여덟 발의 총알. 부서진 바리케이드. 뮈쟁 뒷방의 마지막 항쟁 이후에 벌어진 그 광경을. 그랑테르는 자리에 굳어졌다. 저것은 결혼이 아니다. 그랑테르는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으나 창조주의 기쁨, 섬광과 같은 자랑스러움이 그랑테르의 몸을 밧줄처럼 옭아매고 있었다. 저것은 죽음이다. 나와, 내 사랑하는... 그랑테르는 얼음덩어리가 아니라 온기를 가진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았다. 방금 만들어진 슬픔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가장 결혼다운 결혼이었다.
창조주는 들뜬 것 같았다. 작고 선명한 붉은 빛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너희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특별한 의식을 거쳐 마침내 하나로, 온전히 뜻을 함께하고 관계를 결합하는 것을 결혼이라 하더구나. 멋진 발명품이지. 그리고 그 자리에 증인들을 세우는 것을 보았다. 축복과 함께. 어떤 결혼은 증인이 없이도 진행되더구나. 오직 두 사람만이, 오로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이다. 어떤 결혼은 축복도 없이 진행되더구나. 그럴 때면 나는 내 또 다른 자식들이 그 결혼을 축복하게 했단다. 그런데 너희는, 너희들은, 아주 특별했지.
그랑테르는 입을 벌렸다. 경직된 채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무언가 아주 잘못되었다. 뻣뻣이 굳은 몸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명멸하는 붉은 빛들이 마치 화약이 터지는 것 같은 착각을 주어서, 그는 주저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직접 그 결혼을 주례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왜 그랬습니까?
너희들은 내가 너희를 만든 이유를,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한 일의 의도를 가장 명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가... 나의 동지들이.
그래.
그리고 창조주는 그 몸을 다시 어둠 속으로 숨겼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너희 아홉은 내가 직접 너희를 창조한 이유를 명확히 실천했다. 그 전장의 한 가운데서, 그들이 내 품으로 돌아올 때 나는 오랜만에 잊었던 감정을 떠올렸단다. 아이야. 너희를 처음 만들 때 느낀 것. 희망이라 칭하더구나.
무슨 말입니까.
아름다운 일곱이 내 뜻을 실천하고, 품으로 왔을 때. 나는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 곳에 생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나더구나. 결혼. 두 영혼이 마침내 합일하는 순간. 너는 네 손을 그 아이의 손에 얹었고, 허락의 미소가 지어졌지. 나는 서둘러 내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너희를 위해서.
그랑테르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를 감싸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든 간에 그저 견딜 수 없었다. 그와 창조주의 말은 자꾸만 어긋나고, 충돌하고 있었다. 아니, 그랑테르의 말이 창조주의 말에 잡아먹혀 들어가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현을 때리는 망치가 천에 막혀 먹먹해질 때처럼. 그 사이를 가로막은 천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자식들은 당신을 저주합니다! 나 또한 살면서 수천 번을, 아니, 그보다 더한 욕을 해댔습니다. 성당 앞에 침을 뱉고, 그것마저 질렸을 때는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의 축복이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냔 말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려오는 축복도 아닌 것을 받아 무엇합니까?
그래. 종종 나의 자식인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듣고, 본 적이 있었지. 헌데 이상하구나.
그리고, 그랑테르의 얼굴 바로 곁에서 노랗고 작은 불꽃 하나가 휙, 떠올랐다. 그것이 창조주가 느낀 궁금증의 표현인 듯했다. 적어도 그의 짐작에서는.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욕하거나 저주한 적 없었다. 오히려 찬양했지.
아니, 아닙니다. 나는 머리가 굵기 시작한 이래 당신을 믿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 무엇도 믿지 않았습니다.
너는 내 사원에 들어와 내게 침을 뱉은 적이 없었다.
수천 번도 더 그랬습니다.
너는 나를 바라고, 선망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습니다.
나는 모두에게 공평한 축복을 내렸다.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이제 온전히 검은 어둠만이 보였다. 그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입니까.
묘비 앞에서 침을 뱉은 적 있느냐, 아이야?
... ...
네 말대로, 머리가 굵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나를 선망하지 않은 적 있었느냐, 아이야?
당신은.
나를 만나지 않은,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을 본 적 있느냐, 아이야?
숨이. 코 끝에서, 가슴 가장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갈 만큼의 순간이 지났다. 그랑테르는 눈을 깜빡였다. 적어도 그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했다. 거대한 착각이 그와 창조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창조주의 것이 아니었다. 그랑테르는 늘 그랬듯이, 흐릿한 정신으로 물었다. 너무 빠르게 자신했다.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사로잡혀 바로 곁에 있는 것들을 무시하는 습관이 다시 한 번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제 알았구나.
당신은 누구입니까?
네가 알고 있는 이름을 말하거라.
