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2차 창작

공포.

2. 앙졸라스.

사랑은 자유로운 새와 같아서.

사랑하라.

앙졸라스는 객석에 앉아 눈을 뜬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그는 공연 도중 조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것들을 보지 않는 축에 속했으며, 그러므로 깜빡 눈을 감고 어느 장면을 놓쳤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 객석에 묶인 꼴이다. 오페라글라스는 없다. 물론, 티켓도 없다. - 양옆에 밧줄로 묶인 채 잠든 이들이 있으나 아는 얼굴은 아니다. 붉은 벨벳 의자에 죽음의 향이 묻어난다. 무대에 불이 켜진다. 그가 고개를 세차게 돌려 눈을 홉떴을 때, 아리아가 시작된다.

검은 머리의 가수가 등장한다. 누더기 옷, 쏘아보는 눈, 움푹 꺼진 눈두덩. 해골처럼 즐거운 죽음이 배어나는 몸짓. 산타 무에르테! 산타 무에르테! 객석이 연호한다. 산타 무에르테! 양동이에 담긴 물에 발을 담그고 긴 바지를 걷어 올려 종아리를, 허벅지를, 드러낸 채 문지른다. 그가 웃는다. 산타 무에르테! 앙졸라스는 몸을 뒤틀었다. 그는 분명히 이 오페라를 보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었으므로. 이것은 기괴했다. 너무도. 앙졸라스는 그저 루이르그랑 앞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한 신사와 어깨를 부딪혔다. 붉은 빛 조끼에 검은 흔적이 석탄 가루처럼 묻어났다. 신사는 모자를 들어 정중히 사과했다. 모자 안에서, 앙졸라스는 뱀의 눈을 보았다.

생각은 토막 난다. 노란 눈을 보았을 때 앙졸라스는 정신을 잃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수가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이는가? 손 끝에 붉은 사과 하나가 들려 있다. 앙졸라스는 다시 몸을 뒤틀었다. 그는 앙졸라스를 뻔뻔스레 바라보며 사과를 물어뜯는다. 그것은 반드시 '물어뜯는다'라고 표현해야만 하는 행동이었다. 어째서냐 묻는다면, 저기 저 장면을 다시 바라보라 말하겠다. 혀를 내밀어, 붉은 사과 껍질에 흐르는 과즙을 핥고, 이를 단단한 과육 속에 콰득, 밀어넣어, 벌려진 입 안에 들어간 그 과일의 향내를 코로 들이키며 아래턱과 위턱을 다무는 순간 온전했던 하나는 파괴되어 조각과 상처 입은 원본으로 변한다. 다물어진 입술이 품은 사과의 향기. 붉은 빛 껍질이 물어뜯긴 채 맨살을 드러내고서 그만 부끄러움을 알게 된 사과가 무대를 떠난다. 그의 눈이 앙졸라스를 쏘아본다. 금발의 아폴론은 꿰뚫리고. 불안하게 떨리던 몸과 등줄기가 멈춘다.

사랑은 자유로운 새와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 길들이고 싶어도 길들일 수 없네. 그가 다시 앙졸라스에게 손을 뻗는다.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가 흐드러진 등나무 꽃처럼 늘어져 향내를 풍기고. 그를 불러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앙졸라스는 이제 당혹스러움에 휩싸였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잘도 말하지만. 그가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다. 누더기 사이로 부풀었다 내려앉는 가슴과 배가 보인다. 흰 살갗 위로 드러났다 사라지는 수줍은 인체 안의 비밀들. 누군가는 과묵하기만 하지요. 그는 손끝과 목덜미에 물방울들을 매단 채로 노래를 부른다. 투명한 액체가 담은 조명의 빛은 구슬처럼 굴러떨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후자랍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그가 좋아요.

그가 손짓한다.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가수가 부른다. 저 멀리 조명으로 손을 뻗으며. 극장을 가득 채운 거대한 소리를 생각해 보라. 온 몸을 울리는 전율을, 앙졸라스는 오페라를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오직 조국을 바라볼 눈만이 남아 있었으므로. 앙졸라스는 노래를 즐겨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연설할 목소리만이 남아 있었으므로.

사랑은.

그에게는 사랑할 마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파트리아, 자유의 여신만을. 어머니 조국만을 사랑할 마음만 가지고 살아 온 지 오래였다. 앙졸라스는 자신도 몰랐으나 절제 수술의 선구자였다. 스스로 수술을 집도하였으므로.

사랑은 집시 아이랍니다.

그리고 잘라내어 쓸모없어진 그것들은 내버렸을 것이다. 파리의 하수구에, 대학가의 진창 속에, 혹은 남프랑스의 들판 나무 아래 어딘가에.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요.

혹은 여기 이 객석의 가장 밑바닥에. 이제 무대 위의 가수가 숨을 들이쉰다. 빛 아래 그늘진 얼굴의 결 사이로 푸른 눈이 빨려 들어갈 듯 머무르고. 앙졸라스는 눈을 깜빡였다. 처음으로 의문한다. 아름다운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만일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는 저 가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검은 머리, 움푹 꺼진 눈, 즐거움이 배어 나오나 죽음이 담긴 듯한 몸짓과. 사과를 부끄럽게 할 줄 아는 에덴동산의 릴리트 같은. 아름다운 허벅지를 가진 가니메데와 같은. 한정 없는 수식어를 덧붙이고 나오는 이미지들은 오로지 앙졸라스의 눈이 보고 있는 것들에 기반하였다. 감정이 시각 하나만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앙졸라스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리라도 내어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조심해야 해.

조심해야 해! 코러스가 함께 외친다. 앙졸라스는 큰 소리에 지끈대는 머리를 감싸려 했으나 양손은 자유롭지 못하다. 손목을 돌릴 수도 없이 단단히 묶인 채로, 앙졸라스는 탬버린 소리에 맞추어 느릿느릿 뒤돌아서는 무대 위의 사람을 본다. 그가 이제 월계관을 주워 든다. 손 사이에 들고서, 승리자에게 수여할 것처럼 치켜들고 앞으로 다가온다. 무수한 손들이 무대를 향해 뻗어진다. 저 월계관을 제게 달라는 양. 무수한 환호와 비명이 쏟아진다. 앙졸라스는 역겨움에 눈을 치떴다. 무엇을 향해? 고작 저 월계관을 향해? 상징일 뿐인 월계관을 향해? 저 사람이 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래. 저 손들은 맹목이 뻗은 손이다. 내게 달라! 당신의 마음을! 그렇게 쓸데없는 의미를 담는다. 하잘것없다. 누군가가 들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옛 통치자들이나 자랑거리처럼 써대던 오만한 월계관이 프랑스의 국기보다 높게 쳐들어진다. 그러나 앙졸라스에게는 뻗을 손이 없다. 오로지 펜을 잡고 동지들과 악수를 하기 위해 써왔으므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가 굳게 믿던 이성이 파묻히는 것이 느껴진다. 노랫소리 속에, 푹신한 벨벳 의자 위로, 가라앉는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으나 인간의 감각은 더욱 믿지 않았다. 이성. 바르고 올곧은 이성. 그것 하나만이 그에게 척도요 또한 길이 아닌가. 그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붙잡고자 했다.

조심해야 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가수가 작게 흥얼대는 소리가 무대 위로 올려지자 사람들의 맹목이 잦아든다. 아니, 그것은 숨죽인 욕망이다. 이 난장의 한 가운데에 침묵은 절대 고요할 리 없다. 그것은 좀 더 듣고자, 조금 더 크게 듣고자 하는 노골적 마음이다. 앙졸라스는 헛구역질을 했다. 혈관을 타고 거부함이 발끝까지 치솟아 핑핑 돈다. 맹목, 이성 없이 무언가에 정신을 파묻어 버리는 자살. 그는 송장들의 잔치에 온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아무 것도 생각지 않는다. 오로지 무대 위의 가수에게, 그가 부르는 노래에, 행동에 온 힘을 쏟아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삶을 잊으며 이성을 내버리고 있잖은가. 숨을 허덕인다.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남의 욕망에 흠뻑 젖어 무뎌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므로. 숨이 찰 수밖에. 그는 두려웠다. 이 곳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다. 몸을 뒤튼다. 그가 꼴사나울 지경으로 몸부림을 치는 데에도 밧줄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으며, 그의 몸은 거기에 그대로 있다. 눈과 귀도 그곳에 있으며, 심장도 그곳에 있다. 가수가 월계관을 손으로 희롱한다. 얼기설기 짜여진 가지 사이로 손가락을 겹쳐 넣어 부드럽게 그것을 쥐고. 다른 손 손바닥으로 느릿느릿 쓸어내리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양, 콱 쥐어 잡았다 내팽개치듯 휘두르고. 객석에서 탄식 같은 비명들이 터져 나온다.

작은 화살 하나에 손끝을 찔렸네.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앉은 가수가 월계관을 품에 끌어안는다. 노래가 변한다. 탬버린 소리가 잦아들고. 붉은 태양 빛 옷을 걸친 누군가 등장한다. 찰랑대는 금발을 늘어뜨리고서. 리라를 손에 들고. 월계관을 향해 걷는다. 앙졸라스는 숨을 멈추었다.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오만은 장난 같은 사랑을 불러오고.