창조주의 목소리가 성당 안 합창단의 소리처럼 청명해졌다. 마치 그랑테르를 놀리는 것 같은. 그 천진한 장난스러움에 그랑테르는 무릎을 털썩 꿇고서, 제 가슴을 주먹으로 꽉 짓누를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죽음입니까?
그래.
죽음이라 불리는 존재가 우리의 창조주입니까?
그래.
그랑테르는 잠시간 침묵했다. 창조주는 자비롭게도 그 영혼의 침묵을 견뎌 주었다. 일렁이는 흰 불꽃이 다시 저 멀리에서부터 뻗어져 왔다.
나와, 내 사랑하는...
앙졸라스.
네.
네 사랑하는 이와 너의 결혼식은 나로 인해 축복받았느니라.
왜,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데려왔습니까? 공평함을 위해서입니까?
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말을 들려주마.
그리고 창조주는 거대한 푸른 빛으로 그랑테르를 감쌌다. 그가 표현하는 법은, 아마도 형태 없는 것들을 부리는 것이라고, 그랑테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리와 빛, 말, 그리고 감정. 그런 것들. 어쩌면 인간이 그런 무無에서 존재를 재확인하는 이유도 우리의 창조주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창조주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랑테르는 그 말이 성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와 닮은 이가 하나 있었다. 형태 없는 말을 부리고, 죽음으로부터 사람을 되살렸으며, 마침내 그 자신 또한 죽은 후 삼 일 만에 그 극복할 수 없는 슬픔에서 잠시간 벗어났던. 이제서야 그랑테르는 그가 왜 신의 자식이라 칭해지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알던 것들은 뒤집어졌다. 그랑테르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메시아 예수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아가야 하고, 유일하게 계신 분의 것은 그분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일이 인간 삶에 대한 거대한 비유였다는 사실을.
너희는 내 자식들이란다. 마땅히 내가 돌보아야 할 존재들이란다. 그러니 마땅히 내 품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너희 스스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내 너희들을 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단다. 아이야. 내 어찌 너희들을 보살피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숭고한 죽음을 향해 달려왔다. 나의 품에 안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서로를 끌어안았고, 세상을 사랑했다. 그래. 너희는 진심을 다해 사랑했더구나. 목소리를 높였고, 너희의 젊은 열정을 거리에 흩뿌렸다. 저 세상을 위해, 내가 만든 다른 나의 자식들을 위해. 나는, 나는... 기뻤단다. 아이야. 너희 아홉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뻤단다. 내 손으로 지었지만 나 자신보다 훨씬 거대하고 성숙하게 죽음을 수행해냈더구나. 내 자식들아. 어서 오너라. 그래.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이 말을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랑테르는 고개를 숙였다. 창조주의 손이, 사람의 온기를 담은 손이 그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이제 너희는 쉴 수 있단다.
...내 동지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와 만났고, 모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쉬고 있느니라. 네가 마지막이다.
앙졸라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말입니까?
창조주의 양손이 그랑테르의 얼굴을 감쌌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려는 듯, 그 따뜻함이 뺨과 눈가 위로 얹어질 때 그랑테르는 흐느꼈다. 창조주의 목소리가 다시 흐릿한 피아노 소리처럼 둔탁해지기 시작했다.
너를 기다리고 있지. 내 아이야.
고맙습니다.
네 고마움이 드문 것을 알지만, 아이야.
그리고 창조주는, 마치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나는 고마움을 바라고 너희를 창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손이 그랑테르의 눈을 덮었다. 그랑테르는 고개를 들은 채로, 턱 끝으로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그저 내버려 둔 채 창조주의 손길이 자신의 눈을 가리고 머리를 토닥이는 것을 느꼈다. 그랑테르의 삶은 죽음을 향한 하나의 거대한 찬송이었다고 칭해야 하리라. 그러나 창조주는 그랑테르가 평생 행해 온 찬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랑테르는 확신했다. 오히려 그가 마지막 순간 일평생 살아 온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은 마지막 창조주의 마지막 말로서 확신되었다.
훌륭히 살아냈고, 숭고히 죽었으니. 이제 안식이 기다리고 있으리.
다시 천 하나가 덮어지는 것처럼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가로막는 천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먹먹하지만 포근한 소리와 빛이 다가왔다. 창조주의 존재는 전혀 흐려지고 있지 않았다. 그랑테르의 영혼이 마침내 그의 정원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창조주는 다시 청명하게 장난스러운 소리로 속삭였다. 네 벗이자 짝을 만나러 가거라.
그리고 단 한 순간 만에, 그랑테르는 너른 풀밭 위에서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앙졸라스의 얼굴을 만났다. 죽음과 그가 사랑하는 이의 허락 아래서. 이제는 안식할 것이었다. 카이사르의 것이 카이사르에게 돌아가듯이. 그의 영혼은 다시 죽음에게로, 그리고 본디 그 주인이었던 앙졸라스에게로 돌아갔다. 그것이 진정한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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