그 자신의 아니마Anima처럼. 똑같은 얼굴을 한 이가 무대에 서 있다. 기이한 체험은 사람의 생각을 멈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문장 부호들 뿐. 완성된 언어가 되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혼돈이다. 특히나 형태 없는 말을 부리던 이들에게. 앙졸라스와 같은 이들에게. 이제, 그 '아폴론'이 가수를 향해, 아니, 월계관을 향해 손을 뻗는다. 가수가 그 손 위에 쥐고 있던 월계관을 올린다. 굳어진 채 서 있는, 그 인물. 아니, 무어라 해야 하나? 그것은 배우인가? 자신의 그림자인가? 앙졸라스는 비명처럼 한숨을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무대 위에서 월계관을 쥔 아폴론이 소리를 지른다. 창자가 꼬여 견딜 수 없는 환자가 고통에 부르짖는 것처럼.

나를 원한다고 말해요.

이것은 그저 많고 많은 장난 같은 신화 중 하나일 뿐이다. 앙졸라스는 알고 있었다. 아폴론과 월계관의 이야기. 에로스의 작디작은 화살을 비웃었다가 그만 장난처럼 맹목적 사랑에 빠져 버린 한 신의 이야기. 가수가 이제 앙졸라스를 쏘아보고 있다. 움푹 꺼진 눈두덩 사이로 즐거움이 떠오른다. 그가 흥얼거린다. 오, 나의 태양. 이제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그가 걸어온다. 자신에게로. 찢어진 누더기 사이로 움직이는 근육이 에로틱함을 담는다. 조명 아래 붉게 달아오른 두 어깨와 뺨, 즐거움으로 상기된 얼굴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앙졸라스는 그것이 매혹적이라 생각할 뻔했다. 그 자신이 멈추었을 뿐. 강에 빠진 채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나무토막의 기분이 이러할 것인가? 너무도 거대한 두려움으로 그저 흘러가기만 한다. 앙졸라스는 수백 쌍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음을 알았다.

내게 손을 뻗고 싶다고 말해.

단단한 팔이 앙졸라스를 끌어안는다. 이미지가 실체가 되어, 향기가 존재를 담고 그를 덮친다. 말 그대로, 덮쳐든다. 온 몸을 와락. 앙졸라스는 이제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온기 없는 살갗과 패인 눈두덩에 고인 즐거움. 그 기이함. 그것이 그리고 속삭인다. 나를 원한다고 말해. 앙졸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드러난 허벅지가 앙졸라스의 허벅지 위로 겹쳐든다. 검은 머릿결이 뺨을 스친다. 무대 위의 아폴론은 눈물을 흘리다 손에 쥔 월계관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린다. 화살통을 월계수 잎으로 장식한다. 하잘것없는 감정. 사랑. 아폴론의 잘못은 오만함에 있었으리. 앙졸라스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그 존재가 그렇게 말한다. 태양아, 보이느냐. 그 안에 비웃음이 담긴다. 앙졸라스가 입을 벌려 되묻기도 전에, 손가락이 그의 입을 덮는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저 무대 위의 모든 것이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수백 쌍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초록 눈, 푸른 눈, 붉은 눈, 샛노란 눈. 앙졸라스는 세차게 몸을 뒤채려 했으나. 거미처럼 자신에게 꽉 들러붙은 그 존재에게 짓눌린다. 그가 허리를 들썩인다. 즐거운 얼굴로. 조명이 앙졸라스를 비춘다. 숨죽인 욕망들은 여전히 숨죽이고 있다. 이제는 더 잘 보려 함이다.

너도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럴 리가 없다. 앙졸라스는 소리 내어 말하려 했다. 그러나 둔탁한 묵음이 되어 자신의 입을 덮은 손바닥 아래 뭉개진다.

너도 나를 사랑하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

그가 손을 뻗어 앙졸라스의 뺨을 다정스레 쓸어내린다. 그리고 속삭인다. 아폴론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나를 사랑해. 앙졸라스는 경멸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한 치도 변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속삭인다. 내게 입을 맞춰. 앙졸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깔깔 웃는다. 고개를 젖힌 채. 음악이 멈춘다. 조명은 여전하다. 저기 저 눈들 또한. 삽시간에 침묵을 맞은 공간이 있지도 않은 한기를 불러오는 것만 같은데. 자신을 덮쳐든 향기가 여전하다. 짙은 나무 연기 아래에 숨겨진 초록 벨벳의 향.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요.

천진한 악의를 담아, 그가 앙졸라스의 입을 덮은 손을 떼어냈다.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벌려진 입술 위로 사과의 향이 듬뿍 배어든 또 다른 입술이 덮인다. 입맞춤. 떨어져 나가는 입술을 앙졸라스는 서느런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것은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움직임을 멈추지도 않는다. 길다란 손가락이 조끼 사이로 파고들어 그를 어루만진다. 수백 쌍의 눈동자. 그것이 계속해서 속삭인다. 나를 사랑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앙졸라스는 눈꺼풀을 감으려 했다. 그러나 눈은 제 말을 듣지 않는다. 온 몸은 이제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

나를 사랑해.

내 심장 속에 네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 앙졸라스는 헐떡이는 숨 사이로 차게 내뱉었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만 대꾸하고서 다시 낄낄대며 웃는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문처럼. 사랑, 앙졸라스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의 사랑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한없이 거대하며, 높고, 깨끗하며, 올곧았다. 사랑. 그는 자신을 덮쳐든 이 존재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하라 요구해댄다. 무슨 사랑을 원하는가? 앙졸라스는 끝내 자신의 살갗을 매만지려 파고든 온기 없는 손길에 숨을 내뱉었다. 그에게도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 숨결에 그것이 기뻐하며 들썩였을 때. 앙졸라스는 그가 무엇을 하려 드는지 깨달았다.

너도 날 사랑하게 될 거야.

그것은 앙졸라스가 자신의 통제권을 잃어버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더 가까이 육체를 맞붙여 오는 움직임에 기이함이 담겨 있어 앙졸라스는 거칠게 몸을 뒤튼다. 마치 앙졸라스 하나만을 위해 지어진 지옥처럼. 모든 것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며 아무 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앙졸라스에게 욕망에 굴복하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앙졸라스의 사랑을 작디작은 새장인 육욕 하나에 가두고 싶어했다. 그것은 앙졸라스가 굴복하는 꼴을 보고 싶어 했다. 오만한 아폴론이 에로스의 금 화살에 찔렸던 것처럼. 그것은 앙졸라스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의 이성을, 생각을, 사랑을.

앙졸라스는 문득 자신이 저항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들이 소용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 조롱 앞에 그는 무기력했다. 그는 묶여 있으며, 수백 쌍의 눈이 자신에게 덤벼들 듯 빛나는 어둠 한 가운데 홀로 선명히 비추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때서야 그는 등골을 타고 오싹하고 날카로운 공포를 느꼈다.

만일 그가 정말로 그것의 뜻대로 된다면?

그가 정말로 육욕의 새장에 가두어진다면?

천천히 무대에서, 반쯤 죽은 이들이 연주하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객석 아래에서 월계관을 꺼내 앙졸라스의 금발 위에 씌우고, 교태로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비명과 환호성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고, 눈을 찌르는 조명이 검은 머리와 함께 시야를 거미줄처럼 가리고. 무릎 위에 앉은 몸뚱아리가 쉴 새 없이 요구한다. 나를 사랑해. 앙졸라스는 자신이 언제까지 이성의 반석 위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했다. 그가 가진 생각들이 조명 아래 휘발되어 날아간다. 맹목의 비명 사이에 낀 채로. 앙졸라스는 숨을 쉬었다. 모든 감각들이 가장 시끄러운 한가운데서, 그는 생각을 붙잡을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가 되면 고개를 돌린 채 어둠을 바라보려 애썼다. 긴 손가락이 앙졸라스의 턱을 쥐어 잡고 시선을 그것 자신에게로 돌릴 때면, 앙졸라스는 자신의 동지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나누던 대화를 떠올렸다. 언어로써 나누던 것들과, 늦은 밤 불길 토하듯 서로 뱉어냈던 사상들을. '사랑'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던 것들을. 조국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벗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앙졸라스는 책의 목차를 짚어 가듯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생각해야만 했다. 앙졸라스가 손을 비틀어 보려 하면 입술이 목덜미에 닿는 것이 느껴지고. 그가 잠시 눈을 뜨면 손길이 허리 뒤로 파고들어 등을 쓸어내리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면 입술이 와 닿으려 했으므로.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러나 앙졸라스가 몰랐던 것은, 그가 생각하던 벗들이 이 수많은 감옥의 방 어딘가에 갇혀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지요, 누군가에게는 가식이며, 누군가에게는 헛됨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아름다움인. 그곳은 공포로 지어진 성채였으며 모두가 같은 것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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